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몰라도 너희는 알 수 있게
“전 좋아하는 게 없는데요?”
“잘하는 게 없으면요?”
생각해 보면 그렇다. 아이들에게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스스로 질문하며 자신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오직 높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였던 나는 교사가 된 후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며 진짜로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대화하면 항상 마무리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잘하는 것도 딱히 없고.”
진짜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그것을 교사로서 나만의 ‘콘텐츠’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나만의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같은 고민을 가진 서울답십리초등학교의 이현진 선생님과 함께 무엇이 나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나눴고, 결국 ‘행복’을 수업 주제로 정했다. ‘너희만큼은 자신이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고민하며 성장했으면 좋겠어.’라는 바람으로 ‘나를 알아가는 수업’을 진행했다.
디지털로 나를 알아가는 수업
6학년 도덕과에서는 자주적인 삶을 위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을 가르친다. 본 수업은 학생이 자신과 친구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직접적인 경험을 만들어주도록 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도구가 디지털 기기 및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라 생각했다.
디지털 역량을 쌓기 위해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신을 파악하고 표현하도록 했다. 기초 디지털 역량이 중요한 시점인 만큼 글, 이미지, 영상 등으로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도록 활동을 구성했다. 더불어 실시간 협업을 위한 도구로 디지털 기기를 적극 활용했다.
내가 잘하는 일이 무엇이지?
우리 반은 2개월에 한 번씩 학급 직업을 바꾼다. 소위 ‘1인 1역’이라고 하는 학급 운영 중 하나를 자신을 알아가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학급의 직업은 그때그때 학급 회의를 통해 수정, 교체하며 학급에 필요한 역할을 함께 만들어 간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IT 전문가다. IT 전문가의 역할은 학급의 크롬북을 관리하는 것인데, 크롬북 나눠주기, 걷기, 충전함 열고 닫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다.
“선생님!!! 설치가 안 돼요, 와이파이가 끊겨요, 갑자기 꺼졌어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수업은 참 좋았으나 수업할 때마다 아이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기는 어려워 아이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IT 전문가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아이가 학급마다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 아이들에게 IT 전문가라는 직업을 부여하고, 먼저 학습을 마치면 어려움을 겪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IT 전문가의 주요 역할이었다.
“자, 이거 이렇게 하는 거야. 오, 잘했어!”
“역시 IT 전문가네. 네 덕분에 빨리 끝냈어!”
먼저 학습을 마친 아이가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어려워하고 있는 친구를 도와주고, 친구가 학습을 잘 진행하면 서로 칭찬하고, 서먹한 사이의 친구도 도와주며 대화하는 모습을 매년 볼 수 있었다.
디지털 기기를 수업에 활용할 때, 교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수업 진행이 정말 어렵다. 이럴 때는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문제 해결의 일부를 맡기니 나도 수업 진행이 한결 편안해졌고 아이들끼리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서로 해결책을 공유하면서 학급 내 긍정적 의사소통을 늘려갈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나는 잘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 긍정적인 경험이 다른 직업을 맡을 때에도 자신 있게 임하도록 아이들의 태도를 변하게 했다. 학급 내 긍정적 분위기가 퍼진 것은 덤이었다.
나의 장점 알아보기
나를 알아가는 본격적인 첫 번째 수업은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기였다. “저는 잘하는 게 없어요,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데요.”라는 부정적인 언어 습관이 익숙한 아이들. 자신의 단점은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이들이지만 자신의 장점을 찾으라고 하니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했다.
아이들이 억지로 겨우 찾은 장점은 ‘키가 크다, 공부를 잘한다.’ 등 외적인 면과 자신이 가진 능력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장점을 찾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점을 세분화하여 찾도록 지도했다. 내면, 외면, 능력 등으로 장점을 세분화하여 고민하도록 활동을 구성하여 자신을 다양한 측면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에는 친구의 장점을 찾아주도록 우리 반 장점 판을 만들어 스티커 붙이기로 놀이했다. 친구가 알 것 같은 장점보다는 나만 알고 있는 그 친구의 새로운 장점을 찾아주는 것이 놀이의 핵심이었다. 서로 칭찬하기, 장점 찾아주기 활동은 자칫하면 억지스럽거나 장난스럽고 과장된 칭찬으로 학생들의 진지한 참여를 이끌기 어려운데, 스티커를 붙이며 서로 칭찬하니 칭찬을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민망하지 않고 솔직하게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반 성격 알기
성격을 파악하는 것도 자신을 알기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서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은 MBTI이다. 교실에서 “넌 P야? 난 J야!”와 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면 바로 수업에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MBTI 검사를 진행하여 자신의 MBTI 결과가 나왔다면 공통의 MBTI끼리 모여 성격 특징을 정리하도록 했다.
