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0 겨울호(241호)

[특수교육] 특수교육, 코로나의 강을 건너다

 이선민 (서울한남초등학교, 교사)

1. 코로나 시대, 특수교육은 어떻게 해

3월, 교육 현장의 혼란 속에서 특수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전에도 주로 홀로 운영해왔지만, 평균 2~3주 간격으로 교육계획을 수시로 변경해 가는 혼란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두려움은 커졌고 날마다 긴장했다. 초등학교에서 소수 교사로 살아가는 적적한 이민자의 느낌은 늘 있는 것이지만, 시대가 뒤집어지는 혼란 속에서 딱히 의논하고 함께 할 동료가 없었다. 매뉴얼이 준비되지 않은 초유의 어려움 속에서 다른 교사들이 학교 차원, 동학년 단위로 더욱 협력하고 분담해나갈 때, 나는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막막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뭘 하라고 하지? 집에서 학습 관리가 될까?’ 이 모든 걸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앞에서 기계치인 자신에 대해 의구심도 들었다. ‘뒤집어진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게 교사 역할을 할 수 있나?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가? 할 수 있을까?’
일부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사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해 매일 EBS 수업이 마련되었다. 그건 마치 ‘등대 같은, 등대가 다가오는 것 같은’ 일이었다. 다수의 불편함은 잠시 기다리다 보면 이렇듯 뭔가 대책이 마련되어진다. 하지만, 소수 교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이 잘 생기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혼자 알아서 등대를 잘 찾아보라.’는 격려 정도가 주어진다. 공문은 ‘특수교육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이 없게 하라, 원격교육을 하라.’ 등의 원론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어떻게 채워야 할지는 특수 학급 교사 개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던져진다. 대면수업에서도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아닌가? 힘들어 보였다. 두려움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EBS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나는 온라인 수업도구에 관한 이해가 거의 제로 상태였지만, 이 뒤집어진 혼란에서 살아남기로 했다.

2. 프리미엄 학습꾸러미

학교에서 수업할 때는 학생의 반응을 살펴가며 상호작용하고 반복 연습하는 과정이 있다. 답만 적는 게 아니라 학습능력에 맞춰 언어로, 문장으로 표현하도록 여러 활동을 포함하지만 가정에서 같은 방식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충분한 학습 분량을 보냈지만, 보상용 게임이나 영상을 보려고 답만 후딱 적어서 하루 이틀만에 다 해버렸다는 연락이 왔다. 미리 다 했으니 2주 후, 다음 꾸러미까지 참으라고 할 수도 없고, 좋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당장 내일 할 뭔가를 제공해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다. 시행착오 과정이라 생각하고 다시 꾸러미를 만들어 보냈다. 아이가 새롭게 보이는 특성에 맞추자니 많은 분량의 자료가 필요했고 다른 학습자의 개별 특성도 고려해 계속해서 만들거나 다시 편집했다. 만들기, 콩나물 키우기 같은 활동자료를 더 넣었고 활동순서지도 사진 찍어 다시 만들었다.

<학생들이 실생활 활동 중심의 학습 자료를 제공 받아 만들고 제출한 결과물>

아이들의 혼란을 덜기 위해 날짜별 페이지를 넣어 구분하고 활동물을 미리 다 해버리지 않도록 키트화하여 해당 날짜를 스티커로 붙였다. 저학년은 학부모의 손길이 필수라 ‘이런 자료를 보내니 이렇게 도와주세요.’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고 잔소리처럼 자주 안내했다.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제때 확인하지 않는 학부모, 다문화 학부모도 있어 여러 번 안내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학교에 오지 않아도 학습 습관을 갖도록 틀을 만들어 매일 일정하게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학습꾸러미를 활동중심으로 구성하고 자료를 날짜별 키트화 해 제공>

하지만 정해진 교과서 없이 자료를 계속 재구성해 만들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면 수업이라면 거의 2 〜3년치에 해당되는 분량의 학습 내용이 쏟아붓듯 들어갔다. 가정에서 엄마와 학습하는 새로운 상황, 내가 모르는 상황에 대해 장담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가정의 요구사항에 맞췄다. 분량이 몇 배로 늘어나면서 학습지 구성과 제작으로 몰아치듯 일이 쏟아졌지만, 한 명 의견이라고 모른 체하기 어렵다. 학부모가 옆에서 학습을 도와주면서 제기한 의견에 대해 상호작용을 하고 반영하니 오히려 덜 힘들다고 느꼈다.
그러나 열심히 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도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과제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과제 제출을 매일 독려했다. 애를 쓸수록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하는 학생을 보면 한 명뿐일지라도 맞춰 하는 것이 개별화 교육의 장점이자 어려움인 듯 싶었다. 문제는 동학년 단위에서 서로 몫을 나눠 n분의 1로 하는 게 아니니, 혼자서 3개 학년 5~6가지를 해야 하고 학습능력을 고려해 그 안에서도 세분화 과정을 거치니 기존 근무 시간으로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3. 특수학급도 원격수업을

