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182018 겨울호 (233호)

서울시 교육현장 갈등유형별 효과적 대응 및 시스템 구축방안 연구

박지호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 이 글은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2018 위탁연구과제 논문의 일부를 발췌, 재수록한 글이다.

 

갈등은 인간관계와 사회에서 불가피하고 불가결한 현상이다. 교육현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인간관계의 밀도가 대단히 높은 편이라, 자연히 갈등이 자주 벌어지게 되고 곧잘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서울시 교육 현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시교육청의 정책 및 사업과 관련해, 또는 각급 학교를 비롯한 관내 교육현장에서 집단민원과 갈등이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다. 그로 인해 정책·사업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갈등에 따른 비용과 폐해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2014년 이후 현 교육감 체제에서 큰 폭의 교육정책 변화가 시도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반발하는 측과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수반됐다. 자립형 사립고 지정 취소 관련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교육행정에서의 정의와 복지, 민주와 인권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관련 사업을 적극 펼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2015년 동대문구 성일중학교 내 장애인직업훈련센터 건립 관련 갈등에 이어 2017년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급 학교 차원에서도 다양한 갈등이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다. 지역사회와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사립학교의 경우 재단과 교직원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학교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직원 간, 교사와 학생 간, 학생들 간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벌어진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는 학생들 차원의 문제를 넘어 학부모 및 교직원들도 관여되는 심각한 양상으로 비화되곤 한다.

교육현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효과적 대응방안을 모색·제시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 주요 갈등사례를 분석하고 유형화하는 게 우선이다. 본 연구에서는 서울시 교육현장의 각 분야·영역에서 벌어지는 갈등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주로 많이 발생하는 갈등 유형을 선별해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갈등의 쟁점 및 문제의 성격에 따라 갈등을 <그림 1>과 같이 6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각의 유형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제시했다.

 

 

일차적인 갈등 유형 분류는 갈등이 발생하는 영역 별로 구분하는 것인데, 교육청(또는 교육지원청) 그리고 개별 학교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영역별로 구분한 결과 1)교육정책 갈등, 2)교육행정·사업 관련 갈등, 3)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 4)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과 같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는데, 본고에서는 지면의 한계상 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과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 중 일부분만 다루고자 한다.

1. 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

학교와 인근 지역사회 주민들 간의 갈등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기본적 욕구의 침해로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된 측면도 크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공적 가치를 위해 사적인 피해를 감내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면, 현재는 숭고한 공적가치를 위한 사업이 진행된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개인과 공동체에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한층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또한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관심이나 민감도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측면이 있어, 학교 관계자 및 학생, 학부모의 경우도 그런 인간적 욕구나 이해관심사가 침해될 경우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해당 연구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 중 학교 인근에서 이뤄지는 정비사업으로 인해 학교와 벌어지는 갈등 사례와 학교 시설물 사용과 관련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학교간에 발생하는 갈등 사례에 주목했다. 서울시의 주택사업지는 총 511곳으로 이중 358곳이 학교 등 시설에 연접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2016년 10월 기준).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지 인근 직·간접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갈등이 발생하고 있고, 향후 다수의 예정지에서도 갈등 발생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에만 2만㎡ 내 학교 1곳 이상 배치되어 있고, 주택사업지 70% 이상이 학교 인근에 건설되어 있다. 사업시행자가 이격거리, 일조권, 소음 기준 등의 합법적인 기준을 준수하며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학교 주변 지역의 정비 사업으로 인해 유무형의 다양한 부정적 영향(소음, 분진, 일조권, 통학로 안전 등), 즉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의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 effects)’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1)

