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고맙다

안정선 사당중학교 교장

1. 나

농촌에서 태어나 중소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교직에 입문하여 벌써 정년퇴임이라 는 종점에 거의 다가온 지금 함께해서 행복했던 고마운 두 친구를 돌아보게 된다.
1981년 2월 하순 경 어느 날. 시외버스가 털털대는 자갈길을 달리다가 내가 내린 곳은 방 금 정차한 버스가 내뿜은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욱한 면소재지 어느 중학교 앞 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은 학교였고, 부임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교무실 앞 에 서서 노크 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로 학교에 오셨는지요?”
“발령 받고 왔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안정선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저를 바라보던 교무실 안의 선생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웃기 시작했다. 가 까이 다가오신 교감선생님께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셨다. 공문에 난 선생님 이름만으로 당연 히 여선생님이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 선생님이 나타나서 놀란 표 현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씀이셨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안내해 준 자리에 앉는 것으로부터 나의 교직생활은 시작되었다.
과학교사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가운데 아래 두 친구와 맺은 끈끈한 정과 열 기는 때로 큰 보람으로 돌아와 그 기쁨이 컸기에, 나 자신 스스로 살아온 삶이 오로지 후회 만으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지 않았나 하는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해본다.

2. 한 친구: 컴퓨터

1983년 우리나라에 퍼스널컴퓨터가 도입되었을 때, 한 달 보수로 8비트 컴퓨터를 살 수 없어 아버지께 손 벌렸던 생각과, 방학을 이용해 대학 전산과에서 컴퓨터를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과학교육 시범학교 담당교사로 베이직 언어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파일을 이 용하면서 실험수업을 진행했을 때, 참관하시던 선생님들의 눈동자가 커지던 기억이 난다.
1984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교원부문에 참가했 을 때, 중간에 정전사태가 벌어져 추가 시간을 주면서 대회를 치렀던 기억도 난다. 그 후 컴 퓨터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 16비트, 32비트…. 그 때마다 컴퓨터 기종을 바꿔가면서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포함하여 꾸준히 익혀왔다.
1993년부터 근무지가 서울로 바뀌고, 교육청 직무연수 강사로 활동할 때에는 이토록 미 리 습득한 컴퓨터 활용능력이 있었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개인 홈페이지 를 통해 전국의 많은 과학과 선생님과 학생 대상으로 학습 자료를 공유하면서 주고받은 상 호 커뮤니티는 보람이 컸던 일 중 하나이다.
사물과 인간과의 통신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사물끼리 주고받는 데이터에 의해 우리 인간 의 삶의 방식이나 퀄리티가 결정되는 빅데이터 시대가 벌써 현실 안에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이런 날을 일상으로 마주하면서 살아가야 할 우리 후손을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근시안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우리 학교 내에서의 변화 가 최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니 이미 그 태동은 벌써 시작된 것이 아닌 가 생각한다. 학교생활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교내에서의 어느 단기성 프로그램보다도, 가 장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 수업시간에서의 행복 누림이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업시간에 엎드려 있던 학생이 스스로 벌떡 일어나 학교생활 전반에 재미를 느끼고, 주제를 찾아가며, 자기주도적인 경험을 쌓아 서서히 나타나는 변화! 이런 변화는 바로 수업방법의 개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요즘 ‘거꾸로 수업’ 등 수업방법개선 에 선생님들의 열기가 높다. 학생들은 가정에서 인터넷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선행학습 아닌 바로 내일 수업시간에 공부할 내용을 예습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마다 빔 또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사진 또는 영상 등 다양한 학습 자료로 실제에 가까운 경험의 장을 제공하여, 이어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많은 질문-답변이 오가고, 학생들끼리 토론이 일어나고, 성과물을 그리거나 만들어내고,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장이 되는 수업방식 으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위 어떤 단계에서도 컴퓨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누구도 이 최첨단 정보화가 만들어 낼 미래 세상이 과연 어떤 그림으로 채워질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장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와 평생 친구로 함께 길을 걸어온 컴퓨터에 깊은 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서우리만치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는 웨어러블, 모바일, AR, VR, IOT, 드론, 코딩, 3D 프린터, BIG-DATA 등 다른 형태의 진보된 컴퓨터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젖어 들기도 한다.

