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식(경인교육대학교, 교수)
우리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자료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예컨대 아래 그림은 2021년도까지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중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다음에서 보듯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해마다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의 수행은 우수학력(4수준), 보통학력(3수준), 기초학력(2수준), 기초학력 미달(1수준)의 네 단계로 분류된다. 그 중에서 기초학력 미달이란 목표 수준의 20%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즉 기초학력 미달은 평가대상 학년 단계의 교과를 거의 학습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특히 코로나19가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가 이처럼 학생들의 학력, 특히 기본학력 혹은 기초학력 저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력 저하를 막고 나아가 학력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1. 기본학력 보장, 왜 필요한가?
UNESCO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자신의 특성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학교에 가서 실제로 배움에 성공할 권리가 있다(All children have the right to go to school and learn, regardless of who they are, where they live, or how much money their family has.). 이 주장에서 주목할 표현은 ‘go to school’과 ‘learn’이 ‘or’가 아닌 ‘and’ 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학교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무엇인가를 배울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과연 모든 학생이 그러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UNESCO측의 원문1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그 핵심 내용은 전 세계적으로 매일 약 10억 명의 아이들이 등교는 하고 있지만 60% 이상이 읽기, 셈하기를 최소한의 기준에 못 미치게 수행하고 있고, 결국에는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도 읽기, 셈하기를 능숙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학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본학력이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 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매우 큰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는 매우 빠르다. 이에 적응하고 나아가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활용해야 하며, 여러 가지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 기능의 부재 혹은 미흡은 공동체 속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가늠하기 어려운 어려움을 제기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제한으로 인한 영향은 자신에게만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자녀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기본학력은 학습자의 권리로서 적극 보장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2. 기본학력 보장 노력,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향과 요소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정책 및 노력에 꼭 거창한 이론이나 최신의 교수-학습 모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본에 해당하는 사항을 충실히 확인하고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학습 어려움의 원인과 양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특정 지도 방법의 효과에 관한 증거 확인, 가르칠 내용에 대한 해박한 이론적 안목 등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글 낱글자 읽기나 문단글 읽기 유창성, 독해 지도를 위해서는 한글의 제자원리, 발음원리, 효과적인 지도방법의 종류와 적용방법, 읽기 어려움의 원인과 해결방안, 효과적인 독해 지도 전략 등에 대해 잘 알고 실제로 이를 전문성 있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학 연산이 자주 틀리고 느린 학생을 효과적으로 지도하려면 연산 어려움의 원인과 효과적인 지도방법, 수감각 향상 방안 등에 대해 잘 알고 풍부한 지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문성과 경험 없이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교육방법이나 특정 개인 혹은 기관의 선호도에 근거하여 지도하는 것은 그 효과를 보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비용과 인력, 노력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가장 기본적으로,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정책과 노력으로 세 가지를 주장하고 싶다. 첫째는 매우 당연한 사항이지만 기본학력 지원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하 편의상 ‘학습부진 학생’이라 칭함)들의 특징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는 형성시키고자 하는 기본학력의 특징, 즉 가르칠 내용의 특징을 지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 셋째는 통합적인 지원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특징을 고려한 접근
먼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특징 중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학습부진 학생이 이러한 특징들을 하나 혹은 그 이상을 갖고 있다는 점은 교사는 물론 학부모들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징들을 지원 정책, 노력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그렇게 반영하면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학습부진 학생들의 특징이 시사하는 것 중 지원 정책이나 노력에 중점적으로 반영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도의 강도와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회 40∼50분 이상, 주 3회 이상, 수개월에서 때로는 1년 이상 수시로 지도 효과를 점검하면서 지속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여건과 인력을 구비해야 한다.
둘째, 난독, 난산 등 학습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진단하고 지원하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 정확히 얼마나 많은 학생이 이러한 진단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 각 학생별로 난독, 난산 지도는 어느 영역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그러한 지도 방법을 반영한 교재나 프로그램은 어떻게 제작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에 대해 잘 알고 이를 적용할 도구와 연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첫 번째 사항을 지속적으로 강도 높게 지도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학교 여건과 교원 양성 기관의 교육과정 편제상 이것이 당장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도기적인 해결 방안으로서는 현직 교원이나 기타 지도 인력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재교육을 들 수 있다.
