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19 여름호 (235호)

희망을 노래하는 배움의 공간

이인호 (전 한라대학교, 겸임교수)

필자는 가끔 지금은 사라진 어릴 때 살던 달동네를 생각하며 아직 남아있는 서울 하늘아래 몇 안 되는 달동네의 골목길을 오르곤 한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좁은 길을 오르다 보면 세 갈래 길이 절묘하게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두세 사람 정도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하늘광장을 만난다. 다시 그 길들 위에 빛바랜 대문들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에 솟아오른 나무뿌리가 자신의 등에 앉아보라고 수줍게 웃고 있다. 길들과 담들 사이의 길고 좁은 화단들은 힘들게 오르고 있는 나그네들에게도 함박웃음을 선사해준다. 낡고 허름한 모습이지만 그 길과 담, 대문들은 석양을 머금은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삶의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어느 건축가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숭고한 미를 간직한 얼굴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간다.

1. 배움이 숨쉬는 장소

가. 공간에서 장소로

갈릴레이, 뉴턴, 데카르트는 공간을 거리의 척도로, 운동의 기준체계로, 속성의 기하학적 좌표 등으로 절대적이고 분할 불가능한 동질의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이에 따라 근대의 사회적 공간도 수용기적 절대공간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물들은 공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훈육 위주의 체계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행동과 양식을 동질화하는 획일적 기능의 절대적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이후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그의 강연집 「거주함, 건축함, 사유함」에서 “건축함이란 본래 거주함이고 거주함이란 이 땅에 존재하는 방식이며 거주함으로서의 건축함이란 성장을 돌본다.”라고 하였다. 거주함의 본래 뜻은 ‘보살핌으로써 평화롭고 자유롭게 되게 하는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존재방식은 곧 구체적 삶이 실현되는 장소에 있다는 것이고 그 장소들이 모여 각각의 다양한 공간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리를 놓아야 미지의 것들이 출현하고 그것들은 배후의 선물을 가져다주며, 그 선물들은 이웃들을 불러 모아 비로소 삶의 터전이 열린다. 학교를 제2의 거주함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웃들의 선물로 더 풍족한 자유가 배어나고 존재의 사유가 배이고 희망을 배우는 살아 숨쉬는 학교 공간이어야 한다.

나. 혁신적 학교 공간

우리는 왜 공간을 혁신해야 할까? 도래하는 제4의 물결이 경계를 허물고 불확실하며, 끊임없는 변화와 유동적인 문명의 흐름이 내 신체의 땀구멍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의 인간중심적 휴머니즘의 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간들 너머의 세계에 접속해야 한다. 정보의 확장은 결국 인간 신체의 확장과 더불어 시공간의 다양체들과의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인간, 기계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인간-기계로의 인식 전환, 즉 모든 인간의 도구적 개념들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기존의 닫혀있거나 배제되었던 것들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안경을 착용하고 컴퓨터라는 도구의 자판을 이용하여 내 뇌의 신경회로를 무선으로 송신하고 있다. 이러한 나는 온전한 신체를 벗어난 사이보그일까?1 안경은 나의 보정물이자 나의 신체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으며 나의 손가락 끝의 운동들은 컴퓨터의 자판과 일체가 되어 나의 손의 일부인 것이다. 이미 나는 기존의 인간 경계를 벗어나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거슬러 올라가 그 근원적 문제에 직면하면 새로운 해석을 만날 수 있다. 학교 공간은 이러한 해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되며 끊임없는 접속의 공간으로 재구축되어야 한다.

2. 사용자 중심의 생활공간

가. 공급자에서 사용자로

대부분 공적시설들은 사적영역의 규모에 따라 일정비율로 제공되는 지극히 계산적이며 통계적인 체계에 따라 분포된다. 공원, 광장, 학교, 도서관, 문화회관, 관공서 등과 터미널, 대형 복합 물류단지 등 도시 인프라도 도시의 성장과 규모에 적정치의 표준화된 공간의 배치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공적시설들은 폐쇄적이고 관리 위주의 귀찮은 장소로 전락하게 된다. 사용자들을 임의해석한 공급자 위주의 장소들은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사용자들은 그 장소를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고 벗어난다. 사용자들의 구체적 행위와 비전들은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 나가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나. 제2의 집, 학교

