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중심 수업은
수업 혁신의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윤종배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배움 중심 수업은 교사의 일방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수업 혁신의 한축으로 떠오른 배움 중심 수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를 통해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지가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배움으로 표상되는 수업 혁신의 움직임이 지속될 것인 바, 배움의 뜻과 실체부터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배움이란 무엇인가

김현섭에 따르면, 배움이란 ‘배우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배다’에 ‘우’가 결합된 단어이다. ‘배다’는 명사의 ‘배’에서 나온 말로, 배에 무엇인가를 품는 것을 말한다. 새끼를 배다, 물이 배다, 습관이 몸에 배다 등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우’는 대상에게 힘을 가하여 주체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배움이란 외부로부터 공급된 무언가를 배에 품거나 차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스스로 할 수도 있다.

배움의 위계를 설명할 때, ‘사실적 사고(지식) → 비판적 사고(질문) → 논리적 사고(논리) → 창의적 사고(독창성) → 성찰적 사고(삶과 연계)’의 단계를 거치며 배움에 이르게 되는데, 각 단계에서 배움의 증거를 말한다면, 학습한 내용을 얼마나 학생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가로 알 수 있다.

이제 교실에서의 배움의 모습을 말한다면, 수업내용에 대한 학생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수용), 수업내용에 관한 교사의 발문에 반응하거나 질문을 던진다(반응), 자기가 이해한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한다(구체화), 배운 지식을 삶에서 실천하거나 다른 영역에 응용한다. (내면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실제 수업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하’하고 무릎을 치는 것이 흔한 예가 되겠다.

그런데 배움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우리의 교실을 보더라도 수업을 듣는 1/3, 듣다말다하는 1/3, 거의 듣지 않는 1/3의 학생으로 구별되는 실정이다. 왜 다수의 학생에게 배움이 안 일어나는 걸까? 학생 변인만 놓고 보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학생이 공부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경우가 많고, 학습능력이나 의지가 매우 저조한 상황도 숱하게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학생의 내면이 붕괴되거나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태가 제약을 가하고 있는데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소통이 부재하는 경우 혹은 학생이 수업의 경계를 무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학교 안팎에서 치르는 경쟁과 평가로 인한 긴장, 학생의 욕구 및 지식수준과 거리가 있는 교육과정 등도 주요한 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여건에서는 교사가 열심히 가르쳐도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좀 더 진전된 배움에 이를 수 있을까? 존 홀트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다.

•자신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될 때
•학교가 학생들이 배우길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곳일 때
•흥미와 호기심이 있으며 스스로 정말 알아야 한다고 느낄 때
•학습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때
•스스로 또래를 가르칠 때
•도전적인 과제를 만날 때
•사회적 교류, 협동의 기회를 가질 때
•체험할 때(Practice by doing)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얻을 때
•배운 것을 스스로 표현할 때
•긍정적이고 허용적인 관계가 될 때

2. 배움의 실체를 찾아서

필자는 배움의 실제 모습을 알고 싶어서 2011년에 한 학기 동안 수업 속에서 확인하려 했던 적이 있다. 본격적인 수업 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여 출발점을 파악하였고, 중간과 마무리 시점에도 설문을 통해 변화를 추적하였다. 수업의 바탕이 되는 활동지를 수합하여 학생들의 학습상황을 점검하고 개인별로, 시기별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또 학습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는 정기고사 결과를 분석하여 학습상황과 평가 자료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았다. 그리고 개인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어려워했는지 등을 확인하였다. 무엇보다도 수업 장면에서 학생들이 보이는 학습행동을 확인하기 위해 수업 상황을 10차례 촬영한 바 있다.

