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182018 겨울호 (233호)

평화에 대한 비판적 공부 : 평화학

이대훈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1. 평화학의 태동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내 눈앞에 폭력이 없으면 평화다.
평화로울 때가 가장 위험할 때 -한국 국정원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 -C. 틸리

 

과연 그럴까? 위와 같은 오래된 상식은 정당한가? 평화학의 태동을 가장 간단히 요약한다면 위와 같은 질문에 흔하지 않은 응답을 추구하고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과 폭력의 오래된 전통에 대한 도전이 평화학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전쟁과 폭력에 대한 오래된 상식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평화학의 일차적 과제이자 방향으로 정립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1950년대부터 평화학 또는 평화연구라고 불리는 분야는 국제관계학 및 외교학에서 다루는 전쟁연구에 대비되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국제관계론과 정치학, 사회학, 사회운동론, 철학 등의 학제간적 접근으로 수업되며, 여기서는 특히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양한 비국가행위자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최근 대학에서 수업되고 있는 시민사회론, 사회변동론, NGO학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평화학은 보통 평화철학, 전쟁론, 평화운동사, 인권론, 민주주의론, 시민사회론, 국제기구론, 국제협력, 국제법, 안보론, 갈등분석, 분쟁조정론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며 탈냉전시기 이후에 세계 각지에서 더욱 주목받는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평화학의 범위는 넓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지만 평화학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공통된 중심 주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폭력의 구조적 원인 분석과 구조적 불평등의 개혁
(2) 폭력적 분쟁의 해결에 학제간 접근의 근본적 필요성
(3) 분쟁과 관련된 개발, 인권, 젠더, 국제관계, 사회변동의 통합적 분석틀의 필요성
(4) 개인, 사회, 국가, 국제 수준의 다층적 갈등원인 분석의 필요성
(5) 다문화적, 지구적 관점의 문제접근 필요성, 국제관계학의 문화적 일면성 극복
(6) 분석적 영역과 실천적 영역이 동시진행되는 학문으로 평화학의 실천적 성격
(Rogers, Paul and Ramsbotham, Oliver. 1999. “Then and Now: Peace Research
– Past and Future.” Political Studies XLVII. 740-754)

 

이를 반영하여 평화학 개론 정도의 과목을 대학에서 개설한다면 대략 (1) 평화의 개념과 의미, (2) 전쟁의 정당화, (3) 평화운동, (4) 현대전쟁과 핵전략, (5) 소극적 평화론과 적극적 평화론, (6) 국제관계속의 평화문제, (7) 여성주의와 평화론, (8)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변동, (9) 생태주의 평화론, (10) 분쟁조정론 등의 주제를 기본적으로 다룬다.

냉전시대의 가공할 핵무기경쟁과 지구촌 남북 분열과 격차의 현실 앞에서 종종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요한 갈퉁(John Galtung)은 평화개념을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구분하였고, 폭력의 개념도 직접적 폭력(direct violence)과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으로 구분하였다. 체제유지적 평화를 소극적인 개념으로 규정하고 ‘구조’의 문제를 평화학에 가져들어온 것은 평화학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이는 ‘전쟁의 부재’와 ‘전쟁 발발의 방지’라는 부정적 개념의 ‘소극적 평화’를 중심으로 전쟁과 폭력을 제거하는 방법, 전쟁과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조건에 대한 연구를 넘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고전적인 국가중심적 국제관계론에 대한 전면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냉전 시기 평화 연구의 초점은 사회주의권에서는 군축에 대한 교육으로, 서구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로, 제3세계에서는 개발과의 연관성으로 맞춰지는 다양한 경향이 있었다. 현재에는 무력을 통한 분쟁해결의 욕구를 밑바탕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총체적인 폭력구조 변혁과 대안적인 사회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냉전 이후 동맹간의 경쟁체제가 주요 연구대상이 되던 시기가 종료되고 동시에 민족, 지역, 문화, 종교적 갈등이 급격히 심화, 확산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평화학은 여러 층위에서 대립과 갈등의 구조적 역사적 요인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로 초점을 옮기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학문적 전제와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진행되었다. 또 구조적 폭력이 연구를 이끄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현실 적용으로서 분쟁조정론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평화학의 대상이 구조적 폭력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폭력의 사적 소유, 법치주의, 민주적 참여, 사회정의, 갈등해소 문화, 다문화적 연구방법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

