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0 여름호 (239호)

[프로젝트 수업]‘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이한솔 (중앙중학교, 교사) (함께 수업한 교사: 역사과 금혜령, 미술과 이지현)

『북촌 계동에는 기억이 가득했다』 출판 기념 북 토크 콘서트

『북촌 계동에는 기억이 가득했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2019년 9월 4일. 도심 속 작은 학교인 중앙중학교 강당에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 이 모였다. 학생들이 만든 마을지도와 마을해설서의 출판을 기념하는 ‘북 토크 콘서트’를 위해서였다.

<사람과 역사를 품은 우리 동네, 계동길>
각각의 제목 또한 학생 공모를 통해 정해졌다. 글쓰기부터 편집까지 학생들의 손때가 진하게 묻어 있다.

국어, 역사, 미술 정규교과 수업에서 ‘마을결합형 교육과정’을 실현해보고자 한 학기 동안 진행된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우리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해준 학생들 덕분에 북촌 계동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작품이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니만큼 ‘북 토크 콘서트’ 진행의 주체도 학생들이었다. 행사는 두 명의 학생 진행자 가 질문을 하면 패널들이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무대 위에 오른 패널은 수업에 참여한 세 명의 교사와 책 출판을 도와준 출판인, 네 명의 학생 대표와 마을 주민들이었다. 행사는 아래의 표와 같이 진행되었다.
각자가 찾아낸 답을 발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학생들의 발걸음을 따라 우리 동네의 곳곳 을 들여다보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마을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를, 그리고 우리 동네를 타고 흐르는 아득한 기억들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이 가득한 우 리 동네, 계동. 중앙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계동의 숨결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기에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마을 과 학교가 함께하는 의미 있는 활동들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학생들에게 이번 활동의 소감을 전하는 홈마트 김○○ 사장님의 말씀이 끝나자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학교와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가 놓이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1학기에 진행된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활동의 의미를 환기하고, 책 출판을 통해 ‘저자’가 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출판 기념 ‘북 토크 콘서트’ 활동을 마련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발걸음에는 어떤 삶의 모습이 맺혀 있을까요? 이번 수업의 주제는 ‘우리 동네’입니다. 우리가 평소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우리 삶의 공간. 이번 활동을 통해 우리 동네의 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문학을, 역사와 미술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우리 동네가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활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의 수업 동기 유발을 위해 전한 말이다. 이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하면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활동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살아가는 소중한 공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심화하기’였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시인이나 소설가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문학 을 공부하고, 나아가서는 학생들에게 중학교 3년 동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우리 삶의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한다면 수업의 외연이 훨씬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들의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었다. 공간은 사람 이 만들지만, 공간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학생들과 함께 우리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과정을 통 해 계동이란 공간이 그들의 삶에 틔운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동네를 닮 은 그들의 ‘사람 냄새’가 우리에게까지 진하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세 번째는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암 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적용해보는 기회를 갖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를 넘어 실제적인 삶의 공간인 ‘마을’로까지 교육의 범위가 확장되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활동을 통해 학교와 마을이 연대해 나갈 수 있는 씨앗이 뿌려지길 염원하였다.

교과 융합 수업,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따스했던 5월, ‘국어, 역사, 미술 교과’ 융합 수업의 형태로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작을 알리는 활동은 국어 수업에서 이루어졌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소설 『운수 좋은 날』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에 종로 일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종로의 한복판인 북촌 계동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 보았다.

‘현재 종로 일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작품 속의 배경이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이내 김 첨지, 구보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발산되는 생각을 하나로 수렴해보기 위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형식적 틀을 가져왔다. ‘산책을 통한 관찰’과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의 문체적 특징은 ‘우리 동네’ 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하나의 글로 묶어내기에 참 좋은 제재가 되었다. ‘중앙중 학생들의 일일’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프로젝트의 형식적 틀 설정>
• 제목 : ‘중앙중 ○○씨의 일일’ (가제, 학생 공모를 통해 최종 제목을 정할 예정)
• 내용 : 우리 동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역사를 품은 우리 동네의 공간들
• 형식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서술상의 특징인 ‘의식의 흐름 기법’과 ‘산책을 통한 관찰’이라는 형식 차용, 여러 학생들의 조각글을 합쳐 하나의 글로 완성

박태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독특한 문체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들의 삶을 담은 소설 ‘중앙중 학생들의 일일’을 함께 써 보자는 교사의 제안에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활동에 참여했다.

교과 융합 수업,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 국어과 :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 인터뷰 보고서
→ 면담하기 / 소설의 서술상의 특징 이해와 적용 / 문학의 가치
• 역사과 : 시간을 품은 공간, 답사 보고서
→ 북촌의 사적지를 탐방 / 각 사적지에 대한 이해 및 미래지향적 보존 방안 강구
• 미술과 : 사람과 역사를 품은 우리동네, 계동길 지도 그리기
→ 협동화 및 어반스케치

국어과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 인터뷰 보고서’ 수업을 진행했다. 등하굣길에 우리 동네를 오가며 마주 했던 다양한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쓰는 활동이었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우리 동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있었다. 스치듯 오가던 마을의 다양한 공간들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국어과에서는 ‘우리 동네, 계동’이 만든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활동을 진행했다마을 주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우리 동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과에서는 ‘시간을 품은 공간, 답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우리 동네, 북촌 계동이 품고 있는 사적들의 현재 모습을 탐방하고, 그 공간의 과거를 살펴보았으며, 한걸음 나아가서 공간이 미래에는 어떻게 보존되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역사과에서는 우리 동네가 품고 있는 아득한 시간들을 느껴보는 활동을 진행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우리 동네의 공간들이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발전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미술과에서는 ‘소중한 우리 동네, 계동길 지도 그리기’를 통해 전체 활동을 마무리했다. 국어과, 역사과에서 찾아간 공간들을 ‘펜화 그리기(어반스케치)’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했고, 이 공간들을 하나의 지도에 담아 우리 동네를 타고 흐르는 기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술과에서는 국어·역사과 활동을 통해 찾아간 공간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서 학생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큰 자랑이다.

