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0 가을호(240호)

자기 색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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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 (대경중학교, 교사)

그림을 이용한 스토리텔링 수업은 재미있다. 중세 봉건제도를 설명할 때 ‘베리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라는 작품으로 당대의 장원과 농노, 귀족의 삶을 제시하거나,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의제로 설정할 때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과 ‘게르니카’를 보여 주면서 소통하는 것이다. 남계우의 ‘꽃과 나비’ 는 열정적인 삶과 개성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장치이다. 특히 자화상은 매우 유용하다. 삶의 주인됨을 강조하는 교과 특성상 자화상 스토리텔링은 그 목적에 부합한다. 윤두서, 최북, 뒤러, 고흐, 프리다 칼로, 피카소의 자화상은 스토리텔링 수업의 단골 메뉴이다. 이 중 뒤러의 자화상은 삶을 성찰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로 기능한다. 최근 팬데믹 상황으로 교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뒤러의 자화상을 감상하며 짧은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중세 말 화가는 여전히 장인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가’가 아닌 ‘화공’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석공이나 대장장이와 같았다. 이들은 왕과 교회의 주문이 담긴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만들어 주는 영혼 없는 제작자였다. 서양의 전통 사상에 의하면 제작자는 신을 말한다. 이런 이미지는 플라톤이 지은 《티마이오스(timaios)》에도 등장한다. 플라톤은 우주 제작자 데미우르고스( d.miourgos)가 본이 되는 형상(形相) 에이도스( .idos)를 보고, 원료가 되는 질료(質料) 힐레( hyl.)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이미지는 중세 기독교로, 근대 칸트의 이성, 오성, 감성이라는 인식론적 철학으로, 현대 라캉의 정신분석의 틀인 이미지계, 상징계, 실재계로 변주되면서 서양 철학의 주류를 이어왔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 2,000년을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통찰한 것은 정확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서양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창조자는 오직 신뿐이었다. 누가 이 영광에 도전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화공의 미덕은 그저 신의 이데아를 최대한 잘 모사(模寫)하는 것이었다. 제작자이지만 영혼 없는 노예일 뿐 제작자로서의 의식을 가진 주인은 되지 못했다. 이런 풍토는 권력자들을 세계의 주인으로, 화면 중앙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제 신과 왕을 제외한 어떤 누구도 화면의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볼 수는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런 양식이 이어져 오던 중 뒤러가 그린 자화상 한 점이 정면을 응시한 채로 등장하였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뒤러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로 옮겨가던 격변기를 살았다. 그는 새로운 그림을 위해 원근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3차 원적인 풍경이나 물체를 평면의 캔버스 위에 투영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뒤러는 흉내만 내는 ‘화공’이라는 제작자(d.miourgos)에서 진짜 제작자인 ‘화가’로 다시 태어나고자 했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 화상>은 뒤러의 이런 열망이 담긴 작품이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정면을 응시하는 뒤러의 얼굴이다. 이 정면성은 세계를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바라보겠다는 의지이다. 자화상은 영어로 ‘self-portrait’라 한다. 라틴어 어원 ‘protrahere’로 ‘발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제 뒤러는 자신의 정면성을 발견한 것이다. 즉 삶을 주체의 시선으로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다. 이런 자의식을 발견한 그는 그림 우측에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를 내가 지닌 색깔 그대로 그렸다.”라고 썼다. 우리는 이 글 앞에서 숙연해진다. 자신만의 색깔로, 주인으로 살겠다는 한 사람의 진지한 선언을 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뒤러의 이런 근대 인문학적 성찰이 얼마나 소중하고 앞선 생각이었는가는 1637년에 발간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글과 비교해 보면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이 선언은 근대적 주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많이 인용된다. 하지만 뒤러는 자신만의 주체를 색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데카르트보다 130여 년 앞서 시행 했다. 게다가 데카르트는 근대정신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 그는 주체가 가진 이성적 능력을 신이 부 여했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 중세와의 단절에 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뒤러는 이 자화상을 통해 주인으로 나아가는 길을 끝까지 밀어 붙인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을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삼각형의 구도 속에 굳건히 앉혀 놓는다. 이런 구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던 전형적인 기법으로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화가로서의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1512년의 글을 통해 우리는 뒤러 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수백 년 전에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왕들조차 회화가 갖는 고귀한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위대한 대가들이 신과 어깨를 견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기에, 탁월한 예술가들에게 상과 작위를 내리고 선사했다. 왜냐하면 훌륭한 화가는 형상들로 가득 찬 재능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에게 영생이 부여된다면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뒤러의 글에서 핵심은 ‘훌륭한 화가는 형상들로 가득찬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라는 문장에 있다. 이 주장은 플라톤적 우주관에 따라 형상(.idos)이 신에게만 소속된 것이 아니라 화가인 자신도 내면에 이데아의 세계를 소유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를 통해 뒤러는 ‘화공’이 아닌 그토록 열망하던 ‘화가’로 재탄생(rebirth)한다. 진정 영감에 가득 찬 제작자 (d.miourgos)가 되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뒤러의 자화상은 뜨겁다. 그의 그림에 붉은색이 일렁거리는 이유가 있다.
뒤러의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앞에 다시 서 본다. 참 많은 질문이 몰려온다. 주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팬데믹의 시대를 잘 횡단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등을 다시 돌아본다. 자화상은 나의 얼굴을 고민하게 만든다. 학교에서 열심히 복사하고 붙여넣기한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자화상은 물어온다. ‘오늘은 잘 살았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