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4 가을호(256호)

[고등학교]
좌담회:새로운 교육과정
실천을 이야기하다

정리: 이세주 명예기자 / 사진: 김율 명예기자

사회자 안녕하세요. 기말고사와 학기말 업무로 바쁘신 중에도, 계간 『서울교육』 특별기획 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3월 서울특별시교육청은 개정된 학교급별 교육과정을 고시하였습니다. 지금 학교 현장은 지난 3월 고시된 교육과정을 적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간 『서울교육』은 교육과정 분야의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좌담회를 개최해 이런 학교 상황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제도의 안정적 도입을 위해 학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을 논의하고 현명한 해법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 교육과정

사회자 처음 논의할 주제는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 교육과정’입니다. 『서울특별시 고등학교 교육과정』(서울특별시교육청 고시 제2024-4호(2024. 3. 25.)의 기본 방향에는 “학교 및 지역사회의 특성과 여건을 고려하고, 학생· 학부모·교원·지역사회 등의 요구를 반영한 특색 있는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을 지원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학부모·교원을 비롯해 지역사회의 요구까지 어떻게 반영하여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을지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이은하 사회자께서 첫 주제로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 교육과정’을 말씀해 주셨는데,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그 이전의 교육과정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습니다. 2021년 국가교육회의 파견 시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 추진을 위해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하는 현장에 있었고, 2021년 11월, 우리 교육청과 함께 ‘시민 참여로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혁신미래 교육과정’ 토론회를 개최했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협의 단계를 거치며 교육과정에 교원,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의 의견이 반영되었고, 2022년 12월 고시가 되어, 내년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치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만들어진 교육과정이 이제 세상에 나올 시기가 된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에 따라 각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학교 규칙, 교육과정 편성·운영 규정 등도 새롭게 정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협의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과 함께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만큼 학생에게 최적화된 교육과정이 설계되어야 하고, 이와 병행하여 교원 업무의 효율화 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윤현주 학교 현장에서는 지금 이와 관련된 준비를 단계적으로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1학년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되는 학년이기 때문에 새로운교육과정 편제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내년 2학년과 3학년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2년은 두 교육과정이 함께 적용되는 시기라 교사들이 혼동을 겪을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차이, 학점제, 학기제 운영 방식 등에 대해서 사전연수를 충분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체 연수뿐만 아니라 교과협의회, 교육과정위원회 개최 등 다양한 통로를 거쳐 교사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이죠.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교사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의견도 반영해야 하기에 이에 대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학생 의견은 학생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서, 학부모의 의견은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학교설명회 등 다양한 자리에서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내년도 교육과정의 뼈대가 거의 완성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있었습니다. 공통과목과 기본학점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교사 수급이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로 작용하기도 했고요. 가령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생활·교양 과목에 해당했던 기술·가정, 정보나 진로 교과 등을 어디로 이동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다는 전제 아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은하 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상황이 대다수 학교들이 처해있는 상황이죠. 저희 학교도 구성원 간 지속적인 소통으로 2025년 입학생에 대한 최적의 교육과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협의를 도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의를 이끌어 갈 때, 구성원 모두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학생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준우 저희도 학부모와 학생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부모 의견은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총회라든가 진로진학 설명회 같은 자리를 통해 모으고 있고요, 학생 의견은 학교장과의 간담회 자리 등을 통해서 경청하고 최대한 반영합니다. 이후 ‘가수요조사’ 과정을 거쳐 학생이 원하는 과목 수요를 바탕으로 소인수 과목 개설을 포함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편성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를 지난 몇 년 동안 운영해 온 경험과, 교직원 사이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문병진 저희 학교는 올해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진행하면서 집중적으로 고민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교사들 사이에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편성하려면 방향성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교직원회의 때마다 관련된 연수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교과별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해 교육과정 논의를 보다 심도 있게 진행했고요. 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교육과정 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수강 신청의 경우 저희 학교도 1학기 때 ‘예비 수강 신청’을 받아 학생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절차를 거치고, 실제 수강 신청은 수정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2학기에 진행합니다.

사회자 학교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비슷한 고민과 노력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하셨던 교장선생님께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강조점을 말씀해 주시면 현장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상수 학교에서 실무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고민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사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한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고 한편으로는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어떤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 고민하게 된 거죠. 고교학점제는 그런 고민의 결과 도출된 제도이고 개정 교육과정은 고교학점제에 맞는 과목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제도적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돕는다는 목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랫동안 대입에 얽매여 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저물고 있으므로 지식 전수를 넘어 아이들이 미래에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새로운 교육과정과 제도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학교와 교육청이 다양한 지원을 통해 보완해 가면서 ‘교육의 중심은 학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과정 편성과 관련하여 입시제도를 고민하되 학생들의 역량 함양과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둘째는 학교와 교사는 물론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책무성을 보다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는 우선 학생의 책무성을 보다 강조합니다. 과목별 최소 이수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미달하면 부족한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거죠. 학부모님도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과목별이수 기준을 일정 정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최소한의 역량은 길러주자는 것이죠.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마련된 방안입니다. 물론 학생들이 기본적인 역량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책무성은여전히 학교에 있습니다.

