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1 여름호 (243호)

도시 속 아이들과 함께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윤신원(성남고등학교, 교사)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어디에 사나요?” 또는 “너는 어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나는 서울 시민이기도 하지만 ○○동 주민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기도 하지만 남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더 넓게 생각을 확장하면, 나는 아시아인이고,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인이다. 나는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교사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시민으로서 부여받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일깨우고 싶은, 지리 교사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경험을 통해 애정을 키우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속한 사회에 애정이 있는 사람은 공동체나 지역사회가 처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나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때론 문제를 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 찾아보며, 함께 참여해 해결해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다면 애정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경험에서 싹튼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수많은 ‘경험’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싹트고, 이 싹이 배움으로 이어지고, 관계 맺음으로 성장하며 애정으로 자라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경험’의 장을 가능한 많이 열어주고자 노력했다. 교실에서의 배움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깨닫고, 무언가 ‘하고 싶다’고 꿈꾸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8년, 첫 담임을 맡은 해에 희망하는 아이들과 함께 평택과 김포로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듬해에는 학급 아이들 전체를 데리고 철원으로 체험활동을 다녀왔다. 당시에는 야외 체험활동이 권장되던 시절이 아니었고, 단체 수학여행, 수련회 외에 한 학급의 자율적인 체험이 허락되던 때도 아니어서, 여러 날 교장 선생님을 찾아뵙고 설득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 야외로 나간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하던지…. 힘들었다 하면서도 교실에서 각자의 경험담이 이어지는 걸 보고, 가능하다면 학습의 장을 교실 밖으로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한강은 우리의 생명수’를 모토로 기획한 한강-팔당호 체험활동, 두 학급씩 나누어 제주 올레길을 걸었던 수학여행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강원도 영월 동강에서 래프팅을 하고, 무주의 백두대간 아래 펼쳐진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던 추억은 너무나 선명해 잊을 수가 없다. 체험한 아이들은 농민들의 수고로움에 고마움을 느꼈고, 깨끗한 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채로운 자연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느꼈던 행복한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나를 둘러싼 환경의 소중함을 시나브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교과서 밖 세상과의 긍정적인 관계 맺음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농부가 씨 뿌리는 마음으로 체험활동을 꾸려나갔다.

시민단체와 연계한 환경 동아리 ‘내셔널트러스트’

지리 교과서 안에는 우리 지역과 세계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공존이 왜 중요한지, 내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운다. 하지만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한 당위적인 배움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당연히 행동의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나의 문제로,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침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먼저 문제 제기하며 행동에 나서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환경운동 단체들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셔널트러스트(NT)’ 동아리를 만들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학기 초 수업시간에 취지를 설명했더니, 16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해 주었다. 첫 해는 일반 동아리로 활동했는데, 몇몇 학생들이 상설 동아리로 이어가겠다고 의지를 밝혀 이듬해에 상설 동아리로 등록하였다. 시민사회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단체회원으로 가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연계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성남고 환경동아리 NT는 올해로 10년째 활동을 이어오며, 교내에서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리 시간에는 습지 보호, 도시 재생, 마을 환경, 기후 변화 등 자연과 인문 환경을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활동을 진행하고, 미세먼지, 에너지 문제 등 일상적인 환경 문제를 다룸으로써 실천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환경 문제를 지구적으로 사고하되 내가 속한 마을이나 학교, 가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매화마름군락지(람사르협약논습지) 를 살피는 자연환경 보존 활동

NT는 매년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민유산으로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DMZ 답사 활동, 해안사구 탐사 활동 등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을 정비하거나 탐사하는 활동에 동참해오고 있다.
특히 람사르협약 논습지인 강화매화마름 군락지의 논 정비 봉사활동에는 매년 동참하고 있다. 매화마름 군락지에 가서 풀을 베고 논의 흙을 갈아엎고, 지나가는 차량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정비 활동을 통해 멸종위기종인 매화마름이 다시 태어나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지켜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습지의 생태환경을 체험하며 습지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참가 희망자를 모집해 토요일을 활용해 활동하는데, 도착하면 먼저 마을회관에 모여 강화매화마름 군락지의 의미와 현재 상태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 이후 직접 현장에 나가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과 곤충 등을 살펴보며 생태체험을 하고, 논습지 보호 및 정비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느끼고 배운 바를 발표하며 마무리하는데, 학생들이 뿌듯해 하며 돌아온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화마름 꽃처럼 작은 생명체를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수많은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 관계에 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삽질도 하고 낫질도 하면서 농촌의 소중함과 친근함을 느끼고, 환경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망우리 공원을 걷고 뛰며, 도시 환경 보존을 생각하다

인간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망우리 공원에서 펼쳐지는 <도전! 러닝맨> 활동은 학생들이 힘들어하면서도 매우 즐거워하는 활동이다. 망우리 공원은 1933년 일제에 의해서 조성된 공동묘지로, 서울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 사이에 위치해 있다. 독립유공자와 근현대사 인물들이 묻혀있는 이곳에 산책로가 놓이고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사색의 공원’, ‘근현대 인물의 역사공원’, ‘인문학 공원’ 등의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곳을 알리고 시민들의 공간으로 보존하기 위해 청소년 대상 체험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동아리 시간을 활용해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학습하고, 참가 희망자를 모집하였다. 현장에 가기 전에 묘지공원의 의미와 근현대사 인물에 대해 학습하였고, 직접 망우리 묘지를 걷고 뛰며 미션을 수행하였다. 정리 및 시상 활동까지 참여한 후 동아리원들끼리 느끼고 배운 바를 간단히 발표하고 마무리하였다.

