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입제도의 변천 과정 및
향후 추이

|김정빈

Ⅰ. 들어가며

2015 개정교육과정에 기반을 둔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 논의가 한창이다. 논의의 초점은, 동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문·이과 통합’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계열별 선택’의 범위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현행 대입제도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학별고사(논술) 등 크게 3가지 전형요소로 구성된 3각(triangle) 체제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3각 체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그 향후 추이를 탐색하고자 한다. 대입제도의 역사적 변천과 정은 크게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즉, 1980년의 7.30 조치와 1995년의 5.31 개혁을 전후한 시기에 주목하여, 본고사 중심 시기-학력고사 중심 시기-수능·내신·논술 3 각 체제 시기 등 3시기로 나눈다.

Ⅱ. 대입제도의 역사적 변천과정

1. 본고사 중심 시기(1980년 7.30 조치 이전)

198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는 대학별 ‘본고사’를 중심으로 하여 ‘대입예비고사’가 가미된 형태였다. 대입예비고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1969학년 이전까지는 대학별 ‘단독고사’ 체제였는데, 이러한 대학별 단독고사 체제에서는 입학 부정·비리와 무자격 입학 등이 문제되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는 대학들의 이러한 부정입학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입예비고사’를 실시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입지원 ‘자격’을 관리하고자 하였다.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 비등했던 대입선발의 ‘객관성·공정성’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학별 단독고사는 ‘예비고사’에 대응하는 ‘본고사’가 되었다.

한편, 대학별 본고사는 ‘교과지식’을 묻는 ‘주관식 서술형’ 시험이었다. 이러한 본고사에 대해서는,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한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이에 따라 대학별 본고사가 중등교육을 교란시키고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사회적 비판이 계속되었다. 정부가 대입예비고사를 실시한 것은 부정입학 등의 해결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대입지원 자격을 제한하여 이를 통해 대입 사교육 열풍을 잡아보고자 했던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한 효과는 얻지 못하였다. 오히려 사교육 열풍은 확대되는 양상이었다. 한편, ‘내신성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한다는 정책도 시행하였으나 ‘권장사항’에 그쳐 별 의미는 없었다.

이 시기의 대입 사교육 열풍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조기에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 이는 우리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가 ‘경쟁선발’에 의한 ‘서열화’ 체제인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이러한 과열된 조기 입시열풍을 잡고자, 1969학년도에는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를 시행하고, 더 나아가 1974학년도부터는 일명 ‘고교평준화제도’라고 하는 ‘고등학교 무시험진학제’를 시행하였다. 이제 중학교도 평준화되고 고등학교도 평준화되었다. 이로써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불었던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는 데에 일단 성공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고교평준화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이전까지 고교체제와 대학체제 간에 ‘서열’로 서로 맞물려 있었던 체계가 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각 고등학교는 이전처럼 지망하는 대학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고, 성적 최상위권에서 최하위권에 이르는 다양한 학생들을 한꺼번에 한 교실에서 가르쳐야 하는 새로운 문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학교 차원에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우열반’이었다. 고교평준화제도가 관철되고 있는 일반고에서 요즘에도 ‘심화반’과 같은 변형 우열반이 존재하고, 제7차 교육과정 이래 공식적으로 ‘수준별’수업을 제도화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결국 고교평준화제도 시행은 서열화에 따른 문제를 일정 정도 해결하기는 하였지만, 그 밑에 잠복해 있는 입시위주 교육 문제와 과열 사교육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시기는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교육도 통제받던 시절이었기에, 평준화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진로를 생각하는 다양화, 특성화는 꿈도 못 꾸었다. 따라서 이 당시엔 다양한 진로 모색보다는 오직 하나,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입시 사교육열풍도 과열될 수밖에 없었다.

