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1 가을호(244호)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을 함께 꿈꾸다

이선화(신현고등학교, 교사)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우리 사회를 덮치면서, 매일매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우울한지 우리는 몸소 겪었습니다. 2020년을 떠올려 보면, 당시 창의체험부 부장을 맡고 있던 터라 2월부터 4월 고3 첫 수업까지 공문이 올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여러 번 학사일정을 바꾸었는데, 그게 7번쯤 되니 미리 준비한들 뭐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시간들 속에서도 여러 선생님들은 서로 배우고 이야기하며 그 힘든 순간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꾸기 위해 애를 참 많이 쓰셨지요. 교직에 들어온 지 25년이 넘은 저도 새로운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지요. 국어교사지만 올해는 2학년 대상으로 주 1회 진로수업을 전담하게 되었고, 작년에 배운 블렌디드 수업 방법을 어떻게 녹여낼까 하는 작은 설렘도 있었습니다. 진로수업을 준비하는 내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함께 배울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긴 고민 끝에 ‘융합독서수업’을 구상했습니다. 1학기에는 문학과 과학을 접목한 SF 소설을 읽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었지요. 눈에 띄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의 발전도 알아보고, 문학 작품에 드러난 미래사회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가 실천할 것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격주로 등교하다보니 장편소설을 도전하기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예상되어서 결국 SF 단편을 읽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몇 해 전부터 서로 다른 교원학습공동체에서 다양한 교과의 선생님들과 토의를 했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작가가 과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습니다. SF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이, 과학적인 지식은 팽개치고 허무맹랑할 수 있는 판타지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또한 소설집에 실린 7개의 단편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활자보다는 영상에 더 꽂힌 아이들을 매혹적인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 할 다양한 SF 소설을 더 찾아봤지만, 결국 이 소설집에 처음 실린 ‘순례자 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첫 작품으로 정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에서 가짜 뉴스를 거름망 없이 자주 접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점차 늘어 나는 것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3월 낯선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진로 시간에 왜 SF 단편소설을 읽는지 차근차근 설득하였고 이후 2차시에 걸쳐 첫 작품을 읽었습니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자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기 마련이므로 본문 중간중간에 내용 확인 질문을 넣은 읽기 자료로 재편집하였고, 아이들은 이를 토대로 읽으며 독서기록장을 채워나갔습니다. 원격수업을 할 때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 배아가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지를 알아보고자 유전자 편집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 지에 관한 영상을 보며 아이들도 저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업에는 모둠별 첫 토의 활동을 했습니다. 토의할 주제는 다행히도 교생선생님과 함께 준비하며 정했습니다. 아이들은 작품에 드러난 차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차별을 해결하려는 주인공의 행동은 어떠한지, 우리 삶에서는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작년을 허무하게 보냈던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이름을 묻고 친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
올리브는 델피와 함께 지구에 남았어. 그리고 델피와 분리주의에 저항했지. 그녀의 어머니, 릴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애썼던 거야. 어쩌면 지구로 떠나기 전, 올리브가 마을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 바로 순례의 관습인지도 몰라.

우리는 자라면서 바깥 세계에 관한 호기심을 느끼고 이 평화로운 마을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를 갈망하게 돼. 그리고 마침내순례의 길에 오르지. 올리브는 그렇게 우리가 반드시 한 번은 이 세계를 떠나도록 만들었어.
지구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외면해왔는지, 우리가 우리만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아가는 동안저 행성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오라는 의미였겠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김초엽)’ p51

