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 (서울신곡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디지털 대전환시대, 뉴노멀시대, 코딩교육, AI교육 등 변화하는 세상과 그에 발맞춰가야 하는 교육의 키워드를 들을 때면 진보하는 세상과 교육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도 상승하는 반면, 교사로서 마음이 조금 무겁다. 특히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자로서는 그 중압감이 배가 되기도 한다. 유아의 수준에 맞게 디지털, AI 활용을 설명하고 접하게 하는 것에도 고민이 깊으며, 디지털 교육이 유아의 발달상으로도 적절한가에 대한 우려와 유아 디지털 교육을 위한 낯선 개념을 공부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가 머릿속에 빙글빙글 맴돈다.
이렇게 추구하는 디지털 교육의 방향과 방법이 막연해질 때면 잠시 주변을 돌아본다. 카페나 식당에 앉아 유아가 살아가는 환경을 살펴보기도 하고, 육아하는 가정의 이야기, 학급 유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유아가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세계를 깨닫는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마트에 직접 방문하지않고도 어플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며, 스마트폰과 스마트기기로 궁금한 것을 그때 그때 생생하게 검색한다. 이런 생활상은 유아의 놀이에도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박스 종이로 스마트폰을 만들어 유튜브를 시청하는 모습을 나타내거나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를 표현하는 마크를 그리거나 혹은 어제 자신이 했던 로블록스 등 공유형 가상게임공간을 또래와 이야기 나누며 공통점을 찾는 모습 등을 관찰하게 된다. 이처럼 세상의 모습과 학급 유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어떤 디지털 교육을 해야 할지에 대한 희미한 실마리를 발견할수 있다. 그 실마리로부터 시작된 학급의 디지털 교육, 놀이 사례를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디지털교육과 놀이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 디지털로 유아의 발달 지원하기(3세)
학급 유아와 주변 세계에 있는 선과 모양, 색깔을 탐구하며 유아의 흥미와 관심을 지원하고 확장하기 위해 관련 도서, 블록, 교구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했고 실내외에서 선과 모양 찾기, 몸으로 모양 만들어보기등 여러 활동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선과 모양에 대한 이해를 높이던 중 모양과 선이 만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칸딘스키의 작품 두 가지를 감상하며 작품 속 숨어있는 모양과 선을 찾고, 모양과 선이 만난 모습에서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아는 작품 속에서 얼굴 표정을 찾기도 하고 해, 로봇 등 다양한 사물을 그림을 통해 떠올렸다. 그리고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다 함께 선과 모양 시트지를 활용하여 멋진 협동미술작품 만들기를 수행했다. 작품 제작 중 교사는 선과 모양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합하며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유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교사는 이 유아와 동시에 평소 그림 그리기를 즐기지 않거나 그림 표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학급의 유아를 함께 지원하기 위해 선과 모양을 활용한 연상 그림 그리기 활동을 제공했다. 이 활동에서는 손의 힘이 부족하더라도 뚜렷하게 그림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태블릿PC를 그리기 도구로 내어 주었다. 제공한 기기의 기본 어플인 삼성노트를 활용하여 그릴 수 있도록 했으며, 이 어플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어 3세 유아가 사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유아는 교사가 제작하여 제공한 기본 모양 템플릿을 보고 다양한 사물을 연상했으며, 어플에서 자신의 그림에 필요한 펜과 색을 직접 선택하고 주도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교사는 친구의 그림 그리기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도록 TV에 미러링해 주었고 유아는 친구의 그림을 보며 어떤 그림일지 추측해보는 등의 상호작용을 나누었다. 어플을 먼저 경험한 유아는 처음인 또래에게 교사를 대신하여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또래교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디지털과의 만남 이후, 유아는 미술 놀이에 참여도도 매우 높아지고 표상도 구체적이며 정교해졌다. 특히나 한 가지 색상만을 사용하던 유아는 어플 내에서 다양한 색을 사용해 표현해보며 실제 미술 놀이와 활동에서도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변화를 보였다.
2. 디지털로 유아의 관심과 흥미 지원하기(3세)
학기 초부터 유아는 악기를 연주하고 믹서기에 구슬을 담아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도 하며 소리 탐색하기를 즐겼다. 자신이 알고 있던 노래나 학급 내에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 소리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음악과 친해졌다.
교사는 유아의 흥미와 관심을 지원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악기를 제공하고 악기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악기 연주 시간과 새롭고 다양한 노래를 부르고 즐기도록 새 노래 시간을 마련했다. 더불어 악기 없이도 음악을 즐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음악의 시작이 되는 소리를 일상 속에서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으로, 몸으로 마음껏 표현했다. 유아는 이렇게 다양하게 음악을 즐기며 음악에 폭 빠져들었다.
유아의 커지는 흥미와 관심을 지원하고 확장하기 위해 시청각적 자극을 얻으며 즐겁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구글 크롬 뮤직랩을 제공했다. 유아는 자유놀이시간에 구글 크롬 뮤직랩(칸딘스키, 송메이커 등)으로 음악을 만들며 그에 담긴 음악적 요소를 흥미롭게 느꼈다.
