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대비하는 핀란드 교육의 새로운 시도 현상기반학습 그 의의와 사례

– 류선정 한국핀란드교육연구센터 소장

1. 점차 다가와 눈 앞에 있다. 미래교육의 패러다임

현상기반학습 PBL. 이 명칭이 그리 낯설지 않다. 프로젝트 학습(Project Based Learning, PBL), 메이커 교육(Maker Education), 다학제간 학습(Multidisciplinary Learning), 과목 간 통합수업 (Subject-Combined Class) 등 교육자라면 요즘 떠오르고 있는 이 용어들이 꽤나 친숙하게 들릴 것이다. 명칭은 다 다르지만 구성주의라는 큰 틀에서 위의 학습법들은 꽤 유사점이 많다.

학습자가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Phenomenom)들에서 영감을 얻어 학습주제가 정해지고, 기존의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과목 구분이 아닌(Subject-combine, Multidisciplinary) 하나의 주제가 프로젝트(Project)가 되어 학습이 실시된다. 여기서 학습자는 기존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나아가 보다 부지런히 자신의 배움을 만들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에서는 던져주는 고기만 받아먹는 것이 아닌, 무슨 고기를 먹을 것인지, 나는 무슨 고기를 더 맛있어 하는지, 그 고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누구와 협동하여 잡아야 하는지, 주위의 어떤 지형물을 이용하여 잡을 수 있는지, 고기를 먹고 난 뒤 내가 주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이전보다 훨씬 다각적으로 고찰하고 행동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대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명확히 그 개념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선 교육선진국이라 불리는 핀란드는 어떻게 미래교육을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탐색해 보자.

 

2. 핀란드의 미래 교육대비. 새 교육과정, 변화의 초점은?

2016년 8월, 핀란드에서는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10년만의 개정이었으며 전국의 초·중학교에 적용되었다. 새 교육과정에서 미래교육을 대비하여 새롭게 시도된 부분은 바로 ‘현상기반학습’의 실시이다. 전통적으로 과목을 나누어 수업이 진행되던 모습에서 이제는 하나의 현상이 주제가 되어 그 주제를 깊이 탐구하기 위해 관련 과목들이 융합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을 주제로 진행된 카우하바(Kauhava) 지역의 7학년 학생들의 수업은 화학, 수학, 종교, 가정, 사회 수업이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각 과목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화학: 음식의 신선함은 어떻게 유지될까?
수학: 식재료의 가격, 급식 가격은 어떻게 형성될까?
종교: 특정 음식이 제한되는 종교를 가진 학생에 대한 학교급식의 식단은?
가정: 학교급식의 균형 잡힌 한 끼 구성은?
사회: 핀란드의 무상교육, 무상급식 제도의 역사와 특징은?

 

 

하나의 예를 더 들여다보자.

<건강한 청소년! 바로 지금!>

하멘린나(Hämeenlinna) 지역의 하칼라 (Hakkala) 중학교에서는 ‘건강한 청소년, 바로 지금!’을 주제로 현상기반학습이 실시되었다. 7~9학년 전 학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선생님들은 건강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며 학생들이 건강에 관련된 어떠한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으로 현상기반학습의 기획을 시작하였다.

 

7학년: 위생, 영양, 휴식, 운동에 대하여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고, 성별에 따른 위생에 대해서 탐구한다. 자신들의 영양 상태를 체크해 보는 표를 직접 만들어보고, 권장되는 만큼의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지, 운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서로 토의한다.

8학년: ‘ 마약 사용’이라는 주제로 술, 담배, 마약에 중독된 캐릭터를 가상 설정하여 마약중독에 따른 폐해를 짐작하며, 중독방지를 위한 대책에 대하여 고민한다. 또한 8학년은 이성교제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성(sex)과 관계’ 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대해 토의한다.

9학년: ‘ 정신건강’을 주제로 삼았다. 자신의 삶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한다. 또한 행복지수가 높은 핀란드에서 높은 자살율이라는 모순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집중 분석해 본다.

 

하칼라 중학교 학생들이 현상기반학습을 진행하며 만든 모든 학습 자료는 학교 도서관에 전시 및 비치되었다. 교내 도서관에서 숙제 및 조별과제를 진행하는 학생들은 도서관에 들러 언제나 자기 학년 외의 학년에서 어떠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지, 프로젝트에서 제작된 학습 자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쉽게 살펴볼 수 있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방문하여 처음 시행된 현상기반학습에 관해 설명을 듣고 살펴볼 수 있는 시간 역시 운영되었다.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습자료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공유할 수 있다. 7~9학년 학생들은 현상기반학습을 마친 뒤, 헤우레카(Heureka) 과학 박물관에 방문하여 ‘신체 세계 박람회’를 관람하는 것으로 현상기반학습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3. 현상기반학습의 특징

두 사례를 통해 현상기반학습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첫째, 학생들이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현상들에서 의미를 찾아 학습주제를 정함으로써 배움의 자발성을 이끌어낸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첫 걸음은 관심과 흥미다. 자기가 매일 먹는 급식, 옆에 앉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바로 배움으로 연결되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학습에 임하게 된다.

둘째, 다양한 학습주제가 정해질 수 있으며, 같은 주제여도 다른 과목들의 합으로 꾸며질 수 있다. 예를 들어 A학교와 B학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동일 주제를 가지고도 A학교는 사회문화+역사+수학, B학교에서는 지구과학+사회문화+영어+가정 등으로 전혀 다른 합이 나올 수 있다.

