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의 의의와 과제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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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이곳 아이들은 열다섯 살이면 총 들고 마약하다 석 달 뒤 죽고 말아요.”

영화 <엘 시스테마>에서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빈민가의 모습을 설명 한 대사이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총소리뿐인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 들과 함께 음악교실을 열었다. 아이들에게는 총 대신 악기가 쥐어졌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의 센터로 퍼져 나갔고, 11명이던 단원 수는 30만 명에 이르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하여 새로운 희망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엘 시스테마>이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해 슬픔도 가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 의해 시작된 <엘 시스테마>의 기적은 희망의 날개가 되어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펴져 나가고 있다. ‘음악의 약속’을 믿고 가난과 폭력의 어린 시절을 극복하여 LA 필하모닉 최연소 상임감독이 된 구스타보 두다멜은 “우리가 배운것은 음악을 통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말한다. <엘 시스테마>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빈곤과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몫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의 결과이다.

“사람과 사람이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리 학교에서 엘시스테마는 어린 학생들의 음악적 학업과 성공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이런 학구적인 음악의 성과와 인간으로서 사회적, 감정적 건강함의 결합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극대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 엘 시스테마 USA 랩차터 음악학교 교장

“음악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마크 처칠, 엘 시스테마 USA 창시자

가정의 경제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우리나라 클래식 교육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엘 시스테마>가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경제적 조건이 교육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의 사회의 1차적 조건이다. 2010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아브레우의 수상 소감에도 이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빈곤은 ‘나누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예술을 누리는 것은 모두의 권리입니다. 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문화는 함께 가야 합니다. 음악 교육을 통해서 현실 그 이상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확산되지 못하는 좋은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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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화예술교육인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는 스페인 내전의 구체적인 참상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통해 인간을 파괴하는 무모한 폭력을 비난하며 보이지 않는 파시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스페인 내전을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화해를 향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문화예술교육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학생 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이를 통하여 창의적 자아 표현 능력, 통합적 사고력, 다양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력 및 소통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장차 미래 사회의 문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교육에서는 세상을 논리적 혹은 과학적 으로 이해하는 이성의 언어를 주로 가르쳐 왔지 만 이성의 언어만으로는 같이 사는 가족의 마음 하나 얻기 어렵다. 이성은 상상력과 감정이 이미 받아들인 것을 겸허하게 따를 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소통과 공감의 언어를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앎과 삶을 연결시키는 데 기여한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지니는 교육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여기서 말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가. 문화예술교육의 정의
문화예술교육은 좁게는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향수나 제작 능력을 함양하는 ‘예술을 위한 교육’ 을 가리킬 수도 있고, 넓게는 자신의 문화와 예술을 익히고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자발적인 학습으로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인간의 창의성을 육성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며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을 의미할 수도 있다(김정 희 외,2013). 전자를 ‘예술을 위한 교육’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예술을 통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5년 설립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업 내용1)을 보면 좁은 의미의 ‘예술을 위한 교육’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예술을 통한 교육’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별 장르로서의 전문 예술인을 양성한다거나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이해력에 머무는 교육이라기보다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개인의 미적, 창의적, 성찰적, 소통적 역량 등을 북돋워 줌으로써 학습자의 발전과 성숙은 물론, 사회의 문화적 성장과 성숙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최현묵,2008). 앞서 소개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에서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잠시 화제를 유럽의 집시로 돌려 보자. 집시의 기원과 관련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10세기 경 페르시아의 어느 왕이 음악도 없이 식사를 하는 가난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인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문화기반시설사회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대상별 사회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문화예술 전문인력양성사업, 문화예술교육기반 형성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에서 만여 명의 악사들을 데려온 데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1966년 프랑스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는 유고슬라비아의 한 집시촌에서 음악인 집시들과 함께 몇 달을 보내면서 집시들의 집단생활을 필름에 담아 <나는 행복한 집시를 만났네>라는 영화를 만들어 돌아왔는데 이듬해 이 영화는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의 여행객들에게 집시의 이미지는 대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데 반해 페트로비치는 자유와 음악에 대한 뜨거운 감수성을 지닌 집시들의 삶에 매료되어 다음과 같은 짧은 시를 남겼다.

