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0 봄호 (238호)

모네, 시선을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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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희 (서울방학초등학교, 교사)

2015년 어느 전시회장에서 모네의 그림을 처음 만났다. 나는 조용하게 줄지어서 걸어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네의 <베퇴유에서 바라본 봄 풍경>을 보고 멈춰 서게 되었다. 우뚝 서서 그리 크지 않은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니 그림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액자가 창문처럼 보였고 그 너머에 봄을 간직한 나무가 서 있었다. 당시 나는 그림을 좋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 지식이 많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모네의 이름을 처음 접했고 해당 그림의 엽서를 구매하여 작품명과 이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모네에게 빠져버렸다. 그는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술계의 판도를 바꾼 대담함이, 평생을 미술에 일관되게 몰두하는 집념이,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본받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닮고 싶었던 것은 그의 그림에 대한 시선이었다. 빛을 그린 화가라 불리는 모네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달라지는 빛을 쫓아가며 그림을 그렸다. <건초더미>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등 그의 연작 시리즈를 본 뒤 내가 하나의 대상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나의 대상에서 여러 가지의 빛을 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다시 모네의 빛에 대한 시선을 접한 곳은 모네를 주제로 한 디지털 전시회였다. 원화가 아님에도 그의 그림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임종을 맞은 카미유>는 전시관을 이동하는 동시에 보이도록 설치되어 있었는데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카미유는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이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뮤즈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붓을 들었던 그의 시선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있었을지 다음 모네의 말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다.

“어느 날, 무척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가는 침대 주변에서, 그녀의 얼굴에 죽음이 드리워지면서 점점 창백해지는 것을 내 스스로가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놀랐습니다. 푸른색과 노란색, 그리고 회색의 색조들로부터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려고 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아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붙잡으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생략)”

그는 부인의 죽음 앞에서도 색을 탐구하는 천생 화가였으며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은 처절한 사랑꾼이었다. 나는 이 그림에서 카미유가 핏기 없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누워있지만 숭고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 그림에서 그의 시선은 슬픔과 후회를 넘어선 사랑하는 사람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기고 싶은 애틋함이 묻어있지 않을까? 모네는 부인 카미유가 죽고 나서 여인의 얼굴을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네에 대한 로망을 키워가던 나는 결국 모네를 찾아서 프랑스로 가고야 말았다. 먼저 파리에서 오랑주리 미술관을 방문했다. 모네의 역작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서였다.

수련 연못, 1917/19

이 작품은 높이 2미터에 가로폭의 합은 100미터가 넘는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이런 대작을 전시하기 위해 지을 때부터 모네와 함께 기획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살짝 어두운 공간을 지나 천장에서 실제 태양광이 내리쬐는 전시관에 들어서면 정말 수련이 떠있는 연못으로 둘러싸인 황홀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에 담고 싶었던 그의 시선에는 수련과 물에 비친 하늘을 얼마나 화폭에 담고 싶어 했는지 강렬한 의지가 담겨있다.

다음 여정은 모네의 작품 속 배경이 된 에트르타였다. 에트르타는 코끼리 모양 바위가 있는 파리 시민들의 휴양지 같은 곳이다. 정말 그림처럼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느낌일까 궁금했었는데 사실이었다. 햇살은 쨍하게 바위를 레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바다는옅고 투명했다.

베퇴유에서 바라본 봄 풍경(허승희 모작), 2018

엄마 코끼리 바위에 올라서 아빠 코끼리 바위를 바라보니 모네가 이 자리에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환상의 세계처럼 보였던 모네의 그림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네의 인생 여정의 종착지인 지베르니를 방문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수련을 실제로 그린 장소이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직접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평생 빛을 탐구한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시력을 잃고야 만다. 그럼에도 끝까지 빛과 색을 탐구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때 그린 그의 작품은 나중에 추상주의 미술 사조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지베르니는 정성스레 가꾼 정원과 연못, 일본식 다리 등으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었다. 마치 모네 테마파크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모네가 이 공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공간에서 빚어지는 빛과 물의 향연을 얼마나 화폭에 담아내고 싶어 했는지를 말이다.

그 경험은 내가 더욱 모네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모네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좋아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나의 붓질 하나하나에 애정과 정성이 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좋아하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처음 모네에게 빠져들었던 ‘최애’ 작품 <베퇴유에서 바라본 봄 풍경>을 그려보았다. 나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많이 그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모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