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2018 가을호 (232호)

급변하는 교육 환경과 서울 교육의 방향

장덕호 상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1. 들어가면서

공교육의 위기적 징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에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가운데, 급속히 교육력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이 과연 얼마나 그 본래적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교육의 각 단계에서 확보해야 할 형평성의 가치 실현-즉 기회, 여건, 결과 측면에서 우리는 얼마나 교육의 평등을 실현하고 있는가? 또한 개인주의화가 가속되는 사회 속에서 공교육은 과연 얼마나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사회의 통합을 이끌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증유의 기술 변화 속에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역량을 얼마나 충분히 계발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쉽게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공교육의 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는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을 국정과제 전략으로 삼고 교육의 공공성 강화,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 교육의 희망 사다리 복원, 미래 교육환경 조성 및 안전한 학교 구현을 실천과제로 제시하여 추진하고 있다. 책임교육의 실현을 위한 국가적 과제가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이러한 책임교육과 유사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 공교육의 책무성(accountability) 확보 정책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정량적 성과를 도모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선택과 경쟁, 효율적 가치에만 몰두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추진한 표준기반개혁(Standard-Based Reform)의 설계자이자 대표적 책무성 확보론자였으며, 후에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다이안 래비치(Diane Ravitch) 교수가 자신의 책무성과 선택 중심의 정책 조언과 판단이 잘못된 것임을 참회한 바 있다(Ravitch, 2010). 그녀는 강력한 책무성 요구 위주의 정책은 교육자들을 ‘교육의 목적’이나 ‘학습’과는 무관한 ‘점수’를 올리는 일에 몰두시킴으로써 학교교육의 이상과 목적을 왜곡시켰고, 그 달성 방법 역시 각종 눈가림과 속임수 동원, 교육과정 축소 등의 병리적 현상을 유발하였다고 스스로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새롭게 추진되는 책임교육 실현을 위한 국정과제들은 냉혹한 현실 정책환경 속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교육환경을 잘 살펴서 적합한 대안을 만들고 이를 효과적으로 잘 펼칠 때 우리는 책임교육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최근의 교육환경 변인들의 동향을 살펴보고, 서울교육의 방향과 과제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기의 본격화, 인구 구조의 변화, 사회경제적 양극화, 행복에의 갈구 등과 같은 근본적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대응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변화하는 교육 환경과 그 위기적 징후들

첫째,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교육격차의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10년 사이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 수준이 학업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OECD의 PISA(2015)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따른 점수 차이는 2006년 31점에서 2015년 44점으로 13점이나 높아졌다. 부모의 학력 및 소득 수준이 높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 성적 차이가 9년 전보다 더 벌어졌다. 부모의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은 10.1%로, 2006년 7.0%보다 3.1% 포인트 증가하였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이 1.4% 감소하고, 계층간 격차가 큰 미국이 같은 기간 17.4%에서 11.4%로 6.0% 포인트 감소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또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의 비율 역시 감소하였다. OECD는 사회, 경제적, 문화적 배경 수준이 하위 25%에 속하는 학생 가운데 상위 25%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은 경우를 ‘회복력이 있는 학생’으로 규정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이 많은 회원국을 ‘교육 형평성’이 높은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회복력이 있는 학생이 지난 2006년 43.6%에서 2015년 40.4%로 3.2% 감소하였는데,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27.7%에서 29.2%로 1.5% 포인트 증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일본은 2006년 40.5%에서 2015년 48.8%로 8.3% 포인트 증가해 회복력이 있는 학생의 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였다(김경아, 2017).