당신이 등산길에 만난 이름 모를 꽃이 있어 그 꽃을 폰으로 촬영하는 순간, 설치된 앱이 그 꽃 이름을 알려준다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며, 길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의 곡명을 알고 싶을 때, 역시 앱을 열고 폰에 그 음악을 들려주면 곡명에 심지어 가수의 이름까지 알려준다면 더 놀랄 것이다. 한편으로는 데이터의 누적이 가져올 강강력한 힘에 몸이 죄어 오는 것을 느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컴퓨터이지만, 내 남은 생에서 영원한 친구로 함 께 기꺼이 동행할 것이다.

3. 또 한 친구: 발명

교직생활 내내 과학교사로 많은 관심과 열정을 둔 또 하나의 친구를 대라하면 단연코 ‘발명’을 손꼽겠다. 과학교과 학습요소 지도 시 각종 발명 아이디어와의 연계지도는 과학 교과 내용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 도구로서 적어도 나에게는 친구였다. ‘발명’은 ‘과학의 생활화’뿐 아니라 ‘생활의 과학화’까지 동시에 일궈낼 수 있는, 소위 마법 상자와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 2015.11.28.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중학교 발명재능기부 장면 ]

일찍이 어려서부터 라디오, 자전거 등 조립에 관심이 많았고, 고교시절 내내 과학반 생활을 하고, 대학 전공으로 물리를 택한 것들 모두가 ‘발명’과 인연 맺어질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재직교마다 발명반을 조직해 운영했고, 발명반 운영 관련 도움 자료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스스로 발명교육 컨텐츠를 만들어 사용해야 했으며, 그 실적이 전국발명전 개인 입상이나 학교 단체 표창 등으로 이어질 때는 남다른 보람이 되곤 했다.
발명교실을 마친 아내와 발명품대회에 입상한 적이 있는 아들과 딸, 그리고 본인의 발명 교육 이행 경험 등으로 ‘가족 발명 이야기’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여러 사람과 공유했던 일 도 생각나고, 특허청 담당자로부터 전국민 발명사상 앙양에 매우 좋은 홈페이지란 칭찬도 받았다.
‘발명’은 ‘새 생각’이라 늘 강조하면서 재직교마다 ‘새 생각’이라는 월간지를 제작, 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발명기초 마인드를 제고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살아가 야 할 오늘의 학생들에게 ‘새 생각’의 창의발명은 꼭 필요한 것이며,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리더나 CEO로서의 소양이 될 것이라 힘주어 주장해 왔다. 전국 발명전에 출품하기까지의 6개월 여 짧은 기간에 참가 학생의 발표력 신장에 놀라고, ‘새 생각’을 전개하는 출중한 창의력에는 더 놀라기 일쑤였다.
실생활에서의 작은 불편에 착안해서 이를 수정, 보완, 개선,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 정이 작은 발명가로서의 자취로 남게 되고, 머릿속에서 ‘새 생각’의 틀로 고정되면 머지않아 창의발명의 이념으로 뭉쳐진 미래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크 다. 본인에게는 너무 과분한 ‘대한민국발명교육대상’ 수상도 바로 이런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요즘에는 세상 살면 서 이제야 철이 들어가는지 나눔에 대한 ‘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수상의 기쁨을 승화시 키는 한 방법으로 발명 재능 나눔 활동을 펼쳐나가자는 제안을 했다. 지난 2년 동안 안좌중, 넙도초, 포항제철중 등에서 현지 학생을 대상으로 발명 재능 나눔 활동을 전개하면서 스스 로 맛보았던 뿌듯함과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은 제4차 산 업혁명이 우리 생활 속에 정착된다 해도 이 ‘새 생각-발명’은 분명 우리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의 창의적 영역인 만큼 범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지난날 교육현장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위 두 친구가 나름 굳은 의지로 똘 똘 뭉쳐 그 힘을 나타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더 겸손하고, 청렴 한 자세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주도하는 퇴직자를 위한 여러 봉사와 나눔 프로젝트에 참가하 면서 살아가기를 스스로 다져 본다. 더불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나의 발명품 하나 갖기’와, 또 다른 하나로 발명교육 일선에서 경험한 내용에 ‘새 생각’ 을 더한 ‘발명도서 1권 이 세상에 내놓기’를 반드시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약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