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원(서울고등학교, 수석교사)
1. 왜 생각이 필요할까요?
최근 교육 현장과 관련하여 가장 큰 이슈는 AI의 발전이 아닐까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오픈AI의 등장은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필자가 시험한 바에 의하면 생성형 AI는 질문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답을 순식간에 제시한다. 생성형 AI가 발달할수록 질문자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과학 기술의 발전 시대에 교육의 나아갈 바는 무엇일까? 학교 교육이 담아내야 하는 교육과정은 무엇이고, 이를 평가하기 위한 바람직한 평가도구는 무엇일까?
지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습자의 역량을 강조하는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 마련되었다. 의사소통(Communication), 창의성(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협업(Collaboration)의 역량을 강조하는 이른바 4C가 학습자에게 강조되는 역량이라고 하였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런 역량은 여전히 중요하게 반영되어 있다. 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수·학습의 설계와 진행 및 평가가 중요하다 하겠다. 교수·학습에서는 교수자의 일방적 강의 위주보다는 학습자 중심의 수업과 학습자에게 다양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 학습이나 토의토론 중심의 수업을 설계·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업이 달라지면 평가가 달라진다. 거꾸로 평가가 달라지려면 수업도 달라져야 한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의 노력과 실천으로 학습자 중심의 수업이 증가하고 있으며, 평가도 전통적인 지필평가만이 아니라 과정 중심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수업에서도 ‘생각 쓰기 수업’을 실천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필평가에서도 서·논술형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더불어 학습자의 최소성취수준 보장을 위한 교수·학습과 평가가 강조되고 있어 교수자들의 교수·학습과 평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은 물론 도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역사과 지필평가에서 서·논술형 평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이를 위한 문항의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생각 기르기 수업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나무의 성장은 부름켜 성장과 나이테로 판단하고, 사람의 성장은 생각의 크기로 말해진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가정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을 통하여 생각의 근육이 점차 굵어진다. 생각의 근육은 생각의 지속성·방향성 등을 유지한다면 자라나기 마련이다. 거꾸로 생각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생각의 근육은 무디어지고 초라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우리들의 생각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호기심, 궁금증,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습자로 하여금 호기심과 궁금증을 심어주고, 혹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게 하고, 이에 대한 답안을 모색하도록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길러주는 방향으로의 평가도 이뤄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생각을 길러주는 수업의 하나는 이른바 ‘생각쓰기 수업’이고, ‘질문 있는 교실 수업’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질문 있는 교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에서는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진행되기 십상이지만,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모둠 질문을 만들어 토의를 진행하게 하면 학생들은 질문을 만들고 토의를 진행하며 결과를 발표한다. 질문을 만들고 토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습자인 학생들의 생각 근육이 움직인다, 다양하게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과 배려와 나눔의 역량이 증진되기 마련이다. 학습자의 수동적 측면을 능동적 측면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생각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은 다양하다. 교사가 어떤 생각과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의 중요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을 믿어주는 그윽함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도 잘할 수 있으며, 교사가 학생을 믿어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다면 학습자인 학생은 일신우일신하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평가와 관련한 생각 기르기 수업을 제시하고자 한다.
수업 개요
교수·학습 및 평가 계획
3. 평가를 통한 생각 기르기가 가능할까요?
“수업 시간에 서ㆍ논술형 평가 연습 이렇게 해보세요”
가족 모임으로 뷔페가 제격인 때가 있다. 모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원할 때는 뷔페가 좋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 탓에 본인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골라서, 그것도 양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뷔페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뷔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면 어떤 일이 전개될까? 우연히 자신에게 맞은 음식을 잘 찾아 고루고루 맛을 보면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뷔페의 특성과 음식 배치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면 타인의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거나 혹은 직원에게 하나하나 도움을 받으며 식사를 하는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수업에 따른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수업과 평가는 연계되어 있으며, 수업과 전혀 다른 별개의 평가는 있을 수 없듯이 서·논술형 평가와 수업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서·논술형 평가를 강조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생각을 길러주기 위함에 그 근원이 있다. 생각을 길러주려는 차원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위한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것은 어떤가? 교육과정에 맞는 수업을 설계하면서 해당 수업에 적절한 평가(서·논술형 평가 포함)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음에서 흥선 대원군 개혁 정치 수업 사례를 통하여 이를 간략히 제시하고자 한다.
