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0 봄호 (238호)

우리 아이들의 공간, 학교에서 찾아보는 ‘제3의 장소

채원주 (서울강일초등학교, 교사)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혁신학교 워크숍에 가서 학교공간혁신과 관련된 ‘제3의 장소(The GreatGood Place)’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마침 학교공간혁신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던터였는데, 제목이 가지는 매력이 또한 만만치 않아 책을 읽게 되었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을 대강 훑어보고 궁금증을 눌러가며 책을 읽다 보니 너무도 익히 알고 있던 프랑스의 비스트로(le bistro, 노천카페로 더 잘 알려져있다.)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사르트르와 보브와르가 편지를 주고받던 그 노천카페라니! 놀라움은 잠깐 동안 나를 오래 전 파리여행 때 가보았던 카페로 옮겨 놓았다. 나는 노천카페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장소였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인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독일계 미국인의 라거 비어 가든, 미국의 태번, 프랑스의 비스트로, 영국의 펍,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등을 분석하고 그러한 장소들에게 제3의 장소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이러한 제3의 장소는 가정(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 외에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교류하는데 필요한 장소이며, 이것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시민참여의 기반이 되므로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저자는 제3의 장소의 특징과 이점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을 살펴 보도록 하자.

역사적으로 멋진 도시와 위대한 문명에는 그것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비공식적 공공모임 장소가 존재했으며 그 장소는 도시의 이미지까지 지배한다. 파리를 생각하면 수많은 노천카페가 같이 떠오르며, 로마를 생각하면 포럼(forum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소통하는 장이자 시장의 기능도 갖고 있던 로마제국 시대의 도심 광장)이 같이 따라온다. 런던의 정신은 펍에서, 피렌체의 정신은 광장(piazza)에서 출발된다. 비엔나에 방문했을 때는 누구나 한번쯤 오래된 커피하우스에 들를 것이다. 독일에는 전통적인 비어가르텐(Biergarten)이 있고, 일본엔 다실에서의 다도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 기초적인 매개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고유의 제3의 장소를 지닌 도시는 낯선 사람에게도 집 같은 편안함을 준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삶의 필수 요소이며, 도시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접촉과 관계에 있다. 도시가 이러한 내용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군중 속의 고독에 빠지게 되고, 여기에 기술의 진보가 더해지면 개인은 더욱 고립된다. 팽창 하는 도시 속에서 어울릴 장소가 부족해지면 사람들과 여유를 즐기는 기쁨이나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유대감도 사라지게 된다. 그럴 경우 일상생활은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는 학교수업처럼 따분해지며, 맥주 한 잔 마시는 여유조차 없어 고통스러운 경기처럼 될 것이다. 비공식적 공공생활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좋은 마을, 멋진 도시를 만드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이를 뒷받침할 환경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제3의 장소이다.

저자는 계속하여 주장한다. 최근 미국인들은 교외 주거단지 이전의 작은 마을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향수는 공동체를 향한 추구이고,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전의 작은 마을을 대체할 장소(제3의장소)를 찾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인들의 정서적 불안과 불만은 지속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후 1300만 명이 넘는 재향군인들이 살게 된 자동차 중심의 교외 주거단지는 참전용사들에게 안전하고 질서정연하며 고요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를 뿌리내리게 했던 것과 같은 소속감과 장소감을 주지는 못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다가 교외 주거단지로 이주해온 어떤 여성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라고 부르는 이곳이 감옥 같다고 말하며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이방인 임을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이곳은 이웃 간의 교류는 커녕 만나기조차 힘들며, 아는 사람도 없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저녁마다 동네 카페까지 산책을 하곤 했으며 카페에 가면 소방관, 치과의사, 은행원 등 거기에 있는 누구하고든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교외 주거단지에 사는 주부는 남편이 차를 가지고 나가 일하는 동안 타고 나갈 차가 없게 되면 고립되어 심한 외로움을 겪게 된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터에 가는 경우엔 어린이와 청소년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밖에 나가 또래와 어울릴 장소도 없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주변엔 낯모르는 사람들 뿐이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교외 주거 단지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고 그들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집에 고립된다.

