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으로 실현된 핀란드의 교육자치제도

|이희현

서울교육은 ‘더불어숲의 교육’을 지향하면서 학교자율운영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청의 권한을 점진적으로 단위학교에 위임함으로써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교육공동체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핀란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선진국으로서 이미 다양한 문헌(김병찬, 2012; 안승문, 2008; 이윤미, 2012; 최민선, 2017)에서 핀란드의 교육자치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핀란드의 단위학교와 교사 중 심 교육자치제 기저에 숨 쉬고 있는 문화, 즉 신뢰 문화와 참여 및 협력 문화에 조금 더 주목해 보고자 한다. 단위학교와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야말로 이들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최선의 실천이며, 교육정책 수립 및 실행과정에 교육공동체가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 또한 선결되어야 할 중요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핀란드에서는 일상적인 교직문화로 자리매김한 자율적 교사학습공동체를 통한 전문성 개발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신뢰에 기반한 교육의 분권화

핀란드는 교육의 분권화가 가장 앞선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신뢰는 물론 단위학교와 더 나아가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분권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핀란드는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위학교로, 단위학교에서 교사에게로 교육체제 분권화를 시도하였다. 중앙집권적 체제에서보다 분권화 체제에서 각 지역이나 단위학교에 있는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중앙정부는 교육과정 운영, 교육의 내용 및 방법 등 실질적인 교육운영권은 물론 교원의 선발 및 관리, 학교 통폐합 등의 학교운영권 등 대부분의 교육관련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주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하고 나서 각종 평가 및 차등지원 등의 방법으로 통제하는 방식이 아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신뢰와 책임, 협력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지방 분권화 체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위학교와 교사의 자율성 보장

핀란드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온 교육관련 권한은 다시 단위학교에 넘어간다. 즉, 교육의 실질적인 권한은 단위학교에 있으며 책임 또한 단위학교에 있다. 단위학교는 학교 재정, 학교 행정은 물론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 등의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가지게 된다. 가령,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하여 중앙정부가 목표 및 방향을 설정하면 단위학교와 교사는 교육내용 및 방법을 결정하여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지방 분권화 체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위학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이었던 학교 장학은 물론 상세하게 규정된 국가 교육과정 및 검·인정된 교과서 등을 모두 폐지하고 철저하게 단위학교와 교원에게 교육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였다. 즉, 실질적인 교육자가 운영의 주체가 되는 교육 자치를 실현한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일반 행정과 교육 행정이 통합된 체제로 일반 행정 체제 내에서 교육 행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교육과 관련된 전문적인 의사결정과 활동은 단위학교와 교사가 중심이 되고, 교육 행정은 이러한 의사결정과 활동을 돕고 지원하는 역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실질적인 교육 전문가인 교사가 교육활동의 운영 주체로서 교육자치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핀란드 단위학교에서는 학교 행정이나 운영 과정에서 관료적이거나 행정적인 요소가 줄어들게 되어, 교사는 행정적인 잡무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학교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교장 역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참여와 협력문화를 통한 학교자치

핀란드에서 교육정책의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은 단위학교에 있다. 이는 단위학교가 교육정책 수립에서부터 실질적인 운영까지 교육활동의 주체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선, 핀란드의 교육정책 수립과정은 단위학교와 교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부에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수립하면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교육정책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러한 교육정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관련 주체의 참여와 협의로 진행된다. 여기서 관련 주체는 바로 정부와 교원노조2), 학교 대표 등이며 하나의 교육정책은 이들과의 갈등 및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숙의의 과정을 거쳐 개발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발된 교육정책은 단위학교에 전혀 괴리감 없이 투입되고 단위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단위학교에서 교육정책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또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각 단위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인 학교위원회에 교원은 물론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으며, 단위학교에서 교육정책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형식적인 참여가 아닌 실질적인 참여를 하게 된다.

교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책무성

핀란드에서 단위학교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핵심 기제는 바로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이다.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는 교육과정 운영은 물론 교육활동 전반에 대한 교사의 자율을 보장하여 이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체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교육활동에 대한 교사의 자율권이 강조됨에 따라 그에 대한 책임과 과업이 늘어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교사 간 진지한 토의와 협력은 물론 자율적인 전문성 개발도 일상적인 교직문화로 자리 잡았다.

핀란드는 교육개혁을 통해 모든 교사가 교육학이나 전공과목에서 석사학위를 받아야 하는 등 교사 양성과정에서 그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교사교육을 강화하였다. 한편으로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는 물론 현직 교사교육에 대한 국가차원의 규율도 만들지 않는 등, 교사의 전문성과 이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였다. 이에 현직 교사교육은 자율적인 교사의 전문성 개발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핀란드에서의 교사는 연구자로서의 교사로 사회전반적으로 존중받게 되었다.

교사학습공동체를 통한 교사의 자율적 전문성 개발

핀란드의 교사는 학교 교육과정은 물론 교육활동에 대한 자율성과 이에 대한 책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전문성 개발을 위한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핀란드에서 자율적 전문성 개발을 위한 현직 교사교육은 교사학습공동체로 활성화되어 있다. 핀란드 교사에게 교사학습공동체는 하향식으로 단위학교에 내려와 시행되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단위학교 안팎의 연수과정에서 전문가인 동료교사와 협의하고 연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문화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곽영순 외, 2015).

