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학교 탐방 –
그곳엔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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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홍길 / 선정고등학교 교사

g_03_1_06작년 12월, 서울의 인문고 교사 몇 명이 모여 작당을 했다. 겨울방학이 돌아오면, 필자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도를 가보자는 제안을 누군가가 했다. 마침 자은도와 암태도, 암태도와 팔금도, 팔금도와 안좌도 등 4개 섬이 연도교로 이어져 있고, 부속섬들이 많기에 방학을 맞아 추억 쌓기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바람과 파도 때문에 풍랑주의보의 위험성이 상존한 겨울이어서 일정은 2박 3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포도·박지도 등 본섬에 딸린 부속섬들이 많아 섬속의 섬을 탐방할 수 있어서 여행의 묘미가 남달랐다.
70여 개의 유인도와 1천여 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섬 천국인 신안, 군청이 자리한 압해대교 쪽에는 ‘1004섬 신안’이라는 슬로건이 크게 새겨져 있기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금도 신안의 한 작은 섬에서는 한 명의 교사 아래 한 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는 미니 분교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화젯거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안좌면 읍동리 소재의 ‘작지만 강한 학교’ 안좌고등학교(약칭 안고)! 보통과와 경영정보과에 1백 명도 안 되는 학생이 재학 중인데 강당과 급식실·도서실·상담실은 기본이고, 기숙사와 관사까지 갖추고 있다. 기숙사는 압해도 등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 관사에는 육지가 고향인 선생님들이 평일에 머무르는 공간이다. 올해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 경영정보과 학생들 20여 명 전원이 공기업과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쾌거를 이뤘다. 자격증 20개(회계분야 5개, 사무관리 5개, 전산분야 8개, 유통부문 2개)를 취득하고 ‘한국감정원’에 합격한 학생도 있을 정도이다.
안좌고의 이 같은 성과는 청년 실업자 100만 명을 넘는 시대에 섬지역의 소규모 특성화고의 취약점을 극복한 사례이다.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동문들이 T/F팀을 구성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여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학교는 그동안 산학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 다양한 인성교육과 취업연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해 왔다. 1인 다자격증 취득지도, 산업체 현장 체험학습 및 실무교육, 산학협력교육 등을 꾸준하게 지도해 취업 역량을 강화했고, 일주일에 3가지 이상 좋은 일하기, 한 달에 3권 이상 책 읽기 등을 실천해 창의성과 인성이 조화로운, 꿈과 끼를 갖춘 글로벌 인재 양성에 힘써 왔다. 교장과 교감을 포함해 교사 15명이 똘똘 뭉쳐 이뤄냈기에 이 실적은 더욱 빛나리라 생각된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오후 4시경, 여의도 절반 크기의 면적에 70여 명이 사는 추포도(秋浦島)! 암태도 본섬을 통해 찾아간 추포도는 고즈넉했다. 토판염전을 거쳐 목적지인 추포분교에 다다르자 섬 주민들이 깔았다는 천연 잔디 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3명의 학생이 다닌다는 초미니 학교, 학생들이 수업하는 단층짜리 본관 건물과 더 작은 부속건물이 전부였지만 소담스러운 분위기였었다. 작은 것이 아름다웠다. 태극기 아래의 조회대 쪽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때 어디선가 해조음이 들려왔다.
이 학교는 개교한 1951년부터 지금까지 분교로 남아 있다. 본교인 암태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 올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이곳은 교육부로부터도 ‘아름다운 학교’로 인정을 받았다. 최고의 자랑거리인 잔디구장과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노거수(老巨樹), 야트막한 언덕 너머 지척에 자리한 해수욕장은 왜 이곳이 아름다운 학교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본관 옆의 화단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날짜가 적힌 나무가 몇 그루 자리해 이채롭다.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나중에 모교를 방문한다면, 자기 이름이 적힌 나무를 만지면서 당시를 회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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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바로 앞에는 수십 년을 이어온 염전이 있고, 우리 조상들의 성인식의 증거물이었던 동그란 모양의 ‘들돌’도 남아 있다. 게다가 지금은 본섬과 시멘트길로 연결돼 생활이 편리해졌는데, 추포도의 자랑거리 노두(‘징검다리’의 방언)도 보존돼 있다. 학생들은 방과후에 선생님들과 해수욕장을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고, 염전을 견학하면서 생태체험을 하며, 노둣길 입구에 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깨쳐 나간다.
지식교육과 인성교육을 겸비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학교임에 틀림없었다. 해맑은 학생들과 패기 있는 분교 교사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으나, 여행에 나선 우리 일행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두 개의 학교 탐방을 마친 우리는 자은도에 있는 ‘해넘이길’이라는 곳을 찾았다. 자은도는 신안군 압해읍 송공항에서 암태면 오도항까지 25분 정도 여객선을 탄 다음, 은암대교를 거쳐 당도하는 곳이다. 대형 모래밭 해수욕장이 아홉 곳이나 되지만, 자은도 여행의 백미는 ‘해넘이길’에 있다.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 5선 중 ‘해넘이길’이 여기에 포함됐음은 자타가 인정하는 도보여행지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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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길이 12㎞ 정도의 해넘이 길은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기에 만만한 코스는 아니지만, 사유의 최적지이다. 봄에는 주변의 꽃들을 보면서, 여름에는 각종 수목이 내뿜는 피톤치드의 마력에 빠져서, 가을에는 단풍의 색깔에 반해서, 겨울에는 맵찬 해풍에 맞서서 걸으면 삶의 욕구가 무장무장 솟구친다. 해넘이길 도중에 자리한, 자갈로만 이뤄진 소한운 해수욕장 언저리에서 발을 담근 채 바닷물이 자갈을 간지럽히는 소리를 들으면, 일상의 소소한 고민거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릴 것이다.

2016년 2월의 한 날, 교무실에 앉아 여행 사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1920년대 전국을 강타했던 소작쟁의 고장 암태도, 광활한 자은도의 대파 밭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대파 수확을 하는 외국인들, 팔금도 ‘박유천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꼬마아이,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부모님을 기리며 섬에서 혼자 사는 요력도 주민, ‘천사의 다리’를 오가며 건강을 다지는 박지도와 반월도 사람들, 추포분교의 천연 잔디 운동장, 안좌고 구성원들의 패기와 열정…….

g_03_1_14 외딴(?) 곳에서 살기에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들 또한 우리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미래의 희망을 안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1400여 명의 학생과 1백여 명의 교직원들이 있는 우리 학교, 그 가운데 한 명인 필자는 추포분교와 안좌고의 구성원들처럼 집념과 사랑으로 학생과 동료교사를 대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하면서 부끄러움 때문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섬이라는 오지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삶을 직접 목격한 우리 일행에게는 ‘주어진 자리에서 아름답게 살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사족
지난 2월 본교인 암태초등학교에서 졸업식이 거행됐다. 3명의 추포분교생 중 2명이 졸업생 가운데 포함됐다. 결국 1명만 남게 되자, 추포분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나머지 한명의 학생은 부모의 차를 타고 본교인 암태초등학교로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추포분교는 휴교 후 3년이 지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