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19 가을호 (236호)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한 신뢰와 존중의 학교 문화 만들기

최중진 (경기대학교, 교수)

새벽 1시. 학교 기숙사 전체에 화재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재인 줄 알고 학생들은 놀란 눈을 비비며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을 매만지며 방을 나섰다. 초겨울 날씨가 꽤 차가웠다. 어디에서도 연기는 올라오지 않고 학생들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30여분이 지난 후 화재가 없음을 확인하고 학생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잠을 청한 지 두 시간 후 다시 기숙사 전체에 귀가 찢어질 듯한 화재경보음이 울렸다. 겨우 진정하고 잠이 들었는데 다시 울려대는 경보음은 화재의 공포심보다는 짜증과 분노의 감정을 일으켰다. 다음 날 기숙사 사감은 CCTV로 두 명의 청소년이 화재경보기를 울리고 달아난 것을 확인하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것으로 기숙사 학생들은 모든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갔으나 피곤한 일상이었다.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큰 소리만 들어도 불안하고, 또 그런 일이 반복될까 걱정되고 짜증도 났다. 경찰은 청소년들로부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훈방조치 했다. 기숙사의 학생들은 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몇 주 후 새벽 화재경보음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일은 필자가 대학원 시절 기숙사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분명하다. 그러나, 피해자인 다수의 기숙사 학생들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이고, 이들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의 한 마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Zehr,1990). 두 청소년이 특별한 이유 없이 수많은 차와 가옥, 공공기물 등을 파손했다. 감금 등의 벌을 받은 후에도 이들은 같은 일을 반복했다. 검사는 이들에게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보상하도록 명령했다. 명령 수행 후 두 청소년은 피해자를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는 일이 매우 힘든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현대적 의미의 회복적 정의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들 중 한 명은 회복적 정의의 실천가가 되었다.

회복적 정의는 미국의 Howard Zehr를 필두로 1970년대 후반부터 활발히 논의되어왔으며,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와 실천이 진행되고 있다. UN(2006)에 따르면 회복적 정의는 범죄의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지역사회 등 범죄와 관련된 사람들이 범죄로 인해 파괴된 인간의 존엄과 복지를 참여와 협력을 통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 접근과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Zehr, 1990). 응보적 패러다임의 대표적 기제인 형사 사법제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어떤 법을 어겼으며,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위의 예에서 화재경보기를 울리고 도망간 청소년들은 어떤 법을 어겼으며,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
그러나 응보적 질문에 의한 문제 해결과 피해 회복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포함될 가능성이 낮다. 기숙사의 학생들은 경찰로부터 그 청소년들이 어떠한 벌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전해 받지 못하며,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하거나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반면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에서는 ‘범죄로 인해 누가 피해를 보았고, 피해와 관련한 그들의 필요와 욕구는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Zehr, 1990). 그동안 소외되었던 피해자에 대한 권리회복이 핵심인 것이다.

회복적 정의는 북미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원주민들이 갈등을 해결했던 전통에서 유래되었다(Zehr, 1990). 따라서 오랜 역사적 전통과 더불어 실천영역과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는 피해자-가해자 중재 회합(Victim Offender Mediation-VOM), 가족-집단 회합(Family Group Conference-FGC), 회복 서클(Healing Circle) 등이다. 이 중 VOM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회복적 정의의 형태다. 각 주마다 그에 대한 정의와 관련 법률, 실천 방법 등을 상이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 주에서는 초범과 경범죄에 해당하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텍사스와 같은 주에서는 무기징역이나 사형과 같이 중형의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피해자가 원하고 가해자가 동의할 경우 회합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통해 VOM을 시행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안전한 장소에서 중재자와 함께 만날 때 피해자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가해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요구에 응하고 사과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과가 받아들여지거나 적절한 타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연구에서 피해자가 회복적 정의에 근거한 회합을 통해 자신의 역량이 강화되었음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Choi, Green, & Gilbert, 2011). 범죄로 인해 잃었던 통제감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Bottoms(2003)는 의도적인 결과는 아니나 회복적 정의가 가해자의 재범률을 낮추고 재사회화에 성공적이라고 하며, 최근 들어 회복적 정의가 청소년 범죄 분야에서 다양하게 적용되어 성공의 숫자가 이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 이유로 많은 정책 입안가들이 회복적 정의를 통해 반사회적인 경향이 있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친사회적이며, 윤리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개정된 소년법에 ‘화해 권고제도’를 도입하여 회복적 정의를 현행 사법제도 속에서 부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화해 권고라는 말 자체가 표현하듯 회복적 정의의 초점인 피해자의 권리회복보다는 소년범의 갱생에 더 큰 초점이 있다. 소년범의 갱생과 사회 복귀는 매우 필요한 것이나 이를 위해 피해자가 또다시 소외되고 ‘이용’ 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피해자에 민감한 진정한 의미의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보인다.

