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Vol.224.가을호

마을공동체와 함께 세대공감 능력을
키우는 도서관

d_04_1_03글 : 이덕주 / 송곡여자고등학교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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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곡여고 도서관은 온돌방이 있고 피아노가 있는가하면 갤러리 전시대가 있고 탁구대까지 있는 문예체가 고루 갖추어진 학생친화적인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청소년문화카페 도서관 사업으로 더 새롭게 보완했다.
d_04_1_13  송곡여고 도서관은 1년 내내 여러 교과의 교육을 함께하는 사서교사와 교과교사의 협력수업으로 바쁘다. 3월이면 사서교사가 주도적으로 실시하는 도서관에 대한 일반적인 안내를 위한 교과협력수업, 4월이면 1학년 사회과 협력수업, 5,6월이면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서 실시되는 1학년 기술·가정과 세대 공감 교육, 9월이면 다시 기술·가정과에서 진행되는 출산육아에 마을의 출산경험을 가진 마을 언니들을 초대해서 만나는 수업, 10월이면 한국사 프로젝트 협력수업, 11월이면 중국어 및 다문화인식개선을 위한 도서관협력수업 등으로 빡빡하게 돌아간다. 그밖에 방과 후에 운영되는 주제탐구 프로젝트 수업이나 틈틈이 자율 독서 진로 수업 등이 진행된다. 이중에서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 60세 이상의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수업, 즉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세대 공감 교육을 이루어내는 수업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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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교사가 되는 메모로 활동 수업
한분 두 분 말끔하게 차려입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때론 지팡이를 짚기도 하시면서 송곡여고의 언덕길을 찾아 올라오신다. 어르신들은 약속 시간보다 30분씩은 미리 오신다. 일찌감치 다 모이신 어르신들이 사서교사로부터 오늘 수업의 취지-이전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오늘 어르신들과 왜 대화를 해야 하며 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지, 어떻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녹화 촬영을 해야 하는지 배운 수업내용을 요약해 드리고 어르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편하게 아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풀어가면 좋은지 안내와 유의사항을 들으신다.
드디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다시 수업시작 종이 칠 때쯤 아이들이 다 내려오고, 어르신들은 긴장하신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신다. 기술·가정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둠별로 앉았는지를 확인하고 조별로 만날 어르신들을 한분 한분 소개한다. 도서관이 넓기에 서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위치로 세 조가 흩어지고, 두 조는 학교의 방송실과 상담실로 어르신을 안내해 간다. 각각의 장소에는 미니 삼각대가 설치되어 있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삼각대에 끼어넣고 촬영준비를 한다. 이제 서로 자리를 잡고 앉으면 각각의 장소에서 5명의 어르신들이 5명씩의 아이들과 만나서 대화를 시작한다.
과연 학생들이 늙은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까? 반신반의하던 어르신들, 과연 아이들이 여느 수업시간과 같이 혹시라도 엎어지거나 딴전을 피우지 않고 어르신들 이야기를 집중해줄 지, 혹시라도 저 말썽꾸러기가 학교 망신을 시키는 것은 아닐지, 교사들의 마음도 조마조마하다. 아이들은 어르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지, 아직도 왜 우리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수업을 해야 하는지, 그냥 색달라서 좋아해주는 것인지.
이 수업은 국제적인 세대 공감 교육 활동인 ‘메모로 활동’을 수업에 접목한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세대 공감 교육은 2014학년도에는 2학년 사회문화 시간에, 2015학년도에는 1학년 기술·가정과와 2학년 윤리와 사상 수업시간에, 2016학년도에는 1학년 기술·가정 수업시간에 실시되었다. 고령화 사회, 사회변동대비, 가족과 사회의 어르신들을 대하는 자세는 여러 교과의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인성교육의 한 방법으로도 다양한 동아리나 특별활동으로 추천할 만하다.
d_04_1_15  학생들은 어르신들과 약 30분 정도 진행된 대화를 영상으로 찍고 그중에서 약 5분 정도를 편집하여 제출한다. 제출된 영상은 국제 메모로 사이트에 올라가서 영구적으로 보전이 되기도 하고 청소년 UCC대회에 출품하거나 본교 도서관 서버에 향토 문화자료로 보전된다. 학생들은 영상편집이 완료되면 수업시간에 다른 조의 영상까지 함께 보면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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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과제 전에 간단한 손들기로 확인한 바로는 노인과 사는 세대도 많지 않았지만 60세 이상의 노인분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일상적 대화 외에는 두 세 마디의 대화를 이어간 경험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메모로 프로젝트’를 통해서 학생들은 지금은 그냥 아무 힘과 능력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자신과 같은 학창시절이 있었고 청년기도 있었고 인생의 황금기인 40대-50대에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미 교과서 등에서 배워서 예측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직접 생생하게 들을 때 그 노인분이 다시 보였다는 소감을 동일하게 이야기하였다.
d_04_1_17이런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노인 세대를 바로 이해하고 노인들이 단순히 짐이 되는 집단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들을 있게 한 세대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고 본다.

마을 어르신 측면에서
기존의 세대통합 교육프로그램들은 노인을 대상으로 설정한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메모로 프로젝트’는 노인이 지난 세대의 경험을 증언해주어야 성립되기 때문에 노인이 주도권을 갖고 교육자적인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다. 또한 인터뷰가 있기 직전까지 학생과 대화주제에 대해서 대등하게 소통함으로 인해서 또 학생들의 숙제에 도움을 줌으로 인해서 자존감이 회복됨을 경험하였다.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어주면서 나의 지식과 정보가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도 뿌듯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교과교사 입장에서
특히 2014년에 이 교육을 함께 했던 사회교사 입장에선 사회·문화 단원에서 배우는 여러 연구기법, 지역조사 및 질적연구기법 등을 실제 학생들이 체험하도록 할 수 있다. 사회·문화교과내용 중 사회변동 및 사회문제 등 여러 단원에서 언급되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해서 실천적으로 학생들이 시도해보는 체험학습을 통해 교과서의 지식을 몸으로 경험하게 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2015년에는 윤리과 교사와 함께 하며 다른 세대의 윤리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적 효과를 가져왔다. 2016년에는 기술·가정 교과에서 함께하며 가정의 어르신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사서교사 입장에서
직접적인 독서가 아니라 사람책을 만나는 과정이었지만 학생들이 60세 이상이라는 다른 세대의 사회와 문화, 역사를 이해하고 대화하기 위해서 193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에 걸친 근현대 사회·문화에 대한 독서 자료를 사전 또는 사후에 보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다른 효과들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인터뷰 증언을 통해서 향토역사자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화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교육 사회 등 다양한 영상녹화자료들이 만들어졌다. 지난 세대에 대한 영상 아카이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또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 인적자원이 발굴되고 지역사회 마을공동체 활동가나 단체들 간에 네트위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교육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학생들을 교육해 나가는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부탁을 하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촬영하며 경청하는 학생들을 보고 지역사회에서도 좋은 교육활동을 한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지역사회에서의 이런 활동을 통해 세대 공감만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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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도서관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사서교사는 교육과 수업에 필요한 책만 소개해 주는 교사가 아니다. 수업에 필요한 자원이면 그것이 교구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교사와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교사이다. 사서는 다양한 매체의 도구, 정보원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 주는 정보 중개자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서인 사서교사는 학교의 가장 큰 교육적 필요에 적합한 정보원을 찾아 연결해 주는 것이 중요한 임무이다. 그래서 교과교사가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수업을 사서교사의 도움을 받아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서교사의 기쁨이고 보람이다. 송곡여고 도서관은 교실의 수업과 마을의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만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