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1 봄호 (242호)

꽃은 내 아이들이다

윤태정(서울염경초등학교, 교사)

전원주택에서 꽃을 가꾸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정이 여의치 않아 또다시 아파트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먼저 살던 곳은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화초를 기르기에 어려움이 많아서다. 멀쩡했던 화초가 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리비리한 모습으로 쓰러져 갔다. 그때, 그 아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궁색할 뿐이었다.

다행스럽게 전망이 좋아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사하기 전, 죽기 직전의 화초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컸다. 데려가 봐야 살아날 것 같지는 않고, 버려두고 가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이삿집센터 사람들은 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화분을 모두 가져갈 거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예쁘지도 않고 값어치가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뭣하러 가져가느냐는 속뜻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짐짓 모른 체하며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릴 수 있다는 심정으로 따가운 눈총까지 받으며 모두 데려오는데  일단 성공했다. 베란다의 중앙에 큰 화분은 뒤쪽으로, 작은 것은 앞으로 가지런히 놓아 화단을 만들었다. 올망졸망한 것들이 한데 어울려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크고 작은 돌멩이로 둘레까지 쳐주니 울타리처럼 근사한 모양이 되었다. 새로운 꽃을 사나르기 시작하면서도 시들시들한 화초에 더 많은 눈길을 주었다. 꽃이 점점 늘어나면서 화단에서 머무는 시간도 길어져만 갔다. 언제부터인지 아예 꽃을 가꾸는 일에 푹 빠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조금 지났을까? 축 늘어진 채 간신히 목숨만 연명하던 화초의 가지에 힘이 올라와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맑고 투명한 연녹색 순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켜는 듯 보였다. 꼬물거리며 이제야 눈을 떴어요, 라고 말하려는 모습을 보자 그만 코끝이 찡하였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손을 꼼지락거리는 작은 생명체라도 본 듯 경이로웠다.“드디어 새순이 났어, 이제 모두 살아난 거야. ”집 안이 떠나갈세라 소생의 기쁨을 전하느라 목소리는 마냥 들떴다. 버리고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오래도록 식구와 다름없이 함께 한 것들을 잠시나마 버릴 생각을 했으니 면목이 없었다. 데려온 것들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아났으니 그저 고맙고 대견할 뿐이었다.

내 아이들은 콘크리트 숲에서 살아왔지만 어려서부터 자연친화적인 감성을 가진 편이다. 모두가 늘 가까이했던 화초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란다에서 화초를 기를 때 노린재나 개미, 풍뎅이까지 찾아오곤 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손님 덕분에 곤충 놀이까지 하는 재미를 맛보며 자랐다. 그때는 낑낑거리며 옮겨야 하는 큰 나무를 주로 키웠었다. 요즘에는 손바닥에 올려 놓고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꽃에 더 정이 간다. 그래서 마음 끌리는 대로 하나 둘 사들여 온 것들이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고만고만한 키의 초록 이파리들이 앙증맞다. 꽃대에 맺힌 꽃망울들은 입을 달싹이며 옹알이하는 갓난아기처럼 사랑스럽다. 어린 것들이 나에게 살포시 안겨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어하는 눈치다. 외출해서도 이것들이 눈에 자꾸 밟힌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어라 할까?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눈을 마주치고 쓰다듬어 주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연한 이파리를 보듬고 여린 꽃잎을 쓰다듬다 보면 아이들 키울 때가 떠오른다.

가끔 목구멍 너머로 참을 수 없는 애잔함이 올라와 주책없이 울컥하기도 한다.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늘 부족한 사랑을 준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제야 온전한 사랑을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더니 오히려 넘치는 정성으로 길러주어 고맙다며 인사를 한다. 최선을 다하셨다는 말을 해주니 위안까지 받는다. 아이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커버렸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갈 아이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즐겁게 놀다 갈 이 자리. 언제라도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고 싶어 작은 의자도 놓아두었다. 혹시 떠나간 이 자리가 허전할까 봐 서둘러 꽃으로 가득 채워가는 건 아닌지. 오늘도 나는 햇살 가득한 화단에 앉아 아이 같은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해질녘까지 아이 같은 꽃들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토닥여준다. 이제부터 내 아이들은 꽃이요, 꽃은 내 아이들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