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0 여름호 (239호)

학습 소외의 주요 원인과
효과적인 해결 방안

  이찬승 (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소외(疏外, alienation)를 한 교육학 용어사전(하우동설, 2011)에서는 “개인이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지 못하거나 거리가 있는 상태”로 정의하고, 일반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편 한영사전에서는 “소외감을 느끼는 상태(be alienated), 주변화된 상태(be marginalized), 제외된 상태(be excluded)”처럼 정의하고 있다. ‘학습 소외에 대한 예방과 맞춤 지원’이라는 주제의 맥락에서 보면 ‘학습 소외’란 학습 주체인 학습자가 수업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주변화되는 상태를 말하는 데 수동적 소외(외적 요인에 의한 소외)는 물론 자발적 소외(내적 요인에 의한 소외)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학습 소외의 결과는 학습부진, 학습 무기력, 자신감 상실, 교육 격차의 증가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학습 소외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인 분석이 정확히 이루어져야 하며 그때 비로소 대응과 지원도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학습 소외의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학습 소외의 주요 요인별 해법

지금까지 학습 소외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응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효과가 미미했던 이유는, 원인은 매우 복합적인데 분석과 대응이 분절적, 선형적이었기 때문이다. 학습 소외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은 ① 환경 요인(입시 중심 교육 환경, 사회·경제 적 배경), ② 교사 요인(신념, 학생에 대한 기대, 원인 찾기, 전문성 자본), ③ 학생 요인(집중력, 정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 ④ 교육과정 요인, ⑤ 자원 부족 요인(학급당 학생 수 과다, 시간 부족), ⑥ 학교문화 요인 등 매우 다양하다. 각 요인별로 대응책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환경 요인

교육 소외와 관련된 주요 환경 요인에는 ① 입시 중심 교육, ②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등이 있다.

1) 입시 중심 교육

한국에서 교육 소외를 유발하는 교육 환경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발을 중시하고 등수를 매기는 평가 문화, 그리고 중· 고교가 대학 입시 준비 기관처럼 기능하는 현상이다. 등수를 매기는 문화는 비교와 경쟁을 부추기는 외적 동기로 작동하며,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는 자타가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든다. 이런 것이 자존감과 자신감 훼손으로 이어진다. 또한 입시 중심 교육은 배움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빼앗고 오직 ‘성적’을 높게 받기 위한 것만을 공부의 목적으로 만들고 만다. 인간은 각기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기에 오직 성적만으로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고 선별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교육적이다.
경쟁, 선발, 대학 입시 준비가 학교교육의 내용, 방법, 질을 결정하는 기제가 되면 심각한 학습 소외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대부분의 중·고교에서는 중상위권 위주로 수업하고 특히 고교 수준에서는 노골적으로 소위 ‘상위권 밀어주기 행태’ 가 벌어지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의 발달과 성장을 돕기 위한 기록이라는 교육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대입 선발을 돕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학교 수업을 정상적으로 따라갈 수 없는 학생들에게는 교육 소외와 배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교육 소외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로 인한 격차를 완화하고 좀 더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사교육 효과를 줄일 수 있는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사교육에서의 선행학습을 전제로 수업 진도를 나가서는 안 된다(김위정 외, 2017). 아울러 질 높은 과정중심평가도 필요하다. 결과 중심으로만 평가하면 사교육 효과를 줄이기 어렵다. 과정중심평가의 핵심은 형성평가다. 학습자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이와 성취기준 간의 차이(gap)를 확인한 다음 이를 줄이는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개별화 수업의 정착을 필요로 한다.
학교는 대학입시 준비를 중시하는 학교 환경과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격차 심화 등을 고려해서 학습 결손이 누적된 학생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 이다.

2)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아동이 어떤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고 자라느냐가 향후 학업 성취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이에 비례해 수능 성적이 높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표 1>을 보면 영유아의 부모의 소득에 따라 어휘력 차이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어휘력은 향후 인지적 학습 능력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신뢰성 높은 자료다. 만 3세 때 부유층 아동의 어휘수는 1,116단어인데 반해 저소득층 아동의 어휘수는 525단어에 불과하다. 또 만 4세가 되면 이미 부유층 아동과 저소득층 아동들이 노출된 어휘수 차이가 3,000만 단어에 이른다.

