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육2020 겨울호(241호)

프랑스 중학교의 행복 교육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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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사)

서구의 전통 강국으로서 EU를 이끄는 주요 축인 프랑스는 확고한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독특한 교육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그간 우리 교육계와 언론에서는 바칼로레아1와 같은 프랑스의 대입 제도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프랑스 학교교육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어진 바가 없다. 이는 한 사회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실행되는 실제 교육과정에 대한 접근은 텍스트가 아닌 경험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수학교사로 프랑스 한국교육원에 파견되어 2017년부터 3년간 현지 L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기초로 프랑스 중학교 교육의 실제 모습을 기술하고자 한다.

학교생활과 방학

L중학교는 베르사이유 교육청 소속 공립학교로 파리 근교의 꾸흐브부아 시에 자리 잡고 있다. 전교생 수는 4개 학년(프랑스의 중학교는 4년제이다) 약 650명이며 한 반의 인원은 25명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50여 명의 교사 외에 20여 명의 청소, 시설관리, 식당, 행정직원 등이 근무한다.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학교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며 일년에 1~2회 테러나 화재 대피훈련이 이루어진다. 학생들도 정문에서 카흐네(carnet)라고 불리는 수첩을 생활지도교사들(CPE)2에게 검사받고 수업이 있거나 끝났음이 확인되어야 학교 출입이 가능하다. 카흐네에는 개인 수업시간표, 지각과 조퇴, 상담 및 처벌, 교사-학부모 사이의 통신 등을 기록하는 난이 있으며 학생들은 항상 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같은 반에 편성된 학생들은 거의 같은 수업을 듣게 되지만 학생의 선택에 따라 수업이 더 적거나 많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개인별로 등·하교 시간도 달라진다. 공강 시간에는 도서실이나자습실에 가며 공강 시간이 길면 집에 갔다 오기도 한다.

<카흐네는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중요한 소통 통로이다.
학부모는 카흐네로 자녀의 생활태도, 수업태도 등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의 초등학교는 수요일에 수업이 없는 주 4일 수업이며 중학교는 수요일 오전 수업만 있는 주 4.5일 수업이다. 조회, 종례는 없으며 2주에 한 번 1시간 학급회의(vie de classe)가 있다. 1교시는 8시에 시작되며 보통 하루 수업은 6~7교시로 이루어진다. 각 교시 수업시간은 55분이고 쉬는 시간은 학생들의 피로도와 집중력을 고려하여 5분과 15분으로 번갈아 주어진다.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은 5분이고 그 다음 2교시와 3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은 15분인 식이다. 교과교실제로 학생들은 쉬는 시간 동안 다음 수업교실로 이동해야 하며 교사가 입실을 허락하기 전에는 교실 문 앞에서 줄을 서서 대기한다. 점심시간은 1시간 25분으로 길다.

학생별로 급식카드로 결제하는데 식비는 경제적 형편에 따라 한 끼당 2~5유로 범위에서 다르게 책정되며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오는 경우도 많다. 클럽활동은 별도의 수업시간으로 확보되지 않으며 주로 점심시간에 이루어진다.

프랑스는 3학기제로 방학이 거의 4달에 이른다. 1980년대 중반 교육자들과 의사들의 의견에 따라 7주 수업, 2주 방학을 하는 7-2패턴이 도입되었다. 9월 1일 새 학년이 시작되면 7주 수업 후 10월 중순 가을방학을 시작으로, 12월 크리스마스 방학, 2월 겨울방학, 4월 봄방학 등의 2주 방학이 계속 이어지며, 7월 첫 주에 시작되어 8월 말에 끝나는 2달간의 여름방학으로 학년이 마무리된다. 이렇듯 긴 방학으로 인해 학생들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길 수밖에 없는데, 프랑스의 법정 근로시간은 35시간이며 4주간의 유급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서 여름방학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거나 시골 별장에서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유로운 프랑스의 근로조건도 긴 방학기간에는 못 미치기 때문에 부모가 휴가를 내지 못하는 방학에는 학생들이 시골 친척집에 가거나, 시청에서 준비하는 프로그램 활동이나 캠프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2주 방학 동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을 돌아보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수업과 평가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주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지만 수업과 평가의 과정은 매우 다르며 전적으로 교사 개인의 자질과 노력에 의존한다. 우선 수업은 대부분 교사가 만든 자료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책상 위에 교과서가 펼쳐져 있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교과서는 참고자료나 보조자료 정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다음 수업 내용을 미리 예습하거나, 결석으로 빠진 수업 내용을 교과서로 혼자 공부해서 보충하는 것 이 사실상 어렵다. 학생들은 교사가 배부한 자료를 노트에 오려 붙이고 교사와 문답을 하면서 관련 내용과 개념을 함께 정리하고 문제를 푸는 등의 활동을 하는데 필기체로 매우 정성스럽게 필기를 한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떠드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학년말의 학습 결과물인 노트는 학생 자신이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으로서 책과 같다. 이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수업은 교과서 내용의 이해 및 습득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평가도 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과서 중심의 교육과정은 일정 정도의 균일한 수업의 질을 확보함으로써 교사의 자질이나 평가와 관련된 논란은 피할 수 있으나 수업의 다양성은 제한된다.