셋째, 학습과 삶의 연관성을 높여준다. 오늘 뉴스에서 본 ‘EU(유럽연합)’에 관한 이슈가 내일의 현상기반학습의 주제가 된다. 학생들에게 있어 배움과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밀접히 연결되어 단순히 평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더 큰 틀에서의 배움이 진행된다.

 

4. 핀란드에서 진행되는 현상기반학습의 실체

위에서 살펴본 현상기반학습에 대한 짧은 소개는 먼 나라 이웃나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 ‘과목으로 나뉘어 있던 교육과정의 구성은?’, ‘평가는?’, ‘과목별 성취 정도의 측정은?’, ‘내신반영은?’ 등이다.

우선 핀란드가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도입한 이 현상기반학습은 모든 과목수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핀란드는 영어, 수학, 공예, 체육 수업 등 과목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1년에 최소 1번 이상 현상기반학습을 실시할 것을 국가교육과정에서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공식적인 현상기반학습의 실시는 이들에게도 첫 걸음 단계이다. 특히 적절한 평가방법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고, 현재는 결합되는 과목들의 수행평가로 분산되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상기반학습이라는 새 교육법이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가 잡혀 세련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5. 현상기반학습이 가지는 의의

그렇다면 핀란드가 시도하고 있는 이 현상기반학습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바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용기 있는 시도이다. 다가올 미래에서는 과거의 단순 지식함양을 벗어나 다면적인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 선생님이 던져주는 고기를 단순히 누가 제일 많이, 빠르게 받아먹냐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 어떤 고기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핀란드는 이러한 미래교육의 패러다임을 차근히 준비해 왔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현상기반학습의 실시를 넣기 위하여 핀란드는 수년 간 교사와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 학부모, 학생들이 활발히 의견을 나누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교육문화부와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Top-down 방식의 강요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도를 실시하고 경험할 당사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변화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그 후, 교육과정의 구성과 평가 등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미래교육의 새 패러다임을 맞이하기 위해 과감히 용기 있는 시도를 했다. 국가교육과정에 공식적으로 현상기반학습의 실시를 명시하며 아직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장의 교사를 교육전문가로 신뢰하며 그들이 무언가 새로운 교육법을 시도해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6. 현상기반학습이 자생될 수 있는 토양, 그 비결은 자율성

핀란드에서는 이제껏 현상기반학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와 유사한 과목 통합수업, 프로젝트형 수업 등이 일선학교들에서 자율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또한 보다 의무적으로 현상기반학습을 실시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서도 교원에게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서 보인다.

이렇듯 핀란드에서 현상기반학습 형태의 교육법이 자생될 수 있었고, 또 현재 공식화되어서 무리 없이 시행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교원에게 주어지는 높은 자율성이다. 그리고 이 자율성은 비단 교원 단위뿐 아니라 학교장의 단위에도 적용된다. 핀란드 학교장은 현상기반학습을 1년에 한 번 시행할지 두 번 시행할지, 한 번에 얼마의 기간 동안 시행할지 등을 교원들과 협의하여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또한 핀란드 교원들은 어떤 과목들이 협력하여 현상기반학습을 실시할지, 어떤 교육활동을 넣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 등 교육과정의 기획부터 실시, 평가까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무언가 주어지는 자율성이 있어야 교사와 학교장도 창의적으로, 혁신적으로 교육을 실천할 의지가 생긴다. 창의적, 혁신적인 교육을 하자고 하면서 그 실천방법을 A부터 Z까지 정해서 알려주고, 또 그대로 실천하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평가하려 든다면 이는 다시 또 하나의 규격화된 교육의 틀을 양산하는 셈밖에 되지 않는다.

핀란드가 이전부터 현상기반학습과 같은 유연한 학습법이 진행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교원에게 자율적으로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범위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자율성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그것은 바로 교사들을 교육전문가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신뢰여부이다.

 

7. 나는 얼마나 교육전문가로서 자부하는가

핀란드 학교에서는 초임교사든 20년차 교사든 교육전문가로서 인정받으며 자신의 교육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교사는 교실에서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제공해주는 교육전문가라고 여겨지며, 이는 학교장도 학부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뢰기반의 교권이다. 믿어주었으니 꾸준한 자기개발을 통해 높은 교육의 질을 제공해야 하는 교원의 책임 역시 무겁다. 주어지는 폭넓은 자율성은 그들을 교육전문가로 신뢰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며, 이에 걸맞는 전문성을 유지할 의무는 교원에게 있다.

우리 역시 행정상으로 더 많은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 교육부에서 지역교육청으로, 지역교육청에서 단위학교로, 학교장은 교원들을 보다 더 믿고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더불어 교원은 스스로 교육전문가로서의 실력 함양과 책임 의식을 갖춰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잘 갖춰질 때 우리는 보다 유연한 자세로 미래의 교육 패러다임을 맞이할 수 있다.

 

 

8. 핀란드 교육은 화려하지 않다

핀란드 교육은 그 어떤 화려한 교육법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교원이 교육 전문가로서 인정받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높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창의적, 혁신적으로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메커니즘.
이러한 환경에서 높은 교육의 질이 자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미래의 교육 패러다임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단순 교육방법에 초점이 맞춰져서
는 안 될 것이다. 용어는 현상기반학습, 프로젝트 학습, 메이커 교육 등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 높은 수준의 자율성과 교원전문성이 받쳐주어야만 그 학습법이 추구하는 목적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참고문헌 : 류선정(2017). 핀란드의 프로젝트 기반 학습 (Project Based Learning, PBL) 시행 현황. 한국교육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