정책연구Vol.236.가을호

교육자는 아이들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 교사와 학생의 회복적 관계를 위해 꼭 짚어야 하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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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일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선임연구원)

1. 성공적인 교육의 기본 전제 = 교사와 학생 상호간의 신뢰

교사들이 지쳐가고 있다.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어 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이들이 교사를 꿈꾼다. 그들은 성스러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학교라는 현장이 만만치 않다. 시대가 변한 탓일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은 없는가? 좋은 답을 찾으려면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육의 기본에서부터 되짚어보자.
성공적인 교육은 교사와 학생 상호간의 신뢰를 밑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교사는 학생의 잠재력이 발현될 것이라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가르칠 수 있다. 학생은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진정성을 믿어주어야 교사와 함께 하는 경험을 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전통적인 교육학 이론의 기본 전제 = 늘 결핍 상태에 있는 아이들

2. 전통적인 교육학 이론의 기본 전제 = 늘 결핍 상태에 있는 아이들

그러나 한편으로 학생은 기본적으로 늘 결핍 상태에 있으며, 그 결핍을 채우는 것을 교사의 의무로 여기는 오래된 교육관이 교사와 학생 간 신뢰 관계에 적지 않은 딜레마를 형성해왔다. 학생의 결핍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는 관점은 행동과학을 기반으로 성립되어 발전해온 교육학의 주류적 관점이다. 이때 결핍이라는 것은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도달해 있어야 하는 상태를 표준으로 설정했을 때, 그것에 못 미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결핍 개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상태로서의 표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교육학에서는 이것을 일반적인 개념으로서 교육목표라고 말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전통적인 교육학의 전제 조건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학생들은 늘 결핍 상태에 있다는 전제를 깔고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학교의 문화는 형성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이미 바람직한 지식 체계가 형성된 지식인이어야 했고, 학생들은 늘 결핍 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러한 학교의 문화 속에서 교사들은 점차 학생들의 결핍에 대한 개념을 확대 해석하여 학생들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능력도 결핍되어 있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계획을 스스로 수립할 능력도 결핍되어 있으며, 수립된 계획을 성실하게 수행할 자기주도력도 결핍되어 있어서 총체적인 결핍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시험점수는 이러한 인식관을 굳히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학기말 시험 점수가 올백점이 아니면 결핍이 채워지지 못한 것이다.
‘학생은 늘 결핍 상태에 있다.’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학생은 늘 부족하다. 가르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통제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킨다.’라고 인식하게 된다. ‘학생은 늘 결핍상태에 있다.’라고 바라보는 교사의 인식관은 이처럼 학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과연 학생들은 실제로 결핍 상태에 있는 아이들인가? 통제를 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문제를 일으키는 잠재적인 문제아들인가? 이러한 질문이 언뜻 중요해 보이겠지만, 행동과학 전통의 교육학 전통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을 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결핍을 전제로 하여 교육의 정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결핍 상태에 있다는 진단을 내리려면 그러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표준 또는 목표에 대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그 시대 그 학문 분야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그러한 표준 또는 목표를 설정해왔고, 교육학자들은 그 표준을 학생들의 성장 단계에 따라 분배하였으며, 교사들은 단계별로 재설정된 표준에 빗대어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그보다 부족한 상태, 즉 결핍 상태에 있다고 전제하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결핍이 채워져서 정상적인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평가를 통해서 확인한다. 평가의 결과에 따라, 학생은 여전히 올백에서 부족한 점수만큼 결핍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핍 상태에서 그 다음 학년으로 진급한다. 이런 식으로 결핍은 누적되고 학생들의 성장 수준에 대한 교사들의 불신이라는 전제는 더욱더 굳혀간다. 이처럼 학생의 성장을 향한 교사의 불신이라는 전제는 학생을 이해하는 교사의 시야를 좁아지게 만들고 그만큼 교육활동의 범위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3. 과학적 통제기법의 도입(교육의 과학화)의 이면

