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호 (당산중학교, 교사)
그야말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이다. 전자칠판, 디벗, 에듀테크, 인공지능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교실 수업 환경에 침투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대에 맞는 능동적인 학습자를 길러내려는 시도 또한 학교 현장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얼마 전 ‘찾아가는 AIDT 직무연수’를 통해 AI·에듀테크 선도교사 강사님을 모시고 학생 참여형 수업설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 연수는 있었지만 최근 들어 관련 연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라 2025년은 수업의 디지털 전환이 정착되는 원년임을 실감하는 중이다.
1.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위한 고민
내년이면 중학교는 3개 학년 모두 디벗을 가지고 수업을 하게 되고, 2022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는 1학년의 경우 일부 과목에서 AI 디지털 교과서가 수업에 활용된다.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교육부에서도 디지털 기반 수업 혁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수업은 변수가 아닌 상수이다.
우리가 접하는 AI·디지털 기반 수업 우수 사례들을 살펴보면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앞선다. 요즘 트렌드에 맞고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수업, 미래 교육과정에 딱 들어맞는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소개하는 다양한 수업 사례들을 접하며 ‘수업에 인공지능을 어떻게 접목해야 할까?’, ‘디지털 기반 수업을 하려면 어떠한 수업 주제를 설정해야 할까?’ 등 여러 고민을 하게 되지만 막상 내 수업에 가져오기는 어렵기만 하다.
올해 초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디지털 기반 수업 혁신은 기존 수업과는 완전히 다른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하는 수업도 학생들의 역량 신장을 기대하며 계획하여 구성하고 있는 거잖아요. AI·디지털 기술을 적용한다고 완전히 다른 수업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수업을 위한 조미료 같은 역할이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요.”
모두 이와 같은 의견에 동의하였다. 지금 우리가 하는 수업도 학생들의 역량을 신장하고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실천하고 있는 수업이다. 디지털 기반 수업의 목적도 결국은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적 역량을 신장하는 것이다. 수업 내용과 방법에 맞게 AI·디지털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 AI·디지털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하는 본말이 전도된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기존의 수업 내용을 유지하되 현재 교사와 학생 수준에서 쉽게 활용이 가능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반영하여 수업 방법을 조금씩 바꾸어 보기로 하였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수업 혁신의 목표를 두고 교원학습공동체 구성원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2. AI·디지털 기반 과제로 재구성 하기
1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중 제조 기술과 창조 단원에 있는 ‘제품의 발달 과정과 미래 모습을 소개하는 신문 만들기’ 프로젝트를 기존에 하던 방식에 AI·디지털 기술을 적용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수업의 틀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AI· 디지털 기술의 이점을 반영하여 수업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흥미롭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존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둠별로 신문을 만들기 위한 A1 사이즈의 종이, 꾸미는 데 필요한 색연필과 사인펜, 조사한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모둠별 활동지 등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프로젝트 진행은 원래대로 하되, 앞서 언급한 도구와 재료들 대신 디지털 자료와 도구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준비물을 준비하거나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나누어 주는 과정이 생략되어 프로젝트에 필요한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고, 그만큼 더 상세하고 차분하게 프로젝트 과제를 안내 할 수 있었다.
가. 신문 제작을 위한 주제 선정과 자료 수집
모둠별로 주제를 선정하고 신문에 넣을 내용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검색을 통해 수집한 내용을 종이에 적고 보관하던 활동을 이번에는 클라우드에 디지털 자료 형태로 저장하도록 하였다. 구글 문서의 공유 기능을 활용하여 모둠원들이 각자 맡은 내용을 공유문서에 기록하고 모둠장은 이를 정리하고 종합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첫 시간에 조사한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클라우드에 저장하니 활동지를 잃어버릴 걱정 없이 다음 시간에 프로젝트를 바로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나. 신문 제작하기
앞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모둠별로 ‘제품의 발달 과정과 미래 모습을 소개하는 신문’을 제작했다. 신문을 제작하는 단계도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진행하였다. 이미 많이 알려지고 쓰이는 캔바(Canva)라는 디자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모둠별로 신문 디자인을 선택하고 조사한 자료를 입력하여 신문을 완성하였다.
