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19 여름호 (235호)

문학 학습의 공간을 확장하는 문학관 체험학습

이호형 (서라벌고등학교, 교사)

1.문학과 박물관 체험학습의 차이
그동안 현장교육에서는 수학여행 등에서 문학관을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답사를 해왔다. 전국국어교사모임(2015)에서는 국어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거나 살았던 곳 등에 대한 답사 활동의 경험을 모아놓았다. 이처럼 현장 국어교육의 실천에서 문학관 답사를 진행한 것은 문학관이 문학 작품의 내적 공간과 의미적 상관성을 지니거나, 문학 작품을 둘러싼 작가의 전기적 사실, 시대 상황 등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문학관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교실에 갇혀 있는 문학 작품에 맥락을 제공하면서, 학생에게 문학 작품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의 문학관 답사는 대체로 수학여행 등으로 상징되는 행사 위주거나 일부 동아리 학생들에게만 한정된 활동이었다. 또한 사전 준비 없이 전시된 콘텐츠만 둘러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문학관을 마치 박물관처럼 이용하고 있다. 문학관이 박물관의 기능만 수행하면 문학관은 작가의 생애사적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육필 원고, 작가의 유품, 작가의 사진 등을 보존하여 전시하면서 문학 작품과의 연관성보다는 문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문학관은 여러 문화 콘텐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문학 작품에 대한 다층적인 감상과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일부 문학관에서는 문학 작품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문학관의 이동 경로를 만들거나, 문학 작품을 모티프로 한 별도의 체험 공간을 만들어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그림 그리기, 엽서 쓰기, 액자책 만들기 등의 활동을 구안하여 학생들의 감상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2. 문학관 체험학습의 사전답사 시 고려할 점
문학관 체험학습은 문학관에 전시된 문학 콘텐츠를 통해 학생들이 문학 텍스트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는 경험으로 문학 텍스트의 이해를 심화하고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문학관 체험학습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관 선정에 유의해야 하다. 이는 문학관 체험학습이 학교 문학 수업의 연장선 상에서 계획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학관은 가급적 교과서와 연관되거나 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대표성’을 가진 작품 또는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콘텐츠화한 곳이 학습동기 유발 차원에서 적절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문학관은 학생들의 접근에 편리해야 한다. 문학관은 특정 요일에 휴관을 하는 경우가 있고, 프로그램이 요일마다 다를 수도 있다. 또한 교통이 다소 불편한 곳에 위치할 수 있고, 인근에 공사장 등의 위험지대를 지나가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문학관 체험학습은 꼼꼼한 사전답사를 통
해 문학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숙지해야 한다.