학생 맞춤형 수업 활성화

사회자 첫 번째 주제에서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펼쳐진 것 같습니다. 그 논의를 모아보면, 새로운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를 통해어떻게 하면 학생 맞춤형 수업을 활성화할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될 것 같은데요. 지금 교육환경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학교는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준비하고있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이은하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학교 안뿐만이 아니라 학교 간에도 교원학습공동체를 다양하게 구성하여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 교원이 AI·디지털 기반 수업 혁신, 교과별 수업 나눔, 고교학점제 연구, 진로 진학 및 IB 탐구실천 교원학습공동체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하며 수업 혁신을 통해 학생의 성장을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원학습공동체 내에서 연구한 내용을 실제 수업에 적용해 보고 그 결과를 전체 교사와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 교원학습공동체에 대한 교육연구정보원의 지원도 큰 힘이 되고 있고요. 교원학습공동체의 활성화는 수업 개선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고 키워가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생 맞춤형 수업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동교육과정 운영입니다. 공동교육과정은 거점형, 공유캠퍼스형, 온라인형 세 가지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단위 학교에서 개설이 어려운 소인수 과목을 인접 학교의 인프라나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개설·운영하는 것이죠. 다양한 실험·실습·실기 중심 과목이나 강사를 구하기 어려웠던 과목, 소인수 과목들을 거점학교나 공유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어서,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와 적성에 따른수요를 충족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미술 거점형 공동교육과정을운영합니다. 올해 1학기에는 ‘디자인 구상과 표현’, ‘발상과 디자인’, 2학기에는 ‘미술전공실기I’, ‘조형’ 과목을 개설하여, 예술계열 특목고를 진학하지 않더라도 미술에 적성과 소질이 있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깊이있는 1:1 맞춤형 미술 분야 수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울 전역의 18개 학교 학생들이 일과 후 저희 학교로 와서 스스로 선택한 미술 관련 교과를 이수하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윤현주  저희 학교는 공동교육과정 유형 중 공유캠퍼스를 인근 신광여고, 환일고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교는 ‘연극’, 신광여고는 ‘디자인드로잉’, 환일고는 ‘프로그래밍’을 개설하여 세 학교가 공동으로 학생 수강신청을 받아 수업을 진행합니다. 세 학교가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여러 측면에서 사전 협의가 필요한데, 우선 시간표를 짤 때 날짜와 시간을 맞춰야 하고 학생들이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강 시간 한 시간을 활용합니다. 학교와 교사의 입장에서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학생의 흥미를 만족시키고 역량을 신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살아있죠.

공동교육과정 운영은 장점이 참 많은데, 우선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운영되는 수업이기 때문에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진로를 탐색하는 데도 유용하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지역 상황이나 학교 차이에 따른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물론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위 학교의 시간표를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연극이나 디자인처럼 희소한 분야의 강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교사의 행정 업무 처리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죠. 이런 부분을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은하 단위학교에서의 소인수과목 개설 및 공동교육과정 운영의 어려움과 한계를 보완하고 지원하기 위해, 교육청에서는 2025년 ‘서울 통합온라인학교(가칭)’(이하 온라인학교) 개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학교의 개교와 함께 공동교육과정으로 혜택받는 학생들도 더욱 확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교학점제지원센터를 통해 지난 6월 2025학년도 2, 3학년 대상 정규시간 내 온라인학교 개방형 교육과정 즉, 공동교육과정 방식으로 운영될 ‘경제 수학’, ‘국제 경제’, ‘교육학’, ‘음악사’ 등 12과목 개설(안)이 학교로 안내되었습니다. 향후 2022 개정 교육과정 적용 시기에도 온라인학교가 학생과 학교의 희망과 수요를 적극 반영하여 ‘서울학생과 학교가 직접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편성·운영과 학생 맞춤형 수업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박준우  학생 맞춤형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저희 학교에서는 교과별 교원학습공동체 구성을 지속해왔고, 특히 올해 구성한 ‘IB 탐구실천팀’을 통해 선생님들이 함께 수업자료를 개발하여 이를 수업에 적용하고, 학생 주도 탐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융합 수업 자료 개발 교원학습공동체를 운영해왔는데, 여러 교사가 짝을 지어 융합 수업을 구상하여 공동 교수·학습과정안을 작성하고, 연구학교 공개 보고회에서 공개 수업을 실시한 뒤에 평가까지 이어지는 모임입니다. 이를 통해 수업 방법을 나누고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학기말에 학년별로 진행하는 교육과정 유연화 프로그램도 학생 맞춤형 수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목 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해서 여러 주제의 수업을 개설합니다. 학생들은 본인이 선택한 융합 과목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듣습니다. 여기서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수업이 진행됩니다. 저희도 인근 학교인 동북고, 문현고와 공유캠퍼스로 ‘인공지능과 미래 사회’, ‘물리학실험’, ‘보건’ 등의 교과목 공유와 함께 학교 특색 활동과 창의적체험활동 프로그램을 공유하여 시너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일반고 상황을 들어봤는데요, 공유캠퍼스나 거점학교 같은 공동교육과정과 교원학습공동체 운영으로 학생 맞춤형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수목적고등학교인 과학고 상황은 어떤가요?