둘째,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교육과 학습의 장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8 청소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9~24세)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벌써 10년째 1위이다. 2016년 기준으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청소년이 인구 10만명 당 3.8명인 반면 자살한 청소년은 7.8명이나 된다. 성적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과 싸우는 청소년이 4명 중 1명이고,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성적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2017년 한국 학생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선생님들도 학교에서는 행복하지 않다. OECD TALIS 조사에서 ‘내가 만약 다시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교직을 선택할 것이다.’에 동의하는 교사의 비율은 60%를 상회하였는데 이는 조사 국가들 중에서 끝에서 세 번째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질문에 대한 동의 정도는 1위였고(다섯 명 중의 한 명의 교사가 후회한다고 밝혔다.), 학교생활을 즐기는 교사의 비율은 꼴찌였으며, 자신이 재직하는 학교를 근무하기 좋은 곳으로 추천하는 교사의 비율은 꼴찌에서 바로 앞이었다(우리와 저출산 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이 꼴찌이다.). 이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교사의 직업만족도는 꼴찌였다(Byun, 2018).1)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교육이 입시만을 지향하는 지식의 도구화가 심화되면서 학습 과정이 탈맥락화(decontextualized) 되어, 학습 본질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이를 뒷받침할 비판적 사고의 발현을 돕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학습의 목표 자체가 입시와 취직 이후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것 이상의 건강한 사회적 가치 혹은 상상력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은 학습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으로부터 소외된 채 불만과 긴장,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한 관계 형성과 소통의 기회를 잃고 있었다(김도훈, 장덕호, 한경희, 2016). 르포작가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가 한국 교육을 ‘압력밥솥 속에서 아동들이 철인 경기를 펼치는 형국’으로 묘사한 그대로이다(아만다 리플리, 2013).

셋째,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 인구의 감소와 다문화 사회 진입에 따른 그 구성의 변화이다. 올해 서울 시내 고교생 수는 259,977명으로 베이비붐 세대 자녀인 ‘에코세대’가 고교에 입학한 2009년(36만 7천여 명)보다 약 30% 감소하였다. 서울시내 고교 학급은 2009년 1만 577개에서 올해 9천 687개로 8.4% 줄었고, 2022년이 되면 서울 고교생 수가 21만 5천 300여 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연합뉴스, 2018.7.26.일자). 한편 학생 인구 구성의 변화도 급격하다. 2017년 우리나라 전체 다문화 학생의 수는 109,387명으로 전체 학생 중 1.9%를 차지하고 있다. 2%가 채 되지 않는 비율이지만 이들이 매년 보이는 상승세는 가히 위력적이다. 2012년 46,954명이었던 다문화 학생 수는 매년 10% 대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017년에는 5년 전에 비하여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앞으로도 다문화 학
생의 수와 비중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며 이에 따른 교육과정상의 변화와 현장에서의 문화 갈등 역시 주요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인한 기술적 변화의 충격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급격한 정보과학기술 변화에 대한 효과적 대처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 능력의 설정(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16가지 핵심역량들이 바로 그 예이다.)과 함께 교육 내용 및 방법의 혁신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급격히 확산되는 학교교육의 디지털화가 가져올 폐해를 걱정한다. 즉 신기술들이 간편함과 효용성을 제공하지만 교육내용과 운영 시스템 자체를 기술과 그 시장에 점점 더 의존케 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으며, 직접 경험이 최소화된 학습활동이 증가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전인적 상호작용도 제한되는 단점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정영근, 2015). 그동안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거나 방치해 놓고 새롭거나 좋아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무작정 따라하고 무리하게 적용해온 탓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교육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닐 것이고 기술을 통한, 기술을 위한 새로운 교육이 또다시 ‘문제를 가리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경고한다(모홍철, 2017). 따라서 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어떻게 키우고, 기술이 가져다 줄 폐해를 동시에 어떻게 줄이고 예방할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이다.

 

