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한 진로체험의 유용성

양정옥 미양고등학교 교사

 

지난 해 3월, 1학년 담임과 함께 과학중점업무를 맡게 되어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게 보내던 중 2학년 한 여학생이 자신의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며 상담을 요청해 왔다. 상담 요지는 생물 과목을 좋아해서 장래에 의사가 되거나 생명공학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이들 분야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생물과목 교사인 필자는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다가 “보건의학 동아리를 만들어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학생도 이에 적극적이어서 곧바로 동아리 창립 준비에 들어갔다. 그 학생은 실험과 토론 중심의 동아리라는 점을 강조한 홍보용 포스터를 만들어 회원을 모집하고, 필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실시한 ‘2017학년도 진로맞춤형 학생 학습동아리’ 공모에 응모1)하여 교육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교과 수업시간에 체험하기 어려운 실험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 영역이 유사한 학생들만의 모임이라는 것이 유인이 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도 공모 결과 지원 대상으로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사실 동아리 활동 및 운영에 가장 어려운 문제가 소요경비의 충당 문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셈이었다. 이로써 의학·약학·보건·수의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22명으로 구성된 자율동아리 ‘보건의학 동아리 MEDICAL’이 출발하게 되었다.

동아리의 첫 번째 모임에서는 전체적인 동아리 운영 방향과 활동 계획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서울특별시교육청에 제출한 신청서 상의 활동 계획이 일부 수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동아리의 목표는 교과목 수업시간에 진행되지 않는 체험과 토론을 통한 ‘보건의학 분야 지식의 확장’에 두고, 필자가 지도교사로 있는 기존의 정규 동아리인 생물실험반의 활동 내용과 중복되지 않도록 유도했다.

또한 동아리의 활동 내용을 동물 해부 및 실험, 보건의학 분야의 이슈에 대한 토론, 의학지 제작, 캠페인 및 견학 등 크게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회원 각자의 관심과 희망을 반영하여 회원들을 다시 4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1개의 영역을 책임지고 동아리 모임 시 각 그룹이 자신의 주제 영역을 주도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회원이 동아리 차원의 직책과 소그룹 차원의 직책을 중첩적으로 맡도록 조직화하여 다른 소그룹의 주제에서 소외되는 회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동아리 활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활동 결과물도 잘 공유하도록 지도했다.

앞서 언급한 4개 영역에 따라 동아리 모임에서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회원들의 관심도가 가장 컸던 해부 및 실험은 총 4회에 걸쳐 실시했는데, 소의 눈, 양의 뇌, 돼지의 심장을 해부하는 실험과 혈액형을 판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오리엔테이션 이후 두 번째 동아리 모임에서 실시한 소의 눈 해부 실험에서는 지도교사가 눈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한 후 회원들이 알고 있는 상식적 수준의 지식을 공유하도록 했다. 이어서 바로 실험으로 들어가 소의 눈을 각막, 홍채, 수정체, 유리체, 망막, 반사판으로 분리하고 각각의 특징을 살펴본 후 사람의 눈과 다른 특징들을 비교·설명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동아리 3차 모임에서는 심폐소생술에 대해 알아보고 실습을 하였다. 심폐소생술의 정의 및 실습 방법, 소아소생술과 성인소생술의 차이에 대하여 학습하고, 평소 심폐소생술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찾아 발표하도록 했다. 실습은 교내 보건실에 있는 키트를 빌려 진행하였고 실습 후 동영상을 보면서 잘못된 자세를 찾아 서로를 교정해주고 격려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양의 뇌 해부는 5차 동아리 모임에서 실시하였다. 이를 위해 모임 전에 각 회원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뇌 구조 사진과 영상을 학습해서 사전에 뇌에 관한 이론적 지식을 공부해 오도록 했다. 실험 직전에는 몇 가지 뇌 관련 실험 영상을 시청하여 생명에 관한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서 과학자가 가져야 할 생명윤리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또 그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부는 예비 실험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주도하였으며, 해부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 회원 모두가 뇌의 구조를 관찰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고 진행했다. 실험이 끝난 후에는 사람 뇌의 부위별 기능에 대하여 각자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사람 뇌와 일반 동물 뇌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10차 동아리 모임에서 실시된 돼지의 심장 해부는 실험부장을 맡았던 학생이 직접 돼지의 심장에 대하여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을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해부 방법을 소개한 후 실험을 진행했다. 해부 단계별로 관찰할 내용이 많은 실험이라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해부였으나, 사람의 심장과 유사성이 큰 돼지의 심장이었던 만큼 회원들의 참여 열기도 가장 뜨거웠다.