이전 방식으로 시각적 자료를 만드는 활동을 하다 보면, 유독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거나 “선생님 저는 그림 잘 못 그리는데, 점수에 반영되나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교사 역시 미술 능력을 평가하는 활동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다채롭고 섬세하게 잘 그린 결과물에 좀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 누구나 미적 표현 능력과 관계 없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용이하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 완성작품 공유하고 발표하기
각 모둠이 완성한 신문은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여 패들렛(Padlet)이라는 플랫폼에 업로드하였다. 패들렛에 올라온 결과물들은 시각적 전달 효과가 크기에 이를 바탕으로 모둠별 프레젠테이션을 하였고 나머지 학생들은 발표를 들으며 즉각적으로 작품에 대한 별점 투표를 진행하였다. 별점 투표 기능은 학생들의 발표 집중도를 높이고 스스로 평가자가 되어보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전에 각 모둠이 만든 신문을 기반으로 퀴즈를 진행한다는 안내를 통해 학생들이 발표 활동에 더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라. 퀴즈 & 자기평가
발표 활동이 끝난 후 학생들이 제작한 신문 내용을 기반으로 AI가 생성한 퀴즈를 다 함께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퀴지즈(Quizizz)라는 에듀테크 앱에 있는 기능으로, AI가 생성한 퀴즈 내용을 교사가 검토해 보며 수정도 가능하기에 유용하다. 단순한 객관식 평가보다는 실시간 경쟁 요소를 반영한 퀴즈 활동으로 진행하였다. 퀴즈에 대한 피드백이 바로 제공되고 자신의 현재 점수가 계산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각자 이번 프로젝트 전반을 되돌아보는 성찰지 작성 시간을 가졌다. 성찰지 양식도 인쇄물을 나누어 주지 않고, 패들렛의 제출 링크를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이 제출한 성찰지를 교사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3. 인공지능, 쉬운 방법으로 시작하자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항상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Chat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이 때문에 수업에 인공지능을 접목한다고 하면 ChatGPT를 활용한 수업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수업에서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수업 설계가 필요하다. 경험이 적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수업에 적용하면, 의도했던 수업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 일쑤이다. 또한 학생의 연령에 따른 사용 지침, 학부모 동의 사전 작업, 서비스 제공자의 약관에 따른 제한점에 대한 학습 등이 진행되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새로운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인공지능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최근 대부분의 에듀테크나 플랫폼에서 자체적인 인공지능 기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교사의 수업과 평가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산출물을 제작하는 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신문에 들어갈 이미지를 학생들이 캔바의 ‘AI 이미지 생성기’를 활용하여 만들었고, 완성한 신문의 PDF 파일을 퀴지즈의 ‘AI 문제 생성기’에 업로드하여 퀴즈 문항을 제작하였다. 이는 학생의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업 준비 과정에서 교사의 수고도 덜게 해주었다. 이러한 AI기능은 카훗(Kahoot!)이나 패들렛 등 수업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에듀테크에 지속적으로 포함되고 있어서 손쉽게 접근 및 활용이 가능하다.
4.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위한 팁
가. 사전 연습을 충분히 하자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처음 시도하면 준비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기술적 문제, 끊임없이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 등으로 인해 당황하게 된다. 산으로 가는 수업과 예상을 벗어난 결과로 인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새로운 수업을 진행할 동력을 상실할 우려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수업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고, 학생의 입장에서 교사가 의도한 대로 수업 진행이 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교사와 학생의 화면이 서로 다른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나.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잘 설계한 AI·디지털 기반 수업도 실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 변수가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처럼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대비하여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도 좋다.
“여러분, 선생님이 오늘 수업에 활용할 플랫폼은 선생님도 수업에는 처음 써보는 겁니다. 하다 보면 잘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먼저 해결하는 사람이 알려주면서 수업을 진행합시다. 알겠지요?”
차라리 수업 도입에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진행하자. 처음 시도한다는 부담과 압박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학생들도 학급마다 몇 명이 있기에 문제가 발생하여도 미리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는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수업 진행이 가능하다.
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자
처음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자 고민하지 말자. ‘AI·에듀테크 선도교사단’과 같이 대외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우리 주변에는 조용히 자신만의 호흡으로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실천하는 동료 선생님이 알게 모르게 많이 계신다. 그분이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일 수도 있다. 원격연수나 낯선 강사에게 교육을 받는 것보다 우리 학교 사정을 잘 아는 교내 선생님의 도움과 조언이 더 유용한 경우가 많다.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교내 선생님들과 AI·디지털 수업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서로의 수업을 도와주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AI·디지털 기반 수업을 처음 시도하는 수업에는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참관하며 보조 강사의 역할을 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과 문제가 발생하여도 함께 해결할 수 있고,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학생들을 보조 강사들이 개별적으로 지도하여 전반적인 수업 흐름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모든 수업이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연필과 붓을 이용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활동은 여전히 소중하고 의미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반으로 활동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을 때 수업이 보다 풍성해지고 학생 역량 신장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보고 AI·디지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디지털 기반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나 내놓을 수 있는 ‘우수 사례’가 아니라 나만의 작은 ‘성공 사례’이다. 현재 상황과 내 역량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도 수업 혁신을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을 응원하면서, 어느 날 수업자료를 찾던 중 한 블로그에서 보았던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수업 혁신은 강렬한 향을 한번 뿌리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향을 지속적으로 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