일반학교 특수교육 운영의 어려움 중 한 가지는, 개별화된 특수교육은 특수교육대로 재구성을 하면서 통합교육을 위해 일반교육과정의 추세를 파악하고 맞추어가는 것이다. 양 쪽의 내용 파악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정작 학생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건 얼마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수교육의 현실을 잘 모르는 현장에서는 지나가듯이 ‘특수학급도 준비하세요.’라고 하는데, 그때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렇게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하거나 ‘과연 될까? 하지만 해보지 않았으니 속단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라고 선택하는 부담은 순전히 교사 개인의 성격과 능력 또는 희생으로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실정이다. 나는 알 수 없는 경우에 대체로 시도부터 해보는 성격이라 참으로 고된 여정이 시작되었다.
통합학급 수업 참여와 겹치지 않으면서, 좀처럼 집중하지 않는 저학년 자폐성 장애 친구들도 학습할 수 있도록 수업용 영상을 매일 만들기 시작하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평균 10분 정도를 만드는데, 익숙치 않아 초기 몇 달은 하루 10시간 이상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계속 작업을 했다. 영상 제작 100편이 넘어가면서 사용법이 숙달되어도 6〜7시간 이하로는 잘 줄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학생의 학습 능력과 특성을 반영, 100편 이상의 수업 영상 자료 제작>

원인은 편집이었다. 어리고 학습능력이 낮은 학습자일수록 집중력이 좋지 않으므로 한 장면을 제시한 후 설명을 많이 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시되는 장면이 많고 집중을 위한 단서용 밑줄이나 별표, 시간차를 두고 따라 말하게 하기에 필요한 표시 등 세분화된 내용에 맞춰 하다 보니 편집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었다.
예를 들어, 옛날 다이얼식 전화기 그림에 숫자를 써 넣는 내용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읽어봅시다, 일, 이, 삼,…,구, 영” 하면서 타이밍에 맞춰 색깔이 다른 숫자가 시간 길이별로 제시되도록 했는데 천천히 말해도 15초〜 20초 밖에 안 되는 장면이었지만 정말 많은 작업이 들어갔다. 대면 수업 같은 느낌, 상호작용을 위해서라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특수교육에서 가성비로만 생각해서 한다면 할 게 얼마나 있겠는가. 흔적도 안 남는 물 한 방울이 모여 언젠가 촉촉해지기를 믿는 수밖에…….
영상을 매일 만들었던 지난 6개월 동안 하루에 4〜5시간만 자면서 작업을 했다. 영상 작업을 하니 학교에서 8시간, 집에서 8시간 근무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도 처음에는 1〜2명만 보았다. 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제공하니 아이들도 습관이 되기 시작해 한두 달쯤 지나 어느 시점부터는 매일 수업에 참여하였다. 언제부터인가, 교직 생활에 계속 지치기 시작하면서 좌우명을 ‘최선을 다하지 말자.’로 바꿨다. ‘차선과 차악 사이에서 끌리는 걸 택하기’로 했지만,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라 알 수 없으므로, 나도 모르게 최대치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4. 작지만 큰 차이, 각기 다른 학습요구를 가진 아이들