미국인은 노천카페나 연회장에 일상적으로 가지 않는다. 프랑스나 독일 사람들에게 집과 일터 외에 사회적 응집과 충족감을 만들어내는 제3의 영역은 양질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지만 미국인에게는 그런 영역이 없다. 미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온실 같은 가정과 극심한 무한경쟁의 직장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없으면 사람들은 일과 가족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얻고자하고, 가족과 직장 동료들의 관계에 과하게 의존하게 된다.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회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남들보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 외에 다른 부담이 없다. 사회적 낙인도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지도 않는다. 집과 직장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비공식적 공공생활을 통해 보완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도 사적 소유물의 부족분을 공공영역에서 보충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풍족한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한다.

그러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해온, 타인과 교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제3의 장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어떤 것들인지 알아보자. 첫째는 중립성이다. 언제든 원할 때 드나들 수 있고, 특별히 누가 주동하지 않아도 되며, 누구나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 둘째는 동등성이다. 신분이나 계층을 초월하여 전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열린 곳이어야 하며 이러한 독특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가장 민주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개인적인 기분은 치워두고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갖지 못한 새로운 면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대화이다. 다채롭고 매력적이며 재미있고 즐거운 대화는 제3의 장소를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대화에는 간단한 규칙이 필요한데 ① 대화시간의 반은 침묵에 할애하기 ②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③ 본인의 생각을 말하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④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는 피하기 ⑤개인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고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⑥ 가르치려 하지 말기 ⑦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한 목소리를 낮추기 등이다.

그 외에 제3의 장소라는 공간 자체는 외관이 수수하고 평범하며,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어야 좋으며 단골손님들에 의해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유지되며 근본적으로 집과 다르지만 심리적인 편안함과 자신이 따뜻하게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제3의 장소가 주는 이점은 무엇일까 알아보자.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고, 대화를 중시하며, 구조는 느슨하고, 거기에 가면 확실히 친구를 만날 수 있는데다가, 언제나 유쾌하다. 곧 거기에 가면 즐겁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어서 좋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이러한 점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게 되어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 또 제3의 장소에선 늘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새로운 대화를 하게 되어 새로움을 얻게 된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과 즐겁게 인간관계를 맺고 그 구성원들의 집단적 지혜가 발휘되도록 함으로써 균형감각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밝은 분위기로 인하여, 일터(제2의 장소)에서 만나는 옹졸하고 불쾌한 사람들에 대한 면역력도 생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감정 부담 없이 지위와 소속감을 주는 친구 집단을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저자는 역사적으로 좋은 제3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비스트로(le bistro)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프랑스인은 제1의 장소, 제2의 장소, 제3의 장소를 확립하였고 그것들을 누릴 줄 안다. 참을 만한 근무 조건, 가족들과 함께 살기에 적당한 집, 친구들과 가기 좋은 비스트로(le bistro)만 찾으면 붙박이가 되어 한 지역에 오래 살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힘들더라도 비스트로(le bistro)에서 보낼 시간을 사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미국인에게 우정이란 개인적인 성향과 여가 시간, 우연한 기회의 몫인 반면 프랑스인의 우정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유, 평등, 우애에 대한 신념을 제도화했다. 우정이 쌓이려면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식사에 두 시간을 할애하는데, 그 중 한 시간은 우정을 쌓기 위한 시간이다. 저녁은 보통 늦게 먹는다. 저녁식사 전에 우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우정을 쌓기 위해 가는 곳이 보통 비스트로(le bistro)이다. 생활양식보다 생활수준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점심식사를 해결하며, 종이봉투에 싸온 음식을 먹어치우는 데 15분도 채 안 걸린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생활양식의 훼손을 찾아볼 수 없다. 카페 영업허가를 얻기가 어려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성인 32명당 하나의 카페가 있다.

책을 덮고 나자,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과연 제3의 장소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사정은 어떨까? 저녁 어스름이 찾아오기 시작할 때, 불쑥 다가오는 생의 비의에 대한 생각으로 외로워질 때, 고층 아파트의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면 나를 반기며 감싸 안고 생기를 불어넣어줄 사람들이 있는 장소가 있을지… 직장 생활에서 발생한 일들로 삶에 잠시 회의를 느끼게 될 때, 어디에 가면 그런 감정을 뒤바꿔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지난 한 해, 8살 아이들과 1년을 보냈다. 돌보아야 할 아이들인 동시에 인격 체인 그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어주고 감정과 생각을 소통하려 노력하였지만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한 채, 어떤 아이들에게는 ‘제3의 장소’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올해 새롭게 만날 아이들하고는 어떤 식의 ‘제3의 장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장소는 단위 교실 내에서도, 같은 학년 내 에서도, 학교 전체에서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나아지는 한 해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