동아리 7차 모임에서는 실험부장의 제안으로 혈액형을 판정하고 혈액을 관찰하는 활동을 하였다. 실험부장 2명이 먼저 생명과학Ⅰ 시간에 배운 응집원과 응집소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자체적으로 먼저 판정 실험을 해본 후, 동아리 활동시간에 회원들에게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활동들은 연구자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선정하여 연구한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발표·설명하고 또 질문에 대처하는 역량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음으로 보건의학 분야의 이슈에 대한 집중토론을 2회 실시했다. 먼저 동아리 9차 모임에서 수의학 분야의 최근 이슈 가운데 토론 주제로 할 만한 네 가지 이슈(동물원은 필요한 시설인가, 인간을 위한 동물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하는가, 유기견에 대한 안락사가 최선의 해법인가 등)를 수의학 부장이 제시하고, 소그룹별로 각기 다른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한 후 그룹별 토론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발표된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종합토론을 실시함으로써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각각의 견해를 존중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아울러 토론 과정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동물권’에 관한 논쟁이 지금 우리 동아리 회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도록 했다.

11차 모임에서 실시된 의학 토론도 수의학 분야 토론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의학부장이 ① 복제인간 기술, 과연 옳은 일인가?, ② 뇌사에 빠진 환자, 그의 장기를 필요한 이에게 이식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③ 낙태, 여성의 자유가 우선일까 생명존중이 우선일까? 등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주제를 제시하고 이들 주제에 대한 소그룹 토론과 종합토론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도교사가 마지막에 총평을 하여 이러한 주제와 연관된 문제들이 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주는 시간을 추가로 가졌다.

의학지 제작은 다른 영역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래서 동아리 6차 모임에서 이에 관한 집중적인 논의를 먼저 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학기 말에 제작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했다. 제작 방향은 회원 모두가 각자 관심 있는 질병 하나를 소주제로 선택하여 그 질병의 특징, 원인과 치료법 및 예방책 등을 찾아 정리하고, 의학 분야의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여 소개하며, 의학 관련 최근의 사회적 이슈를 간략하게 안내하는 내용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 결과 시각장애, 치매, 뇌졸중, 반사회적 인격장애, 수두, 루게릭병, 존엄사, 혈액암, 알츠하이머, 폐암, 광우병, ADHD, 카르가스증후군, 미나마타병, 메르스, 피부암, AIDS, 광견병 등에 대한 내용을 의학지에 담아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마지막으로 캠페인과 견학은 총 4회를 실시했다. 캠페인은 헌혈 캠페인과 감기예방 캠페인을 진행했다. 헌혈 캠페인은 동아리 4차 모임에서 실시했는데, 회원들이 헌혈 시 주의사항, 헌혈에 대한 잘못된 속설들에 대하여 미리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얻은 뒤, 학생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만들어진 포스터는 캠페인 부장 등이 실제 헌혈이 진행된 2층 체육관 거울 전체에 부착하여 헌혈을 위해 대기하는 학생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헌혈 후 헌혈증을 들고 오는 학생에게는 사탕을 주며 동아리 홍보를 겸한 이벤트도 실시했다.