그런 점에서 정비사업지 인근 학교와의 갈등을 완화하거나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재건축 사업지와 인근 학교와의 갈등에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이격거리와 관련된 요소다. 이격거리가 적을수록 일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 소음 및 분진 등의 요소도 이격거리와 직간접적인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조량과 학생들의 수학 능력이 비례하므로 이격거리 및 일조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사업지의 경우 학교와 학부모의 강한 반발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공사 중 소음, 분진 및 통학로 안전 문제도 주요한 갈등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재개발 공사장의 소음으로 인한 학습권 침해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 건축사업 주체의 주변 피해 민감성 여부도 주요한 갈등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즉 건축 사업시행자 측이 ‘불편 제공의 주체’라는 인식 여부도 갈등의 확대와 완화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 인근에서 정비사업이 진행될 경우, 위에서 언급한 갈등 유발 핵심 요인을 통해 상황 진단이 가능하며,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파악해 대응방안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이격거리가 비교적 충분한 경우, 통학로 안전 및 분진 문제가 해결 예방을 위한 핵심 요인으로 분석이 가능하고 이에 대한 사업시행자 측의 예방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격거리도 상대적으로 적고, 조합 및 시공사 측의 피해 저감 대안 적용도 낮은 상태라면 교육청의 개입을 통한 협의체 구성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분석을 통해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구청이나 교육청이 주관하되 조합 및 시공사, 학교 및 교육청 관계자, 구청 및 서울시 담당자 등으로 구성하며 조정과정의 전반적 운영 및 회의 진행은 갈등조정 전문가(facilitator)가 맡도록 한다. 협의체의 주요 의제 및 논의 방향은 이미 발생한 피해 및 향후 예상되는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며, 학습권 증진을 위해 지속적 소통 및 협의 채널 구성 방안을 마련하고, 이행 방안 및 로드맵을 만드는 것으로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은 비교적 상호관계 갈등의 측면이 적고 정체성이나 가치관과 관련된 측면도 적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기본적 욕구의 침해로 야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쟁점과 이해관심사를 잘 분석하고 파악한 뒤, 이해당사자들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논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협의 구조를 마련토록 구조화하는 게 핵심이다. 학교와 지역사회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힘에 의한 저항이나 소송 등의 문제해결 방식보다는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여 대화를 통해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문제해결 방식이 제안될 수 있다.

2. 학내 구성원 간 갈등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은 갈등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 당사자가 개입하며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사 대 학생의 갈등이 교사 대 학부모 혹은 교사 대 교사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하고, 학생 간 갈등이 학부모 간 갈등 혹은 교사 대 교사 및 학부모 대 학교의 갈등 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시작 국면에서의 갈등 당사자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갈등 유형을 1)교직원 간 갈등(업무분장을 둘러싼 갈등), 2) 교사와 학부모 또는 학생의 대립(교권 침해로 프레이밍된 갈등), 3) 학생 간 갈등(학교폭력) 정도로 구분했고, 본 지면에서는 이 중, 교직원 간 업무분장 갈등과 학생 간 갈등의 제도적 측면만 제한적으로 다루려 한다.

교직원 간 갈등의 대표적 유형은 업무분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개별 학교 차원에서 신규 업무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업무분장 갈등이 증대되고 있으며, 학령인구감소로 교원 정원이 감소하여 각급 학교에서의 업무 부담이 증대되는 추세이다. 신학기 전후로는 교육 신문이나 각종 게시글에 학교에서의 업무분장으로 인한 갈등 및 관리자의 고충에 관한 내용이 여럿 등장하였으며, 최근 지방 선거 국면에서는 제주도교육감 선거를 둘러싸고 교원과 교무행정인력 및 행정직 교직원 간의 업무분장 갈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일어난 문제를 학교 밖으로 드러내
기를 꺼리는 학교 풍토 상, 업무 분장을 둘러싼 갈등은 학교 밖으로 표면화되는 경우가 드물고, 그렇기에 더욱 그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선행 연구와 본 연구의 면담 내용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듯, 교장의 리더십은 업무분장 관련 교직원 간 갈등의 원인이자 해결 방안이기도 하다. 앞서 여러 번 살펴 본 김이경(2006)의 연구에서는 우수 학교장의 지도 행위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우수 학교장들의 지도 행위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여 학교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토론과 협의를 자주 활용하며, 학교의 각종 위원회를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둘째, 우수 교장들은 강한 과업 추진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결정된 과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교장이 솔선수범을 보이고, 업무를 공평하게 배분하여 믿고 맡기며, 구성원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교사들과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강하게 맺고, 그들을 수시로 칭찬하고 격려하였다.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 중간 점검 및 조정 역시 우수 교장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과업 추진상의 특성이었다. 셋째, 우수 교장들은 조직 내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갈등이 발생될 경우에는 설득을 하거나 수용을 하며, 때로는 다수결에 따라 갈등을 해결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갈등 해결 시에 우수 교장들은 학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판단 준거로 활용하였다.”