학교가 집과 같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집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유해야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 따르면 “집은 품어주고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 삶의 안도감의 중심이며, 집은 흩어진 것들을 모으며 통합시킴으로써 인생에 지속적인 삶을 가능케 한다.”라고 보았다. 또한 “집은 몽상을 지켜주고 몽상가를 감싸주며, 우리를 평화롭게 꿈꾸게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꿈꾸는 집은 우리의 상상력을 키워나가도록 그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집같이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학교 공간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3. 리좀(rhyzome)적 사유의 공간

가. 수목형 구조에서 리좀적 구조로

로장스틸과 프티토의 “한 사회에서 임의의 두 사람이 꼭 한 명의 공통된 친구를 갖고 있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친구인 한 사람이 존재한다.”라는 저 유명한 우정의 정리는 “이런 식 으로 두 사람이 사귈 때 보편적인 친구는 누구인가?…이 점과 관련해 저자들은 이를 독재의 정리라고 부른다. 이것이이야말로 뿌리-나무의 원리이며…<권력>의 구조라는 것이다.”2 의 수목형 구조는 위계화된 관계와 중심장치를 갖는 것이 특징이며, 절대적 공간의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리 다른 모습을 취한다 해도 결국 그 중심으로 소환되는 주체는 수동적 주체일 뿐이고, 거기에는 창발성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학교 공간을 살펴보면 이러한 수목형의 공간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학교의 경계를 형성하는 울타리나 담은 학교라는 공간을 섬처럼 둘러싸 주변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듯하다. 또한 운동장과 교사동의 이분법적 외부공간의 대립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의 용법과 시간의 구분을 명료하게 구분함으로써, 학생들의 행위와 사고또한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 사로잡히게 해 점점 유연한 사유를 잃도록 만든다.
현관이나 홀 등은 오로지 출입 기능과 학교에서 전달해야 하는 정보를 알리는 기능만 하며, 계단에서 복도로 이어지는 길은 최단시간에 막힘없이 정해진 교실로 안내할 뿐이다. 그 길들은 최소한의 사물함과 빗자루만 허용해서 수업시간에 늦지 않도록만 작동한다. 동일한 크기의 박스형 교실에서는 전면 교탁을 향해 일렬로 잘 나열된 책상들이 자신의 자리를 부여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습득된 지식은 표면적으로는 엄청난 양분을 제공받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바로 배설되어 버린다. 정해진 하나의 원칙, 즉, 평가 받기 위한 지식의 습득 목표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도 우선시 될 수 없는 구조에서 어떻게 다양한 가치와 창의적인 인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반면, 뿌리 없는 줄기들이 분기되고 새로운 접속을 향해 뻗어나가는 형상을 리좀적 구조3 라 한다. 질 들뢰즈( 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천 개의 고원』 에서 언급된 리좀의 특성은 우선, 이질적인 것들의 접속이다. ‘와’를 중심에 두는 이 개념은 A와 B가 접속하면 A나 B가 아닌 전혀 다른 C로 변이된다. 이들은 이질적인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접속을 허용하며 정해진 방향도 없이 스스로를 변형하며 절단과 채취를 이어나간다. 또한 이 다양체들 하나하나는 고유한 차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로서의 ‘다수’이고 ‘다수’이면서 ‘하나’인 다중체인 것이다. 이러한 접속들의 특징은 이질성, 다수성, 차이, 반복구조, 생성, 변이, 다양체, 다차원, 탈영토, 평면화, 배치, 재영토화, 지층화 등의 개념들을 파생해 나간다.

[그림1] 고전적 형태의 교실과 복도

나. 리좀적 평면의 구성

접속이 다양하게 연결되려면 모든 항들이 평면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서로 간에 자유로운 결합과 변이의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또한 하나의 평면이 또 다른 지층의 평면과도 접속과 상호침투가 가능하다. 여기에서 공간의 유연성, 다목적성, 순환적 모델, 매개 등의 요소들이 추출된다. 우리는 이 요소들을 각 영역들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더욱더 입체적이며 독립적이고 개성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각 영역별로 리좀적 평면의 구성을 상상해보자.