문병진 저희는 남부 고교학점제 다더함 선도지구 학교 지원 사업에 참여하여 일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 수업을 진행하는 일반고-지역고교 연계 진로·직업 프로그램을 지난 2년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정규 수업의 많은 부분이 탐구와 실험, 그리고 학생 활동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학생 맞춤형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 원격수업 시범 학교로 지정되어 가장 먼저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며 온라인 협업 플랫폼을 정착시켰고, 오프라인 수업이 주가 된 현재까지도 이것을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어서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 토의, 토론, 협업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요즘엔 생명과학이나 화학 수업 등 정보 이외의 교과에서도 코딩을 활용한 수업이 진행되고, 선생님들 간에 이러한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실제

사회자 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학생에게 개별화된 맞춤형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각 학교별 상황을 알아봤는데요,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해 가장 어려운 부분이 교육과정 편제와 학점 배당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선 학교에서도 이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운영해 보지않으면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인데, 지금 학교에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상황과 유의할 점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좋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상수 교장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수 네, 우선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 주도적으로 자기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 설명회, 박람회 개최 등의 노력과 함께 과목의 특성을 고려한 4학점, 3학점, 2학점 과목 등 다양한 학점과목 개설을 통해 학생들의 과목선택 기회를 최대한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과정 ‘자율화’ 측면에서 시도교육청 또는 학교 상황에 적합한 교육과정의 운영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학교의 자율시간 등을 활용해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학생을 위한 수업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학점이 16회 수업으로 변경된 것은 공강 시간 확보 등을 위한 조치지만, 여유가 된다면 기존의 교육과정 유연화 프로그램(16+1)은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 및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2025학년도 신입생의 경우 대입제도 등도 고려하면서 1학년에 설계한 교육과정 편제를 2학년쯤에는 학생의 상황과 의견을 들어 수정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육청에서도 공동교육과정 및 온라인학교의 다양한 활용 방안과 소인수 과목이나 순회 교사나 시간 강사의 확보 등에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윤현주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보통교과가 재구조화되었습니다. 1학년 때는 공통 과목을 이수하고 2학년 이후에는 선택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선택 과목은 일반 선택, 진로 선택, 융합 선택으로 나뉘었습니다. 과목명 뒤에 붙은 숫자 ‘1’, ‘2’는 내용 영역으로 분류한 것이고 위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서대로 배우는 것이 자연스럽겠지만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로마 숫자 ‘Ⅰ’, ‘Ⅱ’는 위계가 있는 과목이니만큼 순서를 지켜서 학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때 학생 선택을 얼마나보장해 주느냐가 관건이겠는데 학교 상황과 교사 수급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 새로운 교육과정의 특징은 교육과정 편제 시에 한 학기 당 교과 29학점, 창체 3학점, 모두 32학점으로 동일하게 운영할 수도있고 어느 학년에 학점을 더 이수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유연화했다는 점입니다. 교과를 증감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물론 이때전체 교과 교사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게선결 과제이고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와 수능시험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에 2028학년도부터 바뀌는 수능 과목을 학교 지정 과목으로 할지 선택 과목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곤란한 점이 또 하나 있는데, 1학기와 2학기에 동일한 과목을 개설하면 모집단이 달라져 평가와 등급을 나눠야 하는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테고, 이에 대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교무부장님, 교육과정부장님 등이 공부를 많이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상수 새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교수학습과 평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학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위해 교과교육과정에서는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엄선하고 ‘교과 간 연계와 통합’, ‘학생의 삶과 연계한 학습’, ‘학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교과 수업에서 학생 주도형 수업과 학습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또한 최근 디지털 환경을 고려한 수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학생의 성취도를 가늠하고 학습흥미와 동기를 부여하며 다양한 학생주도의 탐구활동 등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다만, 모든 수업에서 획일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습 내용이나 수업 목적에 맞게 학생들이 다양한 탐구방법을 익히고 학생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지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네, 두 분께서 중요한 지점을 언급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 사안은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현장에 적용될 때 처음부터 오해의 소지 없이 잘 안착이 되어야 몇 년 뒤에도 혼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 내년부터 운영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해 학교 공간에 대한 논의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새 교육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이루어진 공간 변화 사례가 있으면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이은하 2010년대 초중반, 교과교실제 사업으로 중·고등학교 공간에 대한 변화를 시도했었는데, 이 사업을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 조성 사업’으로 전환하여 대대적인 지원과 함께 고등학교의 교육 공간에 새로운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도 2022년 하반기 학교 공간 조성 사업에 선정되어, 2023년 1년간 구성원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설계 및 공사를 거쳐 학교 공간을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에 맞게 재구조화하였습니다. 공간 구축을 위한 TF팀 구성 단계에서부터 학생들과 함께하여, 사용자 참여 설계가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자기주도학습 공간에 대해 실제 사용해 온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 구축 이후 학생들 만족도와 이용률이 눈에띄게 상승했습니다. 내년부터 개교하는 온라인학교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공간도 구축하여, 향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소인수 과목 수강에도 사전 대비하였습니다.