교사가 수업 내용과 수준, 평가의 시기 및 방법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동일 학년의 동일 교과 교사들 사이에서도 수업 내용, 진도, 평가 등이 모두 제각각이나 수업에 대한 불만이나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제기되지 않는다. 중간, 기말고사 기간이 따로 없는 대신 매 학기말에 1~2주에 걸쳐 반별로 학급위원회(le conseil de classe)가 열린다. 학급위원회는 교장이나 교감, 학부모 대표 2인, 반 학생 대표 2인, 각 교과 교사들, CPE 등이 참석하며 회의는 교장이나 교감이 주재한다. 회의는 학생 한 명씩 교과 성적과 세부평가를 대형 화면에 띄워 놓고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필요한 조언과 총평을 도출하게 된다. 이는 시험점수에 따른 줄 세우기가 아니라 한 학기의 결과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학생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졸업증에 해당하는 DNB(Le Dipl me National du Brevet)를 국가에서 관리한다. 중학교 과정이 끝나는 3학년 말에 졸업 자격고사인 DNB시험이 모든 중학교에서 일제히 시행되는데, 그 형태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고사인 바칼로레아와 유사하다. 졸업을 위해서는 800점 만점에 400점 이상을 얻어야 하며, 400점은 3학년 학급위원회에서 평가하고 400점은 DNB시험에 배당된다. 시험은 첫날 프랑스어(100점, 3시간), 수학(100점, 2시간), 둘째 날 과학(50점, 1시간), 지리-역사(50점, 2시간), 구술(100점, 15분 또는 25분)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모든 문항은 서술형이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행복 지향 교육

우리의 교육이 목표 지향적으로 현재를 미래에 대한 투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면 프랑스의 교육은 현재 삶의 질을 높이려는 행복 지향적인 특징이 있다. 물론 이는 필자 개인의 견해일 뿐이지만, 이와 관련된 경험을 소개한다. 하루는 L중학교 교사들이 동료 체육 교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휴게실로 모였는데, 생일선물은 시를 좋아하는 그 교사를 위해 각자 자작시를 준비하여 낭송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시에 감탄하기도 하고 웃으며 박수 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고등학교 이후로 시를 읽어본 적도 관심도 없었던 필자의 소양 부족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실 학창시절 필자는 시를 즐기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억지로 시를 외워야 했던 좋지 않은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때 처음으로 시가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경제적 측면에서 소득수준의 구분에 따른 중산층의 개념이 통용되지만 프랑스에서 중산층의 개념은 삶의 질이란 관점에서 접근된다. 프랑스 19대 대통령 퐁피두(Georges-Jean-Raymond Pompidou,1911~1974)는 중산층의 기준으로 외국어, 악기, 스포츠 하나씩은 할 수 있고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제시하였다.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여가 시간을 위한 취미와 교양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복하고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중산층을 지향하는 교육은 프랑스 문화에 내재한 가치 체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가치체계는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생각과 행동을 암묵적으로 지배한다.