뉴질랜드에서는 1989년에 제정된 법률에 의해 살인과 과실치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청소년 범죄가 FGC라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통해 처리된다(MacRae & Zehr, 2004). 화재경보기를 울린 청소년들이 뉴질랜드에서 살았다면 이들은 경찰에 의해 훈방되거나 소년법에 근거한 형사처벌을 받기 전 가족들과 함께 그들의 범죄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은 기숙사 학생들 중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회합을 가져야 한다. 이 회합에서 소년과 가족은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과하고 보상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만일 캐나다나 미국의 미네소타 같은 곳에서 살았다면 회복 서클에 의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회복 서클에서는 이 사건에 관심 있는 지역주민 등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회합이 마련되고, 직·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회복하고 또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지역사회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비행청소년들이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경험을 경청하면서 공감능력이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Choi et al., 2011). 즉, 자신들이 그동안 재미나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가 피해자에게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듣게 될 때 범죄의 결과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주에따라 사법제도 속에서 VOM이 하나의 과정으로 포함되어 운영되기도 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검찰과 경찰은 지역 내 인증 프로그램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다. 필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VOM 프로그램을 일년 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사건 중 몇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네 명의 청소년이 퇴직자들이 모여 사는 고즈넉한 마을을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기물을 파손한 사건이 있었다. 청소년들은 야구 경기가 끝나고 넘치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하고 픽업트럭을 몰며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을 망치거나 우체통을 야구방망이로 쳐서 넘어뜨리는 비행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경찰은 이들을 체포했다. 이들은 초범이었고 비교적 경범죄에 해당하여 지역의 VOM 프로그램에 의뢰되었다. VOM을 진행하기 전 훈련을 받은 전문 중재자는 피해자들을 만나 가해자들과의 회합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이들 중 회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회합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매우 안전하며, 회합에서 소년들에게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할 수 있고, 사과를 받을 수 있으며,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과는 회합 준비에 특별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는 가해자들이 보일 수 있는 공격성이나 보복심리, 피해자에 대한 민감성의 결여 등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의 재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중재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 충분한 준비가 이뤄졌다고 판단되었을 때 이들은 VOM 센터에서 만났다. 만남에서 중재자는 이 사건이 프로그램에 의뢰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우선 피해자에게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피해자 중 한 노인은 오랜 직장 생활 후 평화롭게 살고자 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이 일로 인해 마을의 안전함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는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며 어린 딸과 함께 정성스럽게 만든 호박램프가 산산조각 난 것을 보고 딸이 몹시 충격을 받았으며, 집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현재 딸은 초인종만 울려도 놀라며 운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비행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의 발언 후 중재자는 가해 청소년에게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지를 물었다. 소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이기만 했다. 소년들의 뒤에 앉아 있던 부모들은 거듭 사과하며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소년들도 사과를 하며 용서를 구했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일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준비해 온 사과문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회합을 정회하고 중재자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묻고 피해보상의 범위에 대해 논의했다. 피해보상에는 금전적인 보상도 포함되지만,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에게 피해복구에 필요한 노동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합은 거의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필자는 회합이 끝나고 이 소년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피해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울먹였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한 소년은 자신에게도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겁을 먹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한 소년은 그냥 무심히 지나다니는 마을이었고 우체통이었는데, 이제는 그 우체통이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많은 경우 청소년들에게 범죄는 인격을 가진 사람에 대한 행위가 아니다. 즉, 우체통은 그저 하나의 물체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를 통해 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비행이 사람의 인격과 관계에 대한 심각한 손상임을 알게 되었다(Choi et al., 2011).