문병진 저희는 기숙학교라 공간 재구축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우선 공강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자율학습실 세 곳을 리모델링해서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강자가 많은 수업을 위해 교실 두 곳을 터서 대형 강의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공강 시간에 학생들이 쉴 수 있는 휴게 공간도 학교 곳곳에 마련했고요.

사회자 ‘고교학점제 학교 공간 조성 사업’과 ‘기숙학교 공간 재구축’에 대한 사례 잘 들었습니다. 공간 재구축에 대한 상황은 학교마다 다르고 수월한 일도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나 진로학업 설계지도와 관련해 준비되고 있는 사항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진로와 진학, 과목 선택, 학점 이수 등은 교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이 협업해 학생의 미래를 설계해 주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가능한 일인데요. 관련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박준우 맞습니다. 진로·학업 설계 지도와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은 함께 진행되어야 하며 협업 체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대학 진학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교사가 관심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죠. 그래서 저희 학교는 1학년 창체 한 시간을 ‘진로’로 편성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진로 로드맵을 설계하며 적성검사를 실시하고, 진로·진학 정보 제공, 상담 등을 실시하며 선택과목 조사 일정에 맞추어 선택 과목에 대한 안내도 함께 진행합니다.

문병진 저희도 비슷한데요. ‘교육과정 이수지도팀’ 을 만들어 이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진로가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진로 연구 모둠’을 구성하면 해당 진로와 관련된 전공 교사가 1년 동안 밀착 지도하는 것이 저희 학교만의 차별화된 진로진학지도 방법입니다. 개별 학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 대한 여러 데이터들을 하나의 파일로 관리하는데, 여기에는 학생의 진로·전공 탐색 검사 결과, 인성 검사 결과, 학생이 직접 작성한 진로학업 계획서, 과목 선택 현황 등의 데이터가 포함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진로 연구 모둠 지도 교사뿐 아니라 담임 교사, 교과 교사와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로 진학 지도를 해주는 거죠.

이은하 두 학교의 사례를 들으니 앞서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책무성’이라는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는 바로 ‘책무성’과 관련하여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미이수하는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지도가 중요하고요. 내년에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가 전 과목에 시행되므로 이를 대비하여, 우리 학교에서도 올해 시행되는 과목 선생님들께서 사전 계획 수립과 지도의 전 과정에 더욱 세심하게 임하고 계십니다.

이상수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 개념을 도입한 것은 과목 이수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미이수 없이 모두 기본 학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는 공통 과목에서 다양한 예방지도나 보충 지도 등을 통해 선택 과목을 이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생별로 개인차가 있겠지만, 여러 과목에서 미이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문제뿐 아니라 수업 자체에 대한 흥미가 부족하거나 정서적 문제일 수도 있으므로 다각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학생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학생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죠. 단일 과목의 이수를 돕는 것뿐 아니라 종합적 처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교사의 업무를 크게 늘리는 제도입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담당 교사들에 대한 수당 지급, 별도의 교강사 확보등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요망됩니다.

사회자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5학년도 1학년은 새로운 교육과정이, 2학년과 3학년은 기존 교육과정이 동시에 적용되므로, 학교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 좌담회를 통해 말씀해 주신 내용들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단초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럼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긴 시간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