학생들의 결핍을 규정하는 공식적인 문서는 국가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의 역사는 시대정신의 요구를 고스란히 반영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산업혁명은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의 질적 변화를 야기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다. 산업혁명은 교육의 영역에도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1차 산업혁명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대중교육으로서의 <학교>라는 형태를 촉발시켰으며, 2차 산업혁명은 미국의 교육학자 R. W. Tyler의 <합리주의>라 일컬어지는 ‘교육의 표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혁명을 이끌어냈던 테일러주의(Taylorism)를 모방하여 학교 교육의 대량생산을 위한 표준화를 이끌었던 것이다. 특히 교육을 과학적으로 실행해 나가기 위하여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의 구성 체제를 갖춘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지침을 안내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교육의 과학화’ 작업은 산업분야에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해 낸 ‘과학적 통제기법(scientific management)’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2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량생산 혁명의 시기는 Frederick W. Taylor가 창안한 ‘과학적 통제기법’의 기여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추어 대량생산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며, 노동자의 업무효율성을 올리기 위한 해법으로 ‘작업 공정의 표준화’를 대안으로 떠올린다. 그는 ‘과학적 통제기법’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작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또한 시간연구(time study)를 통해 노동자들의 작업을 기본동작으로 분해한 후 쓸모없는 동작을 제거하고 각 동작별로 최선의 것을 찾아낸 뒤 작업 시간을 초 단위까지 세분화해서 측정하였고, 이런 식으로 각각의 작업 과정을 분해해서 노동자들에게 부과할 수 있는 매뉴얼(표준화된 작업 지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 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르는 채 매우 세분화된 매뉴얼의 지침을 수행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체된 생산과정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생산과정 전체를 이해하고 세분화된 매뉴얼을 계획해야 하는 별도의 추가 작업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기획의 역할과 노동자들의 작업감시를 담당하는 역할로 관리자(manager) 직급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테일러주의를 모방한 R. W. Tyler의 합리모델은 테일러주의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학교라는 영역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교사들의 행동 매뉴얼을 표준화하였고, 그러한 행동 매뉴얼을 지키는지를 관리 감독하도록 관리자라는 직급을 배치시켰다. 현행 학교 제도에서 교장 또는 교감의 직책이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과학적 통제기법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관리자의 핵심 과업이다. 교육학에서도 ‘피드백’은 교육의 기본 개념을 정리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개념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드백’은 Frederick W. Tyler가 창안한 ‘과학적 통제기법’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매뉴얼대로 작업을 수행하는지, 성과목표에 도달하는지, 작업 수행상 오류는 없는지 등등에 대하여 감시하고 바로잡도록 알려주는 신호의 역할을 하는 것이 ‘피드백’이었다. R. W.Tyler 전통의 교육 모델에서도 ‘피드백’은 사전에 설정된 교육목표에 학생들을 성공적으로 도달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관리자의 핵심 수행 과업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정해진 계획에서 벗어날 때마다 ‘피드백’이라는 과업을 적절하게 수행해야 하며, 교사들이 정해진 과업에서 벗어날 때에는 교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학교의 관리자로서의 교장 또는 교감이 ‘피드백’ 과업을 이행하는 것이다. ‘피드백’은 합리주의 전통의 교육모델이 추구하는 교육 행위의 예측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해왔다.

4. 지난 20세기 버전의 유능한 교사상 = 타인을 잘 통제(피드백)하는 교사

학교 교육이 ‘과학적 통제기법’ 모델을 따르게 되면서 유능한 교사상도 새롭게 정립되었다. ‘통제를 잘 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인식되었다. 교육학자들도 교사들의 통제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교수법은 통제기법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성취해야 할 표준과업으로서의 학습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수업 계획을 잘 수립해서 학생들을 이끌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탈하려는 학생들을 통제하여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표준 과업에 도달하도록 하는 교사가 성과를 내는 교사였다.
그러나 통제를 잘 해서 성과를 냄으로써 스스로의 유능함을 증명해야 하는 교사들의 삶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그 초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유능한 교사는 곧 통제를 잘 하는 교사라는 인식이 교사로서의 교직관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보람을 어떻게 왜곡시켜왔는지를 생각해보자.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 사람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어 하는 이들일 것이다. 임용시험에 통과한 초임 교사들은 교과를 탁월하게 가르치는 능력을 갖추고 또 학생들의 삶 전반에 걸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교직을 시작한다. 학교는 교사들에게 이러한 성스러운 꿈을 공식적으로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장이었다. 이러한 교직관을 보여주는 교직 30년차 배은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인용해본다.

