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19 여름호 (235호)

미래 교육을 위한 학교 공간

박인우 (고려대학교, 교수)

서론


인간과 환경의 긴밀한 관계처럼 교육환경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또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환경은 인간의 모습과 활동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그 사회의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구성하며,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능동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구축한 환경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영향을 주게 된다.
교육과 교육환경도 이와 같다. 교육환경, 특히 교육 공간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영향을 주며, 실제로 우리나라의 학교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모습 또한 지금의 학교 공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도 그 교육이 가능한 공간이 없다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좋은 교육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최적화된 교육 공간이 필요하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 1990년대에도 정보화와 국제화의 물결로 인해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주장은 수없이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우리의 교육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평가된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교육에 적합한 교육 공간이 구축되지 못한 점도 한 이유이다.
교육을 바꾸려면 그에 부합하도록 공간부터 바뀌어야 한다. 공간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제한하거나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공간은 그 시대가 지향하는 교육 활동에 적합하도록 설계·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 교육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미래 역량 육성이라는 교육목표에 부합하도록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교육적 시각에서 현재 학교 공간의 문제, 학교 공간과 교수·학습활동의 관계, 그리고 향후 학교 공간 구축에서의 핵심 고려 사항을 제시하려 한다.

교육과 무관한 학교 공간

학교 공간 중에서 핵심은 교실이다. 다음은 초등학교 교실 공간이다. [그림 1]은 1970년대 이전의 전형적인 교실인 반면, [그림 2]는 리모델링한 현재 교실 모습이다. 5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만큼 두 교실은 다르게 보인다. 교실 풍경에서 난로가 사라지고, 대형 모니터가 전면에 설치되었다. 학생의 책·걸상도 투박한 나무 재질에서 세련된 형태의 안전을 고려한 재질로 바뀌었다.

그런데 두 교실은 매우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두 교실 모두 정면에는 칠판과 교탁이 자리잡고 있고, 딱딱한 사각형 모양의 책상이 배치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학교 공간은 오랫동안 변치 않은 모습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두 교실에서 이루어질 교육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더 줄어든다. 수업이 시작되면 교사는 칠판이 있는 정면에 서고 학생들은 교사를 바라볼 것이다. 현재 교실의 경우 학생 간의 대화가 가능하도록 배치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에 적합한 형태로 언제든지 바꿀 수가 있다. 두 교실 모두 설명식 수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와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탐구학습, 문제해결학습, 협동학습 형태의 학습자간 상호작용 중심의 수업에는 불편하다. 더욱이 학생의 능동적 참여가 요구되는 수업이 설명식 수업에 비해 힘들다고 느끼는 교사의 경우, 현재 교실 공간에도 부합되는 전통적인 교사 주도의 설명식 수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 공간이 교사 주도의 설명식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축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설명식 수업은 오래 전부터 지양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장려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이전에도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력, 창의성 등은 중요하게 여겨졌고, 학습자의 수준차를 고려한 개별화, 능동적인 참여 중심의 교육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어 장려했었다.
현재의 학교 교실은 지향하는 교육의 모습보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교실에 대한 이미지와 일치한다. 누군가에게 학교 교실을 묘사하도록 하면 대개 전면에 칠판, 일렬로 된책·걸상, 설명하는 교사와 앉아서 듣는 학생들을 떠올린다. 최근에 ICT 매체가 추가되고 책상과 의자의 질이 나아졌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전과 거의 유사하다.
지난 50년간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교실 공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음은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림 3]은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형 첨단 교실’이다. 교실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지만 실물화상기, 전자교탁, 전자칠판, 학생용 노트북 등과 같은 ICT 기기를 제외하면 교실은 앞서 제시된 현재 및 과거의 교실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림 4]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교실 공간을 혁신하기 위해 금년에 제시한 개념도이다. 두 그림 모두 실제 구축된 교실이 아니라 지금까지 학교공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미래에 요구되는 교육을 위해 구축할 교실의 모습을 그린 이미지이다. 그런데도 두 교실은 현재 교실과 매우 비슷하다. 미래에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변해야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교사 주도의 설명식 교육이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교육 공간을 구축할 때 그 속에서 이루어질 교육을 먼저 고려하는 경우는 드물다. 교육보다는 교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환경을 구축할 때에도 우리는 이 이미지를 기반으로 가용한 첨단 매체를 추가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교육 공간이 원하는 수업 활동을 자연스럽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바람직한 교육에 적합한 공간을 설계하고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교육은 그에 부합하는 공간을 요구하며, 한편으로는 공간 자체가 원하는 교육을 촉진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학교에는 어떤 교육 공간이 필요한가? 새로운 시대에 기존의 교육 공간을 재구조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원하는 교육에 적합한 공간은 있을까? 적어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교 공간과 교수·학습 활동

학교 공간, 교실은 교수와 학습을 위한 공간이다. 교수·학습 활동은 매우 다양하며, 대개 의도하는 학습목표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학습목표에 따라 상이한 교수·학습 활동이 요구되며, 그에 적합한 공간이 구축되어야 한다. 학습목표가 바뀌면 공간도 바뀌어야 한다.
학교 공간과 교수·학습 활동 간의 관계에 대해서 피셔(Fisher, 2005)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피셔는 교수·학습 활동을 전달, 적용, 생성, 의사소통, 의사결정의 다섯 가지로 정하고 각각에 적합한 학습 공간을 제안하였다. 각각의 교수·학습 활동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이한 형태의 학습 공간이 설계되어야 한다. 전달하기를 위해서는 교수자가 다수의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데 용이하도록 전통적인 교실 형태가 적합하다. 이에 비해 적용하기 활동은 학습자 개인별, 집단별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문제, 자원 기반의 학습에서는 학습자가 생성하는 활동이 핵심이다. 이를 위한 공간에는 학습자가 생성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ICT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의사소통하기와 의사결정하기 활동은 다수가 의견을 공유하는데 편리한 환경이 요구된다. 특히, 실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학습에서는 공동체나 전문가에 의한 평가가 중요하며, 모든 구성원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된다.

