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19 겨울호 (237호)

똑똑똑, 함께 눈사람 만들어 볼래?

김지광 (경희여자고등학교, 교사)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학교 복도로 나왔다가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여중 복도에 붙은 포스터를 발견했다. 「세 부 족사회의 성과 기질」이라는 책과 문화인류학에 대한 짤막한 글이었고, 저자 마거릿 미드에 대 해서도 중요하게 다루었다. 처음에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런데 진화론과 관련지어 설명하면 재미있을 것 같 은데…. 우리 학교에 문화인류학과 관련된 분이 누구일까?’

평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사회·문화 교과를 담당하는 사회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 죄송하지만, 마거릿 미드 아시죠? 그분이 쓴 「세 부족사회의 성과 기질」이라는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이 분야에는 문외한인데, 혹시 저랑 융합 독서수업 안 하실래요? 이 내용을 진화론과 연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부담스러우시면…….”

거절은 각오했다.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에 융합 독서수업이라니! 그리고 문화인류학과 진화론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요. 같이 해봐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영화 「겨울 왕국」의 안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언니 엘사에게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다가 거절당했지만, 나는 동료 교사에게 거절당하지 않았다. 눈사람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하면 눈을 굴려 뭉치듯이 마음도 다독다독 뭉칠 수 있다.

수업을 위해 ‘다 함께 똑똑똑’

문화인류학과 진화론을 연결하는 융합 독서수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게 끝났다.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사회 선생님께 감사하다. 교원학습공동체에 대한 열망과 아쉬움을 되짚어 본다.

논어의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라면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는 것을 즐겨야 옳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인정할 수 있다. 고로 패스!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 있다면 즐겁지 아니한가? 여러 해석을 찾아보니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은 그저 친구가 아니라 배움을 같이하는 학우를 뜻한다 했다. 맞다. 교사로 살아오면서 함께 배우고 익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근무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나눌 수 있으면 어떨까? 오직 한 사람 말고 또,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면 더 좋겠다.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건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군자가 아닌가 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걸 보니,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 군자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수업방법과 평가지식을 가지고 핵심역량을 길러낼 수 있는 우수 교사라고 하더라도 나 혼자뿐이라면, 재미없다. 그저 내 만족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작은 성공이든 큰 실패이든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고민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주저앉아 있을 때는 곧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말해주는 동료 교사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기왕이면 선·후배 교사와 담소를 나눌 때, 수업을 놓고 마주하고 싶다. 나는 동료 교사와 새로운 교육적 시도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떻게 교원학습공동체가 되었나?

사회 선생님과 융합 독서수업을 함께 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학교는 수업방법 개선을 위한 연구학교를 진행했다. 그 해는 연구학교 2년 차로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는 시기였고,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선생님들이 자주 모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원학습공동체라는 용어가 학교 내에서 이제 막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으나 수시로 저녁에 남아 융합수업, 독서 수업, 교과수업 등을 위한 교원학습공동체 모임을 진행했다.

연구학교를 시작할 무렵, 수업방법 개선이라는 목표 못지않게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교원학습공동체를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컨설팅 장학을 받기도 했다. 당시 컨설팅 위원님들께서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단 적은 인원이라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온전한 구성보다는 적은 인원이라도 모임을 시작하여 서로 구심력이 되어주라는 격려를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원학습공동체로 모이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작년 12월 수업나눔 교사지원단에 속하게 되어 활동을 준비하던 중에 서울특별시교육청교 육연구정보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자료집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단, 교과 통합수업을 위해서 반드시 해당 학교 선생님으로 구성된 교원학습공동체를 만들고,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집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다시 한 번 사회 선생님을 찾아갔다. 교무부 기획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신학기 준비를 위해 정신이 없을 텐데 수락 의사를 밝혀주었다. 이번에는 국어, 철학 선생님과 한 팀을 이루자고 제안도 해주셨다. 우리는 1~2월 내내 1학기 통합수업을 위한 팀을 구성하고, 공동의 수행평가를 설계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철학 선생님께서 제대로 공부하자는 제안을 해주 셔서, 정식으로 교육과정 재구성 및 수행평가 개발에 관한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 상시과정 직무연수를 신청했다. 그리고 수행평가 채점기준표 개발을 위해 하나의 책을 선정해 그것을 중심으로 매월 공부해나갔다. 팀명은 ‘융(融)을 위한 합(合)’이었다.

