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이(서울우암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한글, 어렵지 않아!
무더웠던 여름방학이 지난 후 만난 유아들은 눈에 띄게 자라있었다. 무엇을 하며 훌쩍 자랐을지 궁금해 방학을 지낸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친구나 가족과 놀러갔던 일을 회상하며 얼굴에 웃음꽃이 필 줄 알았던 아이들은 울상이 된 얼굴로 “공부하느라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5살인 유아들은 내년이면 입학할 초등학교 준비를 위해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글을 어떻게 배웠는지 물어보니 매일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학습지를 풀면서 ‘ㄱ’, ‘ㄴ’, ‘ㄷ’ 을 쓰고 외우고를 반복해야 했던 진짜 공부였다. 유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글 공부 힘들었지? 야, 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한글 쓰기의 첫 단계인 자기 이름 쓰기에 대해 말하면서 모든 글자에 받침이 있는 이름을 가진 유아는 “내 이름 싫어요! 외우기 힘들어요!”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학습지로 첫 만남을 해버린 한글은 유아에게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한글과 친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 유아들에게 놀면서 한글을 배우는 즐거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놀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교육부에서 유·초 연계 이음학기 운영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5세 유아의 유치원에서의 경험과 배움이 초등학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이음학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초등학교의 준비단계로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아의 경험과 배움이 단절되지 않고 초등학교로 이어지도록 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잇는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운 연결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대상인 유아의 발달 수준을 고려한 ‘존중’을 바탕으로 유·초 이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유아의 시선으로 유·초 이음교육을 다시 바라보니 놀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었다. 유·초 이음교육에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대다수의 학부모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언어교육을 먼저 주목해보았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인 놀이중심 교육과정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언어교육을 해낼 수 있도록, 이음학기 운영을 위한 교사 지원 자료인 놀이중심 언어교육자료 『놀이로 알아가는 말과 글자』(서울특별시교육청유아교육진흥원, 2023)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떻게 한글과 놀이를 하며 배움이 일어났는지 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1. 글자와 친해지기
1) “거꾸로 읽으니깐 암호 같지?” – 거꾸로 수수께끼
언어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교실 속에서 유아들은 한글과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관찰을 하였다. 관찰하던 중 교실 벽면에 붙어 있는 글자나 칠판에 쓰여진 글자를 거꾸로 읽으며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글자를 거꾸로 읽는 유아가 친구에게 “거꾸로 읽으니깐 암호 같지? 내가 뭐 말하는지 맞춰봐.”라고 말하며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거꾸로 수수께끼는 우리 반 첫 말놀이가 되었다.
유아가 글자를 거꾸로 읽기 위해서는 글자의 순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교실 속 물건’을 주제로 하여 포스트잇에 글자를 써서 칠판에 붙여 거꾸로 수수께끼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문제를 내는 유아가 거꾸로 말한 단어를 찾아 칠판에서 떼어 내 몸에 붙여 점수로 표시하였다.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하는 유아에게는 교실 속 물건의 사진과 글자가 함께 쓰여 있는 ‘힌트 카드’를 만들어 제공하기로 반 아이들과 협의하였다. 완성된 힌트 카드를 바구니에 모아둔 후 글자를 모르는 유아는 사진을 보며 문제를 정하고 그 단어 소리를 친구나 교사에게 귓속말로 듣고 문제를 내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2) “이건 누구 이름이지?” – 이름 찾아주기
거꾸로 수수께끼 놀이가 끝난 후에 교사는 놀이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각자가 맞춘 단어가 적힌 포스트잇을 다시 칠판에 모아 다음에도 또 해보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유아들은 금방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 특징에 관심을 보이며 실제 물건을 찾아 이름표를 붙여주자는 새로운 놀이를 제안했다. 그 순간 자신이 들고 있는 글자를 천천히 읽어보면서 그 물건에 맞게 이름표를 붙여주는 ‘이름 찾아주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3) “우리 어렵게 막 섞어볼까?” – 엉터리 이름 찾아주기
물건에 이름을 찾아주고 모두가 알맞게 글자와 물건을 잘 찾아주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이름표가 잘못 붙어 있는 물건을 발견하여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모습을 보고 다른 유아가 새로운 놀이를 또 생각해냈다. 난이도를 높여 ‘엉터리 이름 찾아주기’ 놀이로, 글자 종이를 해당하는 물건이 아닌 다른 곳에 붙인 뒤 다시 제자리로 이름을 찾아주는 놀이이다. 유아들은 놀이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방법을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유아가 한글에서 보이는 관심과 언어교육자료 『놀이로 알아가는 말과 글자』에 있는 활동을 연결지어 시작된 말놀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놀이로 연결되었다. 유아가 주도적으로 놀이방법을 변형하면서 누구보다도 놀이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놀이를 통해 유아는 문해력의 기초인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통해 말소리가 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음운론적 인식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놀이 방법이나 놀이 속 필요한 도움을 정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경험을 하여 듣기와 말하기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2. 글자와 놀이하기
1) “이번에는 내가 말한 거를 거꾸로 해봐.” – 반대로 하기
글자의 순서를 거꾸로 읽어보는 놀이를 하다가 ‘거꾸로’의 방법을 다르게 적용하기도 하였다. 단어를 거꾸로 읽어보다가 문득 어떤 행동의 지시어를 듣고 반대로 행동을 하면 더 웃길 것 같다는 유아의 의견을 반영하여 ‘반대로 하기’ 놀이를 하였다. 처음에는 가다와 서다, 앉다와 일어서다, 뛰다와 걷다 등과 같이 일상적으로 유아가 잘 사용하는 행동적 지시어를 중심으로 놀이가 진행되었다.