평화학은 태동부터 전쟁학 또는 안보학과 아울러 국제관계학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안보학이 국가간 관계와 동맹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아 발전해오면서 비국가 행위자를 다루는 다른 학문분야와 연관성을 가지지 않은 반면, 평화학은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 그리고 지구적 수준의 평화를 연구하는 것으로 확대되면서 학제간 접근을 강하게 선호해 왔다. 동시에 평화학은 안보학의 기존 전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축적해 오면서 국제관계학의 기본 전제에 대한 논쟁에도 개입하게 되었다. 현실주의 국제관계학에서 ‘안보’ 패러다임은 전쟁의 정당화에 핵심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평화학은 전쟁론에 대한 비판에서 안보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적 성찰까지 다루게 된다.

2. 분단폭력과 탈분단 문제의식 – 한반도에서의 평화학

한반도의 분단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도 전쟁과 독재 및 탄압을 수반하는 거대한 폭력구조였으나, 이를 폭력의 구조로 보고 이로부터의 해방을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매우 주변화되어 있다. 이제 한반도-동북의 거대한 평화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탈분단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이 야기한 촘촘한 폭력에 눈을 뜨는 것을 출발로 하여 분단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행동의 커다란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 탈분단의 문제인식이다.

세계 패권경쟁과 국내 패권경쟁, 그리고 새로이 시작되는 냉전이 만들어낸 분단과 한국전쟁은 한국과 북한이 태동하고 공고화되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분단체제는 우선적으로 적대적인 이분법 체제이고, 군사와 안보를 국정의 절대적인 1번 의제로 만드는 영향력이다. 분단체제에서는 이질적인 타자에 대해서 협력과 대화보다는 협박과 단절을 우선시하며, 환대와 우정보다는 적대와 혐오가 더 정당해진다. 이질적 타자는 손님 보다는 적으로 쉽게 표적화되며, 이에 대비해야 하는 시민들은 적을 재빨리 찾아내야 하는 색출 능력을 훈련받는다. 평화의 가치를 존중하는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무기와 군사주의의 패권 앞에서 쉽게 취약해지며, 민주주의를 지향할 때에도 공포조성이나 안보장사하는 사람들, 군복입은 건장한 남성 신체가 더 쉽게 유리해진다. 국가수립 초기부터 이러한 분열에 깊이 관련된 강대국에게 한국인은 시민으로서 합리적인 태도를 갖기가 매우 어렵고, 이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쉽게 색출의 대상이 된다.

이분법적 분열 현상을 폭넓게 관찰하면, 국가와 땅과 사람이 남북으로 쪼개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논지가 쉽게 흑백으로 나뉘거나 찬반으로 나뉘며, 나아가 거의 모든 생활세계가 그렇게 된다. 우리의 생활세계는 깊은 수준에서 우리-그들, 선진-후진, 선배-후배, 위-아래, 고위-하위, 존대-하대, 우월-열등, 남성-여성, 빈-부, 갑-을, 강-약, 서울-지방, 성공-실패, 서구백인문명-기타문명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체제는 마치 적에 대한 빠른 식별과 비정상을 즉각적으로 색출해 내는데 최적화된 체제 같다. 역으로 이 체제에서 살아남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이러한 이분법과 색출 감각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그 촘촘한 체제에서 틈새를 찾아 함께 살 친구나 이웃을 찾는 일은 원천적으로 매우 어렵다.

