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4 가을호(256호)

[교육활동 우수사례 ①]
‘힙지로’에 간 아이들,
지역의 창으로 세계를 배우다
-성동고등학교 학교 밖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이민재 명예기자

들어가며

교복 차림을 한 학생들 여럿이 덕수궁 정동길을 따라 걷고 있다. 푸른 생기를 가득 머금은 가로수 사이로 초봄의 햇살이 쏟아진다. 선생님께서는 힘찬 발걸음의 아이들을 인도하시며 그들의 목적지에 관해 설명하신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덕수궁으로 이곳은 선조가 행궁으로 처음 쓰기 시작했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에는 황궁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규모가 축소되어 덕수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에서 대한제국까지 이어지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역사 공간인 셈이다. 근처 벤치에 나들이 삼아 나와 쉬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도 선생님의 열정 가득한 해설에 어느덧 푹 빠져 듣기 시작한다.

휴일인 토요일 오전에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혹자는 체험학습이나 동아리 활동 중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교복을 입은 21명의 학생들은 성동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고, 강사 선생님은 성동고등학교 인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역사교육 전공 대학원생이다.

주목할 점은 학생들이 학교 정규 수업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3월부터 12월까지 매주 2시간 수업을 들으며 중구 곳곳을 탐방하고 있다. 5월에는 남산 곳곳을 방문하여 중구의 역사, 문화를 탐방했다. 가을에는 2030 젊은층이 몰려드는 중구의 핫플레이스, 일명 ‘힙지로’에 방문하여 골뱅이와 노가리 골목에 즐비한 트렌디한 커피숍, 판매점 등을 지날 것이다. 노가리 골목은 원래 ‘을지로 인쇄골목’으로 불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 노가리와 맥주 등을 파는 가게가 활성화된 거리이다. ‘출판인쇄’부터 ‘힙지로’까지 오랜 역사와 현대 트렌드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노가리 골목은 자연스레 을지로 조명, 가구거리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사를 이끈 산업역군의 집적 지역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집과 학교가 위치한 자기 지역의 오랜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생한 역사, 문화 수업을 듣는 것이다. 이들의 발걸음이 닿는 중구 전체가 수업 교실이고, 보고 느끼고 만지는 모든 것이 수업 재료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동행하여 함께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학교 밖에서 하는 활동이 학교의 정규 교과목 수업 이수가 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이렇게 매주 학교 밖에서 수업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교육과정 다양화, 교실이 된 지역사회

이에 대한 답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학교 밖 교육’에 있다. 급격한 사회 구조 및 직업 세계의 변화 등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학생 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폭넓은 학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교육자원을 활용한 학교 교육의 요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도입된 학점 이수 제도가 ‘학교 밖 교육’이다. ‘학교 밖 교육’은 지역사회 기관을 활용하여 학점을 이수하는 과정이다. ‘학교 밖 교육’은 학생이 진로·적성을 고려하여 수강을 희망한 과목 또는 창의적 체험활동 중 학교장이 학교 내 개설 또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으로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과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지역사회 기관을 통해 이수하는 교육을 뜻한다.

‘학교 밖 교육’은 학교장이 학교 여건과 학생・학부모・교사의 요구를 고려하여, 학교 교육과정위원회의 자문과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먼저 학교는 학교 밖 교육 개설 및 지역사회 기관 등에 대하여 교육감의 사전 승인을 받고, 학교교육계획에 반영하여 운영해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기관은 협의 또는 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학교 밖 교육 개설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지역사회 기관은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며, 학교의 교육과정 수준에 준하는 내용으로 구성 및 운영해야 한다. 학교는 학교 밖 교육 과정을 3년간 최대 8학점 이내 편성・운영할 수 있고, 운영범위는 크게 보통교과의 진로 선택과목, 교양교과(군), 전문교과 Ⅰ・Ⅱ, 교육감 승인 과목을 포함하는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나뉜다.1