또 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를 다뤘다. 이 사례는 과실치사에 관한 것으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청소년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심각성으로 당연하게도 이 사건은검찰의 기소로 5년 형을 받은 소년이 2년 만에 가석방되면서 벌어진 경우였다. 소년의 어머니는 더이상 가족과 살고 있지 않지만, 소년이 석방되면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고 이 마을에는 다른 가족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검찰은 소년의 가석방을 결정하며 VOM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만날 것을 권고했다. 피해자 가족 중 아버지를 여윈 큰 딸이 의붓동생이었던 가해자를 만나는 것에 동의했다.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형기를 채우지 않고 가석방되는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가석방이 결정되었고 한 마을에서 살아가게 될 상황에서 길거리나 가게 등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만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중재자의 주도로 준비과정을 거쳐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함께 모였다. 큰 딸은 남편과 함께 참여했고, 가해자는 어머니를 동행했다. 큰 딸은 자신에게 아버지가 어떤 존재였으며, 아버지를 잃고 자신의 삶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울분 어린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큰 딸은 자신이 그동안 묻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 있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인 자신은 가해자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이에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던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많이 아파하셨는지, 칼에 찔려 쓰러져 있는동안 옆에서 누가 지켜주었는지, 임종 전 무슨 말을 했는지 등에 대해 물었고, 가해자는 담담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답했다. 역시 회합이 끝나고 피해자 가족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원상태로 회복할 수는 없지만 이제 삶에서 한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이 회복적 정의의 실천이 가지는 장점은 매우 많다(Hansen & Umbreit, 2018). 그렇지만 필자는 VOM에 참여한 가해자와 피해자, 중재자 등을 직접 만나며 회복적 정의의 실천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중 피해자에 대한 재피해 현상이 가장 두드러졌다(Choi, Bazemore, & Gilbert, 2012). 필자가 관찰한 첫 사례에서 몇몇 피해자는 가해 청소년들의 재사회화를 돕기 위해 회합에 참여해 줄 것을 중재자에 의해 종용받았다고 했다. 가해자들이 대학에 진학할 시기였고, 이번 사건에 대한 기록이 그들의 대학진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중재자를 통해 듣고 참여에 대한 압력을 느꼈다고 했다. 두 번째 사례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모두 자신의 안전에 대해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
재자는 안전과 관련한 도움을 경찰 등에 요청하지 않았다.

Bottoms(2003)가 관찰했듯 많은 곳에서 비행청소년의 사회 재적응을 돕기 위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호주의 Suzuki와 Wood(2018)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인지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에게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의 재피해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회복적 정의의 취지와 원칙에 어긋나는 심각한 현상으로 회복적 정의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분쟁 해결과정에 포함시키고 그들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통해 비행청소년이 사회재적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를 위해 피해자가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 피해 현상은 일정 부분 인지·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의 특징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회합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청소년의 공감능력 부족보다는 준비의 미흡이 이러한 문제에 기여하는 바가 더 컸다. 결국, 이는 회복적 정의의 원칙이 실천 과정 속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와 관련된 문제이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회복적 정의의 실천을 위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중재자들도 이러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복적 정의의 실천에 대한 제도가 미비하고, 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혼재하며,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모인 학교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부는 최근 들어 체험적 경험을 통한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체험적 교육은 지식에 비해 도덕과 사회성에 대한 실천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특징을 고려할 때 적절한 전환으로 볼 수 있다(지은림, 2003). 특히, 최근 들어 청소년은 가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보다 학교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019 청소년통계).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폭력과 같이 청소년의 관계망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처벌 위주의 접근에서 인성교육과 같이 관계망을 공고히 하는 접근이 예방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처벌 위주의 정책은 폭력의 예방 효과가 미미하고, 필요 이상의 긴장을 조성한다(MacKenzie,
2000). 더욱이 이러한 처벌 위주의 정책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회복이 아닌 가해자의 처벌이 주축이 되는 응보적 패러다임 즉, 가해자 중심의 관점에 의한 것이다. 정책의 전환은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대로인 채 제도만 바뀌는 현상을 많이 보았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의 원칙에 기초해 학교 현장에서 학생의 생활지도에 적용하고자 하는 실천적 접근으로(Amstutz & Mullet, 2005), 최근 국내에서 관심이 뜨겁다. 이 접근은 학생들의 공감능력을 높여 그들의 사회적·정서적 유능성을 제고시키고, 안전하며 서로가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학교 내에서 촉진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제공한다(이혜경, 최중진, 2018). 최근 연구에서 강인구, 김광수(2015)는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 실시 후 학급응집력이 향상되었다고 했고, 여기에서는 회복 서클 프로그램 실시 후 참여자 간 용서의 수준이 향상되었음을 보고했다. 정민주, 김진원, 서정기(2016)의 연구에서 참여 교사들은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면서 기존의 교육철학과 생활지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혜경, 최중진(2018)은 회복적 생활교육이 초등학교 고학년 학급 구성원 간 관계를 회복시켜 교우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고, 더불어 학급응집력이 높아져 교사를 포함한 학급 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고했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의 상황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기제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일 수 있고, 관계의 회복과 더 나아가 학교공동체의 회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이혜경, 최중진, 2018). 그러나 회복적 정의의 실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범죄와 이로 인해 변화된 관계의 회복을 대하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학교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이끄는 실천적 가치로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전체가 회복적 정의의 관점으로 생활교육을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사례연구가 필요하나 이러한 국내 연구는 많지 않다.