미국의 스틸케이스(Steelcase, http://www.steelcase.com)사는 교수·학습 방법에 따라 상이한 학습 공간 모형을 제시하였다. 이 회사는 학습자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경우와 교수자의 설명이 필요할 때로 구분하여 교실 공간을 상이하게 구성하였다. 교실 공간에 설치된 책상, 걸상, 교사의 교단 등은 언제든지 원하는 형태로 배치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형태로 특별히 제작되었다.
학교 공간은 특정 활동을 촉진하는 반면 다른 활동은 불편하게 하는 형태로 구축되어야 한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교사의 설명보다는 학생의 능동적 참여 활동 중심의 수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창의성,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력, 융합 등의 역량은 설명이 아니라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에 의해 육성된다. 따라서, 학교 공간은 학습자 참여를 촉진하는 환경으로 구성하되, 동시에 교사가 전체 학급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할 경우에는 불편하게 구성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교사의 설명이 불편하도록 교단의 위치를 교실 중앙 또는
한쪽 귀퉁이에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책상도 학생이 둘러앉아야 하는 원탁이나 탁자 형태로 한다. [그림 5]는 교수·학습 활동중에서 프로젝트 기반 수업에 맞춰진 교실 공간 형태이다. 일반적인 소집단학습 교실처럼 이 공간에도 6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책상이 설치되어 있으나, 교탁과 칠판으로 구별되는 정면이 없다. 전체를 대상으로 설명하는 활동에는 맞지 않는 공간이다. [그림 6]은 책상과 더불어 의자도 집단 활동에 맞춰져 있다. 집단 구성원마다 다른 역할을 맡기고, 각 역할마다 지정된 의자색에 앉도록 한다. 최근에는 원탁을 설치한 교실도 늘어나고 있다. 원탁에 둘러앉으면 교사의 설명을오래 듣기 어렵다. 학생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공간이 특정 활동을 촉진하고 다른 활동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학교 공간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활동에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 학습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능동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구성된 공간에서 학생의 성취도가 전통적인 교실의 성취도보다 높았다. 전통적 교실에서 교사는 설명을 선호하였고, 토론이 적었다. 이에 비해 능동적 참여가 요구되는 교실에서 학생은 집단으로 학습활동을 수행하고, 교사는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도움이나 조언을 제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교실에는 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화이트 보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동료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곳의 학생들은 질문과 토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다. 단지 책·걸상의 배치를 바꾸는 것으로도 교사 주도의 일방적인 설명 활동이 줄고, 학습자 간의 토론, 동료 학습 등의 활동이 늘어났다(Brooks, 2012).

교육 중심의 학교 공간 구축

학교 공간, 교수법(교수·학습 활동), 공학매체는 서로 얽혀 있다. 공간은 공학매체가 설치되는 곳이면서, 동시에 공학매체에 의해 확장되는 곳이다. 교수법은 공간과 공학매체에 의해 촉진 또는 억제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교실 혁신은 세 가지 요소 중 공학매체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교수법과 관련하여 공간 자체를 설계하거나 매체를 재배치하는 것에는 소홀하였다.

학교 공간이 효과적, 효율적이냐에 대한 판단은 그 결과인 학습에 의해 결정된다. 원하는 학습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교육,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학교 공간을 구축할 때에는 교육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원하는 교수·학습 활동을 먼저 확인하고,

그에 부합하는 교실, 학교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융통적인 공간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교사의 일방적 전달보다는 학생의 능동적 참여와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공간도 구축되어야 한다. 교사 중심의 설명이 넘쳐나는 학교 교육을 학습자 중심으로 바꾸려면 설명 활동이 불편한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교육의 변화는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바꾸는 시도로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그대로 두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변화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이 실행될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Brooks, D. (2012), Space and consequences: The impact of different formal learning spaces on instructor and student behavior. Journal of Learning Spaces, 1(2). Retrieved from http://libjournal.uncg.edu/jls/article/view/285/275.
Fisher, K., (2005) Linking pedagogy and space: proposed planning principles. Department of Education and Training [Victoria], section 2.09. Retrieved from: http://www.edu- web.vic.gov.au/edulibrary/public/assetman/bf/Linking_ Pedagogy_and_Space.pdf.
Radcliffe, D. (2009) A pedagogy–space–technology (PST) framework for designing and evaluating learning places, in: D. Radcliffe, H. Wilson, D. Powell & B. Tibbetts (Eds) Pro- ceedings of the Next Generation Learning Spaces 2008 Colloquium (Brisbane, Australia, University of Queensland). Retrieved December 11, 2017 from http:// www.uq.edu.au/nextgenerationlearningspace /UQNextGeneration Book.pdf.

사진출처
http://www.koscaj.com/news/photo/ 201206/60525_12558_293.jpg
https://happyedu.moe.go.kr/utl/web/imageSrc.do?path=20180813&physical=8B82A2DB275949F- CA25370028505BA79&contentType=image/jpeg
https://img.sbs.co.kr/newimg/news/20170521/201051110_1280.jpg http://m.mediapen.com/news/view/845)94 https://www.steelcase.com/products/collaborative-chairs/node/ http://www.lib.rmit.edu.au/guides/learning_spaces /Projectbased.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