3. 책임교육의 방향

이상의 4가지 정책환경 변동요인들 하나하나가 교육정책의 큰 숙제로 남겨져 있다. 어느 한두 가지 교육적 차원의 대증 처방으로는 거의 해결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교육의 장에서 학생 간 격차 확대와 행복감 소실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교육적 가치의 약화에서 비롯되고 있고, 학령인구 변화는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인구구조는 운명(Demography is destiny.)”이라고 설파할 정도로 기성세대가 생각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희망을 걸어보고자 한다. 다만 기존의 관습과 관행을 버리고 무엇보다 교육을 교육답게 만드는 노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임교육의 역할과 참여 주체의 확대이다. 오늘날 우리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모순은 대단히 복합적이지만 교육 그 자체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학교가 경쟁의 공간이되고 학교로 인해 경제적,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면 이를 하루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2022학년도 이후 대입제도를 정하는 작금의 과정을 보면 얼마나 우리 교육체제의 모순과 병폐가 깊은지를 알 수 있다. 학벌사회, 대학 서열화, 사교육비, 지역간 불균형, 학교 간 격차, 교원의 전문성 약화와 사기 저하 등 어느 한두 개를 여기저기 땜질식으로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최근 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 학생의 관점도 변화하고 있다. 경쟁교육과 도구화 교육의 모순과 폐해를 직접 겪은 학부모들이기에 자녀가 좋은 대학 가서 출세하기보다는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그저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책임교육의 범위가 훨씬 넓어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상당수 학부모와 공동체 구성원들은이 모든 문제가 학교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는 책임교육의 역할과 참여 주체의 재설정을 통해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책임교육은 과거처럼 관료적으로 부과된 책임의 단순한 이행 여부를 가리는 책무성 확보장치들 (학업성취 향상 일변도의 평가, 관료적 책임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는 각종 교원평가, 각종 지수를 동원한 학교평가 등)의 과잉생산을 초래해서는 결코 안된다. 하나의 미덕 (virtue)으로서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뢰가 있고 책임 있는 행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교육에서 어쨌든 책임교육을 이끌 최종적 주체는 교육감임이 분명하다. 선거를 통해 공약을 하고 4년의 임기를 보장받은 만큼 책임있는 자세로 지역 교육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감 역시 중앙 정부, 지역 주민, 지방 의회 등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책무성 확보 장치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교육은 공동의 사회적 노력의 과정이다. 책임교육의 실현을 위해서는 교육감을 중심으로 하되 교육에 관계하는 많은 주체들이 참여하는 책임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요즈음 주목하는 협치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책임교육의 짐을 행정관료나 교사 집단 등 어느 일방에게 지울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눠 갖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육의 책임을 공동체가 함께 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구성원 모두의 상호책임과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협력’을 강조하자는 것이다(정영수 외, 2013). 교육감의 도덕성, 헌신, 역량 발휘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 참여와 협력의 문화가 형성될 때 책임교육의 성과가 더 확실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본청, 교육지원청, 단위학교 차원에서 각 주체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협치 기구 내지 교육혁신 파트너십 기구도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책임교육의 열매가 결국 학교에서 맺어져야 한다면 그 시작은 교사들을 신명나게 가르칠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행 행정수권형 교육과정 수권 체계를 교사 중심, 교실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현재 일반 교실 수업을 보면 중앙정부-교육감-학교장 등 위계적 행정구조 속 최일선 작업 계층 (front-line worker)의 일원인 교사가 국가교육과정이 규정한 ‘진도’를 실행하는 수업과 이를 확인하기 위한 규격화, 표준화된 평가를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교사는 정해진 진도만 나가면 된다. 4차 산업혁명기의 아이들의 미래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창의성 유발에 필요한 개별화된 맞춤형 수업이 중요하다. 또한 그러한 방향이 교실 속에서 책임교육을 구현해야 하는 교사들의 행위와 역할과도 부합한다. 이제는 여건도 학급당 학생 수 감소로 어느 정도 갖추어지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교육과정 법제로 인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체계와 그 지침들을 현실적으로 바꾸기가 어렵다면 교육청 차원에서라도 교육과정 체계가 집행되는 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교사들로 하여금 모든 아이들이 날마다 성장하도록 자극하여야 한다. 물론 자율성에 기반한 긍정적 자극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시행하는 것처럼 교사에게 국가가 교육과정 문서를 직접 교부하고 그 교육과정 문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습자료와 방법들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015 개정교육과정, 고교학점제, 자유학기제는 모두 교사에게 수업에 관한 온전한 권한을 돌려줄 때 보다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책임교육의 중요한 주체인 교사들을 이제 교사답게 대우해 주어야 한다. 교사들은 전문직이고, 전문직은 고객과의 만남 속에서 보람과 긍지를 직업적 소명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책임교육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함으로써 교육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이는 교사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사들을 대하는 법령과 제도, 정책과 보상체계는 긍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협소한 책무성 확보를 위해 도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관료적 관점에서 책임의 이행만을 강조하다 보니 전문직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와 도덕에 기초한 옳은 일을 하기(doing the right thing)는 쉽지 않다. 수업보다는 공문서 처리 등 행정 업무에 골몰하고, 승진과 평가를 위한 점수 따기 경쟁에 몰두하며, 마치 작업 현장 프로젝트 매니저처럼 교육을 사업처럼 관리하면서도 수업 연구할 시간에 행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이를 실증한다.