먼저 설문조사는 학년 초 사전 설문, 중간고사 직후 중간 설문, 기말고사 이후 최종 설문으로 진행하였다. 설문 분석 결과, 대체로 강의만으로 진행하는 수업보다는 학생들의 참여도와 이해도가 높아졌으나 명확하게 학습결과로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음으로 매 시간 수업에 사용된 활동지를 검토하였다. 학생들의 배움 여부와 그 양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모둠 활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료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중상위권 학생의 정성이 담긴 활동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활동지>

<노력하지만 힘에 부치는 중하위권 학생의 활동지>

<노력이 더 필요한 학생의 활동지>

 

활동지를 점검할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살펴보았다. 성적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활동지의 학습 흔적이 어떻게 성적으로 연결되는지 보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학생 개인이 초반과 중·후반에 활동지에 기록한 내용을 보았다.

학생의 학습 의지는 활동지에 그대로 표현되었고, 이는 성적으로 연결되는 상관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성실한 학생은 교사의 설명을 거의 대부분 활동지에 옮겨 적었고, 잘하는 학생은 자기 생각과 교사의 설명을 서로 다른 색깔의 펜으로 구분하여 기록한 것이 눈에 띄었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은 자기 생각을 쓰는 데 빈약하고 교사의 설명도 맥락 없이 필기되어 있었으며, 산만한 학생은 활동지 곳곳에 낙서가 그득하였다.

개인의 시간적 흐름을 훑어본 바, 어떤 학생은 꾸준히 자기 방식으로 학습하였고, 어떤 학생은 초반엔 집중하더니 후반으로 갈수록 느슨해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또 어떤 학생은 초반에는 무성의하게 썼지만, 교사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수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활동지에 자세히 기록하는 변화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활동지가 수업 중 학생의 배움 여부와 양상을 판별하는 주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중간고사 결과를 검토하였다. 학생들이 치른 정기고사 문항과 그에 따른 정오표를 보고, 정답률을 따져 왜 오답을 표기했는지 이유를 밝혀 보려 하였다.

시험결과를 활동지와 견주어본 결과, 애초부터 수업 중에 잘못 기록했기 때문에 오답을 쓴 경우도 있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는데, 선지에서 매력적인 오답을 골라 틀린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정답률이 높은 문항은 수업 시간의 배움 여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수업에서 경청하고, 제대로 활동한 학생은 정답을 쉽게 찾아내고 집중하지 않은 학생은 오답을 기록한 것이다. 서술형 문항은 더 확연하게 배움 여부가 드러났다. 수업시간에 논리적 글쓰기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는 시험 상황에서 더 빈약한 답을 쓸 수밖에 없었고, 서술형이라는 문제의 형식 때문에 수업시간에 잘 참여해도 문장을 온전히 진술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학습 상황을 보기 위해 수업 당시의 화면도 분석해 보았다. 학생들의 다양한 수용 양상을 통해 관찰된 학습태도와 배움 여부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듣고 메모하는 학생, 딴짓하는 듯 보이나 필기가 잘 된 학생, 열심히 듣는 듯하나 이해 못하고 있는 학생, 내내 딴짓하는 학생 등의 모습이 보였다. 얌전히 잘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정물화처럼 앉아 있는 학생도 있었고, 내내 엎드려 있어 수업태도가 안좋아 보였지만, 나름대로 잘 듣고 시험점수도 괜찮은 학생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수업 분석을 통해 필자는 배움의 실체에 대해 몇 가지 판단 근거를 갖게 되었다. 첫째, 교사들이 학생의 배움에 대해 짐작하는 것과 학생이 실제로 배우는 것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수업태도와 별개로 최소한 활동지를 살피거나 수업동영상처럼 실질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자기 점검을 해야만 학생의 배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둘째, 학생과 학급을 ‘너희들, 여러분’으로 지칭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인격을 부여해야한다. 즉 개인의 발견이 필요하다. 학생 하나하나가 참여하면서 수업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인데, 교사들은 흔히 학급 전체를 뭉뚱그려서 ‘무슨 말인지 알겠지?’라고 자문자답하며 진도를 나가고 있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을 누가 알고 누구는 모르는지를 살피고 이를 개인지도로 해소할 것인지, 짝 활동이나 모둠활동으로 극복할 것인지를 순간순간 판단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수업장면에서만 배움을 논하지 말고, 학급 분위기, 학생 개개의 가정사, 성장 환경, 교사와 관계, 교우관계, 인지 능력 등을 다각도로 따져보며 근원적인 배움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수업만 떼놓고 보면 교사의 무능 혹은 학생의 무성의로 결론나기 쉽고, 도덕적인 비난으로 끝나기 쉬운 문제이며, 해법도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학생을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보면 배움의 장애가 되는, 반대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있으므로 한결 쉽게 배움에 접근할 수 있다.