2. 대입학력고사 중심 시기(1995년 5.31 개혁 이전)

본고사 중심 대입체제를 깬 것은 바로 전두환정권의 물리적인 ‘힘’이었다. 전두환정권은 1980년 당시 ‘국보위’의 이름으로 일명 ‘7.30조치’, 즉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조치에 의해 본고사는 폐지되고, 기존의 대입예비고사를 주된 대입 전형요소로 하여, 이에 내신성적을 가미하는 대입제도 개선안이 제시되었다. 동시에 재학생이 받는 일체의 사교육을 금지하는 ‘과외금지조치’가 단행되었다. 한편, 1982학년부터 기존의 ‘대입예비고사’는 ‘대입학력고사’로 이름이 바뀐다. 대입학력고사는 이전의 대입예비고사와 똑같이 단편적인 ‘교과지식’을 묻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었지만, 본고사를 폐지한 상태이므로 그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내신 교과 성적 기록 방식은, 초기에 교과별 단위 수와 성취도(수/우/미/양/가)만을 기록하던 것이 1980년대 후반에는 학년석차 등이 추가되었고, 1990년 초반에는 학년 및 교과별 석차를 기록하였다. 이 시기의 학생평가 방식은 기본적으로 ‘상대평가’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사 폐지에 의해 그 이전까지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출제로 말미암은 학교교육 파행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입학력고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는 1994학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중심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문제되었던 본고사도 없애고 또 과외도 금지하였으니, 이를 통해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가 모두 해결된 듯 보였다.

‘7.30 조치’의 공식 이름인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이 말해주듯이, 이 시기 사회적·교육적 요구는 ‘학교교육 정상화’ 요구와 ‘과열과외 해소’ 요구로 집약될 수 있다. 그만큼 이전 시기에는 본고사로 말미암아 학교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사교육이 과열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국가표준화시험으로서의 ‘대입학력고사’ 중심의 대입전형 방식은 중등교육의 ‘획일화’를 가속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본고사 대신에 이제는 대입학력고사를 준비하는 사교육이 소위 ‘몰래바이트’라는 형태로 다시 불붙기 시작하였다.

문제된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를 대안으로 하였으나, 이 역시 ‘암기된 지식’을 묻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학교교육에서 주입식·암기식 수업은 계속되었다. 정책 의도와는 달리 ‘교육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사교육’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만 ‘공교육’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인데, 정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졌던 사교육이 점점 확대되어 그나마 공교육 정상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이 시기엔 이전에 권장사항으로 했던 내신성적 대입반영을 의무화하였지만, 그 비중은 실질적으로 크지 않아서 ‘교육정상화’에 제대로 기여하지는 못했다. 대학 입장에서는 ‘대입학력고사’의 점수 서열만으로 학생 선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불만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결국 과외금지 조치는 유야무야 해제되었고, 1986학년에는 과거의 본고사 대신 대학별로 ‘논문(논술)시험’을 실시하게 된다. 당시 학력고사에 대해서는 ‘암기된 지식’만을 평가한다는 비판이 계속 있었고, 동시에 학력고사 점수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야 하는 대학 측 입장에서는 ‘변별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학력고사 중심 대입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선발의 ‘변별력’ 요구도 충족시키고 ‘고등사고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교육적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대학별 논술시험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술시험은 준비 부족으로 실시한 지 2년 만에 중단된다. 논술시험 도입은 ‘고등사고력’을 평가한다는 취지였지만, 우리 학교교육이 이를 감당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었고, 이를 실시하는 대학 측도 아직 준비가 덜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학력고사 중심 대입체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학력고사 위주의 표준화된 ‘단일시험’ 체제로 말미암아 ‘입시경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이에 따라 정책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교육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 체제는 권력의 물리적 힘에 의해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본고사를 없애고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모든 교육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3. 수능·내신·논술 3각 체제 시기(1995년 5.31 개혁 이후)