핀란드 교사의 거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교사학습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단위학교 내에서는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기 위한 교사학습공동체 운영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단위학교 밖 교사학습공동체로 교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자발적인 교사학습공동체에서 전국 네트워크로 확산된 대표 사례가 이노카스(Innokas) 네트워크와 이놀시(eNorssi) 네트워크이다. 이노카스(Innokas) 네트워크는 ICT를 기반으로 한 교사 중심의 작은 교사학습공동체였으나, 학교혁신을 주제로 교사는 물론 학교장, 학생,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확산되었다. 현재에는 헬싱키대학교 교육학과와 8개의 시도교육청에 걸쳐 구성되어 있는 전국단위 네트워크로, 주된 활동은 웹상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교사의 토론 및 학습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며 이 외에도 교사 연수 프로그램, 학교단위교사 컨설팅, 컨퍼런스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이놀시(eNorssi) 네트워크는 대학이 중심이 되어 교사에게 교수학습과 교수법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몇 개의 단위학교와 대학이 작은 규모의 교사학습공동체로 시작하여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로 발전한 사례이다(박영숙 외, 2016).

한편, 핀란드의 교육부에서는 자발적인 교사학습공동체 및 교사 전문성 개발의 활성화를 위해서 2010년부터 오사바(Osavva)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오사바(Osavva) 프로그램 역시,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방식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상향식 접근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단위학교와 교사를 선정하여 전반적인 학교의 문화와 자발적인 교사학습공동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사바(Osavva) 프로그램의 지원 내용은 첫째, 교육청 수준에 대한 지원으로는 교사학습공동체를 지원하는 교육청 관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여 교사학습공동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으며 둘째, 학습공동체 단위에 대한 지원으로 운영 방안 등에 대한 지역 단위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포럼 개최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사학습공동체 및 전문성 개발 활동에 참여가 저조한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하는 등 교사 개인에 대한 지원 노력을 하고 있다(박영숙 외, 2016).

교사학습공동체에 대한 핀란드 교육부 및 교육청의 지원은 특정한 주제 또는 특정한 그룹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학습공동체의 협력 활동에 초점을 두어 지원하는 것이다. 즉, 교사학습공동체에 대한 지원을 특정한 범주에 한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교사학습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핀란드 교사학습공동체의 성과는 교사가 외부의 압력이나 통제에 의해서 전문성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개발하는 교직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 과학 교사학습공동체 운영의 실제 사례

다음은 단위학교를 넘어선 교원연수 프로그램에서 교사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전문성을 개발해 나가는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과학기술교육을 위한 선진 교수법 개발 사업(S-TEAM: Science-Teacher Education Advanced Methods)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의 교사학습공동체 구축 사업의 사례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15개국 25개 교육기관이 참여하여 수행하였던 정부-교사학습공동체 활성화 모델의 사례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핀란드는 헬싱키대학교 주관으로 교원노동조합의 온라인 홍보란을 활용하여 교사학습공동체 구성을 위한 교사를 공모하였다. 총 7명의 중학교 과학교사는 이틀 동안 10시간 집합연수를 3회로 나누어 이수하였으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대학교 워크숍 참석과 학교 현장에서의 실험실 적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활동은 학교 실험실의 과학탐구 교원연수 프로그램에 속한 중학교 과학 교사학습공동체의 반성적 사고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다음의 표와 같다.

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4명의 교사는 각각 본인의 관점에서 과학 지도법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A교사는 탐구기반의 읽기, B교사는 교과서 중심의 읽기, C교사는 학생 토의 중심, D교사는 학생중심 실험 방식의 수업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각 교사의 지도법은 교사 간 협의를 통해 상황에 맞게 재구성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다른 교사의 지도방식에 대해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연수 초기에는 B교사의 교과서 중심 읽기 접근 방식은 C교사의 학생 토의 중심 지도법과 상충하였으나 교사 간 협의와 협력적 토의를 통해 C교사의 방식이 읽기·쓰기 기반 탐구 수업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었으며 수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사고가 가능해졌다.

이와 같이 전문성 개발을 위한 교사학습공동체에서는 교사 개인의 신념이 다른 공동체 구성원에게 자극이나 강화를 제공하면서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반성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즉, 탐구기반 수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던 교사가 교사학습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동료교사의 자극 및 강화 작용으로 점차 전문성을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단위학교를 혁신하는 힘, 교사의 전문적 자본 (Professional Capital)

핀란드에서는 교사의 전문성 개발을 위한 장학제도가 폐지된 지 오래다. 장학을 통한 교사의 전문성 개발이 아닌 일상적인 교직문화로 자리 잡은 교사학습공동체가 단위학교 중심의 교육자치제를 실현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임은 이미 상술한 바 있다. 단위학교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교사 개개인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교사집단의 전문성과 이에 대한 교직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그리브스와 폴란이 강조하는 교사의 전문적 자본(Professional Capital)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적 자본은 인적(human) 자본, 사회적(social) 자본, 의사결정적(decisional) 자본으로 구성되며 이 세 가지 전문적 자본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다. 인적자본은 교사의 지식과 기술, 사회적 자본은 인간관계, 신뢰감, 소속감, 단결심 등과 같은 정의적 특성, 의사결정적 자본은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Andy Hargreaves & Michael Fullan, 2012; 진동섭 역, 2014). 전문적 자본은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이 아니라 집단적 책임에 관한 것으로, 전문적 교직문화 형성에 핵심 키워드인 것이다. 이러한 교사의 전문적 자본은 교사학습공동체를 통한 교사의 전문성 개발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곧 단위학교를 혁신하는 전문적 교직문화 형성으로 연결된다.

핀란드가 단위학교와 교사중심의 교육자치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교사의 자발적인 전문성 개발과 교직문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 때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제 서울교육이 지향하는 학교자율운영체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단위학교의 자율성, 교사의 자율성과 함께 전문적 교직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교사학습공동체 정책에 대한 어느 한 중학교 교사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