일단 학교가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방교육으로의 권한 확대는 교육청의 권한보다는 학교의 권한, 특히 수업 교사의 권한이 커지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많은 교단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아끼고 다듬어 가는 가운데 모든 아이들이 학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이를 위해 승진 중심의 인사평가체계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승진보다는 아이들과의 수업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관료적 권위보다는 전문적 헌신이 모든 교육 주체들에게 인정받고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을 수 있는 인사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르치는 보람과 자부심을 추구하는 교사들이 존경받고 우대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넷째,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교육복지의 실천이다. 교육복지의 문제는 비단 교육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고용, 연금, 주택 등 사회 전반의 제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제시되는 교육복지 시책들의 성과가 제약받는 것은 바로 ‘교육 따로, 복지 따로’라는 인식과 관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적으로 복지 프로그램이 실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제도화의 실패만 반복하는 가운데 교육복지는 여러 하위 관련 시책들로 인해 구분되고 나눠졌다. 마치 돌봐야 할 아이는 단일의 인격체로 존재하는데 이 아이를 돕겠다고 나서는 프로그
램과 정책은 중앙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학교 안에서 사분오열된 형국이다. 이제 말의 성찬을 거두고 오직 아이들의 복지를 중심에 놓고 그 해법을 담은 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복지의 본질은 돌봄(care)에 있다. 즉 어떤 영역보다도 사람이 핵심인 사안인 것이다. 문제는 돌보는 사람이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좋은 처우와 안정된 업무여건이 조성되었느냐, 지속적으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슈퍼비전(supervision)을 제공받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교육현장에는 이렇게 힘든 과업을 수행하면서도 신분과 처우는 안정되지 못한 분들이 많다. 학교폭력, 위기학생의 문제도 일차적으로는 교육현장의 상담교사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이 어렵고 힘든 학생들을 만나는 공간에서 보람과 책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상담복지체계도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4. 나오면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The best way to make children good is to make them happy.)”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를 한가운데에 놓고 책임교육의 방향과 과제도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조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행복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의도하고, 희망하는 공간 속에서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앎이 주는 기쁨과 학습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희망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고, 심성이 아름답고 예의가 바른 인재로 자라나기 위한 시민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행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부모의 인식을 바로잡고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 공동체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정-학교-마을 품의 상호 연계를 통해 교육-돌봄-복지의 통합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서울형 3품 교육공동체’ 프로젝트는 희망적이다.

교육의 변화는 더디고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과 인내를 요구하는 과업이다. 법령과 제도와 같은 시스템의 개혁도 필요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 전문성의 발휘가 필요하며, 바람직한 문화도 만들어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 속에 의도하지 않은 일들도 생기고, 변화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밝혀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그럴 때마다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궤도의 수정과 함께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과업으로 옮겨 가려는 유혹에 내몰린다. 그러나 책임의 과업에 얼마나 교육적 가치를 불어넣고, 그러한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하며, 교육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 교육이 미래라고 한다면 미래를 만드는 과정도 우리가 그리는, 바로 그 미래다워야 할 것이다

 


1) TALIS 2013 Database, 조사 대상 국가는 미국, 멕시코,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말레이시아, 크로아티아, 캐나다(알버타주), 스페인,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일본, 이탈리아, 영국, 체코, 노르웨이, 이스라엘, 폴란드,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UAE, 라트비아, 칠레, 브라질,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포르투갈, 스웨덴, 한국 등 30개국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