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Vol.227.여름호

담임, 새로운 발견

|최종우

1. 담임의 자리

장기 휴일이나 방학이 지나고 교실에 들어설 때면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들뜨고 설렌다. 때로 출결을 확인하고 공지사항만 전하고 교실 문을 나설 때면 나 자신이 마치 사무직 종사자처럼 여겨져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그런 날이 이어지면서 정서적으로 소진되기도 했다. 학생들과 합이 잘 맞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로서 더구나 담임으로서 나의 몫이 분명히 있음을 알고 그 역할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내가 담임에 임하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올해는 2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장기간 고3 담임으로 있다가 학년을 옮기니 각별한 다짐이 생기며,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골몰하며 계획을 정리했다. 올해 담임으로서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2. 체계적인 안내와 구체적인 활동 → 우리 반은 ~♪

담임으로서 반 아이들이 우리 반을 즐겁게 여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로와 진학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개인적인 고민들로 만만치 않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자기가 속한 학급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진심을 담은 호의적인 태도는 래포(rapport)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이다. 여기에서 그치지않고 담임으로서 갖고 있는 소망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아이들의 고민을 제대로 따뜻하게 짚어줘야 한다는 데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한 원리가 ‘체계적인 안내와 구체적인 활동’이다.

상당한 양(量)의 고등학교 학업을 잘 소화하며 진로를 탐색하고 진학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담임 역할의 지침으로 삼았다. 학생이 자기가 몸담은 학교와 학급에서 무엇을 언제 하고 그것을 왜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안다면, 학교생활을 더욱 알차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안내해주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더욱 함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활동’을 나란히 목표로 정했다. 학급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한다면’ 그 행하는 학생 본인은 물론 바라보는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을 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학생이 주인의식을 갖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누리는 것을 지향해 “우리 반은 ~♪”이라고 신나게 말했으면 좋겠다.

3. 요일별 조례, 학급 캘린더(Calendar), 진로진학 안내

‘체계적(systematic)’이라는 말에는 ‘예측가능성(predictable)’이 담겨 있다. 정해진 학습경험을 하고 규칙적인 시간표의 일정을 준수하는 학교에서 ‘이것을 이때 하고, 그것을 그때한다’라고 예측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요일별로 조례할 내용을 아래처럼 정했다.

월요일 – 주간 학교/학급 생활 안내
화요일 – 학생 담임
수요일 – 학급 TED
목요일 – 학생 담임
금요일 – 진로진학 안내

또한, 매일 학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학습을 독려하고 있다.

그 외에, 월(月)도 중요한 시간 단위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매달 마지막 주에 출결상황과 학교생활상벌점을 확인하고, 생일을 축하한다. 1인 1역으로 기간별 역할을 배정해 학생들이 담당하게 한다.

월요일은 학급 캘린더(Calendar)를 제공해 그 주간의 학사/학급 일정과 담임으로서 이번 주에 바라는 것을 알려준다. 월요일 조례는 ‘월요일’답게 분주한 경우가 많아 나부터도 새로운 한 주에 적응하느라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금요일에 미리 작성하고 복사를 해놓은 뒤, 나눠줄 채비까지 마쳐놓는다. 이렇게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월요일 조례 시간이 알차게 채워진다. 아이들은 월요일 첫 시간에 일주일의 학교/학급 생활을 안내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할 일에만 치중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한 반에서 만나 일 년이란 시간을 함께할 소중한 인연이란 것을 같이 느끼고 싶어서 그 주간에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 축하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를 한다.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축하 받는 것에 흡족해하고 있다.

한 주의 마무리는 ‘진로·진학정보 안내’로 맺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진로·진학 이슈를 하나 골라서 자세히 이야기한다.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에 진로·진학정보를 제공하면 아무래도 주말에 찬찬히 곱씹어보지 않을까 기대한다. 금요일에 제공한 자료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도록 저장하였고, 어느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를 신청 받아 진행할 계획이다.

