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우(불암고등학교, 교사)
우리 교원학습공동체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규 교사로 발령 받았던 중학교에서 함께 국어 교사로 만났던 우리 다섯은 그사이 중-고 간 이동을 거쳐 지금은 모두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같이 중등으로 묶이기는 하지만 수업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우리는 다시 신규 교사의 마음이 되어 각자의 학교에서 고등학교 수업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때 선생님들과의 이 모임이 서로에게 많이 의지가 되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도 교사라면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 학교 밖에서까지 학생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 수업 이야기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고 만나도 선생님들이 모이면 어느새 학생들, 학교, 수업 이야기로 흐르고 만다. 교사의 삶에서 학생과 학교, 수업을 떼어 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각자 사는 이야기로 시작했던 모임의 끄트머리는 언제나 열띤 학교 이야기로 흘러가기 일쑤였고, 식당 직원분들의 눈총을 받고서야 마감 시간이 임박했음을 눈치채고 일어서곤 했다. 어느 날 그 열띤 대화 중에 한 선생님께서 이럴 거면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에 지원해서 제대로 해 보자고, 부담 갖지 말고 우리가 하던 것을 그냥 하면 될 것 같다고 제안을 해 주셨고 그 한마디가 우리 교원학습공동체의 시작이 되었다.
그렇게 함께 할 결심을 하게 된 우리 교원학습공동체의 이름은 ‘전지적 독서 시점’이다. 매체 환경이 다양화되고 유튜브로 대표되는 각종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돕는 핵심은 독서 교육에 있다는 믿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조금 더 멋들어진(?) 이름으로 공모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었지만,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마친 지금 우리들의 관심과 지향을 표현하기에 이만한 이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우리 모임도 수업 철학을 세우기 위한 책을 함께 읽는 독서 토론을 기반으로 먼저 운영을 시작했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비경쟁식 독서 토론을 적용해 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독서 토론을 즐겨 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20년이 훌쩍 넘는 교직 경력에도 여전히 학구열이 넘치시는 선생님들께서 바로 『질문 빈곤 사회』(강남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고립의 시대』(노리나 허츠) 등의 책을 함께 읽어 보자고 추천해 주셨다. 내가 저 선생님들의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도 저런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드는 분들이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교실 현장의 사례들과 연결하여 토론한 뒤 토론 내용을 정리하여 모았다.
사실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를 시작하기 전에도 모임에서는 이것은 꼭 기록해 둬야겠다 싶은 선생님들의 촌철살인의 한마디 말이 항상 있었는데, ‘전지적 독서 시점’을 하며 선생님들과의 대화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하니 그 한마디 말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잘 모아둘 수 있었다. 독서 모임과 토론을 거치며 그 말과 생각들을 모으다 보니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독서 교육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도 차츰 형성됐다. 인기 드라마나 축구 경기 빅매치를 보고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제 그거 봤어?”로 시작하는 수다를 나누듯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독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독서 교육의 제일 목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2022년 한 해 동안 해보고픈 수업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수업 설계를 시작했다.
교과 수업 시간에 진행한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에서는 ‘책 대화 보고서’ 활동을 통해 책을 읽고 협력적으로 의미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 수업을 설계하였다.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하며 교육연수원이나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진행하는 국어 교육 관련 연수를 함께 신청해서 듣곤 했는데, 연수에서 배우고 함께 고민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수업을 진행하였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네 사람씩 짝을 지어 같은 책을 개별적으로 읽는다. 책을 읽으며 만든 질문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화 내용을 기록해서 협력적으로 의미를 생성해 나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기록하는 행위보다 대화 자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클로바노트 같은 음성 메모 도구를 활용하였으며, 비경쟁식 토론을 통해 단순한 찬반을 넘어 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크롬북과 구글 문서 도구를 활용하여 보고서를 공동으로 작성하고, 초안을 고쳐 쓴 뒤 형식을 갖춘 보고서로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서평 쓰기, 구술 활동, 비주얼 씽킹 등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책 대화 보고서는 학생들에게 이런 다양한 활동의 역량들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활동이라 교사의 입장에서도 수업을 진행하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전지적 독서 시점’에서 함께 수업을 설계하며 클로바노트나 크롬북, 구글 문서 등의 도구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의 부담을 덜고 협력적으로 의미를 생성해 가는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진행한 한 학기 한 권 읽기와 연계하여 창의적 체험활동의 자율 영역 활동으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기획부터 작가 섭외, 행사 진행까지 학생들 손으로 직접 하는 ‘톡톡(TALKTALK) 프로젝트’ 를 이어서 함께 설계하고 진행해 보았다. 선생님들과 논의를 하며 생각한 이 활동의 핵심은 자기주도성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되, 모든 과정은 학생들 손으로 직접 할 수 있게 하였다. 수업 시간에 책 대화를 하며 자신이 읽었던 책의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모집하여 작가별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메일, SNS 등을 이용해 작가 섭외를 진행한 뒤 동료들과 나눈 책 대화를 바탕으로 하여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기획하였다. 자신이 읽은 책의 작가를 직접 모시는 자리이니만큼 일방적인 강연이 아닌 적극적인 대화의 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의 고민이 많았고,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역사회의 독립영화 극장과 연계한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하여 진행 방법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전지적 독서 시점의 모임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인근의 독립 극장, 독립 서점이 인연이 되어 이 행사 때 큰 역할을 하였다.
