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9 가을호 (236호)

학교급별 사례3 – 효문고등학교
학생 자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로운 학교

최홍길 명예기자 (선정고등학교, 교사)

7월 17일 오후, 덕성여대 부근에 자리한 효문고등학교 정문에는 등교시간과 관련하여 학생회에서 설치한 입간판 외에는 다른 것들이 안 보여 한적할 정도였다. 한참을 걸어서 본관 입구에 들어서자 지킴이 선생님께서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학생지원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6층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학생들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학생지원부 교무실은 성격상 보통 1층이나 2층 정도에 위치하지만, 이 학교는 6층 꼭대기 층에 자리했다. 높은 층에 위치해서인지 교무실이 유난히 환했고 학생지원부를 방문한 학생들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는 것이 ‘회복적 생활교육’의 개념이다. 좀 더 쉽게 말해 ‘교정과 훈육에 목표를 두는 생활지도’ 대신 ‘교사와 학생의 인권을 상호존중하는 등 관계 회복 중심의 생활교육’을 의미한다.

이 제도가 일선 학교에서 제대로 정착될 때, 부적응 행동의 예방과 관리 및 학교폭력의 치유 등이 가능하기에 평화로운 공동체 문화 조성에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동반성장까지 가능하다고 학자들은 강조한다.

이와 같은 ‘회복적 생활교육’이 몇 년 전부터 일선 학교에 도입되고 있으나, 아직 모든 학교에 일반화가 된 지도방침은 아니다. 하지만 효문고는 달랐다. 많은 수의 교사들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학급을 운영하기에 작은 운동장이어도 학생들은 불평 없이 즐겁게 체육활동을 하고, 매점도 없는 현실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 학교생활을 의미 있게 하고 있었다

학생회 주관의 각종 안내문

선도부가 없는 학교

올해 이 학교에 부임한 오원식 생활지도부장은 먼저 “단속 위주의 지도는 지양한다.”면서 “두발이나 치마, 액세서리는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파마 또한 너무 밝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규율이 느슨해짐에 따른 학생지도의 불편함도 거의 없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 신분에 맞게 정화(?)되기에 일거리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그 대신 학생들이 학교에 흥미를 갖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위한 여러 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효문고등학교에는 선도부라는 조직이 아예 없다. 그래서 아침 등교 시간에 선도부가 정문에 서서 ‘관리’를 안 한다. 대신에 ‘등교맞이’ 행사를 실시하는데 신학기가 시작되는 한 달 동안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교문에서 인사를 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자연스럽게 정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는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비타민 나눠주기’ 행사도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선제 조치를 하는게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최근 5년 사이의 학교폭력 건수 자료를 조심스레 보여주었다. 매년 5건 내외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는데 올해는 ‘조치 없음’으로 처리돼 결과적으로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이 가능한 골든타임 확보, 즉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선제 조치를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학생회에서 하는 일 몇 가지

6층 생활지도부실에서 대화하는 사이에 총학생회 부회장인 조성현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똘망똘망한 인상의 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상·벌점은 유명무실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언행을 하기에 벌점을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총학생회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건 공약이 세 가지였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먼저 ‘아침밥’ 행사다. 한 학기에 한 번 학생회 주관으로 치르는데, 특히 시험기간 중에 아주 빨리 등교하거나 늦잠을 자다가 아침밥을 못 먹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피자빵과 음료수를 제공해 주는 일이다. 학생회 소속의 동료들과 더불어 40만원의 예산으로 한 학기에 한 번씩 행사를 한다고도 덧붙였다. 둘째로 ‘이면지 사업’이다. 교무실에서 나오는 이면지를 모아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데 수학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 등을 외울 때 유효하다고 했다. 분리수거통으로 갈 종이가 재활용되기에 일석이조의 효과라고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뮤비 데이!’, 시험이 끝난 후 대강당에 모여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행사인데 올해 2학기 때는 꼭 실시하고 싶다고 했다.