4. 학생 일일 담임

말 그대로 학생이 담임교사가 되어보는 ‘일일 담임 체험’이다. 자원에 의한 참여라서 미리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 자원자가 없으면 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지원자가 없던 적은 없었다. 당일 담임 역할을 맡은 학생은 전날 종례 이후, 당일 조례 전 나에게 안내를 받는다. 나는 교실에 함께 들어가 조·종례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솔직히, 친구의 말을 더 잘 듣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한 질투를 느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리더십을 기르고, 학교생활을 폭넓게 체험하길 바라며, 이
런 활동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운영 원칙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 정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 실시하며, 내신 일주일 전과 모의고사 당일은 실시하지 않고 시험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배려 했다

학생 담임을 하기로 한 학생이 안 할 때도 있는데, “다음부턴 약속 지켜.” 정도로 약간의 훈계만 한다. 대신 친구들의 신청이 다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하는데, 워낙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벌칙이다.

5. 학급 TED

저명인사가 헤드셋 마이크를 쓰고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는 TED를 학급으로 끌어왔다. 매주 수요일 조례 시간에 5분 정도 자유 발표를 하는 것으로, 교과·진로·인성 등 어떤 주제든 좋다.

2주 정도 전에 지원자 중에서 발표자를 정한다. 나는 일주일에 네 번 발표자를 확인한다. 학생이 발표할 때 동영상을 촬영한다. 너무 길면 전송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분량은 1분 정도로 한다. 이 파일은 학생에게 보내고, 클라우드의 학생 폴더에 저장해 놓는다. 그러면 학생이 부탁할 때 언제든 줄 수 있고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때 참고할 수도 있다.

고맙게도 학생들이 진지하게 임해주어 지금까지 대단히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확증 편향 현상으로 살펴보는 정보 분별력의 중요성’, ‘배려와 협동’,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하는 삶의 가치’, ‘자기가 좋아하는 수학교과의 의의’, ‘수줍음에 망설이다 할아버지를 도와드리지 못한 일을 통한 교훈’을 발표했는데, 발표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6. 학습지 프로그램

담임으로서 학습 독려를 많이 해오고 있는데, 이번엔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학생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면서도 별로 힘들지 않은 활동을 고안하려 노력했다.

‘학습지 프로그램’이라는, 목적이 바로 보이는 정직한 명칭을 붙였다. 매일 번호순으로 한 명씩 담당자를 정해 그날 수업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을 자유롭게 적어서 붙이게 하는 것 이다. 나의 아이디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학습지 게시판을 만들게 했다. 보드판을 산 것도 아니고, 전지만 붙이면 된다.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과목 구분을 쓰고, 알아서 잘 만들어냈다. 포스트잇으로 그날 배운 것을 붙이는 아이디어도 학생이 제안한 것이다.

<학습지 프로그램>

나는 매일 조례에 그날의 학습지 담당학생을 알려주고 종례에 확인한다. 깜빡 잊었으면 너그럽게 받아주며 다음날에 하도록 한다. 사나흘 지나면 다 할 수 있으니 괜히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학습지 포스트잇>아이가 학습지 포스트잇을 붙여 놓으면, 나는 그것의 사진을 찍어서 학생에게 보내주고, 역시 클라우드의 학생별 폴더에 올린다. 이렇게 모아 놓은 자료는 일정기간마다 정리한다. 1인 1역에 학습지 관리 담당자를 월별로 지정하여 매달 마지막 주나 첫째 주에 그 학습지들을 모아 스캔해서 나눠주게 한다. 배부는 SNS로 하면 되니 간단하다. 나는 이것을 PDF 파일로 만들어서 보관하는데, 한 권의 소책자가 완성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또한, 면학 분위기 조성에도 좋다. 교사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매일 학습지를 함께 만드니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학습지 포스트잇>

학습지 사진을 보낼 때 한 장 빠트렸는데, 바로 연락이 온 적이 있는 걸 보면, 학생들은 내가 보내주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나의 성의를 이렇게 받아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7. 담임, 새로운 발견

업무에 쫓기지 않고 학생들을 잘 돌보고 싶은데, 그것이 쉽진 않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보완하는 방법들을 찾아서 실천해 보았다. 담임교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역할을 상당 부분 학생들과 나누었더니 학생들은 학교생활의 주도권을 이양받고 그 올바른 권리와 의무를 즐겁게 향유하는 것 같다.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오히려 담임교사로서 업무 부담이 많이 줄었다. 교과교육에서 주로 들었던 학습자 중심 학습이 학급 운영에도 이렇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만끽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과 끼를 발산할 무대를 마련해주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들이 자연스레 길러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위로와 안식이 되고, 더 나아가 앞으로 어른이 될 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세상을 보여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