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정보Vol.226.봄호

수업과 평가의 혁신으로 행복교육을 그리다

|배교선

Ⅰ. 수업을 변화시키는 평가, 평가를 변화시키는 수업

작년 여름, 유의어와 반의어를 다루는 수업 시간이었다. 제시된 신문 칼럼을 읽고, 이 안에 등장하는 단어 중 10개를 고른 후, 그 단어와 유의관계나 반의관계에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지 짝과 함께 탐색해 보는 수업이었다. 보통 반의관계에 있는 단어의 짝으로 짧다/길다, 밝다/어둡다, 열다/닫다 등을 예로 들었는데, 한 학생이 특이하게도 읽기자료에서 ‘평가하다’ 라는 단어를 골랐다.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OO아, 모든 단어에 다 그에 대응하는 반의어가 있는 건 아니라고 선생님이 설명했지? ‘평가하다’라는 말에 반의어가 있을까?”
“있는 거 아니에요? ‘평가 당하다’요.”

그 학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천진난만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능동/피동 개념을 지금 설명해야 하나 잠깐 고민 끝에, 학급 전체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해 보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평가하다’의 반대말이 있다고 생각하니?”
“‘평가 당하다’, 아니에요?”

같은 대답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평가받다’도 아니었다. ‘평가 당하다’였다. 곱씹어볼수록 ‘당하다’라는 표현이 마음을 무겁고 씁쓸하게 했다. ‘평가받다’라는 중립적 단어 대신, ‘평가 당하다’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는 것은, 아이들이 평가라는 개념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며 심지어 공격적으로 느끼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모름지기 평가란, 피평가자가 자신의 배움과 성장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여야 한다. 평가자에게 시의적절한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후속 학습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유의미한 지표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교수요목을 분석하고 문항을 개발하는 일이 결코 평가의 전부가 아니다. 학생이 성취해야 할 도달점이 어디인지 성취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평가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데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고 있다. ‘성취기준’이라는 말이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꽤 오래된 셈이다.

그러나 교과별, 단원별로 ‘성취기준’을 마련하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다. 이제 평가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사후에 테스트하는 개념(Assessment of learning)으로부터 ‘수업 중’에 일어나는 배움의 과정(Assessment as learning)으로서, 그 위상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요즘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이 3요소의 유기적 연계성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평가의 혁신을 도모하려면 수업 방법 개선에 대해 논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창의적인 수업 모델은 다시 이를 뒷받침하는 적합한 평가 방법의 혁신을 요구한다. 이들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Ⅱ. 수행평가, 진화를 꿈꾸다

우리는 누가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지평을 넘나드는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하느냐가 고부가가치로 연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우리 교육에도 변화가 절실해졌다. 이에 따라 전통적 강의식 수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모둠 수업, 토론 수업, 발표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 다양한 형태로 수업 장면을 확장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수행평가’가 도입되었다.

사실 수행평가는 아주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996년 11월 국립교육평가원이 발간한 ‘수행평가의 이론과 실제’라는 간행물을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거론되었으며 1999년부터 전국 학교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런데 2017년 현재, 여전히 우리 사회는 외국에 비해 창의적인 인재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학생들의 ‘시험’스트레스 정도는 전 세계에서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다시 한 번 우리 교육의 평가 체제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또 다시 수행평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전혀 낯설지도 참신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수행평가만이 평가 혁신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행평가는 정기고사의 객관식 지필평가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학생의 인지적, 정의적 발달 수준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또한 교과에서 배운 지식을 실생활의 맥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수행’ 경험을 부여함으로써 학생들의 실질적인 역량을 개발하는 데 효과적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핵심 역량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하고 새로운 탐색을 거쳐 교육과정에서 핵심 역량을 자기 관리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지식 정보처리 역량 등으로 개념화하고 각 교과별로 교과 핵심 역량을 설정하였다(김경자 외, 2014)1). 수행평가는 이러한 역량 기반 교육과정의 본질적 목표를 구현하는 데 최적의 평가 전략이다. 문제는 수행평가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내실화되지 못한 데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교사들이 수행평가가 교육 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활용되어 실제 성과를 드러내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은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 이제 수행평가는 우리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을 촉진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가로서 다시 한 번 진화를 꿈꾸고 있다.