두 번째 캠페인은 12차 모임 때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주제 선정부터 방법과 기간, 실제 활동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캠페인 부장이 주도하여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모임 당일 제작한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여 교내 학생들에게 관련 상식을 알려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견학의 경우 충무아트센터에서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주제로 개최한 전시회(2017년 10월 28일 2시~5시)를 관람하고, 또 노원구 소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진행된 생물 관련 프로그램(메추라기 해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충무아트센터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며, 특히 관람 후에는 1년 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느린 우체통에 편지도 써 넣어보고 자신을 되돌아 보며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느끼는 삶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소개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한 여학생의 진로상담이 계기가 되어 출발한 미양고의 ‘보건의학 동아리 MEICAL’은 작년에 총 13회의 모임을 갖고 활동을 종료했다. 모임 횟수는 공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13회의 모임을 위한 준비 시간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올해에는 1, 2학년뿐만 아니라 3학년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1, 2학년은 3학년과 분리하여 3개의 자율동아리로 나누어 좀 더 영역을 세분화했다. 현미경을 통한 관찰 위주의 MSG동아리, 여기서 소개한 보건의학 동아리, 실험 위주의 RNA동아리로 영역을 넓혀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부 실험 외에도 아스피린 합성실험 등 의학, 약학 등 활동 영역을 더 넓히고, 그동안 해보지 못한 관심 분야에 대한 최신 연구를 조사해서 발표해 보는 ‘FAMELAP’을 진행해 더 다양하고 심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능에서 생명과학Ⅰ을 준비하는 2, 3학년 학생들과 내신으로 생명과학Ⅰ을 공부하는 학생들 간의 멘토링, 3학년의 경우 약간의 추가 실험과 실질적 면접 대비를 위한 멘토링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또한 2학년만을 대상으로 환경·과학 융합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는데, 이 정규 동아리는 환경과 과학을 융합한 모델로 다양한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있다.

 

필자는 작년 한 해 보건의학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아 모임 횟수를 늘려가며 크게 두 가지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체험 이상의 교사는 없다는 철학이 더욱 공고해졌다. 관심은 있으나 동기와 계기가 없으면 발전이 없고, 관심 영역에 체험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상상에 불과하다. 필자는 동아리 실험 시간에 보았던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수술용 장갑을 낀 채 칼과 가위를 쥐고 고도로 집중하고 긴장하며 의사도 되어 보고, 수의사도 되어 보고, 실험 보조자도 되어 보았다. 실험이 끝나고 정리를 마친 뒤에도 실험실을 떠나지 못하고 이런 저런 뒷얘기를 나누며 자기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 글이 동아리 활동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소개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 독자로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실험실과 토론실의 감동을 다 전달할 능력이 없고, 대신 학생들이 실험실과 토론실에서 활동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면 독자들이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데 따른 것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2016년 1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화두로제시된 이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요 언론에 오르는 소위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디지털 혁명에 기반한 기술융합’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좀 더 쉽게는 제조업에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융합된 신기술·신산업이 세상을 선도하는 시대가 바로 4차 산업혁명시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드론과 자율주행자동차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특히 생명공학 분야가 4차 산업혁명이 두드러지게 일어날 수 있는 분야로 지목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삶에 편의성을 더하는 고도의 기술진보를 의미하는 것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논할 때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로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이 전제되지 않는 기술진보는 인간 소외와 윤리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휴머니즘에 대한 교육이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 필자가 미양고에서보건의학 분야의 자율동아리를 지도하면서 특히 염두에 두었던 것도 휴머니즘에 관한 것이었다. 동물 해부 실험을 하면서도 생명윤리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지도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 기술진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토론 주제를 정할 때 그것이 왜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토론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정하도록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끝으로 필자는 동아리 지도교사로서 철저하게 동아리 회원들의 후원자에 머무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1년이 지난 후에는 오히려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학생들이 나의 후원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면을 빌어 그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