“과거에는 학생들의 학업 성과로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는 교직의 분위기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열정을 쏟은 만큼 결과로 보이는 현실에서 만족함을 얻을 수 있었다. 교과내용을 쉽게 가르치는 교사로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즐거웠고, 협동과 단결로 좋은 학급을 만들자는 기치 아래 내가 맡은 학급을 무결석학급,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급, 여러 가지 학급대항 대회에서 우수한 결과를 내는 학급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는 것이 교사로서 큰 행복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사들의 낮은 직업만족도, 학생 지도의 어려움 호소 증대,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는 비율의 증가 등 교직에 대한 부정적 인식관이 증대되고 있다. 교육환경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지표들은 지금의 학교가 처한 위기의 신호이다. 이러한 위기 신호가 점자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가설로서 과도한 통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해 볼 수 있다.
만약 어떤 부모가 자식의 성공 여부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는 것처럼 자식을 양육한다면 그 모습을 두고 교육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흉을 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동안 학생들을 마치 교사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주는 대상인 것처럼 보아왔고,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는 생각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온 측면이 있다.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성과를 통해 교사로서의 유능함을 검증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외적인 성과에 치중해 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는 동안 공부 잘 하고 성과를 내는 학생만 인정받는다는 편견 속에서 상처를 받았을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행동과학에 기반해 온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교육은 보호 철조망과 같아서 아이들을 의도하는 대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통제(control)와 간섭(intervention)을 필수 속성으로 갖는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자율 의지를 거스르는 통제를 외부로부터 받으면 받을수록 반발하기 마련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통제와 간섭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아이로 성장하여 사회에 진입할 때 마치 벌거벗은 아이처럼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다.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부모를 원망하거나 기필코 일탈행위를 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통제(control)를 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반발을 유발시킨다. Brehm(1966)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심리
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이라고 명한 바 있다. 이는 금지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로, 남에 대한 지나친 통제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타인을 향한 통제는 통제를 받는 자를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통제를 가하는 당사자의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McClelland(1979)는 권력 스트레스(power stress)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 바 있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화가 나고 불만이 쌓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구와 타인으로부터 통제를 당하는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자율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한편, 통제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작동 기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율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올바른 통제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 ‘자기결정성 이론’이다.

5. 21세기 버전의 탁월한 교사상 = 자기결정력을 갖춘 교사

Deci와 Ryan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자기 자신의 행동과 운명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동기의 질이 더 높아지고 행복감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Ryan & Deci, 2000; Deci & Ryan, 2008). 구체적으로 유능감, 자율감, 그리고 좋은 관계성을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주창한 Deci와 Ryan은 그들의 이론을 ‘자기결정성 이론’이라고 명명하였다. 자기결정성을 갖춘 인간, 즉 자율적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을 말한다. 타인으로부터 통제받아서 수동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적 인간을 말한다.
지난 20세기 산업화 시대에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시스템의 요소들(매뉴얼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감독하는 관리자들)에게 책임과 역할을 부여한 후, 그들이 맡은 바 일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지난 한 세기 전 세계를 풍미했던 ‘과학적 통제기법’의 핵심 요소였던 ‘통제’는 타인에 대한 통제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이처럼 타인을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탁월한 성과나 창의적인 성과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제 통제의 대상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자각하는 시대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율적 인간상이 행복한 인생임을 설명해주는 이론은 교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정해진 수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을 잘 통제하고 피드백 하던 교사가 유능하다고 인식되었으나, ‘자기결정성 이론’은 이제 교사가 교사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고, 학생들도 학생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는 환경 아래에서 비로소 교사와 학생 모두가 각자의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힌트를 제공해준다.

6. 인간관을 변화시킨 연구들(1) = 무너진 합리적 인간상

2017년도 노벨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 분야의 대가이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인 Richard Thaler가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 위원회가 행동경제학에 주목한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립시킴으로써 인간 문명 세계에 새로운 기여를 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인간 행동의 중요한 특성은 바로 ‘비합리성’이다. 행동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학계에서 신성시해왔던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 가정이 바뀐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 가정이 ‘합리성’에서 ‘비합리성’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육계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합리적 인간상’에 집착해온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인간이 합리적이려고 노력하는 것과,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에 합리적이려고 애를 쓸수는 있다. 가령,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후회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 등등이 합리적이려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합리주의 신념은 우리 삶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갖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삶에 대한 합리주의적 태도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추구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합리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교육 장면에 가져오면,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실천들을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통제를 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노력은 과연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과도한 합리성 추구는 행복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합리적 인간상의 핵심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통제하는 행위’일 것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행복을 기대하면서 갖게 되는 과도한 통제 행위 또는 통제 욕구가 오히려 행복감을 떨어뜨린다는 역설적 연구 결과를 보고한다(Kashdan, 2009). Raghunathan(2016)은 그의 저서 『왜 똑똑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If You’re So Smart, Why Aren’t You Happy?)』 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은 통제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은 과도한 통제를 유발하며, 과도한 통제 행위는 결국 스스로의 행복마저도 통제해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소개하였다.
이처럼 합리성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교육의 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 모델을 합리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홍영일, 2017). 합리 모델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오직 예측 가능한 문제, 인위적으로 설정된 목표뿐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 삶의 실제는 예측 가능하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문제를 합리주의 전통을 따라 해결하고자 할 때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교육계에서 지금까지 추구해오고 있는 합리 모델이 우리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인간의 행복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요즘 어느 정도 설명되고 있다. 노벨상 위원회는 인간의 본성이 합리적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린 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촉발시켰고,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한 합리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어떻게 우리 삶의 근본 목적이기도 한 행복을 떨어뜨리는지를 객관적으로 밝혀내고 있는 상황이다.