수업과 연계된 평가 문항 사례
문항 1. [2차시 1번 문항, 문항의 주제: 경복궁 중건]
1. 다음 자료를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1. 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경복궁 중건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무엇인지 적어보자.
1-2. 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경복궁 중건의 문제점을 옆 짝과 짝 토의해 보자.
1-3. 짝 토의를 바탕으로 경복궁 중건의 문제를 근거를 제시하며 아래의 ‘서술 조건’에 따라 서술하시오. (100자 내외)
“정기고사에서의 서ㆍ논술형 평가는 어떻게 하나요?”
고등학교에서 흥선 대원군 수업은 일반적으로 두 차시로 구성되며, 1차시는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 부분, 2차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주로 다루어 진행한다. 혹은 3차시로 구성하여 3차시에는 내용 정리와 아울러 토의·토론 수업이나 특별한 사료 학습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른바 교육과정 재구성에 따른 교사의 수업 설계가 중요한 부분이다. 교과서에 제시된 사료를 활용하는 것도 좋으며, 교사가 알고 있거나 사료집의 새로운 사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만 학습자의 이해와 학습자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료보다는 교과서의 사료를 활용하는 것이 문해력에 어려움을 보이는 최근 학습자를 그나마 고려한 배려(?)로 보인다. 최근 학습자들의 특징은 긴 글을 읽지 않으며, 교과서 외의 부분에서 가져오는 자료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정기고사의 평가 문항이 학습자의 곤란도를 높여서 어려움을 주려는 차원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수준을 달성하였는가의 여부를 가르는 것이므로 굳이 어려움을 더하기 위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제시는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교수자의 재구성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다만 모든 자료는 교사가 판단하고 적용하는 교육과정에 맞는 교수 내용 지식(PCK)에 따라 필요한 자료여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이에 2차시 ‘평가 문항 3 호포제 찬반 자료 분석하기’와 관련한 문항을 예시로 제시하고자 한다.
문항2. [2차시 3번 문항, 문항의 주제: 호포제 실시]
2. 다음 자료를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2-1. 위의 (가)와 (나)는 어떤 제도에 대한 찬반의 글이다. 제도의 명칭을 적으시오.
2-2. 위의 (가)와 (나)의 주장을 요약하여 서술하시오.
2-3. 위의 (가)와 (나) 중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근거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시오.
4. 나가는 말
수업과 평가는 연계되어 있으며, 교수자인 교사는 항상 평가를 염두에 두고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해야 하며, 나아가 수업과 평가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창의성과 협업, 비판적 사고력 등의 역량이 필요한 시대이다. 생성형 AI가 등장하여 인간의 활동과 역할에 혼란을 더해주고 있다.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를 염두에 두고 수업을 설계한다면 학습자인 학생에게 무엇을 길러주어야 할까?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수업과 평가의 방향은 곧 교수자이자 수업의 설계자인 교사들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과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들도 높다. 독서의 경험을 높이는 것, 토의토론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 나아가 생각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인간의 육체가 적절한 움직임을 통하여 근육이 강화되듯이 우리의 머리에 생각 근육을 길러주어야 한다. 생각 근육은 단시간의 노력과 일회성의 활동으로 쉽사리 커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성과 인내력을 통하여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학습자인 학생들에게 글쓰기 연습을 하도록 수업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 문항이 제작된다면 매우 바람직한 수업과 평가라 판단된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서·논술형의 확대와 적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발행되는 주요업무지침에 담겨있는 사항의 하나이며, 학교 현장에서 모든 교사들이 매년 평가 계획을 작성하고 실천하며 고민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은 바로 실천을 염두에 둔 것이기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먼저 수업을 설계하면서 평가 예시 문항을 만들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매 수업 시간에 하나의 서·논술형 예시 문항을 5~10분 정도씩 적용하여 활동하는 것은 학생들의 생각 근육을 길러주는 주요한 과정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기 고사에서 서·논술형을 적용한다면 학생들이 보다 수월하게 답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은 다양하며, 현장의 교사들은 수업과 평가를 설계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걱정과 두려움을 앞세워 실천을 미루는 교사도 있겠지만 교수자의 설계와 학습자인 학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을 하다보면 노하우도 생기고 길도 보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내가 가는 오솔길이 대로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