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3] 교사를 위한 인문학
–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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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상철 / 경희여자고등학교 수석교사

  2015년 가을,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에서 뽑은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문구가 광화문에 있는 한 보험회사의 건물 외벽에 걸렸다. 사회와 자연을 이해하고 다른 이와 더불어 살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적인 덕목을 매우 간결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질문하는 능력’의 중요성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g_01_1_06
g_01_1_12어린아이들을 생각해보자.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부모의 답변에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학자들은 실제로 2-5세 사이에 어린아이들이 약 4만 개의 질문을 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내 아이들이 했던 질문들이다. 던지는 대부분의 질문은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래?”
“이것은 왜 이 자리에 있어?”
“왜 밥을 먹어야 해?”
“머리카락은 왜 까매?”
“아빠는 왜 아빠야?”

왜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할까? 어린아이들에게는 모든 세상이 낯설기 때문이다. 어른도 어린 아이들처럼 낯선 상황에 직면하면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경이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경이감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며 질문하게 만든다. 경이감에서 출발한 지적 호기심은 질문의 형태로 드러나고, 질문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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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공자의 호학(好學)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배움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호기심과 질문이 작동해야 한다. 호기심이 없는데 배움이 성립할 수 없다. 호기심은 배울 내용을 결정하고, 호기심이 질문으로 표현되지 못하면 가르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자가 지적 호기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배움의 대상, 목적, 이유 등에 관한 호기심이 없고, 질문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배움의 즐거움은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 배움은 무의미하고 귀찮은 일이거나 심지어 괴로운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질문이 있는 교실’을 통해 교육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배움의 즐거움이 없는 교실 현장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질문’의 문자적 의미는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한 물음’이다. 여기에서 ‘질문이 없는 교실’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알고자 하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에 의한 선행학습은 교실에서 호기심과 질문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미 배운 것을 또 가르치고 있으니 학생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겠는가? 그리고 ‘질문’의 의미에서 ‘질문이 있는 교실’이 추구하는 목표도 드러난다.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자하는 의지를 갖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질문이 있는 교실이 추구하는 방향에는 문제의 답을 아는 것보다 세계에 대한 질문 을 갖게 되는 것이 교육에서 더 중요하다고 보는 문제의식도 담겨있다. 이러한 점에서 예일대 교수를 역임한 윌리엄 데레시비츠(William Deresiewicz)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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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호기심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호기심은 개인의 지적 발달과 학문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잘못된 호기심은 개인을 망치기도 하고 심지어 사회를 뒤흔들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이감에서 출발한 지적 호기심과 믿음의 부족 또는 단순한 욕구에 의한 호기심을 구분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철학을 하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경이감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선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점점 놀라움의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래서 달과 태양의 변화에 대해 묻게 되고, 결국엔 만물의 근원에 대해서까지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2)고 주장하면서 경이감에서 시작된 지적 호기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그리스 신화에는 호기심으로 인한 비극의 예가 여럿 나온다. 프쉬케와 에로스의 사랑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남편(에로스)에 대한 프쉬케의 호기심과 그녀를 질투한 언니들이 심어준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프쉬케와 에로스 사이의 사랑은 파멸에 이른다. 이것은 잘못된 호기심과 잘못된 의심으로 인해 나타난 한 개인의 파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와 달리 성경의 아담과 하와(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온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이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이며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의 아내이다.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새로운 주거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단지에 넣어 두었다. 판도라는 단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도라는 도저히 궁금증을 삭이지 못하고 뚜껑을 열고 단지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단지 안에서, 인간에게는 몹쓸 것들인 무수한 재액(災厄), 곧 육체적인 것으로는 통풍(痛風), 신경통 같은 것, 정신적으로는 질투, 원한, 복수심 같은 것들이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g_01_1_16  현대 사회에도 판도라와 같이 잘못된 호기심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정보화 기기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이를 잘못 활용하여 일으킨 문제이다. 배우나 가수 등 유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전화번호, 얼굴 사진 등 개인정보를 찾아내 유포하거나 그들의 사생활을 본인의 허락도 없이 폭로하는 이른바 ‘신상털기’가 바로 그것이다. ‘신상털기’는 잘못된 호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 심지어 화장실 이용자를 훔쳐보는 ‘몰래 카메라’ 역시 잘못된 호기심의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이 바람직한 호기심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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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호기심과 그에 관한 질문이다. 인문학을 소개하는 어떤 책이든 펼쳐서 목차를 살펴보라. 거의 대부분 질문의 형태로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 인문학의 핵심이 ‘성찰(省察)’이고, 성찰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에 관해 따져 보는 반성적·비판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질문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과 관련된 주제 역시 질문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삶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지만,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불안에 떨지 말자. 물음표 안에 머물러 있는 것에 초조해하지 말자.
인문학 자체가 인간의 삶과 행위에 관한 끊임없는 성찰이라는 점에서 질문을 계속 달고 사는 삶이 인문학적 삶이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실천적이든 사변적이든 나의 이성의 모든 관심은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모아진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이에 답하려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1.  워런 버거(2014).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21세기북스
  2.  미하엘 비트쉬어(2003). 철학 오디세이. 현실과 과학
  3.  토마스 벌핀치(2000).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