주여, 내세에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면 집시로 태어나게 해 주소서
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길을 택하게 하소서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어서 당신을 다시 만나렵니다.

인간의 삶은 ‘실질적인 것’과 ‘장식적 것’으로이루어져 있다. ‘실질적인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그 가치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장식적인것’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는 그 가치를 인식하기 어렵다. 문화예술의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문화예술은 ‘장식적인 것’으로서 실질적인(물질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음악을 듣지 않고도 식사를 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곁들인다면 동일한 메뉴일지라도 식사에 따르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집시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런 장식적인 활동을 함께 하면서 물질적 조건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페트로비치 감독은 ‘장식적인 것’의 힘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던 것 같다.
앞서 소개한 마약과 범죄의 유혹에 빠져 살던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이 <엘 시스테마> 활동을 통해 자긍심을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는 모습에서도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인간 변화의 비밀은 바로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하는 체험에 있다. 이를 단서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건강한 인성을 함양한다. <엘 시스테마>의 청소년들은 함께하는 음악활동을 통해 창의성과 리더십, 도전의식과 협동심, 선의의 경쟁, 화합과 연대의식을 쌓아 나갔다. 요즘처럼 형제 자매의 수도 적을 뿐더러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속에서 이웃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체험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가치 있는 활동에 함께 몰입하는 체험을 해보는 것은 인성 교육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 문화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음악을 혼자 즐겨듣는 것과 같이 기성품으로서의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문화적 소외를 극복하기 어렵다. 문화예술과 소비자 사이에는 여전히 건너기 어려운 벽이 가로막혀 있다. 반면에 문화예술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행위는 문화예술을 통한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임을 체험하는계기가 된다.

셋째, 삶의 질을 높인다. <엘 시스테마>의 청소년들과 음악에 몰입하여 살아가는 집시들이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문화 해독력(cultural literacy)2)이 주는 가치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문화 복지 기회의 확대는 그들에게 사회적 배제를 극복 또는 완화시킬 수 있는 힘을 키워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사회의 다양성 증진에 기여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기와 다른 관점의 문화예술일지라도 이에 대하여 법률적 혹은 정치적 제재를 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자유가 정치·사회적 자유로 이어지는 것은 역사발전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의 확대는 다양성을 낳는다.

