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2024 가을호(256호)

다 함께, 새 교육과정으로
가장 필요한 배움을 채워주자

서준형 (서초고등학교, 교장)

큰 놀이공원에는 롤러코스터가 있다. 급경사·급커브는 기본이고, 360도로 돌아가는 레일 위를 아주 빠르게 달리거나 오르내린다. 다 내려온 줄 알았는데 더 내려가고 갑자기 탄력받아서 쭈욱 올라가고, 바닥을 쳤으니 끝났겠지 하면 갑자기 덜컹댄다. 이 놀이 기구를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 일단 탔으니 견디는 사람, 무서워 처음부터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 학교 교육과정은 롤러코스터와 유사했다. 체험할 것이 한정된 외길인데다, 싫어하거나 무서워 레일 위에 올라타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새 길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가야 할 경로를 찾아보려는 의지를 제대로 일깨워 주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 지속가능성의 위기 등 시대·사회적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 교육의 방향도 변화를 요구받아 왔다. 학생을 정해진 교육과정에 맞추게 하는 교육에서 학생들이 더 다채롭게 배우며 함께 성장하고, 가능한 각자의 길을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배움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미래교육으로의 전환에 주안점을 두어 만들어졌다. 2024년 초1, 2학년을 시작으로 2025년 중1, 고1에 적용되고, 2027학년도까지 모든 학교급의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방향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미래를 대비한 소양 함양, 자기 주도성 강화, 개별 맞춤 교육을 강화하고자 깊이 있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 도입되면서 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복잡한 과제들이 늘어났다. 학교 자율시간 도입 방안, 자유 학기 활동 재조정, 진로 연계 교육 방안, 학점제 도입 및 수업량 적정화에 따른 학사 운영 방안 등 준비해야 할 것이 산적해 있다. 교원 역량 강화 연수(AI 디지털교과서, 새 교육과정과 교과목에 대한 이해 제고 등), 교육과정에 적합한 학교 공간 마련, 개설 교과목 선정 등으로 학교는 바쁘다. 국어, 수학 등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증가(2023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발생하는 학습 격차 심화와 학업성취도 저하에 대한 성찰과 대응도 필요하다. 학생이 학습해야 할 것이 크게 늘어나고,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교과 내용에 이를 모두 집어넣어 주는 방식을 넘어, 학생 각자가 찾아가면서 학습하도록 자기 주도성을 길러 줄 수 있는 교수·학습 전문성도 더 요구되고 있다.

새 교육과정에서 새롭게 관심을 끄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AI 디지털교과서(영어, 수학, 정보 등)가 공식적으로 도입되고, 디지털 기기(디벗 등)가 교실 속으로 들어오면서 학부모, 교사 모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정부에서는 디지털교과서가 보조적 도구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하지만, 맞춤형 학습 시스템 혹은 그것이 어떻게 불리든 간에 기계(프로그램, 도구)에 의해 교육과정이 수행되는 경우 학생들을 보살피며 도와주는 교육활동에 어떤 일들이 생길지, 과연 개별 맞춤식 교육이 잘 될지, 아니면 그동안과 달리 교사의 보살핌이 없는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닌지 등이 우려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환영하든 그렇지 않든 소위 지능형, 맞춤형, 그리고 개인별 학습 시스템은 우리 학교 속에 점진적으로 확산될 것이며, 학생과 교사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이 무엇을 배워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교사가 아니라 시스템(프로그램)이 갖게 될 수도 있다.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따라 학생들의 맞춤 학습을 관리·지원하고 잘 배우게 하는 학습 촉진자이자, 교수·학습 평가 전문가로서의 교사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새 교육과정으로 도입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대전환 중 다른 하나는 학점 기반 교육과정(고교학점제)의 운영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자기 주도성과 학교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진로교육을 강화하려는 제도이다. 고교학점제에서는 학교가 더 많은 교과목을 개설해야 하고, 교과목도 학기 단위로 이수하도록 편성해야 한다. 교과목별로 평가 방식도 달라졌다(5단계 상대평가, 5단계 절대평가, 3단계 평가 등). 교사들은 여러 과목의 지도 준비, 선택과목의 증가에 따른 교사 및 강사 확보, 성취평가제에 따른 평가 전문성 향상, 최소 성취 수준 도달 지도, 기초 학력 향상 지도 등 부담이 가중되었다. 학교는 교원의 부담 증가 문제와 교과 간 이해관계를 사전에 조정해야 한다. 학점제 본래의 취지에 맞는 다양한 선택 과목 개설과 공강 시간 확보, 내실 있는 학사 운영 방안, 교육과정 전담팀 구성, 진로 연계 학업 설계 및 교육과정 이수 지도 체제 구축 등에 대한 학교 구성원 간 합의 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별 진로에 맞는 학업 설계 지원이 잘 이루어지고, 학사 운영 방식의 차이로 인한 학교 간 교육격차가 확대되지 않아야 고교학점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학교가 당면한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운영에 적합한 학습공간 구축 외에 학교의 자율성이 존중되고, 교원의 전문성 신장 및 협력적 학교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간, 학생과 학생 간, 교사와 교사 간의 만남과 관계에서 시작되고 효과가 나타난다. 서로 교감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찾는 학교 내, 학교 간, 교과 내, 교과 간 등 다양한 협력적 학습공동체를 구축하고, 학생 지원을 위한 교원 협업시스템이 상시 작동하게 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숙의하는 과정도 학생 맞춤 교육의 실천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릇이 커야 여러 가지를 많이 담을 수 있다지만, 저출생 여파로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들고, 학교는 작아질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작지만 큰 학교를 요구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을 돌보는 학교, 도서관-마을을 연결하는 학교, 학교와 학교가 연결된 학교 등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네트워크의 구심점 내지 연결 고리가 되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생을 도와줄 아이디어를 엮어내고 찾아주는 연결 고리이자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육청에서도 학교의 자율성 존중을 바탕으로 학교 앞에 놓인 과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자세로 학교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 학교 교육과정은 경로가 정해진 롤러코스터가 아닌 학생 스스로 페달을 밟고 나아갈 방향과 속도를 정할 수 있는 각자의 자전거처럼 기능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계획과 학습 속도에 맞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시행으로 함께하는 협력적 수업과 학생 맞춤 교육이 더 확산되어 학생들에게 가장 알맞은 시기에 가장 필요한 배움이 서울 학교에서 채워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