나아가 전쟁을 통해 형성된 안보중심 국가에서 이러한 이분법은 ‘안보 아니면 종말’ 이라는 종말론적 이분법으로도 증폭된다. 국가는 최선의 보호자로서, 국가 지도자는 최고 보호자로서 인식된다. 그 외는 수동적 피보호자가 된다. 이러한 이분법은 국가의 보호자 성격과 시민의 피보호자 성격을 강조한다.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안보기구, 국방 성역화 등을 통해서 피보호자인 시민은 보호자에게 이견을 제기할 수 없도록 제도화되고 문화로 정착된다. 이를 통해 국가에 대한 집단적 충성이 보장되며, 이를 위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징계가 가능해진다. 안보국가의 지도자=보호자, 구성원=피보호자의 구도는 일상에서 가부장제, 선후배 구도, 젠더관계, 조직의 지도력, 교육, 양육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와 쉽게 연결되면서, 무수히 많은 체제 효과를 낳는다. 이와 관련하여 군사주의를 떼창 악보에 비유하자면, 그 악보의 음표는 분단체제-안보국가-이분법-서열주의-보호담론-가부장제-보호의 젠더관계-색출 심리-약자에 대한폭력의 일상화-일사분란함의 미학-미성숙한 민주주의 등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며 아마도 박자는 ‘4/4 행진곡풍’일 것이다.

최근 김정수, 서보혁, 김병로 등이 분단폭력을 심도 깊게 연구하여 낸 책 『분단폭력: 한반도 군사화에 관한 평화학적 성찰』1)이 보여준 성찰도 이러한 모습을 잘 포착한다. ‘분단폭력’ 개념은 분단이라는 체제와 폭력의 구조성, 일상성을 매우 잘 연결시키는 개념이며, 이로부터 탈분단 구상을 가능하고 당연한 것으로 구성해준다. 이 책에서 서보혁은 분단폭력을 “분단이 만들어내는 폭력적 활동과 구조, 담론”이라고 정의하고, 분단 폭력의 모습을 식민주의, 군사주의, 권위주의의 결합으로 설명하는 탁월한 견해를 제시한다. 이 세 가지 억압으로부터의 탈피, 일상에서의 탈피와 구조의 변화가 탈분단을 구성하게 된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분단폭력을 “공산주의라는 특정 이념에 대한 태도를 절대적 판단기준으로, 전시체제를 합리화의 명분으로, 이적성을 규정하는 법질서에 종속되어 만들어진 상황과 사건들”로 이해한다. 즉 분단은 전쟁, 분단, 이적성, 국가 일체성, 다양성 통제 등에 의해 야기된 사건들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이야기와 해석을 재구성하게 되면 탈분단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군사주의의 속성을 집단 중심성, 집단 경계, 폭력 사용, 위계성, 도전의식, 획일성, 영웅적 리더십으로 요약하였다.2)

한국 시민사회의 평화운동을 주목해온 박순성과 홍민, 조영주 등은 동국대학교에서 체제와 문화 및 생활정치로서의 분단, 이로부터의 총체적 변화를 기치로 하여 ‘탈분단 연구진’을 구성하여 통일학과 북한학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홍민은 분단이 행위자-네트워크를 통해서 ‘수행’되고 있다고 보고, 분단체제를 “민족주의에 기반한 체제-구조-질서-습속”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수행적 분단론이라고 부르고, “분단이 수행성을 갖는다, 수행성이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단을 억압적 가설과 비정상성 가설로 보는 것을 비판하여, 분단을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을 오류로 생각한다. ‘수행적 분단론(performative division perspective)’은 일상과 분단체제를 연결시킨다. 즉 분단이 행사되는 방식과 개인이나 다른 행위 주체가 이를 받아들이고 타협해 가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분단은 우리 외부에 있는 거대한 체제나 구조로 존재(being)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기입되고 수행되는 것을 통해 행해지는(doing) 것이다. 특히 여기서 안보 프레임은 분단을 번역하는 수행적 네트워킹이다. 홍민의 수행성은 “행위, 수행, 과정 뒤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고 보는 주디트 버틀러 등의 수행성이론을 도입한 것이다.3)