미국의 경우 회복적 생활교육을 학교 전체에 적용한 예로 펜실베니아주 팰리세이드(Palisade) 중·고등학교를 들 수 있다(Mirsky, 2008; 최중진, 2013 재인용). 이 학교는 학교폭력과 규율을 어기는 등의 문제로 전학을 오는 학생들이 많은 대안학교로, 학생들의 무단결석, 학업중단, 규율문제와 폭력 등의 문제가 많았다. 학교는 학생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이 일정 부분 교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학생 간 소외와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는 사람 간의 관여와 관심이 서로의 관계를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또는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학교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에게 책임과 더불어 지지를 함께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 학교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권위적 처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일과 이 일로 인해 영향받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실천 방법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학생들에게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경우 이를 회복적 정의에 의거해 다루고 도울 권리와 책임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마약을 가지고 등교할 경우 교사는 학생에게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그 사실이 확인되면 이를 경찰에게 알렸다. 기존의 접근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라면 이 학교의 경우 경찰의 개입과 함께 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학교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복 서클을 진행했다. 회복 서클을 통한 대화는 학생 간, 학생-교사 간, 교사 간, 교사-학부모 간, 그리고 학교-지역사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졌다. 학생들은 학교 내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갈등의 해결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학생 스스로에 의해 진행되고, 일어나는 것임을 인식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전체의 문화가 상호존중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Mirsky, 2008).

그러나 학교의 문화가 변화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팰리세이드 중·고등학교에서도 구성원들은 기존의 처벌적·훈육적 학교 문화를 회복적이며 상호 존중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했다(Mirsky, 2008).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학교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는 회복적 가치를 표현한 학교의 미션과 사명선언문 등을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학생들이 갈등의 상황에서 이러한 학교의 사명에 기초해 평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Franklin, Streeter, Webb, & Guz, 2018). 회복적 문화의 형성은 학교 관리자 또는 교사만이 아닌 학교의 구성원 전체의 참여로 가능하다. 팰리세이드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를 위해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복적 실천과 생활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실천적 훈련을 제공했다. 갈등 상황이 생길 때 전문적 중재자가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나, 학교상황에서의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교사와 학생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회복적 문화의 정착을 위해 이 학교에서 활용한 전략은 교사를 대상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지속적 전문역량강화교육을 실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동안 학생들의 갈등에 대해 불평하고 처벌 위주의 교육을 선호하던 교사들의 철학과 접근이 변했고, 자연스럽게 교사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들 또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학교의 문화를 변화시켰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소개된 후 학생 간 갈등 사례가 현격히 줄었고, 학교의 문화가 상호신뢰적인 것으로 바뀌었으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또한 높아졌다(Mirsky, 2008).

회복적 생활교육은 학내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실용적 개입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성공적 실천을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회복적 정의라는 새로운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제적이며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Gonzalez, Sattler, & Buth, 2018). 이를 통해 회복적 생활은 학교의 문화로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사회운동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편견없이 변화에 대해 진심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이는 새로운 ‘회복의 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적 대화는 응보적 대화와 더불어 선택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교육의 방식이자 철학으로써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교직원과 학생 사이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허수진, 오인수(2018)의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은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등 여건이 열악하고, 동료와 관리자의 인식과 지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연구에 참여한 교사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에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진정한 의미의 회복적 정의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학교의 모든 교직원이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교육과 더불어 지속적 훈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교직원을 대상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전문적 워크숍과 더불어 교실 내·외에서의 실제적 코칭이 이뤄질 때 전문가에 의한 1회성 교육이 아닌 학교 자체가 역할모델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은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또 교사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체적으로 회복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회복적 대화로의 방향 전환은 곧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학교 내 갈등이 평화롭고 원만하게 해결되고, 나아가 예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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