1994학년부터 기존의 대입학력고사를 대체하여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도입되고, 동시에 논술고사를 포함한 대학별 ‘본고사’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본고사는 사회적 여론에 밀려 얼마 못 가서 1995년 ‘5.31개혁안’을 계기로 논술고사만 남기고 대입 전형자료에서 사라지게 된다. 기존의 학력고사가 단편적인 교과지식을 묻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여 ‘고등사고능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개별 교과 지식이 아닌 ‘범교과’적인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서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논술고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의 학교교육을 입시위주 교육이라 하여 비판할 때 반드시 고질적인 주입식·암기식 교육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주범으로 입시를 지목하였는데, 수능과 논술시험의 시행으로 이제는 그간의 오명을 벗고 ‘범교과적인 고등사고력’을 평가하는 대입시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대입제도는 수능을 중심으로 내신과 논술고사가 가미된 체제가 된다.

또한, 이 시기엔 ‘5.31개혁안’의 후속 조치로 제7차 교육과정(1997)이 만들어지는데, 이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해 원칙적으로 단위학교별로 학교교육과정이 ‘자율적’으로 ‘다양’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학생들 각자의 진로에 따라 ‘개별 맞춤식’의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규범적 근거를 갖게 된다. 제7차 교육과정의 원래의 취지는 ‘문·이과’ 구분 없는 교육과정 운영이었으나, 실제로는 이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미비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이러한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았고, 그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위학교에서는 여전히 문·이과를 구분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부터 고등학교 평준화체제에 변화가 있었는데, 기존의 일반고와는 별도로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가 도입되었다. 이 특목고는 과학영재와 외국어영재 등을 뽑아 국가적인 인재로 양성한다는 ‘특수 목적’ 아래 기존의 일반고등학교(이하, 일반고)에 앞서 성적 우수 학생들을 ‘우선선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특목고인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 등은 후기에 모집하는 일반고와는 달리 전기모집에서 성적 우수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뽑는 ‘선발의 특권’을 갖게 된다. 특목고는 그간 평준화체제의 획일화된 교육에 대한 반발로 ‘다양화·특성화’ 교육 요구와 ‘수월성’ 교육 요구가 맞물리면서 등장하게 된 것이지만, 설립 취지와 달리 결국 ‘입시명문고’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김영삼정부의 ‘5.31 개혁’ 기조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2002학년부터는 ‘수시모집’ 제도를 확대하여 대입전형 시기를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으로 나누어 실시하게 된다. 서울대는 논술고사를 없애고 수능과 내신, 구술면접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기로 하였는데, 서울대 외의 대학들은 서울대와 달리 기존의 논술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내신과 함께 수시모집의 주요 전형요소로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시모집의 확대로 입시에서 ‘내신’과 ‘논술’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입전형에서 ‘내신’의 비중을 높인다는 것은 ‘학교교육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평가했던 것을 대입전형에 비중 있게 반영한다면, 학생들은 학교수업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5년 5.31 개혁안 발표 이후 학생평가 방식은 기존의 ‘상대평가’ 방식에서 ‘5단계(수-우-미-양-가)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절대평가’ 방식은 2005년에 새로운 학생평가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성적 부풀리기’가 문제되어 기대한 만큼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학 측 입장에서 보면, 고등학교들 간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학교차’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신 반영에 있어서 여전히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어쨌든 이때부터 우리 대입제도는 ‘수능·내신·논술 3각(triangle) 체제’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수능’의 비중이 가장 컸다.