이러한 ‘학교 밖 교육’은 지역사회와 연계한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미래교육지구의 지역연계 교육과정’ 과 비슷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먼저, 지역연계 교육과정이 몇 주 단위의 프로젝트 수업인 반면 ‘학교 밖 교육’은 학점을 이수하는 독립된 교과목이다. ‘학교 밖 교육’이 체계적인 내용과 성취기준을 갖춘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일관성 있고 깊이 있게 진행되는 것이다. 학점 이수에 필요한 정식 교과목으로 승인받아 진행되는 만큼, 학생들 역시 정규 수업 과정임을 인식하여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 또한,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일괄로 신청 학교를 모집하는 지역연계 교육과정과 달리, ‘학교 밖 교육’은 학교가직접 신청하고 지역사회 기관이 운영 주체가 되는 교육과정이다. 따라서 교육청의 활동 예산 지원이 따로이루어지지 않아 학교와 지역사회 기관이 운영비를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큰 어려움이 있다.

한국 역사 현장의 중심, 중구에서 꽃 핀 서울특별시교육청 최초 ‘학교 밖 교육’

‘학교 밖 교육’의 유익한 목적과 취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교과목을 만들어 심의를 받고 운영하기까지의 과정은 학교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학교가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여기 ‘학교 밖 교육’의 선구자로서 서울특별시교육청 최초로 ‘학교 밖 교육’을 개설, 정식 교과목으로 승인받아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의 성동고등학교가 운영하는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Understanding Local Culture in the Age of Glocalization)’는 일반고의 ‘학교 밖 교육’ 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

2022년 성동고등학교에 공모교장으로 취임한 권영기 교장은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학생이 돌아오는 중구’라는 중구청의 교육 비전에 공감하면서도, 도심 공동화로 학생 수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 이 같은 비전을 어떻게 학교 교육과정으로 구체화하고 도약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그리고 역사・문화의 중심지 중구의 무수한 콘텐츠를 단순히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학교 정식 교과목으로 신설 운영하면 학생들이 세계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고 글로컬(Glocal) 시대 중구 지역문화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 착안하였다.

2023년 5월,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밖 교육’을 운영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신설 과목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여 심의를 받고 다시 검토 및 수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2023년 11월 1일, ‘글로컬 시대의 지역 문화 이해’는 마침내 학기당 총 34시간 2학점을 이수하는 보통교과의 교양 선택과목으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학교 밖 교육 교과목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는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유지하고 존중하면서 세계적인 트랜드와 연결되는 것을 중요시하는 글로컬의 가치에서 출발하였다. 지역사회의 독자적 특성을 간직한 창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은 것이다. 평소 아이들이 무심코 지나치던 지역 공간에서 기성세대가 발견하지 못한 문화・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양성을 꿈꾸었다. 아이들은 중구 곳곳을 누비며 우리 지역(마을)의 자연·인문·역사・문화적 환경을 이해하고 글로컬 시대의 지속가능한 지역 문화와 홍보 방법을 탐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통찰력, 통합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고 지역문화에 자긍심을 가지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학교 교육과정을 기획하였다.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 학생들은 말한다.

“수업에서 감동을 느껴요!”

‘글로컬 시대의 지역 문화 이해’ 교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능동적, 자발적으로 수업 내용을 미리 예습해 올 뿐만 아니라, 매시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사들 중에는 수업 담당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활동에 참여하며 인솔 지도에 참여하기도 한다. 중구의 유구한 역사·문화적 콘텐츠를 몸소 체험하고 그 감동을 함께 느끼는 일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서울의 중구에서 꽃 핀 ‘학교 밖 교육’이 서울시를 넘어 전국 시도로 확산되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성동고등학교의 ‘학교 밖 교육’ 활동을 기사로 접한 제주특별자치도의 대정고등학교에서는 7월 예정된 ‘학교 밖 교육’ 학생 탐구 발표회 및 워크숍 일정에 참관을 요청하기도 했다.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 워크숍을 통한 성찰과 성장