 

이중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의 학교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권위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점이다.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전환기인 요즘, 아무리 교사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해도 교장이 왜 움직여야 하는지를 교사들에게 설득해 내지 못하면 교장과 교사들은 업무 성격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갈등만 증폭될 뿐이며, 결국 교장의 열정은 좌초될 수 있다.

협상학에서는 공동의 목표에 집중하게 하는 것을 성공적 협상의 출발점으로 본다. 따라서 교장은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업무가 있을 때 전통적인 “교장의 권위”나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노련한 협상가가 되어야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이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그 교육적 가치를 구성원과 합의해 내고, 구성원 간에 업무 성격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였을 때에도 학교의 각종 위원회나 교직원회의 등을 활용하여 구성원들이나 갈등 당사자들이 학교의 궁극적 목표와 연관지어 업무의 가치를 합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교 조직에서 교장이 단독으로 의사결정하여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시대는 끝났다(김이경, 2006, 258쪽).”거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제 이전과 같은 카리스마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소통하고 공감하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민윤경 외, 2018).”는 연구자들의 지적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리더십은 개인적 특성에서도 기인하지만 교장 양성 과정을 통해서도 기를 수 있으며 마땅히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에 교장 자격 연수 등에서 시대 흐름에 맞는 의사소통 기술 및 효과적 갈등 대처 방식을 함양하여 교장들이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김이경의 주장을 교육청의 연수 담당자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교권 갈등에 처한 교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위의 대응 매뉴얼에서 ‘교사’를 ‘학생’으로, ‘학교’나 ‘조직’을 ‘학급’으로, ‘업무’를 ‘학습 내용’으로 바꾸면 이는 교사들에게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사소통 지침이 된다. 교사의 교육권, 학생의 학습권 및 교사와 학생 모두의 행복권 달성을 학생과 교사 모두의 공동 목표로 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면, 교사는 학생과 친밀하면서도 원칙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앞의 ‘업무분장 갈등의 쟁점’에서 살펴 보았듯이, 합의에 의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업무분장 원칙을 확립한다면 업무분장 갈등의 쟁점 중 상당 부분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업무분장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사례로 학교 차원에서 인사위를 열기 전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구성원들 간 사전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지방의 한 사립 고등학교는 교사와 관리자들이 함께 인사위 규정을 만들어 합리적인 인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이 학교도 예전에는 교장이 부장이나 담임 보직을 당일 아침에 일방적으로 발표했지만, 교사들이 교장의 인사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위 규정을 세부화하고 재심 절차를 만들었다. 교사들이 끊임없이 문제제기한 끝에 내부적인 문제의식이 공론화되고 대부분의 교사가 함께 요구하니 교장도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2)

