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0 여름호 (239호)

[학교사례 2]북서울중
배움, 느려도 함께 걸어요

허승희 명예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현장에서는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배움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런 학생을 짧은 시간 안에 똑똑한 학생으로 바꿔놓을 수는 없다. 왜 학습결손이 생겼을지 분석하고 원인에 따라 각기 다른 처방을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상당히 어렵고 긴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 아이들은 배움에서 소외되는가? 그들에게 부족 한 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기본적인 학습 능력인가? 학습 동기, 학습 의욕의 부족인가? 그들의 학습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부모, 교사 등 주변 환경의 요인인가?’ 등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과정은 언제 빛이 나올지 모르는 깜깜한 터널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 이 길을 걷고 있는 북서울중학교 선생님들의 지난 1년 간의 과정을 소개한다.

기초학습지원팀의 기초 작업

북서울중학교에는 교육과정부라는 부서가 있다. 교육과정부를 중심으로 학년 초 에 지역사회전문가, 상담교사가 의견을 공유하며 배움이 느린 학생에 대한 접근방법 을 의논했다. 진단검사와 지난해 성적을 바탕으로 국어, 영어,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파악하고, 그 학생들에게 낙 인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유념하며 대상 학 생을 선정하고 선생님들과 공유했다. 교사 간 협력과 소통을 위해 4회에 걸친 수업연 구회에서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 방향 을 협의하기로 했다.

배움이 느린 학생 유형 나누기

북서울중학교는 수업연구회를 활발하게 운영해왔다. 1년에 4번의 수업연구회가 있고 각 수업연구회 전에 2주 동안 전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는데 과목과 학년을 뛰어넘어 참관이 가능하다. 이 참관 기간 동안 배움이 느린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학생들의 성향을 유형별로 나누어서 분석했다. 아래 영어과 참관록을 보면 한 영어과 교사가 배움이 느린 학생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영어과 참관록 중 일부]

학습보조를 위한 협력교사

◇도입 계기

원래는 학생 간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멘티들의 학습 결과가 나오지 않자 멘토들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같은 학생 입장에서 멘티 를 독려하는 것도 부담을 느꼈다. 또 교사들도 학생의 수준이 너 무 낮거나 경계성 장애가 의심되는 학생들까지 같은 학생 멘토에게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안으로 분반수업과 방과 후 개별지도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학생에게 낙인감을 준 다는 것과 한정된 시간에 개별 특성이 다른 학생을 동시에 봐줄 수 없다는 문제점 때문에 재고되었다. 그래서 좀 더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에 맞게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보조강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운영 방식

학급에 개별학습이 필요하거나 기초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대상 학생 2명을 선정한 후 협력교사가 그 두 명 사이에 앉아서 도와주는 형식이다.

수업의 수준을 평균에 맞추느라 수업 시간 내에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았던 학생을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이 협력교사 도입의 목적이다. 대상학생은 학습적으로 부족한 정도가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칠판을 쳐다보거나 잠을 자고 딴짓을 했다. 하지만 학습보조를 위한 협력교사 프로그램을 수업에 도입한 후, 협력교사의 도움으로 본인 수준에 맞는 수학 문제를 수업 시간 동안 시간을 꽉 채워 풀어냈다. 또 대상학생의 실제 수준이 초등 수준인 경우, 학생의 자존감 하락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중등과정 내에서 초등과정을 연계 지도하여 정의적인 부분까지 지원하였다. 대상학생 외에 다른 학생들도 큰 위화감 없이 수업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유도하였고, 교사들 간에도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교사·학생 모두 만족

협력교사의 활용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었다. 대상학생은 물론 그 외에도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교사들은 평상시 뻔히 보이지만 도저히 손이 미치지 못했던 몇 명의 학생들을 협력 교사를 통해 학습 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원래 프로그램 종료를 계획했던 12월에서 종업식까지 사업을 연 장하여 운영했다. 이런 결과를 기반으로 수학과 협력교사 사업은 2020년에도 계속 진행하기로 했으며 나아 가 1, 2학년으로 확대하여 적용할 계획이다.

