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보Vol.226.봄호

문화체험으로 심미적 감성 역량 쑥쑥!
아이들과 함께
‘서울 둘러보기’

|김미경

걸으며 만나는 성북동의 역사 문화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 가슴에 금이 갔다. /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일부분)

이 시는 물질문명에 파괴되는 자연을 안타까워하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시이다. 이 시의 무대가 되는 성북동은 혜화문과 숙정문 사이의 서울 성곽이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1970년 개발로 인해 성북동은 이제 고급스러운 주택들이 들어섰다. 시인이 말했던 황폐한 광경은 이제 찾을 수 없다. 비록 성북동 비둘기는 사라졌지만 심우장, 이태준 고택, 간송미술관, 최순우 옛집, 길상사, 삼청각 등 옛 문화재가 많고 비둘기 공원과 함께 시비가 생겼다. 그리고 조선시대 화가 오원 ‘장승업’,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광섭’ 등 산세가 아름답고 한적해 많은 문화예술인이 살았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한양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불리는 성북동, 옛사람의 정취와 문학이 가득한 성북동을 탐방하려면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시작하면 된다.

조지훈 시인 집터와 시비 – 시인의 집 방우산장

번째로 청록파 시인 조지훈 집터를 탐방한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큰길을 따라 쭉 걷는다. ‘늘만나한정식’집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간다. 걷다 보면 쌀집 앞 태극기가 걸려 있는 곳에 조지훈 집터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이 살던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했다. 그가 살던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표지석에는 승무 그림과 그의 시 〈승무〉 전문이 있다. 조지훈 시인 집터 인근 2번과 3번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조지훈의 시가 적힌 쉼터가 있다. 그를 기념하는 ‘방우산장 건축조형물’이 조성되었다.

조지훈의 집터 표지석

최순우 옛집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선생의 옛집에 남아있는 글

최순우 옛집 – 시민문화유산 1호

조지훈 집터에서 나와 도로변 횡단보도를 건너서 최순우 옛집으로 이동한다. 정갈한 대문 앞 계단을 오르면 열린 문으로 아담한 한옥이 눈에 띈다.

이 집은 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최순우 옛집은 성북동 재개발 때 헐릴 위기에 처했다. 보존 환경이 어려워지자 민간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 성금으로 매입하여 보수·복원을 한 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시민문화유산 1호로 명명되고, 현재는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80년의 역사가 남아 있다.

관람 가능한 기간과 시간은, 4월 1일부터 11월 31일(12월부터 3월까지는 겨울 정기휴관)까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문을 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선생은 심미안의 소유자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데 평생을 바쳤고, 대표적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을 이 집에서 집필하였다.

수연산방 – 비운의 작가 이태준 옛집

성북동이 배경인 이태준의 소설 <달밤>이 탄생한 곳을 찾아간다. 성북동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성북구립미술관’이 있고 그 오른편에는 단아한 한옥 한 채가 있다. 이 집이 상허 이태준의 옛집 ‘수연산방’이다. 이태준은 우리 문학사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완성자’ 또는 ‘단편 문학의 명수’, ‘한국의 모파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작가이다.

구인회의 일원인 이태준 선생은 1933년부터 월북하기 전까지 살면서 이곳에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하였다. 수연산방 누마루에 앉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뜰을 보며 차를 마시면 이태준과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심우장 – 임을 향한 끝없는 사랑, 한용운 선생의 옛집

수연산방에서 나와 성북동 길을 따라 걷는다. 선생의 옛집으로 길은 가파르고 좁은 언덕길이다. 조금 숨이 차오르면 이내 아담한 집이 나온다. 이 집이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 ‘심우장’이다. 선생은 일제 총독부와 마주 보고 싶지 않다고 하여 북향으로 지었다. ‘심우장’이라는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다.

선생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뜰한 구석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향나무 한 그루를 보며 옛 주인의 꿋꿋한 절개를 느낄 수 있다.

‘수연산방’은 ‘문인들이 모이는 산 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아서 만든 현판

수연산방은 현재 전통 찻집으로 운영

만해 한용운의 북향집 ‘심우장’


그 외 볼거리
‘심우장’을 나와 오래된 좁은 골목길을 오르면 자그마한 공원이 나온다. 벽면에 알록달록한 색의 비둘기 조형물이 붙어 있고 그 아래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쓰여 있다. 오래전 도시개발에 집을 잃은 비둘기는 떠났지만,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 나라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은 1933년 성북동일대에 땅을 사기 시작해, 1934년 ‘북단장’이라는 집을 지었고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인 ‘보화각’, 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지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 혜원 풍속도를 포함해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 많은 문화재를 일본으로부터 사들여 민족의 정체성을 지켰다.

‘길상사’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 내려 한적하고 멋스러운 길로 갈 수도 있지만, 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가 가신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길상사’. 그곳에는 우리나라 최고 요정이었던 ‘대원각’의 주인이자 백석이 사랑한 여인인 김영한, 즉 자야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서 무소유의 미학과 시인 백석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