중학교 1학년인 정수(가명)는 홀로 프랑스로 유학와 외삼촌 집에서 L중학교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데, 불어를 거의 못 해서 대부분의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문제로 열린 학교 회의에서 정수의 시간표는 ‘정수만의 시간표’로 전면 재조정되었다. 음악, 미술, 체육 등 불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과목들과 교사의 불어 설명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정수가 좋아하는 수학과 기술 등은 남기되 다른 교과 수업은 불어 개인수업, 프랑스 역사 개인 수업, 정수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기 위한 생활지도 보조교사의 개인 회화수업 등으로 대체되었으며 남는 두세 시간은 자습을 하도록 결정하였다. 한 달여 후, 정수를 위해 프랑스 역사 수업을 자원하여 지도하던 한국어 교사 K는 자습으로 정수의 시간이 허비된다고 안타까워했고 필자와 상의 끝에 불어 시간을 더 늘려 주도록 학교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어 교사는 정수가 불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 잘 적응하게 될 터인데 억지로 과하게 공부를 시키면 불행해진다고 반대하였고 결국 자습 시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중3 때 정수의 수학노트>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녔던 K와 필자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당시 사회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수에게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적응해서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한 고통과 노력은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교사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의 고려 목록에는 현재의 어린 정수, 삶, 행복 등이 올라가 있었고 노력, 성공, 부모, 책임 등의 단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정수 부모가 하나뿐인 아들을 머나먼 타국에 떠나 보낸 것은 정수가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필자는 정수 한 사람을 위해 수업시간을 따로 마련해 주는 학교의 세심한 배려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프랑스 교육제도의 유연성에 놀랐고, 겨우 중1인 정수에게 ‘해야만 한다’는 의식과 책임감을 강요하던 필자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한 번 더 놀랐다. 프랑스 교사의 말대로 정수는 잘 적응하여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정수는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목표 너머의 삶

우리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의사, 공무원,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과 같은 특정한 직업으로 답한다. 이에 비해 필자가 만난 프랑스 학생들의 답변은 대부분 ‘이러이러한 공부나 경험을 더 해 본 뒤 나중에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보겠다.’였다. 우리 학생들에게 직업은 성취해야 할 목표이지만 프랑스 학생들에게는 경험해보고 선택해야 할 대상이었다. 프랑스 중학교 3학년은 스타쥬(stage)라고 하는, 일주일 기간의 인턴쉽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 과정의 목표는 다양한 직업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직업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관련 기술과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 실습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해당 직업의 종사자가 하는 일을 곁에서 관찰하는데 실습을 마치면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평가를 받는다. 실습 장소는 동네 세탁소, 빵집에서 병원, 대사관, 항공회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여, 학생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을 무척 재미있어 했다. 스타쥬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바로 찾는 일은 드물겠지만 직업은 삶의 도구이자 일부일 뿐, 삶 자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분명했다.

프랑스의 행복 지향적 가치 체계는 학습 과정에서 반복 연습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 학력 부족의 문제를 야기한다. 국가 간 기초 학업 성취도를 비교 평가하는 TIMSS나 PISA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프랑스는 대부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턱없이 적은 수업 일수뿐만 아니라 기초 계산을 위한 구구단의 암기와 같은 학습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프랑스는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세계 최상위권이며 수학 분야의 노벨상인 필드 메달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받을 정도로 수학, 과학이 발달된 나라이다. 결국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일반 교육과 경쟁이 매우 치열한, 그랑제꼴로 상징되는 소수 엘리트 교육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프랑스 교육제도가 문제없이 잘 작동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탐색과 선택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고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빈약한 물질적 기반 속에서도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교육은 여가활동이나 삶의 질이라는 측면을 고려하기보다는 공정한 사회화 경쟁의 도구로 기능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재선택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였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점점 형식화되어 온 우리 교육제도의 경직성이 목표 지향적 가치 체계와 결합되어, 직업의 순위를 매기고 높은 순위의 직업을 목표로 삼게 함으로써 직업 성취 이후의 삶에 대해 학생 스스로 생각해 볼 여지를 없애고 종내에는 삶의 질 하락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앞으로 AI와 로봇의 인간 노동력 대체, 일자리 나눔 등으로 인해 여가시간은 계속 늘어갈 것이므로 교육이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교육계가 기존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시기가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프랑스의 행복 교육은 목표 추구에 편향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1. 프랑스의 논술형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매년 철학 과목의 시험문제는 시험이 종료 된 뒤 각 언론 매체나 사회단체들이 유명인사와 일반 시민을 모아 각종 토론회를 열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가 됨.
  2. 프랑스 학교에서 행정업무는 모두 교장, 교감이 전담하고 교사는 수업 이외의 별도 업무가 없다. 교사는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보통 수업 전에 나와 수업을 마치면 바로 퇴근하기 때문에 교무실이나 정해진 자리가 없고 교무부, 연구부 등과 같은 부서조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우리의 생활지도부에 해당하는 부서가 있는데 여기에 생활지도부장 격인 CPE(le conseillerprincipal d’ ducation)와 그 아래 surveillant이라고 하는 생활지도 보조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정규 수업은 하지 않고 생활지도, 상담, 자습 지도 등을 전담한다. 본고에서 사용된 ‘생활지도교사들’은 CPE와 surveillant을 함께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