노무현정부는, 이러한 ‘내신 부풀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학생평가 방식을 기존의 ‘5단계(수-우-미-양-가) 절대평가’ 방식에서 ‘석차 9등급 상대평가’ 방식으로 바꿈과 동시에 대입전형에서 내신 비중을 강화하는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수능’ 성적산출도 2008학년 입시부터는 ‘등급제(9등급)’로 하여 성적표에 표준점수와 백분율을 병기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는 점수로 학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기존의 대입전형 방식을 극복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변별력’을 내세운 대학 측의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기존의 대학별 논술고사를 ‘통합교과형’ 형태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서 타협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이렇게 내신의 비중을 높인다는 새 대입제도안은 엉뚱하게, 기존에 수능을 위주로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또 다른 고통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능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영향력이 큰 상태에서, 내신과 논술의 비중만 높아지는 바람에 이제는 수능 외에 내신과 논술도 확실하게 챙겨야 하는 ‘3중고’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부터이다. 이에 반발하여 고등학생들의 반대시위까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내신과 수능이 ‘등급제’로 됨에 따라 우리 입시에서 ‘점수’로 줄 세우는 식의 대입선발 제도는 일정 부분 해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수능등급제는 2008학년 시행 첫 해에 ‘등급 컷’에 걸려 아래 등급으로 떨어진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 여론에 밀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의해 폐지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수능이 ‘변별력’을 되찾은 것이 되어, 정시에서 변별력 확보를 위해 존재했던 논술은 이후 수시에서만 내신과 함께 전형자료로 쓰이게 된다.

이명박정부는 ‘죽음의 트라이앵글’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입학사정관제’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 확대로 오히려 학생들의 입시 준비 부담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를 ‘죽음의 다이아몬드’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쉬운 수능’을 표방하면서 EBS 수능 반영 비율을 70% 이상으로 확대했으며, 2014학년부터는 수능을 ‘A or B’이라는 ‘수준별 선택형 수능’으로 바꾸어 시행했다. 그리고 학생평가 방식으로는 절대평가라 할 수 있는 ‘성취평가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하였으며, ‘고교학점제’도 도입할 계획이었다. 또 2015학년부터 기존의 수능 영어 시험을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으로 대체하는 계획도 추진하였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기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학년부터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가 지정되었다. 자사고 역시 특목고와 마찬가지로 ‘우선선발권’이 주어졌는데, 이로써 고교체제는 ‘수평적’인 다양화가 아닌 ‘수직적’인 ‘서열화’ 체제로 가게 된다. 기존의 특목고까지 생각하면, 특목고가 ‘일류’, 자사고가 ‘2류’, 그리고 일반고는 ‘3류’가 되는 형국이 되었다. 자사고는 그 취지대로라면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 취지와는 다르게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수준별 수능’은 2016학년 수능을 끝으로 순차로 폐지되었고, ‘성취평가제’는 대입자료 적용이 유예되었으며, ‘고교학점제’에 대해서는 처음엔 언급이 없다가 2016년 말 최근에야 중장기 계획안으로 다시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NEAT의 수능영어 대체 계획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쉬운 수능’으로서 ‘EBS 수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입학사정관제는 그 이름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어 확대·시행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서는 소위 ‘스펙’과 관련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폐단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2017학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편입되어 실시되었는데, 주목할 점은 그 성적산출 방식이 ‘절대평가’라는 점이다. 또 2018학년 수능부터는 ‘영어’도 ‘절대평가’로 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 대학은 수시모집 인원을 70% 이상으로 그 비중을 높이고 있어서, 수능 성적을 주된 전형자료로 하는 정시 비중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Ⅲ. 나오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본 결과, 현재의 시기는 동일한 ‘수능·학생부·대학별고사 3각 체제’ 하에 ‘수능’ 중심에서 ‘학생부’ 중심 체제로 옮겨가는 중요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학생부’를 주된 전형자료로 하는 ‘수시모집’ 비중이 70%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수능’에서 한국사, 영어의 ‘절대평가’에 이어 국어, 수학 ‘절대평가’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향후 수능은 ‘대입자격고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또 2015 개정교육과정에 근거한 ‘문·이과 통합형’ 수능 논의 역시 수능의 비중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학생부 학생평가 방식에 있어서 ‘성취평가(절대평가)’의 대입 적용문제는 여전히 고민 중인데, 만약 이번 기회에 대입에 적용하기로 한다면 우리 대입제도는 바야흐로 학생부 내신과 수능 모두 ‘절대평가’ 등급 체제로 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사회적으로 충분한 ‘소통과 공감’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