셋째, 조기 진단과 조기 맞춤형 개입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조기 맞춤형 개입 체제’란 실패하기를 기다렸다가 문제가 확인되면 지원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학습이행 상태를 점검하여 학습 어려움 정도별로 정규 수업 내 지원, 방과후 소집단 지원, 개인별 집중 지원을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개입-반응 접근(Responsiveness-To-Interven-tion, RTI)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 학습자에 따라서 심리·정서 측면의 지원, 대인관계나 교육환경의 불리함에 대한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한두 사람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다. 여러 분야 전문가가 팀(다중지원팀)으로 협의하고 해결책을 이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섯째, 제한된 시간 안에 불리한 여건과 인지능력을 가진 학습자가 목표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려면 이미 효과가 검증된 방법(교재, 학습지 등)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두 가지가 필요한데, (1) 그러한 방법을 현장의 교사들이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고, (2) 그러한 플랫폼과 자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2) 가르칠 내용에 맞는 교사 전문성 확보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노력이나 정책에서 또 하나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가르쳐야 할 내용에 따라 지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의 내용도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는 보장해야 할 기본학력을 3R 중심의 기초학습기능과 각 학년별 및 교과 영역별 공통 필수 최소 성취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전자를 위해서는 앞서 학습자 특성 고려가 시사하는 정책 및 노력의 시사하는 바를 반영하여 지도해야 한다. 예컨대 난독, 난산 학생의 진단과 지도를 위해서는 교사양성 기관의 교육과정에 편성된 국어, 수학 교육과정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중·장단기 연수나 대학원 수준의 추가 교육이 필요하다.
후자를 위해서는 교육과정 운영과 교수-학습 방법의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최근에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 학교나 교사 수준의 자율성이 많이 확대되어 매우 유연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의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은 동일한 수준과 모드(mode)의 학습목표 설정, 동일한 수준과 모드의 교수-학습자료 제시, 동일한 학습 참여 활동 방식, 동일한 평가 방법과 기준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학습부진 학생의 특징들을 고려하면,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 방식으로는 학습에 곤란을 겪는 학생들이 각 교실에서 학습에 성공할 가능성은 적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습결손은 더욱 누적되어 결국 필연적으로 또래들과의 학력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교육과정 운영 측면의 획기적인 전환의 핵심은 교육과정 조정(Curriculum Modification),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맞춤형 수업(Differentiated Instruction) 등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 능력의 다양성과 잠재력의 무한함을 반영하여 각 학생으로 하여금 공통-필수 목표 이외에 복수의 학습목표를 제시하고 그 중 적절하게 도전적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격려해야 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사항을 종합하여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노력이나 정책의 키워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3) 단위 학교 내 지원팀을 중심으로 통합적 지원 체제 구축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대개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지원 역시 중층적, 복합적, 통합적이어야 한다. 중층적이란 가급적 여러 번에 걸쳐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합적이란 학습뿐만 아니라 정서, 심리, 행동 측면의 지원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합적이란 각 학생마다 전인적 관점에서 지원 요구와 지원 방안, 지원 성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연결하며 점검하고 관리 및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역할은 특정 교사 한 사람이 모두 다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관련 전문가와 필요 시 학부모가 모여서 서로 협의하고, 분석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그 성과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한 시스템은 단위 학교당 지원팀을 구성하고, 그 팀을 전담 교사가 운영, 관리하는 형태가 최선이다. 간혹 이러한 역할을 학습종합클리닉센터 같은 학교 밖 기관이 담당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학교 밖 기관이 학교 내 각 교실에서 발생하는 학습 어려움에 신속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궁극적으로는 학교 내에 학습 어려움을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지속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외부 기관이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하면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지체될 수 있다. 다중지원팀은 각 영역별 진단 및 지원상황은 물론 지원 단계별, 학년 단계별 진단과 지원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 및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학교 내 전담 교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3. 맺는말
Hattie는 학생의 학업성적을 향상시키는 가장 설명력이 큰 변인으로 교사 자신이 느끼는 지도 효능감과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를 제시했다. Hargreaves는 교육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인으로 교사의 자발적 참여를 꼽았다. 학생들이 기본학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일은 교사의 자기 효능감과 자발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기본학력 보장을 위한 정책이나 노력도 교사들의 자기 효능감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학교의 책임만을 강조하거나,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획일적으로 일정액수를 각 학교에 주고 알아서 사용하라고 방임하거나, 자꾸 학교 밖 기관이나 인력 위주의 지원만 확대하는 등의 접근은 교사의 효능감과 자발성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대신 각 학교 스스로 기본학력 보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다중지원팀 위주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