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18 봄호 (230호)

치유와 돌봄의 교실 만들기
– 영화 ‘디태치먼트(Detachment)’를 보고

– 송형호 천호중학교 교사

 

영화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 얽매여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문제아이들이 모인 학교로 전근가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뉴욕의 어느 중학교를 배경으로 단 3주간에 걸쳐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영화가 전개되는 것으로 보아 그저 평범한 오늘날의 중학교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일제고사(state
exam)의 성적이 낮아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낮아졌다며 교장이 사직을 당하는 장면, 학생 상담을 하다가 지친 상담교사가 스트레스에 소진되어 학교가 싫다는 학생에게 희망이 없다며 분노하는 장면 등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애정이 없는 가족에게 학대받거나 무시당하는 아동의 모습, 투명인간처럼 무시 당하는 교사의 모습도 이질적이지는 않다.

주인공 헨리는 자질이 뛰어난 영어교사다. 학생의 문제행동을 다루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첫 날 수업에서 한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자 짐짓 못 들은 척하고 설명을 마친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학생이 다가와 교사의 가방을 내던지자 “가방에 무슨 감정이 있다고? 비어있을 뿐인데. 나도 자네에게 상처 받은 그런 감정이 없어. 화가 나있다는 건 이해해. 이제 네가 조용히
앉아서 최선을 다하도록 필기할 종이를 줄게.”라고 낮지만 단호하게 말하여 학생과 다투지 않으면서 문제행동을 중지시킨다.

교과 전문성도 탁월하다. “아이들은 집중을 잘 못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공유할 의미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doublethink(이중 사고-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갖는 것)라는 용어를 설명할 때 아이들의 삶과 밀착된 예시를 들어 수업을 전개한다.

불과 3주였지만 헨리는 아이들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헨리가 시간강사로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릴 때 알콜 중독이었던 엄마의 자살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

주인공의 포커 페이스도 어린 시절의 아픔 탓에 생긴 우울과 그로 인해 생긴 세상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단에 서면서도 나서는 일을 싫어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detached) 있는 그에게 시간강사란 완벽한 직업이다.

헨리는 전근 첫 날 동료 교사, 학생, 가출 소녀, 이렇게 3명의 여자를 만나게되며 그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헨리는 가출하여 원조교제를 하는 소녀에게 임시로 집에 와 살도록 허락하고 잘 돌본다. 헨리의 극진한 돌봄 덕분에 소녀는 상처를 치유하고 밝아진다. 가출 소녀와의 짧은 시간 속에 헨리는 가족애를 느끼고 소녀에게 자신의 과거 아픔을 털어놓는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이 대목이 첫 번째다. 자신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이나 글로 털어놓은 순간 그 아픔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소녀는 이 과정에서 오히려 자존감을 회복하고 헨리와 가족처럼 지내기를 원하여 가족으로 행동한다. 그저 들어주고 안타까워하며 헨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은 헨리의 영혼이 소녀에게 기대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에 경계심을 가진 헨리는 “이 아이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결국 아이를 아동보호소에 보낸다. 여전히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이다. 적당히 헌신하되 조금이라도 벅차면 바로 발을 빼버린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수 있다. 교사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스트레스로 소진을 경험하는 교사들은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애를 쓴다. 동료들과도 거리를 두며 자기 학급이라는 성(城), 또는 자기교과라는 성 안에 매몰되어 거리를 둔다. 헨리의 트라우마는 그가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할 때마다 계속 발목을 잡는다.

헨리의 제자로 사진작가를 꿈꾸는 메레디스가 우울한 작품에 몰입할 때 그의 아버지가 “왜 너는 너 자신을 고문하니? 행복해져!”라고 외친다. 자녀의 진가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주지 못하는 부모의 욕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면 학생들은 낯선 행동을 하게 된다. 자존감의 부족이 청소년 문제 행동의 핵심이다. 자존감을 회복하기 어려울 때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더구나 아버지의 조롱을 받은 그녀가 헨리의 품에 안겨 위안을 받으려 할 때 동료교사가 오해를 하며 비난한다. 모 탤런트가 자살했을 때 어느 전문의가 신문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 자살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메레디스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을 상실해 버리는 장면이다.

메레디스가 자살을 시도하는 날 헨리는 두 번째 담배를 피우며 독백을 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무의미하다고 여겨서 삶을 마감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학교가 청소년에게 찾아주어야 할 성장 목표는 모든 아이들의 중요성(significance)을 찾아주는 것이다. 자존감의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수업운영도, 학급운영도 생활교육도 모두 이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메레디스가 죽기 전 녹화한 영상에서 “사람들은 자살을 일시적인 문제에 대한 영구적인 해결이라고 말하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원한 해결이 아니라 도피다. 진정한 해결은 서로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가족을 등졌던 에리카는 헨리의 아픔과 가족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자살은 상당히 억울한 거래다.

자살이 우려되는 시대다. 아이들에게도 각자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 온라인 세대인 아이들은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보다는 (본인에게 트라우마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스스로를 계속해서 세상과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그대로 스스로를 방치하기 쉽다. 하지만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면 둘수록 상처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주어야 한다. 부모도 교사도 학생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 물론 우산을 나누어 쓰려면 나의 한 쪽 어깨가 젖겠지만.

메레디스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헨리는 가족과 애착의 필요성을 깨닫고 아동보호소로 에리카를 데리러 가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디태치먼트(Detachment)에서 어태치먼트(Attachment)를 향해 발을 옮기는 장면이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라는 영화 제목은 세상과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이다. 세상에 대해서도, 서로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더 이상 거리를 두지 말아야 한다.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때로는 자신을 직면하기 위한 용감한 가출도 일탈도 있음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학부모에 대해서도 문제를 은근히 제기한다. 학부모총회에 학부모들이 학교에 거의 오지 않는 모습은 학부모의 “거리두기(Detachment)”라는 암시일 듯하다.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말이 있다. 상처받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모두의 성장을 위해 회초리나 교과서 뒤로 숨지 말고 상처받을 각오로 아이들, 동료들, 학부모의 영혼과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