“맞아, 우리 P라서 약간 계획 없이 갑자기 하잖아!!”
“아~ 내가 N이라서 상상력이 풍부했나?”
사실 6학년이면 이전 학년에서 이미 구성된 집단이 그대로 유지되며 또래 관계가 제한적이고 단절적인 경우가 많다. 기존에 있었던 또래 집단을 벗어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아이들끼리 공통의 성격을 주제로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MBTI를 주제로 새로운 모둠이 형성되니 대화가 적었던 친구들끼리도 공통의 주제로 공감하며 신나게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우리 반은 I가 많아서 발표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봐요!”
피그잼(Figjam)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MBTI 결과를 모았는데 우리 반에는 내향적 성격을 의미하는 ‘I(Introversion)’를 가진 학생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순간 왜 우리 반에는 발표를 어려워하는 친구가 많은지를 이해했다는 아이들의 대답이 터져 나왔다. 간단한 검사로 친구와 학급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자 ‘너는 MBTI가 이래서 이렇구나~’라는 대화가 많아졌다. 자신과 친구를 파악하는 것이 이해와 배려를 높이는 데 긍정적 효과를 준 것이다.
행복 쇼츠(Shorts) 만들기
나를 파악하는 마지막 단계로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도록 했다. 행복한 순간, 행복을 느끼게 하는 대상, 행복을 느꼈던 경험을 자유롭게 떠올린 후 요즘 유행하는 ‘쇼츠(Shorts)’로 그것을 표현하게 했다.
30초의 짧은 동영상으로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수다. 영상을 찍고 행복을 표현하도록 모둠별로 역할을 나누어 서로 영상 제작에 필요한 역할을 돕도록 지도했다.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영상에 담을 것인지 장면을 계획하고, 장면 속 출연자를 정하고, 촬영하는 사람, 필요한 소품까지 영상 속 모든 것들을 직접 계획하고 제작하게 했다.
영상을 제작하는 동안 아이들 얼굴에는 정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고, 친구들의 행복을 영상으로 보며 “이 친구는 이럴 때 행복하구나, 나도 저럴 때 행복한데!”하고 행복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순간만큼은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학급이었던 것 같다.
재능 나눔 장터 열기
나를 파악하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는 ‘재능 나눔 장터’ 열기 행사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파악했으니 이를 확산하기 위해서 나의 재능 중 한 가지를 골라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자고 아이들과 함께 계획한 행사였다.
보여주고 싶은 재능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비슷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끼리 함께 장터를 운영하도록 했다. 이 재능 나눔이 왜 필요한지, 어떤 재능을 나눌 것인지, 재능 나눔 프로그램을 어떤 형식으로 구성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짜면서 자신의 어떤 면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희는 챌린지 댄스를 출 때 행복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저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줄래요!”
프로그램 제작 의도, 프로그램 구성 등을 PPT로 만들어 발표하면서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재능에 점차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계획이 잘 세워졌는지, 협동은 잘하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고 준비물을 구입하고 주는 역할이었다. 이보다 더 학생 주도적인 수업이 있었나 싶었다.
우리 반은 재능 나눔 장터에 참여할 학급을 모집했다. 나는 교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고 공문을 올려 우리 학급의 행사를 알렸고, 아이들은 직접 만든 행사 포스터를 들고 다른 학급을 찾아가 ‘재능 나눔 장터’ 에 참여할 학급을 모집했다.
그리고 당일!
아이들은 총 50명에게 계획했던 재능을 맘껏 보여주었고, 교실은 열기로 후끈후끈했다. 교장, 교감선생님께서도 방문하셔서 응원해 주시고 영어 선생님과 원어민 선생님도 참여하시자 아이들은 한껏 긴장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설명하고 자신이 준비한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뿌듯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완전히 불태웠어요~!”
두 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 아이들의 입에서는 힘들다는 말이 나왔지만, 행복감과 성취감이 가득한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학생 중 한 명은 “현장체험학습보다 더 재밌었어요, 6학년 언니 오빠들 사랑해요!”라며 소감문을 보내왔다. 소감문을 본 아이들의 감동과 뿌듯함이 배가 됨은 물론이었다.
행복을 주는 수업
자신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던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가는 수업에 참여하며 느낀 감정은 행복이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확산한 후 우리 반 아이들은 조금 달라졌다. 수업 하나로 많은 변화를 주긴 어렵지만 ‘저 작년에는 말도 안 하고 엄청 소심했어요, 근데 달라졌어요!’하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면 약간의 긍정적 변화를 이끈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사인 나도 덩달아 행복했던 수업이었다. 그리고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나만의 콘텐츠를 찾아야겠다.