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운영체제로 나아가는 학교 민주주의

|이준범

 

1. 교원회의 사례

“관리 책임을 맡은 사람이 청소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특별실을 청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요. 교실에 누군가 있으면 그분이 청소를 하는 것이 맞겠지요.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교무실도 매주 월요일 교무실 식구들이 아침 대청소를 합니다. 작년부터 교과실도 교과 선생님이 청소하고 있어요. 올해 논의하는 것은 다목적실이나 체력 단련실처럼 자유롭게 이용하는 특별실을 누가 청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안을 말씀해주세요.”

교원다모임을 통해 2014년에는 전체 청소구역 중에서 학생들이 활동하지 않는 장소를 학생 청소구역에서 제외시켰고, 2015년에는 교과교실 등 교사가 늘 근무하는 곳의 청소를 제외시켰다. 2016년 3월 교원회의에서 관리책임자는 있지만 교사가 없는 특별실의 청소를 어떻게 할까 논의를 하는 중이다.

“학생 수도 줄어들고, 그나마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에 대부분 참여하고 있어서 교실 청소 하기도 벅찹니다. 특별실 청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 청소를 담당하거나 순회근무하는 분들도 계시니 행정실의 협조를 받으면 해결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좋은 제안인데, 그분들의 일이 늘어나는 것이니 행정실과 논의해보겠습니다. 다만, 사용한 학급에서는 다음 반을 위해서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눈에 띄는 쓰레기는 치우고 나오는 것이 어떨까요?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죠. 우리가 잘 사용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청소해줘도 될 듯합니다.”

“행정실과 협의해서 오늘 논의된 결과처럼 할 수 있다면 메시지로 알려드리고, 어렵다고하면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결국 2016년부터 학생들은 자기 교실과 복도만 청소하고, 대신 특별실의 청결을 위해 사용 후 뒷마무리를 잘 하기로 하면서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담당하는 청소구역은 없어졌다. 청소구역을 배당하지 않았어도 학교는 늘 청결을 유지한다. 관리 담당자들이 더 신경 쓰는 것도 있지만 약속대로 사용한 학급에서 자율적으로 뒷정리를 잘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실의 협조로 일주일에 한 번 특별실 청소를 해주고, 1층에 설치한 신발장 덕분에 교실 복도까지 실외화를 신고 들어오지 않는 것도 큰 몫을 했다. 업무팀장들(특별실 관리담당자)도 특별실을 돌아보면서 정리가 안 된 곳을 직접 정리하기도 했다. 청소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품정리를 위해 2016년 연말에 남은 학교예산으로 다목적실, 음악실, 과학실 등에 보관장을 용도에 맞게 제작·배치하였다.

 

2. 절차적 민주주의, 교원회의

교원회의에서 담당자의 제안이 쉽게 통과되지는 않는다. 전년에 교원회의를 통과해서 시행중인 것도 다시 한 번 검토한다. 공립학교의 특성상 매년 20%의 교사들이 바뀌면서 지난해와 올해의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고, 지난해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교원회의는 매월 1, 3주 월요일에 한다. 보통 매월 첫 주는 안건 처리 중심으로 진행하고, 셋째 주는 나눔 중심 회의를 한다. 안건은 일주일 전에 공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미리 안내하지 못한 경우에는 회의시간에 안건 내용을 설명하고 다음 회의 (혹은 임시회의)를 통해 처리한다. 대체로 2월 워크숍에서 교육과정 전반에 대해 의견을 모은 상태이므로 3월부터는 구체적으로 실행할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

 

3. 반성을 촉구하는 사례

미리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안건 처리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러 단위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 각 단위의 결정이 늦어져서 행사일정에 임박하여 안건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올해는 학부모단체에서 주관하는 ‘○○잔치’를 행사 2주일 전에 안내하여 교사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분명히 학사력에도 ‘○○잔치’가 표시되어 있고 2월 워크숍에서 대강의 내용을 설명했지만, 세부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내용과 시간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런 계획에 협조해야 할 학급 담임교사들은 당혹스럽지않을 수 없었다. 특히 어린이날을 앞두고 학급행사를 기획한 교사들은 더욱 난감하였다. 교사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2학기로 연기하라.’, ‘전일제 행사를 축소하여 운영하라.’는 등 다양한 비판과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기획팀에서는 학부모들이 준비한 행사임을 감안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학년별 대표자회의를 구성하여 논의하자고 제안하였다. 다행히 학년대표자회의에서 계획안을 검토하여 수정의견을 만들었고, 그 다음 주에 열린 임시 교원회의에서 수정의견이 통과되어 학부모들이 준비한 행사를 하게 되었다.

이 사례는 학부모단체가 준비하고, 담당부장교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체되었기 때문에 교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늦어진 사례이지만, 교원회의에 임하는 업무팀의 행위에 대하여 철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기도 하다.