국어·역사과 활동

1) 모둠 편성 및 답사 공간 선정: 1차시

  • 3인 1조 (‘국어·역사’ 모둠을 동일하게 편성)
  • 모둠별로 공간을 교과별로 하나씩 선택 (3인 1조×5모둠×4반×2교과=총 40공간)’

2) 답사 사전 준비: 2~4차시

  • 국어과: 공간에 대한 첫인상 묘사하기, 인터뷰(면담) 기사 분석 및 인터뷰 질문 만들기
  • 역사과: ‘동북촌 이야기’를 참고하여, 각 답사 장소에 대한 사전 조사 및 답사 계획 수업

3) 공간 답사 활동: 5차시

  • 수업시간을 활용, 모둠별로 선택한 2장소(국어, 역사 각각 1공간씩)를 답사
  • 답사 활동지 작성 및 담당 교사 검사

4) 보고서 작성 준비: 6차시

  • 국어과: 모둠별 인터뷰 및 인터뷰 내용 정리
  • 역사과: 답사 결과 정리 및 공간의 ‘과거, 현재, 미래’ 모습에 대한 논의

5) 1차 보고서 작성 및 피드백: 7~9차시

  • 제시된 형식에 맞게 보고서 초안 작성
  • 다른 모둠의 보고서를 읽어보며 피드백 활동 진행

6) 최종 보고서 제출: 10차시

  • 보고서 최종 평가 및 조별 발표
  • 추후 우수작 발표

미술과 활동

1) 공간 사진 촬영: 1차시

  • 국어, 역사 수업시간에 진행한 공간 답사활동에서 공간 관찰 및 사진 촬영

2) 계동길 지도 제작의 이유와 방법 설명: 2~3차시

  • 공간아이콘 및 지도 제작
  • 펜화 그리기, 어반스케치

3) 계동길 지도 제작: 4~9차시

  • ‘사람과 역사를 품은 우리 동네, 계동길 지도’ 그리기

4) 서로의 작품 감상: 10차시

  • 작품 전시기획 및 설치하기
  • 친구들과 작품 감상하기

학교와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답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하진이는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계동을 들여다보았지만 모두 다른 소감에 하진이는 놀랐다. 멀리서 등하교하며 계동길은 그저 학교 가는 길, ‘너무 가파르고 멀다’는 불평을 갖고 있었으나 그 주변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된 친구, 현재 화려하고 관광객들이 붐비는 동네가 과거에는 조용하고 시골 같은 정겨움이 가득했던 동네였단 것을 새롭게 알게 된 친구, 어릴 때 추억이 가득한 옛 모습이 점점 사라지며 계동 고유의 풍경이 잊혀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친구.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계동에 대해 알아가며 새로운 추억을 쌓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하진이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억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
달았다. 지금은 하진이에게 추억 가득한, 어쩌면 내일 당장 사라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계동의 가게들. 하진이는 다른 동네로 고등학교를 가기 전에 계동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진이의 눈에는 여전히 알지 못하는 계동의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카페들. 식당들과 무엇을 하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간판들 까지.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주변의 모습이 보이며 동네 특색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계동이 사실 변화해가는 시대와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매력을 찾게 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 가며 조금은 어색해진 어릴 적 추억을 함께 해온 계동의 사람들과도 다시 한번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진이는 중학교로 들어오며 멀어졌던 계동의 많은 것들을 이제는 놓치지 않고자 한다. 예방 접종에 겁나 울상 짓고 있으면 사탕을 쥐어주시던 계동의 다정함을, 날이 춥다고 웃으며 어묵을 건네 주시던 계동의 정을, 지나가면 풍겨오는 진한 피향에 고개를 돌리면 아이스티를 타서 주시던 계 동의 향기를 말이다. – 중앙중학교 학생들이 만든 책, <북촌 계동에는 기억이 가득했다> 중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우리 동네, 북촌 계동.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계동길을 타고 흘러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목욕탕 ‘○○탕’이 브랜드 안경점으로 변모했고, 1940년에 개원하여 옛 추억을 담뿍 간직하고 있던 ‘○소아과 의원’의 간판이 얼마 전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생의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랜 기억을 품고 있던 공간들이 하나, 둘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는 계동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쩐지 가슴이 아린다.
‘우리 동네 산책길 지도 만들기’ 활동이 학생들에게 ‘우리 동네’의 여러 공간들에 담긴 다양한 기억들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재미있었던 활동이 아니라, 변해가고 사라져가는 것 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시작한 활동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곳곳을 누비며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책 출판 이후, 학생들은 다시 자신들이 인터뷰한 공간에 찾아갔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마을 주민분께 자체적 으로 ‘책 전달식’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마을 분들께 전달할 책을 받아가는 학생들의 얼굴에 귀찮아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소개했던 시의 내용처럼 계동이 학생들에게 ‘꽃’으로 피어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매일 스치듯 지나치던 등하굣길이 반가운 얼굴들로 가득한 ‘우리 동네’가 되었다. 우리 동네, 북촌 계동과 중앙 중학교의 동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마을의 아련한 기억들이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 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이제 계동길을 걸어 내려갈 때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만든 책, 잘 봤다며 고맙다며 인사해주시는 마을 분들의 한마디가 따뜻하다. 이럴 때는 변함없이 우리 동네를 지킬 수 있는 사립학교 교사인 게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쭉 우리 동네, 계동에서 배움을 이끌어내는 교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