한 학기 동안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를 하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촘촘하게 잘 짜인 수업 공개나 모범적인 수업의 사례를 들을 수 있는 연수 등도 물론 교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수업에 대한 진짜 살아 있는 고민은 실패한 수업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교실에 앉아 있는 개별 학습자들이 모두 다르고, 학급과 학급, 학교와 학교가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실 수업은 크건 작건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입장에서 ‘성공한 수업’이란 한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 실패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망한 수업’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 일처럼 함께 그 수업을 고민해 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에서 함께 나눈 고민과 생각들은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자연스럽게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로 이어졌다. 특히 1학기 책 대화 보고서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기초 문해력이 생각보다 낮은 것에 많이 놀랐고, 학생들을 자기주도적인 독자로 키우는 데 있어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긴 호흡의 책 읽기 수업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학생들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도 함께 필요했다.
이러한 수업은 특히나 각 학교의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설계가 필요했기에, ‘전지적 독서 시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같은 교과를 수업하는 선생님들과도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를 만들어 2학기 수업을 함께 준비했다. 1학기 동안 함께 문학 수업을 하며 선생님들과는 학생들의 문해력에 대한 문제 의식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고, 수업 준비 모임에서 한 선생님의 제안으로 2학기에는 독서 교과서 대신에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반영할 수 있는 최근의 정기간행물의 글을 바탕으로 하여 독해 과정에서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고 어떻게 글의 내용을 정리하는지 동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을 해 보기로 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영화, 문학, 예술, 과학, 수학 등 다양한 주제의 정기간행물을 읽고 기사를 읽는 동안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과정을 살피도록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살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난감해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연습 과정을 통해 자신의 머릿속을 살피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학생들 각자 자신의 사고 과정을 기록하고 묶어 문해력 교재로 만들었다. 이후 학생들은 이 교재로 자신의 독해 방법을 공유하는 발표를 통해 서로의 독해 방법을 비교하고 점검하며 글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를 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지필평가를 1회만 실시하는 방안에 대해 선생님들과 협의하고, 학생들을 설득해 나갔던 과정이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차례 모이면서 중간고사로 문해력 수업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을 막고 수행평가로 과정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학생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의미있을 것이라는 데에 선생님들의 의견이 모였다. 문해력 수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존에 2회 실시하던 지필 평가를 1회로 줄이고 수행평가가 50% 이상이 되도록 평가 계획을 수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 선생님께서는 기존의 평가 계획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을 손수 해 주셨고, 다른 선생님은 기꺼이 수행평가 루브릭의 초안을 꼼꼼하게 작성해 주셨다.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이다 보니 문제 풀이가 익숙한 학생들은 수행평가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불안해 했고, 상대 평가로 등급을 나눠야 하는 일반선택 과목에서 지필평가를 한 번 보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이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길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눈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들을 설득해 나갔다.
교사는 일과의 대부분을 수업을 하거나 수업을 준비하면서 보낸다. 수업 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교사의 삶이 행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교사에게 함께 모일 시간과 공간(그리고 예산!)이 주어진다면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수업연구와 동료장학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진짜 의미있는 수업 이야기는 바로 그 시간,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한 해 동안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한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는 어떠한 꾸밈이나 방어기제 없이 진짜 수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처음 계획서를 쓸 때 세웠던 창대했던 계획들 중에 실현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진행하는 독서 워크숍, 외부 강사를 모시고 ‘전지적 독서 시점’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독서 교육 연수도 계획했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두 실현하지는 못했다. 선생님들의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처음 마음 먹었던 것만큼 자주 모이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 하는 수업은 힘이 세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함께 모여 협력적으로 의사 소통하며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굳이 대학 시절의 교육학 교재를 뒤적이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교원학습공동체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교직 경력 10년,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점점 더 많아지기만 하는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수업도 잘해야 하고, 학생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며, 학생들의 활동을 멋지게 기록하기까지 해야 하는 교실 현장에서 혼자는 너무 힘들고 외롭다. (존경하는 한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한 실패에서 다른 실패로 건너가면서 단 한 줌의 열정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면 나에게 있어 학교 간 교원학습공동체는 그 무수한 실패의 여정에서 열정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2023년 다시 함께 할 결심을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