윤동주 문학관 입구

2014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체험했던 곳은 인왕산 기슭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이다. 윤동주는 자아성찰을 통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지식인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작가로,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씌여진 시’ 등의 작품은 이른바 ‘저항시’라는 이미지로 교과서와 수험서에 상당수가 수록되어 학생들에게 친근한 작품이다. 한편 윤동주 문학관은 폐기된 상수도 가압장을 리모델링하여 도시건축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건축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윤동주 문학관은 한양도성 둘레길의 자하문 구간에 포함되어 있어, 교통도 편리하고 경복궁 역에서 버스로 2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문학관 체험학습의 준비 단계에서는 지도 교사의 꼼꼼한 사전답사가 가장 중요하다. 답사를 통해 지도 교사는 윤동주 문학관 체험학습의 전-중-후 단계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학관은 관람객들이 윤동주의 시 세계를 조명할 수 있도록 친필 원고, 사진, 학적부 등을 전시하고 있는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제1전시실은 시인의 일생을 살펴보는 공간으로, 용정에서 가져온 우물을 중심으로 윤동주의 학생 생활, 시 원고 등을 전시한 공간이다. 제2전시실은 열린 우물로 불리면서 닫힌 우물로 갔다가 다시 나오는 ‘길’을 중심으로 만든 공간이다. 제3전시실은 닫힌 우물인데, 원래의 물탱크를 그대로 살려 사방이 콘크리트로 막혀 있는 공간으로, 윤동주의 시 세계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3. 문학관 체험학습을 위한 교실 문학교육 사례
윤동주 문학관 체험학습은 세 전시실을 중심으로 시인의 삶과 시의 의미를 학습자들이 탐구하는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문학관 체험학습은 학교 안에서의 문학 학습과 학교 밖에서의 문학 학습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학교 안과 밖에서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먼저 문학관 체험학습은 교실의 문학 수업에서 문학관 체험에 필요한 학습 내용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윤동주 문학관이 결정된 상태이므로 윤동주의 생애와 윤동주의 문학 세계, 윤동주 문학관 안내 등 사전 교육을 준비하였다. 학습 형태는 전문가 협동학습으로 한 모둠을 4~5명으로 구성하고, 전문가 그룹으로는 윤동주 생애 그룹, 윤동주의 시 세계 그룹 1~3개, 윤동주 문학관 안내는 지도 교사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윤동주 생애 그룹의 발표에서 특이했던 것은 이미 영화 ‘동주’가 상영된 후이므로 송몽규의 의미를 윤동주의 생애에
서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즉 윤동주의 시 세계에서 부각되었던 ‘부끄러움’이 송몽규와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시각을 학생들이 발표한 것이다. 윤동주 시 세계를 조망한 전문가 그룹에서는 주로 교과서에서 익히 다루어 왔던 작품들의 의미를 중점적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사랑스런 추억’ 등 1941년 이후 동경에서 쓴 시에 대해 학생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며 타향에서 혼자 지냈을 윤동주를 추억하였다.

4. 윤동주 문학관에서의 문학 체험의 실제
5월의 어느 토요일 우리가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했을 때는 인근 중학교에서 만든 시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서시’, ‘십자가’, ‘간’, ‘별 헤는 밤’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아이들이 만든 시화를 통해 아이들의 시각에서 윤동주의 시가 갖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해설사가 있어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미리 공부를 하고 왔지만, 현장에서 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다른 매력을 주기 충분했다. 평양의 숭실중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광명중학교로 전학 온 이야기, 연희전문 의과 진학을 원했던 부친과 언성을 높여 싸우면서 결국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 문과로 진학한 이야기, 시를 공부하기 위해 백석의 ‘사슴’을 돈이 없어 손수 베끼던 이야기 등은 윤동주를 미지의 인물이 아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으로 소환하였다. 해설사의 설명 중간마다 학생들은 활동일지에 미리 제시되어 있던 과제를 풀기 위해 벽에 전시된 윤동주 시 원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빛바랜 원고지에 ‘참회록’ 원문의 여백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열 두 개의 단어1 를 옮겨 적으면서, 윤동주가 생각한 ‘참회’의 의미를 깨우치는 듯하였다. 제2전시실에는 외줄기 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길을 걸으며 누구는 만주에서 서울로 유학 오는 길을, 연희전문학교에서의 삶을, 창씨개명하고 일본으로 도항하던 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걷던 길을 떠올렸을 것이다.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담은 동영상을 감상하는 제3전시실에서 학생들은 동영상의 내용보다 윤동주가 갇혀 지내던 감옥을 떠올리고 있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음습하고 칙칙한 공간. 다시
제2전시실로 나올 때 학생들이 내쉰 한숨은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겪었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윤동주 문학관 내부 모습 중