사회·경제적 배경 요인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문화자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아동의 학업 성취에 크게 영향을 미친 다. 문화자본과 아동의 학업 성취도는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가? 교과서 내용을 보자. 교과서의 내용과 활동은 대체로 주류 계층의 문화를 반영한다. 교과서 활동에 나오는 비행기, 해외여행, KTX, 외식 등의 소재는 중상류층 아동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빈곤 소외계층 아동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과서 집필자와 교사는 수업 활동의 구성, 평가 등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은 2014년부터 한국의 수능에 해당되는 SAT 시험에서 독해 문제를 출제할 때 학생의 배경지식과 문화자본이 끼치는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오직 읽기 글감 내의 정보만으로 답할 수 있도록 했다. 교과서나 시험문제의 지문이 그 사회 주류계층의 가치와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과 같은 접근은 매우 바람직하다.
문화자본의 차이로 인한 차별과 격차 그리고 교육 소외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고교 체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부 아이들만 특권학교에서 학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일반학교에서 함께 어울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도우며 사는 삶의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교사 요인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교육 소외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교사 요인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교사 요인으로는 ① 신념, ② 학생에 대한 기대, ③ 원인 찾기, ④ 전문성 자본 등을 들 수 있다.

1) 신념

교사가 어떤 교육적 신념을 지니고 실천에 임하느냐에 따라 교육 소외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아동 발달에 관한 교사의 대표적인 신념에는 고정 관점(fixed mindset)과 성장 관점(growth mindset)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교사가 “쟤는 어떻게 해도 안 돼.”처럼 낮은 기대를 갖는 경우이고, 후자는 교사가 “모든 아이들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처럼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기대를 높게 유지하는 경우를 말한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있듯, 한국사회는 인간의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규정된다는 고정관념이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인간 두뇌의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腦可塑性)1 특성이 증명되면서 이는 잘못된 믿음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일생 동안 변할 수 있다. 그러니 교사들도 “모든 아동은 (그 학생에 맞게 지도하면)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 라는 성장 관점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학생 성장에 대한 교사의 믿음은 학습 소외의 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학습 소외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업성취도가 낮은 아동에 대한 기대를 낮추지 않는 성장 관점, 모든 아동의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시켜 주려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신념(moral purpose)이 필요하다. 이런 신념이 “격차를 줄인다.”라는 또 다른 목표로 이어져야 한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 개인의 필요, 강점, 현재의 수준, 장래 포부 등을 고려한 개별 맞춤 교육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어느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를 가능하게 할 여건을 마련하고, 교사가 기초학력이 부족하고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2) 학생에 대한 기대

학습 소외를 줄이기 위해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흔히 교사들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열심히 가르치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습 효과 연구의 세계적 대가인 존 해티(John Hattie, 2017)는 학습의 효과크기(effect size)가 가장 큰 것으로 학생 성취에 대한 교사 기대(teacher expectations on students achievement)를 꼽고 있다. 학생성취에 대한 교사 기대란 각 학생이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란 교사의 기대 수준을 말한다.

유명한 기대 효과의 예를 하나 소개하겠다. 1963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은 학년 초에 미국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고, 그 뒤 지능 검사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20퍼센트 정도 되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그 명단을 교사들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이 학생들은 지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지적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8개월 후 로젠탈은 이전과 똑같은 지능 검사를 다시 실시했다. 그런데 20%의 명단에 들어 있던 학생의 지능지수가 지난번 검사 때보다 괄목할 정도로 더 높게 나왔다. 확인해 보니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로젠탈의 말을 믿은 교사들의 이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높은 기대를 갖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학생들도 교사의 기대와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기대 효과의 정반대가 낙인효과(stigma effect)다. 한 번 나쁜 사람으로 찍히면 스스로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아동은 주위 어른들의 기대 수준만큼 성장한다. 아동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교사의 교수법 연수를 강화하고 1교실 2교사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생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것이 효과면에서 훨씬 더 높다. 이것이 주는 시사점을 바탕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

