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8 봄호 (230호)

문학 수업 시간에 한 권 읽기

이상용 태릉고등학교 교사

새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실렸다니 놀랍고 반갑다. 앞에서 불던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등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다. ‘이런 거 왜 하냐.’는 불만은 귀찮은 거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서만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교과서 진도 나가기도 벅찬데.’, ‘교과서 두고 뭘 굳이.’, 이런 말을 듣거나 예상하며 스스로 책읽기 수업을 포기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제 교과서에서 책을 읽으라고 하니 아이들과 동료 교사 설득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설득할 필요가 없을까? 한 권 읽기가 필수가 되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걸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한 권 읽기, 정말 잘 될까? 수업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하면 학생들은 ‘교과서보다 낫지.’라고 하며 잘 읽을까?
십여 년 독서 수업을 해 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고 잘 읽던 아이들은 날개를 단 듯 왕성하게 책을 읽어서 나날이 더 똑똑해질수도 있지만 문자 해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은(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이 아니라면) 호흡이 긴 글을 잘 읽지 못한다. 해가 갈수록 긴 글을 읽는 아이들의 능력은 퇴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은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에 책읽기를 하겠다고 애써 본 기록이다. 책을 들고 아이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책에 몰입한 아이들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책읽기 수업에 대한 교사의 애정이 깊은 만큼 부작용도 있었다. 이 좋은 책을 안 읽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나기도 했다.
사실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학생들의 피로도는 높아진다. 책읽기가 또 다른 강요가 되지 않으려면 시행착오로 다듬어진 다양한 장치들과 유연하게 개입하는 교사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하면 할수록 혼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책목록 만들기부터 독후 활동까지 더 많은 시도와 실패가 필요하다. 귀한 현장의 사례들이 흩어지지 않게 공유되어 더 나은 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돌탑에 작은 돌멩이 하나 얹는 마음으로 문학 수업을 들춰본다.

1. 시집 읽고 자기 경험 쓰기

도서관에서 시집을 150권 정도 장기 대출하고 교사 개인 시집들도 추가해서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골라 읽게 한다. 시집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시를 찾고 그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을 쓴다. 처음 한 두 시간은 시집을 뒤적거리며 맘에 드는 시를 베껴 쓰거나, 나에게 주고 싶은 시를 골라 보거나, 친구, 부모님, 선생님이 생각나는 구절을 찾아보며 시와 친해지게 한다. 그냥 감상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를 해석하거나 추상적인 이야기만 풀어 놓는다. 시와 관련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이 드러난 예시 글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금방 감을 잡는다. 마음에 드는 시를 정성스레 공책에 옮겨 적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국어교사가 되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들이는 품에 비해 교사나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활동이다.

2. 장편 소설 읽고 문학 신문 만들기

교사가 제시하는 장편소설 목록 중에서 모둠별로 마음에 드는 책을 정해 읽고 토론 하며 문학 신문을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책은 각자가 구입하여 집에서도 읽을 수 있 게 하고 주당 4차시 중 한 시간 씩, 약 한 달 반에 걸쳐 수업 시간에 책을 읽고 매 시 간 10분 전에 일지를 작성한다. 책읽기가 끝나면 신문 제작을 위해 3차례에 걸쳐 편 집회의를 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신문’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토론과 글쓰기를 위한 장치이다. 독서 토론을 하고 글을 쓰되 협력하여 ‘신문’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신문의 형식 이나 기사문 작성법을 굳이 가르칠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 중인 사람, 읽기는 읽었는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한 독 자들을 위해 책이라는 여행 가이드를 만들어 보자고 안내한다. 전통적인 형태의 종이 신문보다는 ‘알라딘의 서재_책과 통하는 블로그(http://blog.aladin.co.kr/town)’나 ‘채널예스(http://ch.yes24.com/)’와 같은 책 관련 웹신문 형태를 참고해도 좋다.
겉은 화려하고 내용은 얄팍한 신문이 아니라 책을 소화하고 고민하고 논쟁적으로 토론한 흔적이 묻어나는 신문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화, 광고, 형식적인 책 소개, 인터넷에서 긁어온 작가 인터뷰 등으로 적당히 지면만 채운 신문이 안 되려면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협력과 토론 없이 기계적인 역할 분담으로 신문이 만들어지지 않도 록 다음과 같은 틀을 제시하고 회의 시간을 충분히 준다.위의 다섯 가지 중에서 (1), (2)는 필수, (3)~(5)는 선택이다. 모든 모둠원들은 (1)의 열쇳말 기사를 포함하여 두 편 이상의 기사를 써야 한다. (2)의 칼럼을 쓴 경우는 약간의 가산점이 부여될 수 있다고 미리 공지하면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기사 작 성의 난이도를 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
3. 한 권 읽기 수업의 성패를 가르는 지점들

