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Vol.224.가을호

북적, Book적 도서관이 변하다. 어떻게

d_03_1_03글 : 조은주 / 중암중학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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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한 학생이 사서인 나를 찾아 왔다. D외고 프랑스어과에 막 진학한 다영(가명)이다. 손에는 작은 비스킷 꾸러미를 들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웃는 표정은 해맑기 그지없다. “다영이구나. 어쩐 일이야?”, “선생님, 다른 애들은 대부분 중간고사 끝나고 병원 간다고 하는데, 저는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병원에는 왜?”, “입학하여 중간고사까지 공부하랴, 학교 적응하랴, 애들이 모두 힘들어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선생님하고 단련돼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던걸요.”
신학기가 되면 도서관은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듯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진급처리, 도서관 연중계획 수립, 신간도서 수서목록 작성, 학교 내 타부서 협조 등. 그런데 나에겐 1년 중 가장 마음이 설레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다영이를 처음 만난 날도 3월 초였다. 학교도서부원이 확정되던 날, 다영이는 키는 크지만 유난히 마르고 가는 실핏줄이 보이는 외모에 자신이 없는 듯 주저하는 말투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날로부터 2년, 우리는 동고동락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2학년 10명, 3학년 10명의 도서부원과의 동고동락이었다.

다영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다영이는 꿈이 뭐야?” 사실 이 질문에 10명에 6~7명 정도의 학생은 아직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다영이의 답은 또렷한 게 아닌가. “선생님,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요.”, “어 그래? 그럼 어떤 일을 하는 외교관이 되고 싶은지 물어볼까?”, “어떤 일요? 아직은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는데요.” 1학기 ‘꿈’찾기를 주제로 하는 lecture concert에서 다영이는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 저자 반기문>를 읽고 자신의 꿈을 PPT로 만들어 발표했다. 수요일 점심시간의 약 15분의 발표시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다영이는 매우 당당했다.
3학년이 되고 다영이는 도서부장이 되었다. 도서부장으로 어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였다. 볼살이 오르고 표정은 점차 밝아졌으며, 그의 리더십의 영향으로 수요행사는 자생적으로 자리매김해 갔다. 그리고 다영이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어떤 외교관이 되고 싶은지, 미래 자신의 진로를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빈곤 해소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이 생겼다. 특히 빈곤이 심각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불어를 전공하면 내 꿈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불어과에 지원하기로 결심하였다. (중략)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국제기구에서 인턴 및 봉사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넓혀갈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IBRD, FAO 등에서 제3세계의 기아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어 빈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 고입 자기소개 글쓰기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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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점심 식사 시간 후 15분. 나의 표정은 즐거움으로 흐뭇하다. 학생들이 잘해서 흐뭇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서 흐뭇하고, 많은 학생들이 몰려와서 흐뭇하다. ‘수요음악회’가 있는 날이면 뒤에서 지켜보는 나의 심장은 콩닥콩닥한다. 마치 내가 무대에 서서 공연이라도 하는 듯이. 무대에 선 학생들은 자신이 준비한 것을 맘껏 뽐낸다. 합주(플룻, 바이올린, 기타), 노래, 리코더, 바이올린, 우쿨렐레, 컵타, 피아노 연주 등. 어떤 학생은 연습 때와는 사뭇 다르게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한없이 예쁘다.
수요일 ‘점심 디저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의 아침은 30분 일찍 시작되었다. 아침 8시, 도서관 문을 활짝 열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학생이 한두 명씩 찾아온다. 자신이 준비하는 발표 준비를 위해서다. 나는 옆에서 연습과정을 지켜보며 지도한다. 2015년 1학기는 <‘꿈’을 피우다>라는 콘셉트로 lecture concert를 하였는데, 도서부원 한 명이 책을 선정하여 읽고 수요일 점심시간에 딱 15분 동안 발표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참가자는 도서부원이고 교내 학생들도 몰려든다. 첫 번째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연결해 보는 콘셉트였다. 15분의 발표를 위해 3~4회의 교정과 연습이 반복되고 어느 순간에는 숙련된 모습으로 발표에 임하게 된다.
d_03_1_11  ‘글벗누리 도서관’은 중암중학교 도서관의 이름이다. 도서관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도되고부터 학생들은 날로 북적북적 거렸다. 그러자 전임 교장님께서 도서관 이름을 공모하여 예쁜 이름을 지어 주셨다. 손수 자를 들고 와 길이를 재고 높이를 확인하여 제자리를 잡아 달아주셨다. 그때의 협조와 고마움이란…….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2016년 신학기에는 또 하나의 기쁜 일이 생겼다. 올 해 부임하신 교장님께서는 도서관에 피아노를 턱하니 들여놔 주신 것이다. ‘도서관에 웬 피아노?’ 남들은 생소한 풍경일지 모르겠으나 나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피아노곡을 발표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얼마든지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작년 2학기 콘셉트는 <‘끼’를 깨우다> 이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2016년 1학기에는 격주로 진행된 바 있다.
3학기 째 도서관에 ‘꿈’과 ‘끼’를 키우는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도서부원들은 홍보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3학년의 역할은 발표 전 주부터 준비와 리허설 등, 진행을 위한 전반적인 것을 점검하는 것이다. 2학년은 홍보영상을 제작하여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방송에 삽입한다. 포스터를 만들어 아침등교시간을 이용해 홍보하는 것은 필수이다. ‘점심 디저트’ 15분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추첨을 통해 경품도 제공한다. 이 모두 귀찮아 할 법한데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잘 움직여 주고 있다.
도서관 ‘점심 디저트’ 15분 프로그램이 있고 나면 “선생님, 아까 점심에 발표했던 그 책 빌리러 왔어요.”하고 하교 길에 도서관을 찾는 학생이 꼭 한두 명씩은 있다. 책에 대해 궁금해 하고, 책을 읽고 싶어 한다. 프로그램이 시작될 무렵에는 교장님, 교감님, 그리고 관심 있는 교사가 2층 글벗누리 도서관으로 올라와 칭찬하고 격려하신다. 올 해에는 무려 4:1의 경쟁을 뚫고 도서부원이 구성되었다. 도서부원만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소문 덕택인 듯하다. 점심시간 명예사서 어머니들도 행사 도우미를 맡고 행사장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다. 어머니 봉사자들도 몇 배나 늘어 올 해는 30명 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암중학교 글벗누리는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즐기는 공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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