1. 울타리

울타리는 분명히 경계를 표시해야 한다. 그것은 내적으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특질을 갖는 학습 역량을 강화하는 막으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주변에 배타적이지 않고 함께 숨쉬는 껍질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경계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그것의 밖에서는 쉼터, 그늘, 휴게, 운동, 전시 등의 복합기능을 갖추며 학교 내의 행사를 엿볼 수 있는 길게 형성된 다양한 스트리트형 문화 및 교류의 장으로 재탄생시키면 어떨까. 많은 눈들이 서로 교차하며 많은 사건들이 우연히 발생하는 학교울타리, 그 선형들 위에 문화, 체육시설과 강당, 북카페, 마을 정보센터, 유치원, 탁아소, 간단한 매점 등이 연속적으로 배치가 되면 학교의 아름다운 둘레길이 형성될 것이다.

2. 학교 부지

대부분 학교 부지는 단순히 교사동과 운동장 등 수평적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평활한 지형을 넓게 확보한다. 그런데 만약 학교부지가 경사가 심하다면 이미 다양한 동선과 기능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높은 산등성이에 옥상마당과 연결되는 생태학습장을 배치해 생태계를 직접 관찰하는 학습에 활용할 수 있고, 옥상정원에는 점심시간에 먹을 각종 야채를 심어 신선한 먹거리를 직접 채취하는 학습장이 될 수 있다. 열린 중정을 통해 각자의 교실이나 식당, 도서관으로 연결되는 옥외계단과 복도를 만들고 각층에서 지면과 연결되는 모든 층들이 1층인 그러한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3.운동장

우리나라 학교들의 운동장은 하나만 배치되고 그 규모 또한 너무 크다. 필요하다면 실내체육관이나 옥상면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동 내부의 사이 공간에 소공원(운동장)을 다수 배치하여 학생들이 수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대운동장은 절반 정도 크기로도 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대운동장이 필요한 행사는 지역사회가 공용으로 쓰는 공설운동장을 활용하거나 서너 개의 학교가 공동으로 쓰는 운동장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4. 현관 입구

현관 입구는 출입의 기능과 함께 모든 이용자들의 자연스러운 마주침이 일어나는 조금 특별한 장소이다. 이곳의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면 오가면서 짧은 대화와 소통이 일어나 서로의 안부와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입구에 낮은 턱들을 이용해 벤치나 의자 등으로 사용할 수 있고, 현관 기둥이 있다면 기단을 넓혀 앉을자리를 만들어 준다. 또한 전이공간의 레이어를 추가로 배치하여 개인적 담소도 가능한 매개공간을 둔다면 더 바람직하다. 그 외에도 외부의 조각공원이나 산책로와도 적극적으로 연결하여 대화가 꾸준히 일어날 수 있도록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2]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출입 공간

5. 홀과 계단

지금의 홀은 조금 넓은 통로일 뿐이다. 홀의 개념을 계단과 함께 다수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볼 수 있을 것이다. 홀에 필요한 수납 공간을 이용해 중간에 포켓 공간을 형성하여 쉼터를 만들 수 있고 로비 공간은 자연스러운 북 카페의 역할과 오픈 스튜디오로 활용할 수 있다. 몇 개 층을 오픈하여 계단을 통해 각 층의 복도와도 입체적으로 연결하면 계단 또한 스탠드와 겸한 계단식 집회나 개별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조성된다. 여기에 외부정원이나 전시관도 같이 연계시키면 다양한 유기적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6. 복도

앞서 말했듯이 단순한 동선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교실과 연계된 매개공간으로 공간의 성격을 재규정해야 한다. 복도는 수업시간 앞, 뒤로 틈새의 시간에 잠시 휴식과 대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습이 복도에서도 연장될 수 있도록 하며 외부 공간과의 출입이 직접 가능하게 하여 적극적인 전이공간의 역할도 겸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창문 하부단을 넓혀 벤치를 만든다거나 복도벽을 수납공간과 여러 모양의 개인이나 두세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쉼터, 두 개 층 정도를 오픈하여 입체적 복도로 구성하는 등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다.

7. 교실

교실은 일반교실과 특수교실로 구분되고 여러 반이 합반하여 수업하는 소강당까지 포함한다. 물론 특수교실은 그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각종 장치들로 인해 규모나 형태가 우선시된 다. 그러나 교실은 학생이나 교사에게는 집과 같은 안락함이 느껴지도록 개별적인 독립성이 확보됨과 동시에 수업의 형식에 따라 다양한 구조의 변화가 가능해야 한다. 동일한 모듈의 반복이 아닌 여러 개의 모듈이 마치 레고처럼 유닛을 변경할 수 있도록 구성하면 반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다. 어떤 교실은 중층으로, 어떤 교실은 거실과 테라스가 있고, 어떤 교실은 자체 전시실을 갖춘다거나 하는 방식이 가능하도록 변경이 용이한 건축의 공사법이 필요하다.