(1) 교과 협의로 호흡 맞추기

한 학기에 책 한 권을 읽고 활동을 하려면 긴 호흡으로 수업을 구상해야 한다. 교과서 내용을 전부 가르칠 수 없기에 재구성이 필요하고 어떤 책을 읽힐지, 어떤 활동을 어느 정도 무게로 진행할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동료 교사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한 권 읽기 수업은 시작하기조차 어렵다.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동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협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년 초에 시간표를 확인하여 협의할 공강 시간을 못박아 둔다. 학생 중 심 수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면 그건 같이 하는 교사들끼리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같 이 고민하면 웬만한 어려움은 돌파할 수 있다. 함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수업이 섬세해 지고 탄탄해진다. 일 년이 지난 후에 남는 건 아이들뿐이 아니다.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는 든든한 동료가 남는다. 한 권 읽기 수업을 온전히 진행하려는 교사들은 동료 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수업 이상으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작년에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선생님들과 문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수업 시 간에 책을 읽히고 싶다고 운을 떼어 보았더니 호의적으로 받아 주시기에 그 다음부터 내 가 먼저 다가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요일 5교시마다 모이자고 귀찮게 굴었고 그 시간에 맛있는 간식을 준비했 다. 교육청의 권장 사항대로 지필 고사는 한 학기에 1회로 줄이고 수행평가 비중을 60% 로 했다. 문학 수업이니 4월엔 시집을, 5, 6월엔 장편 소설을 읽히기로 하고 책목록을 만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만큼 수업에 윤기가 났고 2학기가 되어 살짝 헤이해졌구나 하고 느끼자마자 수업에도 바로 동티가 났다. 지필시험을 학기에 한 번만 치르고 수행평가에 집중하기로 용기를 낸 것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2) 어떤 책을 읽히지? 책목록 구하기/만들기

모두에게 딱 맞는 완벽한 책목록은 없다. 아이들이 잘 읽는 좋은 책을 선정하는 일은 한 권 읽기 수업 성패를 가르지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쌓여야 가능하다. 몇몇 교사 모 임들이 실제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 책목록을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교사의 눈에 들어온 책벌레 학생이 추천하는 책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분위기가 만 들어지면 아예 책 추천단을 모집해서 아이들 눈높이의 책을 추천받고 목록에 넣을 책을 미리 읽혀 보기도 한다. 한 학기에 두 권 정도 학생들이 구입하게 하되, 여유가 있으면 학교 예산을 활용해도 좋다.

(3) 책 읽기 싫어하는 학급을 위한 장치 고안하기

•한 시간 내내 책만 읽는 건 위험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모둠별로 오늘 읽을 목표 분량을 정하고 끝나기 15분 전 쯤에 간단히 줄거리를 공유하게 한다. 다 못 읽은 사람은 집에서 마저 읽어 오게 하고 목표 분량까지 읽지 못했어도 친구들이 설명해 준 줄거리에 의지해서 다음 시간엔 그 다음 페이지부터 읽게 한다. 이렇게 하면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줄어든다.

•책을 쥐었다고 모두가 끝까지 읽어내는 건 아니다. 지루한 부분을 잘 넘길 수 있도 록 교사의 개입이 필요하다. 어려운 내용은 쉽게 설명해 주고 줄거리를 전기수처럼 이 야기해 주면서 뒤가 궁금하게 만든다. 생각 문제를 같이 만들어 보거나 관련 동영상이 나 인터넷 기사들을 보고 즉석 설문이나 토론을 진행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영화화된 원작 소설을 목록에 포함시키는 방법도 있다. 끝까지 책을 못 읽 는 학생들은 수업 방해꾼이 되므로 최후의 방법으로 책 대신 영화를 보게 한다. 소설 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관련한 영화를 보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계속 관심을 두고 챙긴다.

(4) 반 전체가 같은 책? 모둠마다 다른 책?

한 권 읽기 수업에서 제일 큰 고민 중의 하나다. 반 전체가 같은 책을 읽으면 교사가 중간 중간 독려하기에도 수월하고 함께 생각 문제를 만들어 보거나 전체 토론을 이끌 수 있다.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와 취향, 수준을 반영하기가 어려워 반대하는 선생님들도 계 시지만, 독서와 토론 역량이 떨어지는 학급에서는 교사 지도의 수월성을 고려하여 해볼 만하다.
타협책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책 3~5권을 제시하고 모둠별로 겹쳐 읽게 할 수도 있다. 책 종류가 너무 흩어지지 않아 필수 토론 문제 정도는 교사가 제시할 수 있다. 학교에 따라, 학급에 따라 학생들의 독서력이 다르므로 교사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 지에 따라 결정 하자.
‘좋은 수업은 고민하는 수업’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머릿속으로 대충하는 고민 이 아니라 실천하면서 섬세하게 하는 고민이다. 그러자면 실패한 수업을 한 자신에게 너 그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계속 시도할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그냥 하던 대로 수업하고 쪽 지 시험 수행평가나 보자고 할지 모른다. 불안한 마음은 알아주되, 일일이 신경 쓰며 대 꾸하지 말고 좀 더 섬세하게 안내하는 데에 힘을 쓰는 것이 좋다. 수업 스트레스는 동료 교사와 이야기를 하며 풀자. 같이 울고 웃으며 고민하고 그 다음 수업에 반영하자. 한 권 읽기는 확실히 교사를 좀 더 고민하게 한다. 좋은 수업은 고민하는 수업이다.


관련사이트
•http://reading.naramal.or.kr/cms/default.aspx •http://www.edunet.net/nedu/ncicsvc/classSharing.do?menu_id=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