이 학생은 자기 학급에는 ‘간식창고’가 있는데 ‘그곳’에 초코파이 등을 갖다 놓으면 아침을 못 먹고 온 학생들이 허기를 달랜 다음, 그 학생들이 다음날 간식창고에 비슷한 종류의 간식들을 가져온다며 바로 이런 게 나눔과 상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작은 지혜 하나가 학급 친구들을 더욱 돈독한 관계로 만들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달인

이 학교의 노효정 교사는 매달 주제를 달리해 실시하는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 운영, 그리고 빵 조회와 일일 담임으로 대표되는 ‘학생자치활동’으로 행복한 교실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었다. 학급운영의 핵심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학급 분위기 조성, 지속적인 서클 프로세스 운영, 교실에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3월에는 어색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활용한 첫인상 게임을,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에는 ‘희망교실’의 예산으로 학급 단합대회를, 사소한 일로 친구와 다투었을 때는 담임교사의 책상 위에 있는 사과박스에 사연을 적어서 원하는 날짜에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이벤트를, 6월에는 학교의 특색 프로그램인 ‘학급 야영’을 한다. 특히 생활기록부 자율활동 영역에도 기록되는 야영은 금요일 오후 5시부터 밤 9시 정도까지 학교와 교실에서 진행된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고기를 굽고, 체육활동과 만남의 시간 등으로 이어지는데 여러 행사 가운데 학급야영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학생들이 말한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8월에는 ‘이미지 게임’으로 유쾌하게 2학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학생이 “우리 반에서 이성친구에게 가장 많이 차여 봤을 것 같은 친구는?”이라고 질문을 던지면, 나머지 학생들은 검지손가락을 뻗어서 지목하는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학생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학급게시판에 정리해 학생들과 공유한다.

10월 학급문집 만들기는 오랜 기간 보관되는 창작물로 원고 수합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한 만큼 그럴 듯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재작년에 유명 출판사에서 공모하는 학급문집 경연대회 때 우수작으로 선정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학급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서클’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제안하여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급에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빵 조회’를 아시나요?

일주일에 한 번, 담임의 수업시간과 연계되는 날의 조회 때를 활용해 행사를 진행한다. 평소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학급 학생들에게 든든한 아침을 제공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담소를 나누며, 종국적으로 빵 먹는 날만큼은 지각자도 ‘빵명’으로 만들자는 취지이다.

준비물은 ‘토스트기, 접시, 버터나이프, 각종 잼, 번호표, 샌드위치백’이고, 선발된 도우미 학생 3명은 번호표 배부와 수합, 빵 굽기, 잼 바르기를 수행한다. 빵 조회 담당은 7시 30분까지 입실해서 행사를 준비하고, 등교하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배부한 뒤에는 순번에 맞게 원하는 빵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제공한다. 학생들은 담소를 나누며 빵을 먹는다. 나중에 더 먹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생각해서 샌드위치백에 보관한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꿀팁이 하나 있다. 1번 번호표를 받은 학생은 빵을 무제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빵을 양도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침에 가장 먼저 등교 하려는 학생도 많다.

10월 중순 이후부터는 역지사지 프로젝트인 ‘일일 담임’ 행사도 실시한다. 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조·종례를 직접 체험해 보는 극한직업체험 프로그램인데, 하는 일은 출결확인, 휴대폰 수거, 전달사항 안내 등이다. 담임교사 또한 조·종례에 참여하기에 이 시간만큼은 야자 타임이 가능하다. 학생들은 일일담임 영상물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 소감까지 적는다.

연수를 통해 자료가 공유되기를

노효정 교사는 교내의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접했고, 각종 연수를 받으면서 그 결과물을 학급에 적용하고 있었다. 특히, ‘피스빌딩’에서 출판된 ‘회복적 생활교육–학급운영 가이드북’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앞에 나온 이론보다는 뒤쪽의 사례를 참고해 학급운영에 활용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정의하면서 단편적인 이벤트가 아닌, 1년간의 장기 프로젝트로 실행하고 있었다. 이런 학급에서 지낸 학생들은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승의 날 등을 통해 추억이 깃든 학교를 찾아올 수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잼이 든 빵을 먹으며 나누는 담소, 학급 친구들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재미, 일일담임을 체험하면서 야간자율학습까지 즐겼던 일들이 어찌 기억 속에 자리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학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며 회복적 생활교육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