체제와 일상을 연결시킨 탈분단론과는 체제의 이념과 일상을 연결시키는 탈안보-탈군사주의론이 잘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주류 이념체제에는 군사주의가 깊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의 군사주의는 군대-전쟁 관계, 군대-국가 관계, 군대-사회 관계, 군대와 국제 관계를 모두 유기적으로 포함하는 복합체 속에서 작동하는 이념과 가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근래의 전쟁을 통한 국가 형성, 군부독재, 강력한 징병제와 비대한 군대, 한미동맹, 항시 준전시 상태가 존재하고 사회적 효과가 발생하는 상황의 중추적 이념구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산업화나 민주화를 통한 탈군사화는 한국 상황에 적용되기 힘들다.

둘째, 군사주의보다 더 설명력을 갖는 것으로 군사화된 권력이 파악될 필요가 있다. 군사화는 영향력과 과정에 대한 개념화이다. 역사에 대한 개념이다. 군사화된 권력 과정의 핵심으로서 전쟁 준비와 사회 변동의 관계, 그 속에서 권력복합체의 작동과 엘리트-대중 관계의 변화를 중시하는 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즉 군사화로 질문을 먼저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므로, ‘군사주의를 넘어서’라는 문제의식은 군대의 문제와 영향력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군사활동’은 광의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즉 앞에서 언급한 사회문화적, 교육적 맥락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종교와 언론 등 사회기관이 어떻게 군사활동에 관계하고 권력을 군사화시키는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군사주의 비판은 일국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한미동맹 구조와 국제화된 안보구조는 군사주의 비판의 핵심에 놓여 있다. 한국의 형성과정에서 전쟁은 핵심적인 계기로, 군사주의는 지배적인 이념으로 또 이념 복합체의 중추로서, 그리고 군사화는 군사주의의 사회적 확산과 동의의 형성을 통한 권력 형성의 과정으로 일단 파악할 수 있겠다.

한반도의 고유한 폭력으로서 분단 폭력에 집중하게 되면, 평화학과 평화교육은 21세기 평화와 공존의 세계적 시민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전쟁에 관한 전면적 비판과 성찰, 전쟁의 복합적 작용과 반전의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평화학이 역사학과 만나서 역사 공부를 자국과 전쟁 중심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 간의 관계와 교류 및 평화적 상호작용 중심의 역사 공부로 변화시켜야 하고, 역사공부에서 민족이나 ‘우리편’과 같은 정체성이 야기하는 갈등적 폭력적 양상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분단체제 및 동북아 현실에 대해 비판적 국제관계론과 갈등분석론을 도입하여, 한반도-동북아의 분단 질서를 공존의 질서로 세우는 한반도발 평화세우기에 대한 진취적 탐구가 중심에 놓여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학에서 ‘탈분단’이라는 개념과 지향은 매우 길고도 깊은 여파를 자아낼 것이다. 이는 분단체제로부터의 변혁의 과제를 평화 공부 및 평화 교육의 핵심 프레임으로 가져온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통해서 학문과 실천을 발전시키겠다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3. 실천을 위한 평화학- 과제

평화에 대한 연구 및 공부는 가치론이나 도덕론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다분야에 걸친 종합적,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공부이다. 교육계에서는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교육, 평화교육의 바탕이 되는 기본 공부가 평화학이 되어야 한다. 우선 평화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를 골고루 포함해야 한다. 평화의 개념 및 철학의 역사/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 평화만들기-평화유지-평화세우기-사회정의/ 평화와 전쟁의 연속성/ 평화추구와 전쟁의 동기 및 전쟁의 정당화/ 정치이념과 군사주의/ 군비경쟁과 군축/ 전쟁사의 역사철학 비판/ 평화세우기와 글로벌 거버넌스/ 갈등 분석과 개입/ 젠더와 평화/ 시장 경제와 갈등/ 현대 세계에서 평화의 의제 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아래 아홉 가지 초점은 한국에서의 평화 실현 과제를 종합적으로 요약한 것인데,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에 기여하는 평화 공부라면 이러한 과제를 중심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 평화적 수단에 의해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실천, 즉 평화운동이 지금 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지역적으로도 더 확산되어야 하며 또 정책적 전문성도 깊어져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 데는 개인과 문화와 정책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풍성한 평화운동을 안고 있는 시민사회야말로 폭력적 구조가 변화하는 출발이자 바탕이다.