올해 새로 온 학생이 없어서, 다행히 모든 아이들의 특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덕분에 수업 수준을 계획하거나 방향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분량이었다. 개별 학습능력과 특성이 각기 달라 교과서, 진도라는 게 크게 의미 없는 상황이었다. 기준이 개별 학생이다 보니 가이드 라인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큰 문제행동은 없지만, 2〜3초도 집중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부르기 시작했지만 교사를 일단 쳐다보게 하려고 한 시간의 수업 동안 최소 100번 이상 그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OO아, 선생님 봐야지. OO아. 선생님 봐.” 하면 잠깐 나를 쳐다보지만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기 일쑤라서 내용을 더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작년에는 7명이나 되었다. 법적 정원을 넘어서는 학생 수였다. 개별학습이 어려워 몇 달 동안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 그 아이가 3~4분 길이의 전래동화 영상에 흥미를 갖고 집중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눈을 안 맞추고 집중이 어려운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학생을 교육할 때, 선호하는 학습자료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사실 영상을 좋아한다고 무조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 ‘톰과 제리’ 같은 영상 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학습자료 자체로 쓰기는 적절하지 않았고 다른 학습의 보상으로도 사용하지 못했다. 또 난이도가 살짝 높아지거나 이야기가 5분 이상 길어질 때는 생동감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집중하지 못했다. 사건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상자료를 보게 하고, 장면마다 끊어서 내용을 인식하게 하고,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연습하도록 했다.
여러 학습 수준의 학생들이 함께하는 수업의 경우, 같은 학습자료를 보지만 어떤 학생은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서 알맞은 태도로 발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어떤 학생은 장면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어떤 학생은 그림을 보며 등장인물이나 중요한 물건의 이름을 말하거나 따라하는 게 목표가 된다. 개별 시간이 있으면 각 학습자의 특성에 따라 더 심화하거나, 반복하여 익히는 연습을 하게 된다. 특수학급에서도 많이 느린 학생의 경우 어떤 것을 익히는 데 몇 달이 소요되기도 한다.

<가정에서 생활 관리가 안되는 경우 학습 참여를 위해 계속되는 잔소리>

5. 등교, 영상, 화상도 오케이. 당기고 엎어지며 견뎌 오다

가정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던 고학년 학생을 위해 화상 수업을 시작했다. 아침에 카톡 채널로 깨우고 전화로도 확인했지만 아이는 다시 잠들어 버려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를 여러 번 해서 다시 깨워 수업하고, 받지 않을 때는 (집에 있는) 학부모에게 전화해 수업에 참여하도록 깨워달라고 했다. 어느 날은 아이도 부모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카톡 채널에 연락하라고 남기고, 한참 지나서 연락이 오면 수업을 진행했다. 한달 정도는 매번 그렇게 해야 했다. 요즘은 카톡 채널에서 한 번, 수업 직전 통화 한 번 정도로 화상 수업에 들어오니 훨씬 낫다. 고학년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에는 저학년 학생들도 그룹으로 화상수업을 병행하였다. 말 한마디라도 더 시키기 위해 소리를 켜놓고 하다 보니 소란스러울 때도 많지만, 친구들 얼굴도 보고 수업에 참여하는 기회도 많아서 그런지 아이들 표정도 밝고 나도 기분이 좋다.

<일대일 또는 소규모 그룹 화상수업과 등교 수업 활동>

영상수업, 화상수업은 매일 공개수업을 하는 것과 같아서, 보여줘야 할 자료 준비도 만만치 않지만 어쨌든 견뎌 왔다. 요즘은 학년당 3일씩 등교한다. 우리반은 3개 학년이라 매일 등교 수업이 있지만, 학년별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날은 원격 수업을 지원하므로 요일에 따라 등교수업과 영상수업, 등교수업과 화상수업을 연달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도 등교 수업이 많아지니 아이들이 영상이나 화상수업에서도 의미 있게 활동하도록 연결할 수 있어 훨씬 나은 것 같다.

6. 얘들아, 선생님과 함께 있어. 선생님들, 힘내요

곧 겨울이 온다. 코로나 상황에 따라 또 무엇이 변경될지 모른다. 바라는 바는, 무슨 형태로 수업하더라도 최소 한 달이나 두 달씩이라도 지속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2~3주마다 바뀌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 시간이 맞지 않아 매번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지난했던 시간들이었다. 피로가 극심하게 쌓여가니 때로 마음에 울분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절실하게 필요했던 한마디는 “OO은 하자. OO은 하지 말자.”라는 책임감 있는 협의와 결정이었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대치만 있고, 가이드와 한계가 없었던 것이 정말 참으로 힘들었다.

정해진 교과서와 진도 없이 교사 개인이 여러 개별 학생에 맞춰, 학습 콘텐츠와 방식, 학습량을 계획하고 운영하며 책임져야 했던 현실. 교사마다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현실이 달랐겠지만, 그럼에도 그걸 감내하고 희생하며 적극적으로 해 온 교사들에게 큰 복 받으시라고 축복을 보내고 싶다. 2020 코로나 속에서 내가 겪고 품어 온 특수교육.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려운 고된 여정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극한체험 여행 중이다. 다행히 함께 해 준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마음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