 

4. 교원나눔회의, 생활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

교원회의만이 학교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구조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교원회의에서 의사결정절차를 밟지 않았던 과거의 행태를 보면, 교원회의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현재 시점에서 학교 민주주의의 씨앗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교원나눔회의는 안건 처리를 위한 교원회의보다 진일보한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나눔회의는 함께 참여하고 실천하며 공유하는 교육공동체의 참여 민주주의이자, ‘생활 양식으로 서의 민주주의’이며, 창조성의 토대가 된다. 우리 학교는 학년 운영의 많은 권한을 학년에 위임했기 때문에 학년마다 특색있는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발도르프 교육 방식을 도입한 학년, 프레네 교육을 실천하는 학년, 학년위원회를 중심으로 학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년 등 각 학년들은 학년 교사들의 교육관을반영한다. 또 학년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예산에 알맞은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운영한다. 물론 학교 전체를 관통하는 교육과정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를 존중한다. 교원나눔회의는 이러한 학년 교육과정 운영 사례 중에서 다른 학년과 꼭 나누고 싶은 내용을 선별하여 발표하는 자리이다. 나눔회의에서의 공유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공동의 관심사인 학년 교육과정에 대한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발표를 위해 여러 번 만나 준비하면서 학년 교사들은 자신들의 지성으로 마련한 교육과정의 운영 행위를 성찰하며 다시 새로운 지성을 갖는 민주적 성장 과정을 거친다. 다른 교사들도 교원나눔 회의를 통해 공동의 관심 폭을 넓히고, 교사 간 상호작용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 ‘생활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회적 성장을 거듭한다.

 

5. 교원회의의 구조를 바꾼다

민주주의는 대화에서 싹트고 성장한다. 대화는 개방과 공유에서 시작하며 지성의 확대로 이어진다. 상대방에 대해 나의 지식을 보류하고, 타인의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감정을 읽고, 상대방의 의지가 나 자신을 관통해도 좋을 만큼 개방3)하고 대화한다. 공유는 다양한 구성원의 생각을 묶어가는 과정이며, 다름 속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 학교는 교원(나눔)회의를 그런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반영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학교의 교원회의에 참여하는 모두가 그런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갖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렇게 느낀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교육과정 워크숍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우리 교사들의 모습에서 교원회의에 관련한 해결책을 찾는다. ‘교원회의가 그 나름대로 의사결정체계를 갖춘 나눔의 공간으로 작동하게 하는데, 교사들은 왜 워크숍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2016년에 혁신학교 4년을 평가하면서 교원회의에 대해 디테일이 부족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평을 받았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은 혁신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미 혁신학교 1, 2년 차에 교사들이 요구하던 대부분의 사항을 꼼꼼하게 협의해서 처리해 놓았으므로, 3년 차부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을 해 나갔다. 물론 새로 취임한 학교장의 혁신방향과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대체로 학교 업무는 업무팀(교육지원팀)과 교육공무직이 처리하기 때문에 학교 업무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생각들이 줄어 들었다. 교원회의에 제기되는 안건은 점점 줄어들고, 제기된 안건도 업무팀이 알아서 할 것이라거나, 학년에서 알아서 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찬반토론을 격렬하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업무의 혁신이 끝났다고 여겨지면서 ‘혁신된 업무’가 일상화된 것이다. 업무의 항상성은 구성원의 변화의지를 낮추며 대화를 줄어들게 한다. 교원회의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등 대화채널의 역동성이 떨어지면 학교 조직의 성장은 멈춘다. 학교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끊임없이 작동하려면 거시적 변화와 미시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혁신학교란 거시적 변화를 모색했다면, 지금은 미시적 변화, 즉 ‘디테일’에 힘써야 한다. ‘디테일’한 교원회의란 무엇일까? 워크숍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회자(주로 교무부장) 혼자서 이끌어가는 회의를 하지 말고, 교육과정 워크숍의 월드 카페처럼 한 주제든 여러 주제든 펼쳐놓고 소집단 토론을 하라는 것이다. 교사들은 어떤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은데, 교원회의는 그런 구조가 아니니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한다.

기획팀은 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공간이 문제다. 40명 정도가 한 교실에 들어가서는 월드 카페 토론이든 그냥 모둠토론이든, 모둠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방법은 있다. 회의시간에 비어있는 옆 방까지 확장하면 어떤 소집단 토론도 가능할 것이다.

 

6. 교사의 민주적 활동은 학생의 자율적 활동으로 연결된다

학교의 구조는 프랙탈 구조이다. 자기 유사성과 중층적 구조를 갖는다. 어느 한 단위에서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면 다른 단위로 중층적으로 연결되어 민주주의가 확대된다. 교원회의를 비롯한 학교활동에서 민주적 과정은 구성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성(중복성)을 찾아내면서도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런 믿음은 학생동아리 활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 학교의 학생동아리 활동은 ‘동아리 씨앗’부터 남다르다.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 학생은 누구든지 동아리 씨앗이 될 수 있다. 동아리 씨앗은 4~6학년 학생 중에서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동아리 씨앗은 담당인 혁신교육과정부장에게 동아리 개설 계획서를 제출하고 팀원을 10명 이상 모집하면 동아리를 개설한다. 다만 학교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서(시설 부족 등)는 양해를 구해 다른 활동을 권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교사가 부서를 개설하고 학생은 정해진 부서를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했지만,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개설하고 교사는 학생들의 활동을 지원해준다.

왜 그렇게 바꿨을까? 21세기는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전환하는 시기이고, 그 배움은 학생에게서 일어난다. 배우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학생에게서 더 큰 배움이 일어난다. 비록 교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하더라도 동아리 활동의 자유는 보장해줘야 한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지원한다. 동아리 씨앗이 팀장을 할 수도 있고, 동아리에서 팀장을 뽑기도 한다.

동아리 팀장이 제출한 활동계획서를 보고 협의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한다. 멘토링이 필요한 동아리에는 1회 이상 멘토를 지원한다. 학교가 학생을 신뢰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교사들의 활동을 믿고 학년에게 권한을 충분히 주는 학교, 학생의 자율적인 성장 가능성을 믿고 동아리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교사들이 있는 학교는 이미 자율운영체제로써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학교이다.

동아리 홍보를 위해 모인 씨앗과 친구들                                              / 월드 카페에서 토론에 열중하는 교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