3. 가르침과 배움의 적절한 균형

가르침과 배움은 적대적 관계이거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학습주제에 따라 배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선택적으로 비중을 달리하며 공존하는 수업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 지나치게 가르침에 열중하는 탓에 배움을 중시하는 강력한 흐름이 대두되고 있지만, 원래 수업은 교수+학습 즉, 가르침과 배움이 공존하는,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혹은 대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배움은 교사의 수업디자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주도적 학습도 교사의 방치가 아니라 교사의 계획 하에 학생들의 자발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배움이어야 한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활동 중심 수업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활동 자체는 기억하는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미있는 수업이 꼭 좋은 수업은 아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수업모형에 매달려 수업하기보다는 학습내용을 가지고 학생들과 대화 하고 그것이 학생들의 삶 속에서 반응하도록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 대목에서 교사의 가르침이 얼마나 배움에 중요한 요소인지 추가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교사의 PCK1)를 연구한 김상수는 수업의 변인을 학생과 교사와 주변 환경 등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여기서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7%는 주변 환경이고, 교사 요인은 고작 13%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13%의 교사 요인이 작용하지 않으면, 상당수의 학생들 속에 내재된 80%의 역량은 발견되지도, 발휘되지도 않는다. 실로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사 요인인 셈이다. 이제 배움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배움을 일으키고, 심화·확대하는 간단한 원리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개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둠 활동이 협력 학습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개인활동과 고민의 시간이 없다면 친구 답 베끼기, 묻어가기, 심지어 무임승차로 이어지기 쉽다. 먼저 개인 생각을 쓰고, 짝과 나누고, 모둠 속에서 살펴보는 순서로 수업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은 어떻고 친구 생각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를 생각하면서 배움이 일어난다.

둘째, 모둠 내 활동으로 그치지 말고 가급적 전체 학급 친구들과 공유할수록 배움이 커진다. 아이들은 모둠 내 논의에서 당연히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전체 공유시간에 서로 소통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한 단계 도약이 있는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모둠 칠판에 적힌 결과가 얼마나 정답에 가까운가를 살펴보는 것보다 그 내용을 적기까지, 그 내용을 가지고 서로 보완해 나가는 지점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이때 교사가 해당 학급의 활동 결과만 발표하는 게 아니라 이웃 학급이나 먼저 수업한 반에서 나온 논의도 소개하면 좋다. 교사가 제시하는 해법보다 같은 눈높이의 학생 해답이 훨씬 또래의 생각을 촉발시키는 효과가 있다.

셋째, 과제의 성격에 따라 수렴적 질문, 확산적 질문을 두루 활용하여 학생들의 배움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수업주제가 개념과 원리를 단단히 다져야 하는 것이라면 수렴적 과제로 확인하는 활동이 필요할 것이며, 기본 개념과 지식을 토대로 다양하고 폭넓은 사고를 일으키려 한다면, 확산적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씨름하게 만들어서 사고의 시너지가 커질 수 있게 구안하면 좋다. 이를 돕기 위해 초성 퀴즈나 스펀지 퀴즈 등을 활용할 수 도 있고, 모둠활동 판에 단어나 문장을 쓰고 함께 확인하고 서로의 생각을 보태는 방식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의미를 성찰하는 문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간디 학교 교가에는 ‘배우는 것은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모두의 배움을 향한 교사의 간절한 가르침과 안내, 이를 토대로 학생 개인이 혹은 모둠으로 키워가는 사고와 실천이 배움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의 시작은 가르침이란 가녀린 떨림으로 시작되지만, 배움의 영역에서 큰 울림으로 일어난다면 우리의 수업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역동적인 수업 대화의 현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