도시재생 현장인 망우리 공원은 도심 속 공동묘지가 어떻게 도시민의 삶 속에 자리하는 공원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학생들은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 산책로를 따라 걷고 뛰고, 머리를 맞대어 문제를 풀어내면서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을 길렀다. 또한 멀리 보이는 도시 경관과 어우러진 도시 속 숲을 거닐며,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재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였다.

올해의 환경 이슈를 정리해 발표하고, 캠페인 활동까지

올해의 환경 이슈를 골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선생님이 준비할 것은 모둠 수만큼의 전지와 매직, 색연필, 크레파스 등의 필기구. 물론 사전에 모둠 수만큼의 환경 이슈 주제를 뽑아가야 한다. 이것은 몇몇 환경운동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가장 심각한지,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 핵심 사안이 무엇인지 홈페이지 전면에 띄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리 시간, 2차시 안에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미리 모둠별로 자리 배치를 해두고 바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모둠별로 맡고 싶은 주제를 고르게 하고, 겹칠 경우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였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원하는 모둠에는 태블릿을 나눠주기도 했다. 주제에 대해 현황과 원인(배경), 전망과 비전(대책)을 조사하여 전지 한 장에 발표 자료를 만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모둠원들끼리 토의와 역할분담을 통해 자료를 찾고, 그림을 그리며, 내용을 정리했다. 발표를 위해 서로에게 질문하고 서로 가르쳐주는 등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발표 자료의 형식은 전지 내에서 자유롭게 하고, 마지막에 모둠별로 5분씩 발표할 시간을주었다. 물론 다른 모둠의 발표를 경청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쩌면 이 경청의 과정이 이 수업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배움이 될 테니까. 동아리원들이 먼저 학습한 결과물은 지리교과실 뒤에 게시해, 이 교실을 사용하는 많은 학생들이 환경 이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아리 회의를 통해 그 해의 주요한 환경 이슈들 중에서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축제와 연계한 캠페인을 펼쳤다. 교내외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축제인 만큼 많은 학생들에게 환경 이슈를 전달하고, ‘기후 위기’ 주제를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2016년에는 해안사구를 탐방하고 나서 ‘해안사구 표범장지뱀을 구하라’는 캠페인을 펼쳤고, 2017년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이슈화하면서 ‘핵보다는 해’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2018년에는 폭염을 겪은 학생들에게 ‘기후 변화 탐험관’을 제공해 기후 변화를 막자는 캠페인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NT녹색기후기금’을 콘셉트로 체험공간을 만들어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친환경 산업에 투자하도록 돕는 ‘미래도시 같이 펀딩’을 진행했다.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도 재미와 의미를 갖는 코너였다. 환경 이슈라고 해서 무겁게 가져가지 않고, 다양한 게임이나 미션을 활용하여 재치발랄하게 접근해 인기를 끌었다. 환경 이슈 정리발표부터 축제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환경 지식은 물론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동아리원들은 모둠별로 토의하고 게시물과 참여 코너를 제작하면서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은 물론 의사표현력을 길렀다. 무엇보다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을 실천으로 연결하며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신들의 활동이 생태환경보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 또한 높아졌다.

에너지수호천사단, 연중 캠페인에 나서다

2019년에는 NT 환경동아리 학생들이 서울시 ‘에너지수호천사단’ 활동을 함께 하면서 교내에서 월별 환경 캠페인을 펼쳤다. 학생들에게 기후위기의 상황을 알리고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상적 활동이 전개되었다.
먼저 4월 동아리 시간에 모둠별로 캠페인의 주제·슬로건·기간· 대상·장소·방법을 토의하도록 했다. 모둠 간에 주제와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캠페인 일정이 결정되었다. 각 캠페인을 맡은 모둠은 팀장을 중심으로 협력해 캠페인의 내용을 알리는 PPT(5~6장)를 만들어 학교 TV 게시판을 통해 2주간 알려나갔다. 그 중 1주일은 아침 등굣길에 캠페인을 펼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 학생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펼쳤다. 주제에 관한 퀴즈를 맞추거나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면 사탕을 주는 등 열심히 캠페인을 진행했다. 주축이 된 모둠 외에도 다른 모둠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독려하여, 캠페인의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7월에 제안한 ‘성남고 HOUR’는 기말고사 이후 방학까지 점심시간에 전등을 켜둔 채로 교실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제안한 활동이다. 실생활과 결합한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참신했고, 그 기간 동아리원들이 교실을 돌며 직접 불을 끄고 다니는 열성을 보여주어 감탄했다.

도시 속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

<온실가스 절감통장과 실천일지>

에너지수호천사단에서는 <에너지 특강>도 열어 약 100명의 학생들이 함께 들었다. 1강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법’에서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및 에너지 소비 현실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파리기후협약과 1.5도 특별보고서의 의미를 환기해보는 시간이었다. RE100 기업과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한 국가들을 보며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다. 2강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 녹색기본소득’에서는 생태적 이동을 견인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지구촌의 보행우선 도시, 자전거 고속도로 등의 사례를 보며 공간적 상상력과 시민들의 참여가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 수 있음을 느꼈다. 이후 방학부터 2달 간 ‘온실가스 절감 실천일지’ 활동에 동참할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자발적으로 100여 명이 참여해주었다. 이 중 8주간의 실천을 완료한 학생은 51명이었는데, 학생들의 일지 속에는 생활습관을 바꿔나가며 일상의 변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몇몇 학생들의 소감문 일부를 옮겨보려 한다.

나 하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 지구촌 공동체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미래의 희망을 읽는다. 미세 먼지, 이상 기후를 넘어서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금의 현실 은 우리가 바랐던 지구촌의 모습이 아니다. 반성하고 전환할 때, 그 때를 놓치면 공동체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미래 사회의 모습은 미래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기후위기를 정확히 알려주고 생태 전환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그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