작품 안팎으로 살펴 본 차별과 혐오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그릇된 고정관념에서부터 시작함을 알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후 원격수업에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를 소개해주며 자신이 들었거나 평소 쓰는 말 중에서 차별과 혐오 표현들을 찾아보고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적는 글쓰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두 번째 SF 단편소설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전송절 기념사(곽재식)’를 선정하여 읽은 후 토의활동을 했습니다. 기존의 동영상을 활용하여 과학적인 지식도 쌓고 윤리적 상상력도 키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원격수업과 집합수업을 격주로 진행하니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진로수업은 시험도 없으니 급할 게 없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수업이었고, 저 역시 준비하는 과정도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도 모두 행복했습니다. 세 번째 SF 단편소설은 수업평가 때 80%가 넘는 학생들이 1학기에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 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바로 처음에 언급한 책 제목과 동명의 소설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 <승리호>를 포함해서 히어로물에 이르기까지 이미 아이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소재가 우주입니다. 하지만 스펙터클과 CG 같은 외적인 것에만 현혹되지 말고, 우주와 인간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선택했습니다. 읽기활동 후 우주 탐사의 역사와 웜홀 등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알려주었고,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 <silver hair express (혁오 밴드와 장기하)>도 들려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융합독서수업이지요.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한 아이들의 글을 읽어 볼까요?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냉동 기술을 활용해 잠들었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100년 넘게 우주선을 기다리다가, 결국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로 출항하는 노인이 안타까웠다. 웜 홀이 있는 곳에서만 다른 우주로 가는 것이 가능했기에,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노인이 얼마나 절망스러울지 소설 속 노인의 말을 통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라는 문장을 보고, 출항을 했지만 언제 도착할지 모르기 때문에 또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한참 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노인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없애버린 인간들의 이기심에 분노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몰입하면서 읽게 해준 소설이고, SF는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준 소설이었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신현고 2학년 이00

SF 단편소설을 다 같이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글쓰기로 마무리하는 모습은 늘 기특하면서도 교사로서의 바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SF 장편소설의 매력은 단편과는 다르기에 장편소설도 맛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솔직히 2월에 이 고민은 했었고,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신에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융합도서 에세이 대회’를 열기로 했지요. 모든 대회는 학기 초에 교육계획서에 들어가야만 하니까요. 이를 위해 도서관에 여러 권을 미리 비치해두고 대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말고사 끝나고 대회를 하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읽은 후에 독후감을 적은 사람만 참여가 가능하다고 한 달 전부터 반복해서 안내를 했습니다. 독후감 작성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출판사 서평 같은 요약만 읽었는지, 동영상으로 책 소개만 보고 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아이들이 적은 어휘력을 보면 표절 여부도 알 수 있고요. 대회를 위한 SF 장편소설은 무엇으로 할지도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수준에도 맞으면서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주제도 수업 시간에 토의한 내용과 연결되면 좋겠기에. 그래서 국내 작품으로는 인간과 인공지능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한 스푼 의 시간(구병모)」과 국외 작품으로는 SF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를 골랐습니다. 대회 날 아이들이 써 온 독후감도 훌륭했지만 제출한 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종의 서평 쓰기인데 아이들 스스로 제목으로 쓸 질문을 미리 생각해 오도록 했기에 글의 내용도 깊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만들어 온 질문을 볼까요?

SF소설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멋진 신세계>를 읽고
진정한 행복은 실현 가능할까? <멋진 신세계>를 읽고
진정한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멋진 신세계>를 읽고
책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로봇과 인간의 경계는 무엇인가? <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은 공존할 수 있는가? <한 스푼의 시간>을 읽고

서평은 나만의 상념일 수도 있는데 혹시나 『서울 교육』을 읽는 여러 선생님들께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얕고 짧은 제 생각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한 독서수업 이야기가 부담이 덜했습니다. 제 글이 2학기 혹은 내년에라도 국어 교과에서, 과학교과에서, 창체수업에서, 동아리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독서수업의 씨앗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끝으로 ‘SF 덕후라서 이런 수업을 했겠지.’라는 판단은 접어두어도 좋습니다. 과학은 고등학교 때 스치듯 배운 게 전부이지만, 제 부족함을 채워줄 친절한 과학 선생님이 학교 안에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던지요. 함께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책은 다시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