4. 공감의 건축

가.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저서 『공감의 시대』 에서 산업 혁명의 시대는 새로운 에너지의 활용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이 결합되어서 가능했다고 말하면서 공감의 능력을 중요시하였다. 주체의 해체와 탈 중심화 개념은 자기중심적 사유의 틀을 벗어나 타자성을 중심 개념으로 보고 이웃과 타인에 대한 연대와 공감의 시대로 변환하는 사유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공감의 건축은 이런 타인을 배려하는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다자의 소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나. 열림을 향한 민주적 공간

학교에서의 민주적 권리들의 주체는 학생뿐만 아니고 학교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공간 자체가 민주적 구성이어야 한다. 민주적 공간은 첫째, 폐쇄적이지 않아야 하며, 모든 구성원들에게 개방된 형태를 취하고 의도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열림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둘째, 쉬고 싶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언제라도 편안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얽매여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심신을 보충하는 사색과 성찰의 공간이 필요하다. 셋째, 자연과의 적극적 접촉이 일어날 수 있도록 외부의 공간이 다양한 방법으로 침투해 있어 생활 속에서 자연의 소리와 익숙해져야 한다. 자연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직접적 체험과 인식의 과정들이 변화를 겪으며 세계를 향한 공감적 능력을 촉발시킬 수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민주적 의사결정을 잘하기 위해서
판단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은 기존의 정해진 사고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삐딱하게 보기, 거꾸로 보기, 뒤돌아 보기 등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고 분석해야 진정한 의사 표현 역량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다양하고 수평적이며 연구와 사색할 수 있는 그런 민주적 공간에서라면 이러한 역량 함양이 가능하다.

5. 꿈과 희망의 학교 공간

우리의 꿈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자신의 미래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고, 나머지는 매일 잠들면 꾸는 꿈이다. 미래의 꿈은 현재의 상황들을 소중히 가꾸어 나와 타인들을 향한 아름다운 메시지들이 상상의 바다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매일 밤 꾸는 꿈들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의 반성 또는 무의식의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다. 두 꿈 모두 우리의 잠재적 에너지들을 현행화하려는 일련의 운동 과정으로 새로운 쓰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변화 속의 작은 차이들은 반드시 희망의 불씨를 키운다. 이미 주어진 대로 행하는 실존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자발적 공동체로 그들의 꿈들을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에서 ‘하고 싶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로의 사고의 전환은 행복을 꿈꾸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잘 짜서 제공해주는 수동적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변형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느슨한 공간기법을 학교건축에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할 때이다.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곽광수 옮김(2003), 공간의 시학, 동문선.
오토 프리드리히 볼로(Otto Friedrich Bollnow)/이기숙 옮김(2014),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강영안 옮김(2014),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이진경(2012),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그린비.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경남 옮김(2019), 공감의 시대, 민음사.
질 들뢰즈(Gilles Deleuze),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김재인 옮김(2003), 천개의 고원, 새물결. 질 들뢰즈(Gilles Deleuze)/김상환 옮김(2004), 차이와 반복, 민음사.
헤르만 헤르츠버거(Herman Hertzberger)/안진이 옮김(2009),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수업, 효형출판.


  1. “사이보그는 곧 인공적인 기관과 일체화함으로써 타고난 능력을 넘어서는 인간이다. 인간은 피부 바깥 세계의 인공물과 일체화해서 지식과 기능이 인스톨된 사이보그라 할 수 있다. 사이보그는 사회. 문화가 있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으므로 사회.문화로부터 떨어져서는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박동섭『비고츠키, 불협화음의 미학』(에듀니티, 2016) 199쪽
  2.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새물결, 2003) 39쪽
  3. “언제나 n-1에서(하나가 다양의 일부가 되려면 언제나 이렇게 빼기를 해야 한다) 다양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유일을 빼고서 n-1에서 써라. 그런 체계를 리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땅밑 줄기의 다른 말인 리좀은 뿌리나 수염뿌리와는 완전히 다
  4. 르다. 구근이나 덩이줄기는 리좀이다.”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새물결, 2003)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