‘융(融)을 위한 합(合)’의 수업 후기

수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또한 수행평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과정 재구성의 측면을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성취기준 분석과 평가준거의 마련이 미흡했다. 개별 교과의 성취기준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통합수업을 위한 평가준거 성취기준을 자세히 개발했다면, 교사와 학생 모두 어떤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인지하기 쉬웠을 것이다.

교과통합의 측면에서 융합적 사고를 촉진하기 위한 문항을 구성하기 위해 교원학습 공동체의 교사들은 질문을 수차례 검토했다.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여섯 번까지 학습지를 수정하였다. 학생의 입장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서 교생 선생님들의 조언을 구했다. 학습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바람직한 사고 과정을 촉진하는 질문을 구성하도록 했고, 가장 의미 있었던 점은 교사의 학습 경험이었다. 질문을 구성하는 과정 에서 협업능력, 학습자 이해도, 학습지 구성능력 등이 향상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개별 교과에 갇혀 있던 용어 사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지나치게 자세한 지침이 오히려 개방적인 사고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학습지의 형식과 내용에서 오해가 적은 발문 구성과 치밀하고 단계적인 질문 제시 순서 등을 논의하였다.
다만 수행평가가 학기 말 성적에 포함된다는 점이 과정 중심 평가의 측면에서는 저해요소라고 생각한다. 수행평가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자 노력했지만, 각 과목의 수행평가과 제의 수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고 느꼈다. 이 부분이 학교와 교육청이 함께 노력해야 할 점 이라고 생각했다. 사고 과정을 치밀하게 채점하기는 쉽지 않았다. 적절한 채점 기준에 따라 학생들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공부가 필요했다. 비록 학기 초에 평가기준(Rubric) 제작에 관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학습 설계를 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유의할 점들을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평가기준 (Rubric) 제작과 관련된 교원학습 공동체의 공부는 2학기까지 지속할 것이다.

‘함께’를 위한 핑계

이쯤에서 생각해보니 핑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학교든, 자료집 개발이든, 아니면 교장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대부분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 그리고 행정업무로 너무 바쁘다. 요즘처럼 평가에 민감한 시절에 수행평가를 마감할 즈음이나 과목별 개인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을 적어줄 시기에는 도무지 교원학습공동체를 제안하기 어렵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교육청에서 신학기 준비 기간에 대해 강조하고, 교원학습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주어서 다행이다. 더불어 매년 모든 학교가 참여하긴 어려울지라도 교육청이 지원하는 사업에서 교원학습공동체를 비중 있게 포함했으면 한다. 자신이 이번 학기에 계획하고 적용한 결과가 교육청의 사업으로 드러난다면 함께 수업과 평가를 개발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우리 학교의 사례에서 교육청의 자료집 발간이라는 전제는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료집 발간에만 초점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면밀하게 수업과 평가를 설계 하고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학생들의 활동과 학습 결과를 검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고, 자료집을 발간하는 학교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나누고, 조언을 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학교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서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결과물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동료 교사와 창의적인 교육 활동 네트워크를 함께 했다는 경험적 지식이다.

꼭 눈사람이 아니어도 좋아.

다시 영화 「겨울 왕국」이다.

“나랑 눈사람 만들래?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꼭 눈사람이 아니어도 좋아! (It doesn’t have to be a snowman!)”

지금은 겨울이고 마침 눈이 펑펑 내리고 있으니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놀자는 이야기다. 반드시 함께 놀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느껴진다. 꼭 눈사람일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어쩌면 한 번은 안나가 되고, 한 번은 엘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동료 교사와 함께 교육적인 눈사람 만드는 일을 해 보고 싶다. 만일 어색하다면 꼭 눈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조금씩 친해지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들어보며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다. 그리고 함께 교육적인 일을 도모해 보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실은 어딘 가에 그 누군가 함께하길 기다리고 있는 나의 동료 교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누구에게 배우는가? 교사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은사님께 배우고, 대학 교수님과 전공 서적에서 배운다. 학교에서는 학생을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평생을 곁에 두고 함께 배울 수 있는 상대는 바로 동료 교사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 일 수 있는 동료 교사를 통해서 현재에 멈추지 않고 미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