교실에서는 음악 만들기와 더불어 동물 만들기도 한창이었다. 교사는 아이들의 구성 놀이와 음악 놀이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고 자신의 작품에 어울리는 소리를 유아 작품 사진에 삽입하여 짧은 영상을 만들어주었다. 유아는 자신이 만든 음악 소리에 맞춰 자신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지털과의 만남을 통해 유아는 기타, 드럼 등 학급에서 직접 연주해 보기 어려운 악기의 소리를 접하고 그를 이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을 만들며 멜로디, 리듬, 박자, 화음, 빠르기 등 음악적인 요소를 재미있고도 효과적으로 경험하였다.
3. 디지털로 유아의 놀이와 경험 확장하기(5세)
평소 가정에서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의 공유형 가상공간을 많이 접한 유아는 유치원 일상 속에서 또래와 가상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나누었다. 교사는 유아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경청하며 유아가 디지털 기기와 가상공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음을 느꼈고, 유아의 흥미와 관심, 놀이를 확장할 때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디지털의 속성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유아가 자신의 자화상을 유치원 구성원과 가정에 같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내비치자, 유치원에서는 유아의 원본 그림을 전시하는 것 외에도 ‘Spatial(스페이셜)’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가상공간에 사진으로 촬영한 유아의 그림을 전시했다. 가상전시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큐알코드를 가정통신문으로 송부하여 각 가정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학급 내에서도 아이들과 감상했다.
유아는 가상전시공간에서 작품에 집중하기보다 물에 떠 있는 전시회장 구조에 관심을 보이며 아바타가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벽을 뛰어넘거나 부술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하고 아바타를 조작하여 해당 행동들을 시도했다. 해당 행동이 가능하지 않자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사는 유아가 스스로 가상공간을 만들어 본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표상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디지털이 가진 속성과 세계관을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Cospaces EDU(코스페이시스 에듀)를 도입했다.
교사의 간단한 소개를 들은 후 유아는 팅커링1과 디버깅2을 통해 스스로 코스페이시스 에듀를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쳐갔다. 물론 원하는 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을 때는 교사와 함께 방법을 찾아보았다. 유아는 코스페이시스 공간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고, 이때 자신이 플랫폼을 탐색하며 알게 된 것을 또래에게 알려주거나 자신이 만들고 있는 가상공간의 이야기를 또래와 나누었다. 코스페이시스를 사용하는 유아들의 모습은 아래 사진과 같다.
가상공간에서의 간접경험은 오프라인의 놀이 주제로 이어졌다. 유아는 갤러리에 공유된 작품 중 아마존을 감상한 후 이어진 바깥놀이 시간에 모래놀이터에서 식물과 모래, 물을 이용해 아마존을 구성하여 놀이하기도 했고, 기본으로 제공되는 템플릿인 롤러코스터에 다른 오브젝트들을 더하여 가상공간을 꾸미다 오프라인에 있는 비슷한 놀잇감으로 관심을 전이하여 공 굴리는 놀이로 이어나갔다.
이렇게 디지털과의 만남을 통해 유아의 놀이는 더욱 다채로운 주제로 뻗어 나갈 수 있었으며, 디지털을 매개로 다양한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유아는 디지털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며, 디지털 기기를 배워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일상적인 사물 중 하나로 대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 디지털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4. 앞으로 나아가야 할 유아 디지털 교육과 놀이의 방향
각각 제시된 사례는 유아의 흥미와 관심, 발달, 놀이를 지원하기 위해 유아·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디지털과 만난 교육 사례이다. 교사가 유아와 활용하고 싶은 디지털 도구를 교육과정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를 세심하게 관찰한 후 학급 유아의 발달과 놀이 지원에 적합한 디지털 도구를 선정하여 제공하고 적절히 지원하는 것이 디지털 교육이자 디지털 놀이이다.
디지털 교육이 큰 화두로 떠오르면서 현장교사는 디지털 교육에 대한 많은 연수를 통해 역량을 갖추고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혹여 주저하는 교사가 있다면 자신이 쌓아 온 디지털 역량을 굳게 믿고, 디지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유아의 현실을 직시하며 디지털 교육과 놀이에 두려움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유아 수준에 적합한 디지털 도구는 유아의 놀이를 더욱 재미있고 활기차게 만들며 그 안에서 배움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최근 디지털 교육을 하며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바로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다. 디지털 활용 능력만 성장시키는 것이 디지털 교육이 아니며, 디지털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함께 필요하다. 디지털 시민성 교육에 대한 내용과 디지털 시민성 교육의 실제 진행 사례가 궁금하다면 ‘놀이로 여는 유아 디지털 교육 바로 알기’ 책을 참고해 보기를 추천한다.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디지털 시민성’이라는 개념이 쉽게 와닿을 것이다.
지금까지 유아 디지털 교육의 사례와 앞으로의 교육 방향성에 대해 나누었다. 유치원에서도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다양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전달하며 유치원에서부터 갖추어가는 디지털 역량이라는 새싹들이 자라나 초·중등교육에서 온전한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