윤동주 문학관을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으로 학생들의 눈매가 바뀐 듯하다. 문학관을 나서면서 우리는 윤동주가 잠시 하숙했던 소설가 김송의 집터를 찾아 나섰다. 인근의 상인이나 관광객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윤동주의 의미를 물어보기 위해서다. 효자동 빵집을 지나 골목길을 올라 겨우 발견한 하숙집 터는 이곳에서 윤동주가 잠시 머물러 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인터뷰 결과는 그리 밝지 않았다. 이곳이 윤동주와 연관된 장소라고 인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학생 한 명은 “윤동주 삶의 단편적인 흔적을 쫓기 위한 이벤트 장소가 아니라, 그 흔적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윤동주’라는 시인을 이루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연계성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5. 교실에서의 마무리 학습 단계
문학관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문학관을 체험한 후 제출했던 과제는 윤동주 하숙집 터 인근 주민에게 인터뷰하기, 학적부에서 윤동주의 성적 확인하기, 참회록의 여백에 적힌 열 두 개의 단어1 로 윤동주와 관련된 짧은 글짓기,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의 의미 적어보기, 제3전시실을 윤동주의 삶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윤동주의 시 한 편을 골라 시화로 제작하기, 윤동주 시로 노래 가사 바꿔부르기 등을 다루었다. 과제는 2주 정도의 시간을 준 후 모둠별로 전시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인 윤동주의 생애는 가슴 아픈 찬란함을 가지고 있다.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자신의 생을 시를 위해 바쳤다고 할 수 있겠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던 시기에 윤동주는 시인으로서 나라를 잃은 슬픔과 희망, 자신의 의지를 시로 쓰며 시인의 고백을 담아냈다. 특히 그의 시 ‘참회록’과 ‘쉽게 씌여진 시’를 보면 우리나라의 식민지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비통해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 평생 시를 통해 삶을 다했던 윤동주에게 ‘시란, 인생의 전부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긍지와 삶의 의지를 담은 우물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인의 고백, 도항증명, 상급(上級), 힘, 생(生), 생존(生存), 생애(生涯), 문학, 시(詩)란, 고경(古鏡), 비애(悲哀), 금물(禁物)

위와 같은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학교 문학 수업을 통해 윤동주를 이해한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윤동주를 식민지 시기의 시인으로 생각하면서 윤동주의 삶을 ‘자화상’에 있는 우물로 빗댄 것은 문학관에서의 우물에 대한 경험이 삼투되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을 가장 사랑한 청년 윤동주는 큰 결심을 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가듯이 나는 일본에 이기기 위해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 하지만 일본에 가기 위해서는 도항증명이 필요했다. 이것은 창씨개명을 하여 일본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다. 동주는 비애에 잠겼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조선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큰 고민을 했지만 결국 윤동주는 자신이 조선인임을 나타내는 최후의 보루로 성은 바꾸되 이름을 바꾸지는 않은 채로 창씨개명을 했다.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까지 버리는 고통을 감수한 동주에게서 인내하던 모습이 비춰보였다.

시인의 고백, 도항증명, 상급(上級), 힘, 생(生), 생존(生存), 생애(生涯), 문학, 시(詩)란, 고경(古鏡), 비애(悲哀), 금물(禁物)

이번 반응에서는 윤동주의 내적인 갈등을 제시하면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 윤동주의 비애를 비교적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학생의 글에서는 도항증명을 창씨개명과 연관시키면서 당시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상기시킨다. 역시 문학 교과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 외적 지식이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한 이해를 한층 풍부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 더 나은 문학관 체험학습이 되기 위하여
다시 처음의 질문을 생각해 보자. ‘문학관에서의 경험은 문학 작품의 학습에 도움이 될까?’ 몇 번의 윤동주 문학관 체험학습을 진행해 본 지금도 이 질문에 시원한 답변을 내놓기가 머뭇거려진다. 교사 개인의 의지와 용기의 부족일 수도 있겠으나, 교사 개인의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교육과정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문학관 체험학습의 경우 체험학습의 각 단계에 따라 수업 설계의 양상이 달라지고, 학생이 실제로 문학관 체험을 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단위 학교에서는 보다 탄력적이고 느슨한 교육과정 운영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은 교사의 의지만으로 실천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한편 문학관의 다양한 변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문학관은 박물관의 기능 외에 학교 문학 수업과 큰 연관성 없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10년 전의 전시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한번 가본 사람들이 다시 애써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문학관을 문학교육의 장 안으로 녹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학관에서 운영하는 문학 프로그램을 전문화시켜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에게 학점을 부과하는 교육과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학교와 문학관을 연계하는 작업은 학교 교육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해가는 학습공동체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키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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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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