3) 원인 찾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의 바른 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패와 성공에 대해 원인을 잘못된 대상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재능 부족으로 돌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력 부족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이때 원인을 무엇으로 돌리느냐에 따라 향후 문제 해결의 양상은 매우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학생이 여러 번 설명해도 수학의 기초 연산조차 못할 때 “쟤는 어떻게 해도 수학은 안 돼.”라고 말하는 대신에 “쟤가 4칙 연산의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나의 설명을 어떻게 달리해야 할까?”처럼 원인을 교사 자신으로 돌릴 수도 있다. 또, “학생들이 수업에 협조하지 않아 이번 수업을 망쳤어.”라고 말하는 대신에 “수업을 어떻게 바꿔야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을까?”처럼 개선의 대상을 교사의 수업 방식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동일한 문제를 놓고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의 접근이 크게 달라진다. 물론 문제가 있을 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원인이 양측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육자는 학생 재능의 부족보다는 노력의 부족으로, 학생의 부족보다는 교수법의 부적합으로 돌릴 때 얻는 것이 더 많다. 학생들의 생활지도도 마찬가지다. 관련 연구(Jessica Minahan 외, 2012)에 따르면 학생을 변화 대상으로 삼을 경우 성공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교사 자신이 변할 때 학생들과의 관계가 변하고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지면서 학생이 변화한다고 한다. 학습 부진 해결의 경우에도 원인의 진단이 바를 때 해결의 가능성도 더 커진다. 학생이 무엇을 잘했을 때 이를 타고난 재능 덕택으로 돌리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못했을 때 이를 재능 부족을 탓하기보다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것이 교육적이다. 학생이 “나는 바보인가 봐.”, “머리가 나쁜 탓이야.”라는 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탓할 때 교사는 “아니야, 좀 더 노력하면 돼.”, “이번에는 아파서 공부를 덜했기 때문이야.”처럼 노력 부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

4) 전문성 자본

학습 소외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resources)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원 전문성, 시간, 예산, 학교문화 등이다. 하그리브스 와 풀란(2012)은 교사의 전문성을 전문성 자본(professional capital)이라 부르면서 이를 인적 자본(개인의 자질), 사회적 자본(협력, 집단적 책임감, 공동체성 등을 중시하는 집단의 자질), 결정 자본(증거기반 결정과 전문가의 판단수준)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나눈다. 이 세 가지 자본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흔히 학교변화를 위해 교사들의 수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사 연수에 열을 올리지만 이는 그리 현명한 접근이 아니다. 개별 교사의 역량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는 학교를 바꾸지 못한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집단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는 공동체적 의식이 있느냐의 여부다. 교사 집단의 사회적 자본은 교사 개인을 발전시키고 교사 개인의 역량 강화는 교사 집단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풀란, 2016). 집단이 더욱 강해질 때 좋은 사람 들이 와서 좋은 동료들과 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집단과 개인은 서로 맞물려 더욱 힘을 키우게 된다. 이처럼 학교의 가장 소중한 자원은 교직원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교직원 전체의 자신감과 유능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교사들이 섬처럼 살아가는 기존의 개인주의를 벗고 공동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학생 요인

학습 소외, 학습 부진 등에 관련된 학생 요인으로는 ① 유전적 요인, ② 주의 집중력, ③ 학습 준비도(사전지식, 배경지식), ④ 정서, ⑤ 스스로에 대한 기대 등이 있다. 여기서 유전적 요인을 제외한 나머지 요인들을 잘 갖추려면 학습자의 뇌가 어떻게 학습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 집중력, 배경지식, 정서

학습이 정상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림 1]과 같이 3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① 새로운 정보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② 새로운 지식을 형성한 다음 이를 ③ 기존의 지식과 연결해 기억의 흔적을 응고화(안정화)시켜야 한다.
흔히 교사들은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 라는 가정을 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틀렸다. 사람은 가르친다고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학습이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동기를 바탕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집중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의미 있는 정보일 것’, 다른 하나는 ‘이해가능한 정보일 것’이다. 학습 소외를 겪는 학생들에게는 대부분의 수업 내용이 의미 있지도 않고 이해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런 학습자에게는 학습이 일어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뇌는 어떤 정보를 이해할 때 사전 지식이나 배경 지식(prior knowledge, background knowledge)이 없으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는 새로운 정보와 가장 유사한 정보를 과거 기억 속에서 찾아 패턴을 비교함으로써 가능하다. 또 배경 지식이 부족하면 이해 속도가 느려 만성적으로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학습과학의 기본 원리를 아는 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따라서 교사가 기초학습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도할 때 기초적 배경 지식부터 탄탄히 갖추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 1] 학습이 일어나기 위한 3가지 요소(Paul Howard Jones 외, 2018)

인간의 뇌 속에서 학습이 일어나려면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긍정적 감정 상태다. 인간의 뇌는 크게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이성의 뇌(thinking brain), 불쾌한 혹은 유쾌한 경험을 처리하며 위아래로 정보를 전달하는 스위치 기능을 갖는 감정의 뇌 (feeling brain), 호흡·맥박·혈압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생명의 뇌(survival brain)처럼 3층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특히 감정의 뇌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학습으로 가는 온·오프 스위치’라고도 한다. 따라서 학습이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감정 상태를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유지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만성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동료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며 수업 중 허접한 질문이나 실수를 해도 창피 당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은 학습의 최대 적이다.
이상과 같은 뇌의 학습 원리를 고려할 때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유지시키고, 감정과 정서를 관리하는 기술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제1의 역량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학생의 주의 집중력, 학습동기, 학습 준비도, 사회적·정서적 건강 등은 학생 요인이지만 이는 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교사 요인이기도 하다.