<표1> 수행평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Ⅲ. 과정 중심의 평가-수업 모델(중학교 국어교과를 중심으로)

이렇듯 평가의 혁신을 위해서는 문제점 및 개선 방안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평가 개선의 본질은 수업 혁신과 맞닿아 있기에, 역량기반 교육과정 이 효과적으로 구현된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 모델 개발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관련 핵심역량을 추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수업들을 고안하려는 연구가 가속화되어야 한다.

물론 담당 업무와 학생생활지도 및 상담 등으로 수업과 평가에만 온전히 에너지를 쏟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교과서까지 재구성하고, 수업 방법을 과정중심 평가와 맞물려 돌아가도록 개선하라는 것이, 나와 같은 평범한 선생님들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별 교사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이 함께 협력하여 수업과 평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들이 확대되고, 관련 자료들이 축적 된다면 길은 분명 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하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직 수정· 보완해야 할 것이 많아 부끄럽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기획한 나의 수업 아이디어를 본지를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표2> 수업 구현 사례 (중학교 국어과)

 

수업의 특성 및 주안점

1 ) 수행을 완성하기까지 단계별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수업
교 과서 진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조건 아래, 호흡이 긴 프로젝트형 수업을 기획하였다. 장기 프로젝트형 수업은 교사가 학생의 수행 과정을 관찰하고 적시에 피드백을 부여하기 용이하며, 학생 스스로도 프로젝트를 완성하기까지 자신의 발전 과정을 체감할 수 있어 성취감과 자아효능감을 고취할 수 있다.

2) 수업 과정 중 평가가 병행되는 수업
수업 단계별로 학생 활동이 곧 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적절한 평가 도구를 고안하려 했다. 특히 중간에 자기평가 및 또래평가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 구조로 수업을 구성하여, 매 차시 학생 활동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교사의 부담이 경감될 수 있도록 하였다.

3) 창의적·입체적 문학 활동을 통해 핵심역량을 함양하는 수업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 감상과 창작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심미적 언어의 수용과 심미적 언어로의 형상화를 적극적으로 체험케 하고, 다양한 관련 역량을 배양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학생들은 ‘미니단편소설집 만들기’라는 모둠별 미션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향해 타인과 협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수업은 개인의 문학적 감수성과 창작 능력을 고양할 뿐 아니라, 의사소통능력이나 상호작용능력 같은 범교과적 역량을 계발하는 데도 유의미한 도움을 주리라 본다.

Ⅳ. 행복한 우리 교육을 꿈꾸며

학생, 학부모, 교사, 우리는 모두 행복한 교육을 꿈꾼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모토도 ‘행복교육’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에게는 왜 ‘교육’과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이질적으로 느껴질까? 교육에는 평가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으레 ‘평가’하면 ‘시험’을 떠올리고, 학생들에게 시험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부담일 뿐이다. 아이들은 늘 평가를 ‘당하고 있다’는 인식의 틀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행복 교육의 실현은 요원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학생들이 배움과 평가를 통해 행복하게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평가가 학생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배움의 과정과 성장의 모습을 점검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평가의 목적이 달라져야 한다. 학생을 위계화하거나 선발하려는 목적의 평가가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완전히 배제하자는 뜻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평가가 평가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평가는 우리 교육이 품어야 할, 평가의 한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참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가를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평가를 바라보는 교사의 관점, 더 나아가서 이 사회의 분위기부터 변해야 가능한 일이다. 수행평가는 이러한 혁신의 출발점이자 도달점이 될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우리 선생님들의 치열한 고민과 반짝이는 지혜가 응집되고 있음을 나는 안다. 학생의 성장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도 성장하는, 그런 멋진 수업을 꿈꾸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우리 교육의 미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