둘째,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 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구조적으로 정착된 폭력의 문화와 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군사주의 문화를 변혁시켜야 한다. 물리적 힘과 무한경쟁을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획일적 일체감을 강요하면서 집단과 경쟁에서 배제된 자를 따돌림과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형성된 폭력적이고 군사주의적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평화와 관용의 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평화의 가치와 문화가 형성되는 데에는 평화교육운동이 필수다. 유네스코의 권고와 유엔 회원국의 의무에 따라 학교와 사회에서 평화교육이 일상적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평화와 갈등조정 역량을 갖춘 지도력의 개발과 비폭력적인 사회문화 형성을 위해 평화교육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넷째, 평택 미군기지 건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성주 THAAD 도입과 같이 주민의 의사와 이해에 반해 일방적으로 집행되는 군사안보정책에 대해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여론화와 법적,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다섯째, 남북한 간에 상호 군축과 화해를 도모하는 평화운동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남북한 상호군축은 양극화와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내부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쟁 위협과 국방비를 줄여 복지와 민생을 확대하려고 하는 평화와 복지의 연대가 필요하다. 또 군축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정부의 군사안보 정책을 심층적으로 감시하고, 알권리와 참여할 권리 및 제도화를 요구해야 한다. 비대한 군의 개혁 역시 주요한 과제다.

여섯째,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무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과 적극적인 지역군축운동이 요구된다. 북한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핵무기 체제 역시 불법적이고 공격적이다. 일본의 잠재적 핵전력도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군사전략이 갈수록 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고 미·중간 군비경쟁, 일본의 재무장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어서, 세계 최고의 화약고 동북아에서 핵 및 재래식 무기 군축을 요구하는 국제적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일곱째, 한반도 평화체제를 포함하는 동북아 평화체제를 형성하는 비전과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탈분단을 지향하는 비전과 연구가 필요하고 이것이 현시기 다양한 실험적 실천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남북 간의 기존 합의 준수와 신뢰구축, 남북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정부에 촉구하고, 인도주의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차원에서는 민족주의를 억제하고 지역 평화체제 또는 평화지대의 수립을 요구하고, 주변국간의 상호 교차승인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연대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여덟째, 평화운동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평화외교의 비전과 원칙, 방법을 정부에 앞서 기초하고 협력적 안보, 민간 중심의 대안적 안보, 갈등예방적 외교, 평화협력 및 대외원조 등의 새로운 외교이념을 개척해야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낡고 냉전적인 군사안보 패러다임을 새로운 평화적 안보패러다임으로 변혁시키는 지적 작업을 선구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아홉째, 평화사상, 평화학, 대안적 안보에 대한 연구와 전문적 논의가 확대되어야 한다. 환경평화운동과 여성평화운동의 경험을 반추해서, 토착적 평화사상에 현대 평화학과 생태주의 및 여성주의를 교차하는 전문적 연구와 논의가 향후 체계적인 평화의 비전을 세우는데 토대가 될 것이다

 


1) 김병로, 서보혁 편, [분단폭력: 한반도 군사화에 관한 평화학적 성찰], 아카넷, 2016

2) 서보혁, “군사주의 이론의 초대”, 위 자료
3) 홍민,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분단 연구: 분단 번역의 정치와 ‘일상으로의 전환’”, 동향과 전망, 2011. 10. pp.47-78.
“분단과 예외상태의 국가: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와 국가폭력”, 북한학연구 제8건 1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