인사위원 구성을 총 6명으로 하되, 전체 교사들이 9명을 먼저 선출한다. 이 가운데 다득표자 상위 3명을 선정하고 나머지는 6명 가운데 3명을 교장이 선임한다. 교사 스스로 원치 않는 경우 인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인사권자인 교장·교감이 직접 교사에게 인사를 의뢰하며 당위성을 설명하고 본인이 동의하면 맡긴다. 학교 입장에서도 교사가 원치 않은 일을 맡았을 때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학교에서는 이렇게 규정을 바꾼 뒤 인사 결과에 대한 교사들의 이의제기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3. 교육적 해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교육 분야 갈등의 특수성이다.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체로 갈등의 일반적 속성을 똑같이 갖는다. 그런 한편,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우선 큰 차이점은 대부분의 갈등이 학교 등 교육적 상황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런 갈등에 대응하는 과정이나 방식에서다. 갈등을 해결 또는 예방하기 위한 대응방안도 교육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폭력 문제도 교육적 해결이 끼어들 공간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행 학교폭력예방법 하에서는 사안처리 과정 중 처벌이 아닌 교육을 목표로 화해를 위한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학교폭력의 은폐 시도로 읽히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를 위반한 위법 행위로 인식될 소지가 크다. 그러므로 현재의 학교폭력예방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2018년 4월 서울시교육청과 국회가 공동 개최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제도개선 정책토론회’에서는 그간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던 내용을 종합한 개선안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학폭위의 학부모 비율 축소, 외부 전문가 비율 확대: 위원의 절반을 구성하는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문제 심의를 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며, 피·가해 학생과 자녀와의 관계에 따라 객관적으로 심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 있음.

● 갈등 조정 기간 운영: 현행 제도는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 피·가해학생을 즉시 분리하여 갈등 조정 기회가 없고, 사소한 문제도 법률에 의한 학교폭력으로 처리되면서 갈등이 증가한다는 문제가 있음. 이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진정한 사과와 관계 회복을 위한 학폭위 전 7일 정도의 갈등 조정 기간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음.

● 재심 등 불복 절차 일원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재심청구 기관이 이원화되어 있어 학교 설립(국, 공, 사립)에 따라 재심 기회나 경로가 다르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 재심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하여 심의의 형평성이나 심의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손상시키고 있음. 이에 교육청에 ‘학교폭력재심특별위원회(가칭)’를 마련하여 재심과 행정 심판 절차를 통합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며 일원화할 필요가 있음.

 

이날 토론회에서는 제시된 대안에 대해 각급 학교에서 외부 전문가를 어느 정도나 위촉할 수 있는지, 피해자가 충분히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학교 측에서 조정을 권유할 경우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받게 될지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개선안은 기존의 법령에 비해 처벌보다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학교 교육력의 낭비를 막으려 했다는 점에서 기존 학교폭력예방법의 접근보다 교육적이라 하겠다. 특히 토론회 발제자 중 강화여중 안보경 교사는 회복적 생활 교육을 접목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여 제안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토론회에서는 학생부 기재 조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 조치는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요원하게 하고 갈등을 증폭하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정연(2017) 또한 학교폭력 관련 판결 및 불복 사례를 고찰한 논문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지침이 학교폭력의 억제를 의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사건이 왜곡되거나 법적 분쟁이 지속되는 점을 들어 이 지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선 학교에는 학생부 기재마저 없어진다면 학생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는 일반 교사들의 우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 규율 문제에 견주어 살펴보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께 대들었던 사실이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해도 학생들은 선생님께 대드는 행동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선생님들께 혼나거나 선도위원회에 회부되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몹시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교폭력 문제에 휘말려 학교에서 곤욕을 치르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회피 동기로 작용한다. 법이 범죄 억지력을 지향하는 것은 맞으나, 사형마저 가능케 하는 형법이 존재한다 해도 각종 강력 범죄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갈등을 큰 분쟁으로 만들어 폭발하게 하고 사소한 사건조차 재심 및 소송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핵심 기제인 가해 사실 학생부 기재 조치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2018년 4월의 공청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예방법은 아직 개정되지 않았다. 학교폭력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폭력예방법은 빠른 시일 내에 개정되어야 한다. 여러 교육 주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교육과 관계 회복에 초점을 두어 법령을 개정해야만 한다.

 


1) 박지호.(2016). 주택재개발 재건축지와 인근시설 간 갈등분석. 한국행정학회 동계학술세미나

2) 한겨레. 2016.03.14.“학교 옮겨라!”…독선적 인사에 곳곳 ‘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