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공간의 힘으로 학교를 바꾸다

|김동근

1. 들어가며

취재를 위해 경서중학교 교문을 지나 1층 출입문에 들어섰을 때 여학생 둘이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만나는 외부인에게 어색함 없이 안녕을 묻는 광경이 놀라웠다. 인터뷰를 약속한 교장실로 접어들며 복도 곳곳에 놓인 카페식 탁자와 의자에 아이들이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신선했다. ‘보행과 이동의 공간인 복도가 머무름과 담소의 공간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학교에 대한 기대와 인터뷰를 향한 설렘이 커졌다. 아울러 이런 기분 좋은 학교의 첫인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이어지는 기사의 내용은 그 궁금증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작은 고민에서 파생된 노력이 만든 큰 변화에 대한 놀라움의 기록이다.

2. 변화의 시작, 벽화 그리기 활동

학교는 주변에 이렇다 할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이 없어 문화 예술적인 측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는 어려운 가정 형편 등의 이유로 교우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자존감 낮은 학생들이 힘든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교내 상담복지부에서는 이런 곤란함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미술 교과 담당이었던 오빛나리 선생님은 상담복지부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살려 벽화 그리기 활동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경력 2년차였던 선생님의 교직 생활 속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해 준 상담복지부 교사와의 인연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첫 벽화는 2013년 여름방학, 역 디귿( ㄷ)자 모양으로 생긴 학교의 뒤쪽 건물과 옆 건물이 만나는 귀퉁이의 하얀 벽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통행이 적어 자칫 우범지대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오빛나리 선생님은 하얗기만 한 벽이 주는 불안함을 따뜻한 색으로 상쇄하면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여름방학 때 총 5일에 걸쳐 벽화를 완성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들을 따로 섭외한 것이 아니라, 벽화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함께하도록 했다. 선생님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어야 했지만, 일단 붓을 들어 작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매우 놀라운 집중력으로 활동에 임했고 자신이 맡은 구역에 책임을 지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벽화는 2014년 여름방학, 학교 앞쪽 건물의 왼쪽 출입문 하얀 벽에 그려졌다. 그리고 세 번째 벽화는 2015년 여름방학, 앞선 2014년 벽화의 바로 옆 긴 복도의 두 칸에 그려졌다. 모두 학생들이 등하교 시에 가장 많이 출입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해에 그린 벽화가 보여준 효과에 자신감을 얻어 더 큰 공간에 시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효과가 있었느냐
고 묻자 선생님은 두 가지 효과를 들었다.

<처음 그린 벽화의 모습>                                                                               <두 번째 그려진 벽화>

첫 번째 효과는 개별적인 아이들의 변화라고 하며, 한 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무기력한 생활로 친구가 없었고, 기초 학력이 부족하지만 그림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실제 벽화로 완성되는 모습을 확인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어 2학기 교내 축제와 이듬해 수련회 장기자랑에서는 무대에서 춤 솜씨까지 자랑했다고 한다.

두 번째 효과는 전체 학생들의 생활 태도상의 변화였다. 외부인이 그려준 그림이거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이 협업하여 완성한 벽화였기에 누구도 벽화에 손을 대지 않았다. 또한 벽화 주위는 물론 학교 전반적으로도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만큼 환경적인 개선이 빠르게 이뤄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예쁜 그림이 학교 곳곳에 그려져 있어서 그런지 정서적으로도 많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벽화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자랑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 번째 그려진 벽화>

 

아울러 이러한 벽화 그리기 활동은 선생님의 미술 수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존 수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세 가지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업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 나갔다고 한다.

3. 색으로, 공간으로 학교 바꾸기

벽화 그리기가 가져온 변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색과 공간에 대한 고민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를 학교 구성원 전체가 확인하고 나니 학교의 벽을 넘어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색과 공간의 궁리가 시작되었다. 물론 구성원 전체의 협력과 적극적인 논의가 뒤따랐다.

색의 측면에서는 세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각 층의 복도를 다른 색으로 칠했다. 층마다 차례대로 분홍색 계열, 노란색 계열, 연두색 계열, 하늘색 계열, 연보라색 계열로 색을 차별화하였다. 둘째, 홈베이스로 사용하고 있는 각 반 교실 안의 색을 달리 칠했다. 그러면서도 각 학년의 1반은 초록색 계열로 같은 색을 사용하게 하는 식으로 나름대로의 통일성을 구현하기도 하였다. 셋째, 각 교과 교실은 교과의 특성에 맞게 저마다의 색으로 교실 안의 벽을 달리 칠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층끼리는 같은 색을 칠해 통일성을 주었고, 대신 교과의 특성에 맞는 블라인드는 협의를 통해 선정, 설치하였다. 가령 국어교과실의 경우, 복도 쪽 창문에 붙은 블라인드에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가 시화의 형태로 프린트되어 신선했다.

층마다 복도 벽의 배색을 달리한 모습

다른 교실에도 신경림 시인, 이청준 소설가의 유명한 작품들 속 문구가 블라인드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상수 교장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각 층과 교실 등을 접할 때마다 때로는 포근함을, 때로는 청량함을, 때로는 아기자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의 측면에서는 크게 두 가지 변화를 들 수 있다. 첫째로 는 2층에 위치한 학생 식당 앞 공간에 대한 활용이다. 연초록색이 깨끗하게 칠해져 있는 널찍한 공간에 큰 공간의 벽이 있었는데, 그 넓은 공간에는 학생들의 작품이 시기에 맞추어 전시된다는 것이었다. 취재일 이후에 해당 공간에 새로운 전시물을 배치하기 위해 부대 작업이 진행 중임을 부연하기도 하였다. 둘째로는 역 디귿( ㄷ) 자 모양으로 생긴 학교의 가운데 빈 공간에 조성한 조그만 정원과 텃밭이었다. 서울시와 강서구의 에코스쿨 사업 지원으로 조성된 정원 공간은 이따금 다른 학교 공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쌈 채소가 예쁘게 자라고 있는 작은 텃밭은 신기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잘 가꿔진 쌈채소들은 학생들이 반별 활동으로 학교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소용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여느 농장에서 키우는 작물 못지않은 싱싱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텃밭동아리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텃밭을 키워갔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텃밭이 학생들에게 도시 농부의 삶을 체험하며 스스로를 힐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리라.

<국어교과실의 블라인드의 모습>               <학생식당 2층의 연초록색 벽 전시 공간>        <건물 한가운데 조성된 조그만 텃밭>

4. 나가며

혹시 학교 안에서 벽화를 그리자는 계획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없었는지 묻자, 모든 교사가 모두 협조적으로 도움을 주었는데 이는 2012년 학생들의 미술 작품을 교내 복도 곳곳에 전시해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그때의 경험이 교내 벽에 대한 미술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에 좋은 인식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학교에 칠하는 여러 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나 싶은데, 구성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모여 다양한 색깔의 의견이 나왔지만 많은 교사의 의견에 따라 파스텔 계열의 색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작은 변화를 이뤄내고자 했던 용기, 그 용기를 통해 얻은 작은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기반으로 착실한 협의를 거쳐 만들어 낸 더 커다란 변화.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은 ‘함께’라는 가치에서 시작하고, 또 그 가치를 지켜나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울러 이 학교의 학생들 역시, 학년 구분도 없이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던 벽화 그리기에서, 교실과 복도에 다양한 색이 칠해지는 과정에서, 오빛나리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의 변화와 생활의 변화에서 ‘함께’의 가치를 배우고 더욱 훌륭한 품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학교를 바꾼 색과 공간의 힘의 크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취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