7월19일(금)~7월20일(토) 1박 2일 동안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 워크숍이 실시되었다. 워크숍에는 ‘학교 밖 교육’의 운영 주체인 중구청장, 동국대학교 사범대학장이 참석하여 학생들을 격려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대정고등학교 교사 3명,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장학사도 ‘학교 밖 교육’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워크숍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수강 학생들은 1학기 동안 수업에 참여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한 후 성장 소감을 개인별로 카드뉴스를 제작해 발표하였고, 6개 모둠별로 2학기에 활동할 장소를 대상으로 ‘모둠별 문화해설 기획안’을 발표하였다. 마을교육공동체 전문가 홍지오 박사(제주대 겸임교수, 교육학박사)의 ‘글로컬 시대의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학교, 지역 사회 교육공동체의 역할과 연대, 협력 방향’,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이현주 장학사의 ‘글로컬 시대의 제주 지역 문화 가치와 발전 사례 및 전망’, 중구상권관리소 정경원 이사의 ‘글로컬 시대에 중구의 지역적 특성과 전통을 활용한 특색 시장과 경제적 발전 가능성’ 3가지 특강은 학생들이 글로컬 시대의 지역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학교 밖 교육’의 3가지 성공 키워드

성동고등학교 ‘학교 밖 교육’에 숨겨진 3가지 성공 키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학교 밖 교육에 대한 학교장의 이해와 경영 철학, 그리고 교사들의 열의이다.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 과목은 최종 승인까지 꼬박 1년이 걸린 길고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 교육과정 설계, 교육 프로그램 작성, 전문 강사 확보, 예산 편성, 지역사회 기관 발굴, 홍보 자료 제작, 생활기록부 관리 등 모든 과정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교장, 교감, 교사들의 확고한 신념, 명확한 비전 공유, 일관된 실천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활용 가능한 지역 사회의 다양한 교육자원과 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다. 중구에 존재하는 무수한 교육자원(지역문화 콘텐츠)은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라는 과목이 탄생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되었다. 다른 학교도 해당 지역 사회의 문화 유산이 풍부하다면 현재 성동고등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를 학교 교육과정 교과목으로 편성하여 고교학점제 이수 과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교육(수업) 콘텐츠로 재해석하고 가공하는 역량은 지역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 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지원이 중요하다. 학교 밖 교육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학교가 아니라 지역사회 기관인만큼 역량 있는 지역사회 기관과의 유대와 교육 협력이 필수적이다.

‘글로컬 시대의 지역문화 이해’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중구청 교육정책과와 교육지원센터는 성동고등학교와 함께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을지로 4가 유니크 팩토리’는 중구청이 관리하는 공유공간으로 강의실 구비는 물론 출판, 강의, VR체험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중구청은 유니크 팩토리를 수업 장소로 제공하고 필요한 교육경비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학교 밖 교육’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홍보 및 보도 자료 제작에도 함께 했다. ‘학생이 돌아오는 중구를 만들자!’라는 중구청의 교육 비전과 학교 교육활동 지원 의지가 성동고등학교의 교육 철학과 맞닿아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역량 있는 전문 강사 요원 확보라는 난관은 중구에 위치한 동국대학교와의 협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를 강사로 위촉해 수강 학생들에게 거시적·통합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교과수업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성동고등학교의 ‘학교 밖 교육’은 중구청, 동국대, 성동고라는 3주체가 긴밀하게 협력하여 탄생한 새로운 교육과정 모델이다.

나가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성동고등학교의 ‘학교 밖 교육’은 교육이라는 뜰에 모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뿌리 내리고 마침내 꽃 피운 결과물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현장을 응원하고 아이들을 열심히 교육해 보자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이해한 아이는 세상을 이해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는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지역 문화의 현대적 가치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져 모두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 온 마을(지역)이 키워낸 한 아이가 다시 돌아와 글로컬 시대의 세계 시민에게 사랑받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1. 서울특별시교육청 중등교육과 ‘2024학년도 일반계고 학교 밖 교육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