2) 스스로에 대한 기대

존 해티(John Hattie, 2012)의 학습의 효과 크기(effect size)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자기 기대’는 효과 크기가 최상위에 속한다. 이는 학생 스스로 주어진 목표에 비해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치(self-reported grades)를 말하는데 이것이 높을수록 성취도가 높아진다. 더 높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이고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필수적이다. 학생의 자기 기대는 학생 성취에 대한 교사의 기대, 그리고 성장 관점이 함께 작동할 때 실제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4. 교육과정 요인

학습 소외나 배제와 차별은 의도하지 않게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으로부터 비롯되는 면이 크다. 현재 우리가 성경처럼 믿고 따르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문제가 매우 많다.
첫째, 배울 주요 내용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준다는 점이 문제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새로운 교육을 외치면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통한 현장 교육의 획일적 통제는 여전하다. 잠자는 교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학생은 각기 흥미와 필요, 장래 포부가 다 다르다. 이들에게 똑같은 메뉴를 먹으라고 강제한다고 오늘날의 학생들이 주는 대로 받아먹을 리 없다. 일부 국가는 중학교 교육과정부터 상당 부분을 선택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만들 때 교사·학생과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주요 내용과 방향은 국가가 사전에 다 정하고 교사의 의견을 참고 수준에서 듣는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 만일 그랬더라면 2015개정 교육과정은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교육과정의 내용 구성은 국가의 필요와 개인의 필요가 조화를 이루고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교사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
둘째, 특히 고교 수준의 교육에서 국가 수준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단 하나란 점이 문제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상상해보라. 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아이들, 대학의 선발 인원 총수가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 총수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대학 갈 수 있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적어도 고교생의 30%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학생들의 장래 진로가 다양한데 하나의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모든 학생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복수의 교육과정체제를 열어야 한다. 학교 내 특성이 다양한 대안 교육과정도 만들어야 한다. 학교 밖 다양한 배움도 학력으로 인정해주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셋째, 깊이 있는 이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교육과정 시수와 학습량이 문제다. 사실 한국의 교과서 분량이 세계 주요국에 비해 양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습량이 매우 많게 느껴지는 이유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다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주범은 교과서의 분량이 아니라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이다. 이런 시험이 교육과정의 전반적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다 가르칠 수밖에 없다. 진도빼기 수업을 한다고 전적으로 교사를 비난하면 안 된다. 오히려 표준화 시험과 그것의 큰 영향력을 탓해야 한다. 수능시험을 자격고사 성격을 강화한 저부담 시험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 자원 부족 요인

학습 소외는 자원의 부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학습 소외를 야기할 수 있는 자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① 학급당 학생 수 과다(교사 수 부족), ② 시간 부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학급당 학생 수 과다

교육 소외를 막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가 적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 수를 늘려야한다. 각 개인의 흥미, 강점, 준비도, 장래 희망 등을 고려한 맞춤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가 중·고생의 경우 15명 이내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인다고 해서 학업 성취도가 향상되지 않는다. 주된 원인은 교사의 수업 방식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과 교사의 교수법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 시간 부족

학습 소외를 줄이기 위해 교사가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시간 부족이다. 동료들과 협력하고 공부하며 학습 소외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도 정작 시간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다. 따라서 교사들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핵심에 집중하기, 지속적인 행정 업무 감축, 보조 교사 확충,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등이 필요하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교 조직 및 운영 체계 도입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충분한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소외 없는 교육의 실천은 요원하다.

