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육Vol.223.여름호

미국,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에
미래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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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광훈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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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당시 소련은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고, 1961년엔 가가린을 태운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였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수준 을 자부하던 미국은 이에 자극받아 1958년 NASA를 발족시켰고, 1969년에는 아폴로 11 호로 달 착륙에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사건들은 스푸트니크 쇼크 (Sputnik Shock)로 기억되며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단 순히 우주 개발의 주도권 싸움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우주개발에 필요한 기초 과학 발전을 위해 수학,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교육으로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을 강조하고 나선 미국에게 스푸트니크 쇼크만큼이나 절박한 사정이나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일까?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2016년 1월 30일 ‘모두를 위 한 컴퓨터 과학 정책(Computer Science for All Initiative)’을 발표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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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도된 백악관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미국 전체에서 고임금을 받는 기술 분야 의 직업이 60만 개 이상이었으나 다 채워지지 못했으며, 2018년 미국 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 일자리의 51%는 컴퓨터 과학과 관련된 것 이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K-12 학교들 중 컴퓨터 과학 교육과정을 운영 하고 있는 곳은 단 25%에 불과하였다. 또한 2015년 대학과목선이수제인 AP(Advanced Placement)에서 컴퓨터 과학 수업을 운영한 고등학교는 15% 미만이었으며, 이러한 AP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변화가 그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스푸트니크 쇼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의식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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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따라잡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일상적인 삶의 윤택함과 연결시킬 것인가? 미국은 그 해답을 교육에 서 찾고 있으며, 그러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컴퓨터 과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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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이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 정책’ 발표 이전에도 주 나 대도시 단위에서 이미 컴퓨터 과학 수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2015년 6월 샌프란시스코 교육위원회(San Francisco Board of Education)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 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과정에 컴퓨터 과학 수업을 제공하는 한편, 8학년 학생에게는 컴퓨터 과학 수업을 의무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카고시도 2018년까지 고등학교 졸업 요 건의 하나로 1년간 진행되는 컴퓨터 과학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전체 초등학생 중 최소 1/4 이상에 대해 컴퓨터 과학 수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뉴욕시의 경우도 2015년 9 월 빌 드 블라시오(Bill de Blasio) 시장이 향후 10년 내에 관내 모든 공립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비전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확대되고 있는데, 플로리다주 상원은 2016년 2월 고등학교 졸업 을 위해 필요한 이수과목인 외국어 코스와 컴퓨터 과학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코딩 코스를 동등하게 간주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발효 되면 플로리다주 대학 시스템에 포함된 각종 대학들은 입학 요건의 하나로 외국어 대신 코딩 수업을 받은 학생들도 외국어 수업을 이수한 학생들과 동등하게 간주하게 될 전망 이다. 로드아일랜드의 지나 라이문도(Gina Raimondo) 주지사는 2016년 3월 미국 내 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가장 포괄적인 계획인 CS4RI(Computer Science for Rhode Island)를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7년 말까지 유치원부터 12학년에 이르는 모 든 공립학교들이 컴퓨터 과학 수업을 운영하게 된다.
오바마 정부는 해당 정책을 발표하며 약 40억 달러(한화 4조 6천억 원) 규모의 예산 요 구서를 의회에 제출하였으며, 의회가 예산 요구서를 승인하게 되면 향후 3년간 컴퓨터 과 학 교육의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이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또한 지금까지 컴퓨터 과학 수업이 적었던 학구(school district)들 중 컴퓨터 과학 교육 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 곳에 교사 연수, 교수·학습 자료 제공, 각 지역의 효과적인 파트너 십 구축 등을 위해 1억 달러(한화 1,170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립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 국가·지역사회봉사단(CNCS: Corporation for National and Community Service)을 통해 1억 3천 5백만 달러(한화 1,579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교사 연수를 실시하는 등 컴퓨터 과학 교육의 저변을 넓혀나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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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컴퓨터 과학 교육 확대를 위한 노력에는 교육부 외의 주요 정 부 부처도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국방부(The Department of Defence)는 NSF와 협력하여 새로운 컴퓨터 과학 AP 과정을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 특허청(PTO: U.S. Patent and Trademark Office)은 학생들의 흥미를 촉진할 수 있는 컴퓨터 과학 수업을 위해 교사 연수 센터를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 수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민간기업과 Code.org와 같은 비영리 단체들도 동참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컴퓨터 과학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에서의 테크놀로지 교육 및 리터러시(TEALS: Technology Education and Literacy in Schools)’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전역의 162개 학교에 컴퓨터 수업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015년 10월 이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위해 7,500만 달러(한화 877억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하였으며, 이렇게 되면 미국 33개주 3만여 명의 학생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 IT 기업과 비영리단체들은 2016년 4월 25일 의회에서 컴퓨터 과학 수업에 필요한 예산 2억 5천만 달러(한화 2,925억 원)를 요청하는 발표문을 공개하고 청원사이트(www.Change.org/computerscience)를 통해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비영리 단체인 Code.org가 주도하는 이 운동을 통해 민간 부분에서 컴퓨터 과학 교육을 위해 모은 후원금은 4,800만 달러(한화 561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여기에 참여하거나 청원에 서명한 인사에는 구글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애플의 팀 쿡(Tim Cook) 등 유명 IT 기업의 CEO뿐 아니라 월마트, 델타 항공 등 일반 기업 CEO와 30여 개 주의 주지사가 포함되어 있어 미국에서 컴퓨터 과학 교육의 확대는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라 국가의 핵심과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 과학의 중요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소프트웨어 교육 또는 코딩(coding) 교육의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캐나다는 2015년 10월 노바 스코샤(Nova Scotia)주가 코딩 교육 계획을 발표한 이후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가 2016년 9월 학기부터 학교 교육과정에 코딩 교육을 도입할 계획이며 향후 3년에 걸쳐 유치원생부터 12학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을 의무화할 방침임을 밝혔다. 영국은 2014년 2월 ‘코딩 교육의 해’를 선포하고 2014년 9월부터 초·중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로 포함시킨 바 있다.
이미 1994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정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일본 역시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에 열린 산업경쟁력회의(의장 아베 신조 총리)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하나로 초등학교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필수화하기로 논의한 데 이어 문부과학성은 2020년부터 시행할 새 학습지도요령(우리의 교육과정에 해당)에 프로그래밍 교육을 필수화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결국,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통 산업이 위축되고 관련 일자리가 줄어듦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적 어려움과,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등 새로운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을 지켜보며 느끼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컴퓨터 과학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 정책’은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수학과 과학 교육과정을 강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것처럼 기술적 혼란기와 경쟁국의 도전을 컴퓨터 과학 교육의 확대를 통해 돌파해 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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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정책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컴퓨터 과학을 교육 형평성 강화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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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2015년 컴퓨터 과학 AP 시험 참가 학생 중 여학생은 단 22%, 흑인 또는 라틴계 학생들은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앞서 오바마 대통령 이 요구한 40억 달러의 예산도 여학생과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춰 집행할 계획 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에는 모든 학생들이 디지털 경제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기초 기술(Basic Skill)인 컴퓨터 과학을 익힐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도 2015개정교육과정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 교과로 포함시켰다. 우리 역시 소프트웨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부처가 협력하고 있으며 다수의 민간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현장의 소프트웨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이 지향하는 방향을 보며 ‘모두를 위한’ 철학이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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