7. 인간관을 변화시킨 연구들 =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상

행복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한 연구자들은 좋은 삶의 비밀을 서서히 밝혀내기 시작했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삶의 다양한 영역, 즉 결혼, 우정, 경제적 수입, 일터에서의 성과, 건강 등 삶의 전반에서 보다 성공적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Brown & Ryan, 2003; Fredricson, 2001; Fredricson, 2005; Lyubomirsky, 2008; Seligman, 2002). 그리고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 요인이 어떤 특정한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매 순간 경험하는 감정적인 행복부터 삶의 만족감과 삶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점도 밝혀지면서(최인철, 2019), 삶의 즐거움에만 치우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삶의 의미에만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행복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연구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지금까지의 학교 교육이 아이들에게 먼 미래의 행복만 바라보면서 현재의 소중한 행복을 제한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행복 연구는 교육계가 교육목표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창의성 교육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행복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로서 긍정정서가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소개한 Isen(1987) 등의 연구, 긍정정서가 창의성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창의적 행동이 다시 긍정정서를 강화한다는 결과를 소개한 Amabile(2005) 등의 연구, 그리고 이와 유사한 논문들을 225편을 분석하여 275,000여 명의 피험자로부터 행복한 사람이 창의성이 높고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다는 종합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 Lyubomirsky(2005) 등의 연구는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해서 창의력 훈련만 시키는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학생들의 행복감을 높여주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성을 알려준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도 ‘관점의 확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점은 마음의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넓어진 교사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보면서 미래의 행복을 고민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현재의 행복까지 챙겨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이 넓어진 학생은 그러한 교사의 진정성을 알아볼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설정하게 되는 행복에 대한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고, 그동안 교육계가 자행해왔다고도 볼 수 있는 과도한 통제의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교사들에게 확산되면서, 이제 교사들도 행복의 본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행복에 대한, 행복한 삶에 대한 이해가 교육자로서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성찰하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교사 스스로 주체적 삶의 통제권을 회복하고, 자신이 교사가 되고자 했었던 초심을 되찾아가고 있다.

8. 행복수업의 경험 = 이미 행복한 아이들을 불신해왔다는 깨달음

행복을 공부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학생들과 행복을 함께 공부하고 행복한 삶의 습관을 연습하려는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2011학년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행복수업 프로젝트>가 올해로 8년차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참여한 교사의 수만 1만여 명에 이르렀고, 교사들과 함께 행복수업을 경험한 학생들도 130여만 명에 이른다. 행복수업을 통해서 교육관이 바뀌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인간관이 바뀌었다는 배은희 선생님의 이야기다.

“내가 가진 산업시대의 낡은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며, ‘하라’가 아닌 ‘하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으니 어찌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이미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너를 위해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학급 분위기를 위해서 네가 절제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말들이 어찌 그들에게 와 닿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행복수업의 경험은 이미 행복한 아이들을 내가 여태 불신해왔었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였다. 이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키워가는 사람,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음미할 줄 아는 사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목표를 가진 사람, 자신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관계를 잘 해나가는 사람,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9. 나가며 : 교사의 회복적 삶을 위한 질문

성공적인 수업을 위해 수업 진도에 맞춰 아이들을 통제하려다가 아이들의 행복마저도 통제해온 건 아니었을까? 40~50분 단위 수업을 잘 계획하고 통제하여 학습목표에 도달하려고 애를 써 왔고, 지금까지 교육학은 그에 대한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행복수업 현장을 관찰해보니 아이들과 정말 잘 소통하는 수업의 가장 큰 공통점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조용한 수업은 조용한 대로,

시끄러운 수업은 시끄러운 대로 아이들 모두 몰입한다는 점이다.

둘째, 시끄러운 수업조차도 정확히 45분(50분) 안에 깔끔하게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미리 설정한 학습목표에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도달할 수 있도록 잘 통제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수업을 통제하려다가 아이들의 행복마저도 통제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행복수업의 지난 8년간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아이들의 자발성과 교사의 자발성에 기초한 수업 모델, 즉 통제 없이 통제되는 수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육자들은 21세기 미래 인공지능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재인식하고, 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한 지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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