2) “너무 똑같은 것만 하니깐 재미없어.” – 반대말 찾기(맹꽁이 놀이)
유아들이 알고 있는 반대말이 제한적이어서 정해진 지시어가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말이 나올지 쉽게 예상이 되어 점점 놀이에 흥미를 잃어갔다. 교사는 놀이중심 언어교육자료 『놀이로 알아가는 말과 글자』에 나와 있는 다양한 반대말 찾는 놀이인 ‘맹꽁이 놀이’가 생각나 유아들에게 제안하였다. 맹꽁이 놀이는 전래동요 ‘맹꽁’을 활용하여 질문으로 제시한 단어에 반대말로 답하는 놀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크냐 맹꽁.”하고 교사가 질문하면 “작다 맹꽁.”하고 유아가 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반대로 하기 놀이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다가 점차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단어들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며 찾게 되었다.
3) “우리 반대로 하니깐 청개구리 같다.” – 청개구리 시간
반대말 찾기를 계속 진행하던 중 한 유아가 엄마에게 들은 ‘청개구리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뒤로 반대로 말하는 유아에게 “너 청개구리지?”라고 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는 모습이 엉뚱하게 느껴져서인지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말하는 유아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계속해서 많은 유아들이 반대로 말을 하다 보니 대화를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유아가 생기면서 문제 상황에 대해 토의를 하였다. 토의 결과, 하루 일과 중 청개구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는 뭐든지 반대로 말하기로 하였으며 교실 속 시계에 청개구리 그림을 붙여 청개구리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었다.
반대말 놀이를 통해 유아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단어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휘력이 향상되었다. 반대의 의미와 함께 주변 물체의 특성 등을 관찰하며 ‘크다/작다’ 등의 비교 개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말놀이를 통해 놀잇감 없이 글자만으로도 친구와 즐겁게 놀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글자와 함께하기
1) “난 글자 이만큼이나 모았어.” – 오늘의 단어
유아들이 새로운 단어를 많이 알게 되면서 하루 일과 평가 시간에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에 일과 평가 시간에 유아들의 대답은 정해진 답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듯한 “재미있었어요. 좋았어요.”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하루 일과를 회상하며 그날의 놀이나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유치원 일과 중 새롭게 알게 된 단어나 인상 깊은 말들을 기억하고 표현해볼 수 있도록 ‘오늘의 단어’ 활동을 소개하였다. 처음에는 글자 쓰는 것을 어려워했던 유아가 많았지만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오늘의 단어장을 보며 직접 써보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단어장이 두꺼워지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글자가 많아졌다고 뿌듯해하기도 했고, 어제와 오늘의 단어를 비교하거나 친구와 똑같은 단어가 있는지 확인해보며 즐거워했다.
2) “이거 나 혼자서 쓴 거야.” – 책 만들기
유치원 생활이나 놀이 속에서 글자와 함께 하는 것이 익숙해진 유아들은 자신의 작품이나 놀이 속에서 글자를 표현하는 모습도 많이 나타났다. 평소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집에서도 읽기 위해서 그림책의 그림과 글자를 똑같이 따라 써서 나만의 책을 완성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사진을 인쇄하여 그 동물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지어 작품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글자와 친해지고 함께 놀이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알고 있는 글자를 직접 써보고 자신이 쓴 글자가 담긴 작품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유아는 다양한 내용의 책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나타내면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글자의 필요성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행복반 해랑사!
5세 학급 담임으로서 2학기가 되자 ‘유·초 이음교육’은 정말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유·초 이음교육 속에 담겨져 있는 ‘이음’의 말처럼 전혀 다른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교육에 유아의 관심과 경험을 더해 자연스럽게 연결지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교사로서 유아들에게 한글 교육이 초등학교 선행학습처럼만 느껴진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학부모 요구에 따라 공부를 시켜야 되나를 고민할 때, 이음학기 운영을 위한 놀이중심 언어교육자료 『놀이로 알아가는 말과 글자』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자료를 통해 유아의 관심과 연결지을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알 수 있고, 학급 상황에 따라 수정이 가능한 교육자료도 포함되어 있어 교사 지원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뭔가 특별해야 할 것 같은 유·초 이음학기에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안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거리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음 놀이로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고민이 들 때마다 함께 생각을 나누며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들려준 우리 행복반에게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다.
“서울우암초등학교병설유치원 행복반 해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