6. 학교문화 요인

학습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질 부분은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학교문화란 교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을 말한다. 학습 소외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교육적 신념과 협력과 협업, 공동체성 등이 학교문화로 정착 되어야 한다. 이러한 학교문화는 집단적 교사 유능감(collective teacher efficacy)과 집단적 교사 책임감(collective teacher responsibility)을 필요로 한다.
바람직한 학교문화는 어떻게 구축하는가? 학교문화를 바꾸는 데는 관계 향상, 신뢰 구축, 비전의 공유, 공동체 정신의 함양 등이 핵심 요소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효과가 검증된 ‘사회성·감성 역량 키움’(SEL: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프로그램 도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는 학교문화를 바꾸는 대표적인 변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SEL은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이에 바르게 대응하며 항상 더 좋은 판단과 선택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림 2] ‘교사의 사회성·감성 역량과 학생의 성과 모델’에서 보듯이 학생이 학업 소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의 SEL 역량과 학습자의 SEL 역량이 함께 향상될 필요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교사의 사회성·감성 역량 및 정서적 안정이 학생의 사회성·감성 역량 및 정서적 안정보다 선행적 요소라는 점이다. 교사의 소진, 교사의 만성적인 감정 노동 속에서 건강한 학급 분위기와 건강한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림 2] 교사의 사회성·감성 역량과 학생의 성과 모델(Jennings & Greenburg 2009)

교육 변화의 원리

교육 소외에 대한 이상의 다양한 원인을 알고 각 원인별 해결책을 추진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풀란은 자신의 책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학교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성공원리」(2016)에서 “학교변화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개혁가나 정책결정자의 잘못된 가설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단적으로 ‘학습부진 해결을 위해 기초학습보장법을 제정하고 적당한 예산과 기초학습 부진 담당 교사를 배정하면 학습부진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와 같은 것이 잘못된 가설의 전형이다. 교육의 변화는 이렇게 선형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 변화에는 원리가 있다. 이는 세계 교육계에서 오랫동안의 임상적 경험에 의하여 알게 된 것들이다.
교육은 어떤 원리를 따르면 변할 수 있는가? 이 분야 권위자 중 한 사람인 풀란은 ‘기초학습 부진의 완화’라는 변화를 기대할 경우 가장 먼저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meaning of educational change)부터 숙고하라고 조언한다. 이것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부터 따져보라는 것이다. 변화는 일반적 으로 ‘상실, 불안, 저항, 투쟁, 양면성, 불확실성 등’을 동반한다. 그래서 변화를 추진할 때는 이런 변화를 주도할 교사들이 겪게 될 ‘혼란, 부담, 냉소, 불신, 두려움, 치를 대가 등’의 주관적 의미(subjective meaning) 를 잘 헤아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해 ‘서울학생 기초학력보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교사 단체들을 포함한 여러 자문위원들과 회의를 할 때 교사집단으로부터 나왔던 다양한 이견과 저항이 기억난다. 이는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교육변화의 성패는 교육자들이 도입하려는 새로운 정책에 대해 얼마나 개인적인 의미(personal meaning)를 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 의미뿐만 아니라 집단적 의미 (collective meaning)까지도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의미(meaning)이며, 집단의 구성원들 간에 공유될 수 있는 의미(shared meaning)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개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특히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는 어떤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실패하기 쉽다(풀란, 2016).
풀란은 또 학교 변화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회개혁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는 변화의 현상학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교육시스템 내에 만연해 있는 고립주의와 개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이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한 시도이다. 개혁이란 단지 최신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실과 학교, 학구 등의 문화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교육 개혁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맺음말

학습 소외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학습 소외와 학습부진 문제를 분절적으로 대응해서는 효과가 적다고 하면서 필자는 분절적으로 해설하고 말았다. 이제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시스템적 사고(systems thinking)를 해야 할 때다.
어떤 정책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려면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풀란, 2016). 이는 학교, 교육청, 교육부가 동시에 바뀌어야 하고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의 조화로운 절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교육부와 교육청은 지시만 하는 하향식 위주였다. 이런 식으로는 바람직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과거 수십 년 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도 학업 성취도 향상이 미미한 현실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들로 하여금 학습이 느린 아이들을 위해 쏟을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연구년 제도를 활용해 학습이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맞춤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학습과학을 적용한 새로운 교수법 개발 같은 것도 적극 시도해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선별과 성적 중심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수능의 자격고사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학교장은 교사들이 행정일보다 학습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습 소외와 학습부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학습하고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울러 교사는 끊임없는 현장연구(action research)를 통해 효과적인 수업 방법이 무엇인지 실험해서 증거기반의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 소외와 배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교의 현실이 조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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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풀란(2016).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교육변화의 새로운 의미와 성공원리」(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교육을바꾸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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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SEL? https://casel.org/what-is-sel/

  1.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腦可塑性). 인간의 두뇌가 경험에 의해 일생 동안 변화할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