[국어 평가 중 비문학 읽고 요약한 후 자신의 생각쓰기 평가지]

과정평가 중 무제한 시험

무제한 시험은 어떤 성취 결과를 목표로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 획 참여 기회를 여러 번 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학업성취능력을 선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정규교육과정에서 제 시한 성취기준을 도달하는 평가 과정을 경험해보게 하는 것에 의 의가 있다. 북서울중학교에서는 체육, 국어, 한문과가 재평가 기 회가 주어지는 평가방식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체육 시간에는 외발자전거를 배우고 나서 한 학기 동 안 지속적으로 평가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거의 모든 학생이 외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국어 시간에는 비문학 지문을 요약하여 자기 생각을 쓰는 평가에서 무제한 시험을 보았다. 첨부 된 평가지를 보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힘들어할 정도로 국어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결국에는 지문을 요약하고 본인의 의견까지 적을 수 있도록 선생님이 꾸준히 함께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은 암기가 주된 요소인 만큼 정해진 기준을 넘을 때까지 계속 평가를 보게 했다.
이런 방법은 평가 기간이 길게 지속됨에 따라 교사가 계속 피드백을 주어야 하고 학생들의 의지를 다잡아야 하는 데서 오는 교사 들의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지필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는 점에서 배움이 느린 학생의 학습 동기나 정서적 측면에 도움이 된다.

즐거운 학교생활 4R(3R + Relationship)

4R’s 는 읽기, 쓰기, 셈하기의 기초학습능력(3R’s)과 더불어 학 교 생활에의 안정적 적응과 성장을 위한 비학습적 요소로서 관계 성(Relationship)을 더한 개념이다.
배움이 느리다고 해서 느린 아이들만 모아놓고 수업을 하게 되 면 이 학생들은 학교생활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4R’s 중 Relationship 관련 활동 미세플라스틱 활용 트리]

실제로 배움이 느린 학생 중 기초학력프로 그램으로 혼자 나와서 공부하는 것보다 반 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다고 의견을 표현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서 울중학교에서는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목표로 친구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사회적 경험을 제공하기로 했다.
담임 사제멘토링, 희망교실 등의 프로그 램을 통해 공연관람, 스포츠관람 등을 했고 교사는 학생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보냈다. 첨부된 사진은 배움이 느린 학생들이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프로젝트 활동에서 결과로 만들어낸 미세플라스틱 활용 트리이다. 이런 활동들이 학습능력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변에 좋은 친 구, 어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학습에 동기로 연결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도 학생 이 일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 처하지 않도록 힘을 길러주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며 지도했다.

느리더라도 함께 걸어요!

다음은 열정과 활력으로 가득찬 이수영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학생회 활동]

Q. 1년 간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A 배움이 느린 학생을 지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는 해도 안.될거야…’, ‘1년 동안.사칙연산을 열심히 가르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어.’ 와 같은 학생 스스로와 교사의 선입견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교사들은 늦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극복해냈어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수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무한한 정서적인 지지를 학교 에서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려고 노력했어 요. 원래부터도 성적 향상이 목표가 아니었어요. 정의적인 부분만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님들이 함께 임했기 때문에 힘들지만 지속할 수 있었어요.

Q. 1년 동안의 과정을 함축적인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A 축구를 할 때 선수들이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으면 골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요. 교사 간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목표를 잡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가요. 저는 로빙슛1 , 뻥축 구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뻥 차면 누군가 받아서 뻥 차줘 요. …중략… 이런 분위기는 교사 간 뿐만 아니고 학생 간에도 있어 요. 저희 학생들은 열심히 필기한 노트를 숨기고 하는 일이 없어요. 많이 공유하고 모르는 것은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태도가 있어요. 1년 동 위의 과정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단어로 협력과 로 빙슛인 것 같습니다.

북서울 중학교 교사들은 수업연구회를 통해 학생의 배움이 느린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며, 협력교사를 채용하고 무제한 평 가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부진을 해결하려 애썼다. 배움의 특성이 그렇듯 눈에 띄는 결과가 없다고 해도 그 과정이 절대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하게 함께 걸어 주어진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 글을 마친다.

  1. 로빙슛(Lobbing Shoot) 골키퍼의 머리를 넘기는 높고 느린 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