다섯째, 교육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삶을 즐기는 활동의 한 부분이다.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음악을 곁들인 식사의 비유에서 살펴보았듯이 교육의 풍토 면에서 ‘문화예술과 더불어 하는 교육’과 ‘문화예술이 없는 교육’은 같을 수가 없다. ‘문화예술과 더불어 하는 교육’은 학교의 문화를 (특정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해당 사회의 삶과 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와 문법을 성공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지게 되는 의사소통능력을 말한다 -유문무,2010.)바꿀 수 있다. 이것이 문화예술교육과 혁신교육이 만나는 지점 중의 하나이다. 교육의 토양이 비옥하면 다른 영역의 교육도 그 성과가 높아진다. (OECD 교육연구혁신센터에서 2013년에 출간된 「Art for Art’s Sake?: The Impact of Arts Education」에 따르면 예술교육은 언어, 수리, 외국어, IQ, 공간인지력, 관찰능력, 문제해결능력 등 전반적 학습능력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섯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모든사람이 문화예술의 향유자인 사회와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인 지망생만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대부분의 사회는 이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겠지만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문화예술 관련 직업인의 수는 달라질 것이다. 전자에 가까운 사회일수록 그 수는 많을 것이고 후자에 가까운 사회일수록 적을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는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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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과 학교혁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때로는 또다른 사교육의 수요를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정책이 미흡해서일 수도 있지만 교육의 토양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오랜 고질병인 입시위주의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노력을 기울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토양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의 경우 대체로 무한경쟁과 불평등, 이기주의, 불신의 토양이 모든 교육 정책의 효과를 잠식해 왔다. 질병이 극도로 악화되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으면 백약이 무효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창의성 교육을 예로 들어 보면 창의성은 인위적으로 기르려하기보다는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창의성은 거창하고 탁월한 창의적인 성취를 이루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적절한 자유와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지고 서로 수용하고 지지하며 협동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엉뚱한 생각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때 자연스럽게 실현된다는 것이다(진석언 외, 2016). 사실 위에 지적한 창의성의 조건들은 모든 교육 활동에 필요한 일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이는구체적인 프로그램보다는 전반적인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이러한 환경 조성이 이루어졌을 때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학교 혁신은 특정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간 우리의 학교 교육을 왜곡시켜 온 학교 문화 전반을 바꾸고자 하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운동이자 정책이다. 상명 하달식 행정구조, 행정업무 위주의 학교 운영, 교사의 개인주의와 고립주의 같은 학교의 문화적 풍토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학교 혁신은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기대하는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교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학교 문화 혹은 풍토를 무시하고 원 는 교육 목표만 달성하려는 데만 초점을 맞춰 온 그간의 관행에 대한 자기 성찰이기도 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문화예술교육 또한 문화예술의 전문가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킴으로써 다른 영역의 교육이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마음의 환경 혹은 마음의 결(texture of mind)을 조성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을 다른 교과와 융합해서 가르칠 것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 혁신과 문화예술교육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말하자면 혁신교육이 학교의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는 것이라면 문화예술교육은 학습자의 전반적인 마음의 결을 바꾸는 것이다. 둘 다 교육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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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디자인 강국에서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나오고 음악의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 훌륭한 음악가가 많이 배출되며,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에서 역시 노벨상을 휩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제도나 정책 혹은 교육 프로그램이 주된 요인이라면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의 교육 제도나 정책 혹은 교육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문화적 바탕, 즉 토양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쉽게 벤치마킹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서 실천한 경험이 있는 나라의 실천 사례를 통해서 우리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우리에게 맞는 풍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그간 교육 선진국으로부터 제도나 정책, 프로그램만을 베끼려 했고 우리에게 맞는 풍토를 만드는 일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 문화예술 활동이 자유라는 공기를 요구하듯이 문화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문화예술교육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의 자발적 실천을 필요로 할 뿐더러 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조급하게 요구하는 대신 지속적인 지원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교사 자신이 문화예술교육의 주체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관련 교과와 일반 교과 간 경계 허물기가 필요한 교육이다. 따라서 일반 교과 교사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소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별도의 직무연수를 개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하기보다는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과 간 경계 허물기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 김기덕(2007). 사회취약계층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연구. 순천향대학교. 13(2).
• 김인설 외(2014). 문화예술 활동이 청소년 정서에 미치는 영향 –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실증연구. 문화정책논총. 28(1).
• 김정희 외(2013). 인격 형성과 학업성취도 향상을 위한 학교 문화예술교육 방안. 문화예술교육연구. 제8권 제2호.
• 설연경(2013). 문화예술활동 기반 교육의 의미와 구성주의적 학습 환경과의 관련성 탐구. 문화예술교육연구. 제8권 제4호.
• 유문무(2010). 문화복지의 성장동력 – 영화 <엘 시스테마>를 중심으로. 한국문화경제학회. 문화경제연구 제13권 제2호.
• 진석언 외(2016). 초등학교 과학 영재학생의 집단 창의성 발현과정 경험에 대한 현장학적 연구, 창의력교육연구. 제16권 2호.
• 최종혁 외(2010). 사회적 취약계층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문화복지 프로그램의 기능. 한국사회복지학. 62(1).
• 최현묵(2008). 평생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의 의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사업을 중심으로). 모드니 예술. 2008 Vol 1, No. 1.
•체피 보르사치니 저, 김희경 역(2010). 엘 시스테마 – 꿈을 연주하다. 푸른 숲.
http://www.guitarmania.org/guitar16/948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